1. 


우영이 알파로 발현했다. 열일곱 살 늦은 봄의 일이었다. 
郑友荣作为 Alpha 觉醒了。这是十七岁晚春的事。

형질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유전적 성질로 대개 대여섯 살 전 발현을 마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고등학생이 된 정우영의 갑작스런 알파 발현은 일종의 사고 같은 것이었다. 베타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알파는 돌연변이로 취급받았다. 산은 제 집 식탁에 둘러앉아 쑥덕이는 이웃 어른들 틈에서 입을 다문 채 무릎만 만지작거렸다. 우영과 가장 친하다는 이유로 우영에 관한 질문이 취조하듯 쏟아졌다. 산은 녹음된 음성을 튼 것처럼 단조로운 목소리로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거짓말은 없었다. 엊그제만 해도 우영에게선 알파 발현의 전조증상 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날벼락을 맞은 건 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形质是从出生时就决定的遗传特性,通常在五六岁前就会显现。因此,高中生郑友荣的突然 Alpha 显现是一种意外。从 Beta 父母之间出生的 Alpha 被视为突变。伞坐在自家餐桌旁,默默地摸着膝盖,周围是窃窃私语的邻居大人们。因为和友荣最亲近,关于友荣的问题像审问一样接踵而至。伞像播放录音一样,用单调的声音一遍遍重复着不知道。这并不是谎言。就在前几天,友荣身上还没有任何 Alpha 显现的前兆。伞同样也像被雷击了一样。


우영은 이틀을 고열에 시달렸고 삼 일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산은 그동안 우영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휴대폰의 메시지창을 들락거렸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위로는 잔인했고 축하는 씁쓸해서. 
郑友荣高烧了两天,不得不住院三天。伞在这段时间里一次也没有联系过郑友荣。他好几次打开手机的消息界面,但完全不知道该说些什么。安慰的话太残忍,祝贺的话又太苦涩。


산이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 위로 새로운 선 하나가 그어지는 삶. 우영은 산이 모르는 것을 감각하며 새로운 궤도를 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정우영을 최산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 명제를 떠올리면 산은 조금 우울해졌다. 
伞感受到的五种感官之上,又多了一条新的线。友荣将会感受到伞所不知道的东西,并在新的轨道上生活。未来的郑友荣,崔伞是绝对无法理解的。每当想到这个命题,伞就会有些忧郁。






2. 


우영의 퇴원 전날, 산은 꽃을 사들고 병원을 찾았다. 빈손으로 가기 뭐해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인데. 문을 열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영이 너무 크게 웃어버려 산은 놀림이라도 당한 듯 민망해졌다. 
在友荣出院的前一天,伞带着花去了医院。空手去总觉得不太好,经过一番思考后选了这个礼物。门一开,眼神一对上,友荣就大笑起来,伞顿时觉得像是被嘲笑了一样,有些尴尬。



"야! 간지럽게 무슨 꽃을 사 오고 그래! 내가 뭐 죽을 병 걸렸냐?"
“呀!买什么花啊,痒死了!我又没得什么绝症!”



킬킬대는 우영의 얼굴이 전에 없이 수척했다. 살이 내린 뺨과 턱이 홀쭉하게 말라붙어 그늘이 졌다.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꼴이었다. 울컥하는 맘에 산은 입술을 씹었다. 
咯咯笑的郑友荣的脸比以前更加消瘦了。瘦削的脸颊和下巴干瘪得形成了阴影。不用多说也能看出他这段时间受了多少苦。崔伞心里一阵酸楚,咬住了嘴唇。


어쩌면 소식이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산은 우영이 내리는 어떤 처분도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왔다. 모진 말도 싸늘한 시선도 다 감당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변한 정우영이 변한 게 없어서. 
也许他会因为自己没有消息而责怪自己。因为在最困难的时候没能陪在他身边的内疚,伞已经准备好接受友荣对他做出的任何处置。恶毒的话语和冷漠的目光,他都打算承受。然而,改变的郑友荣却没有改变。


산은 스스로가 한심했다. 우영이 그대로란 사실에 안도하는 것조차 자격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산은 우영이 부재한 지난 며칠을 되새겼다. 혼자 견딘 그 시간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간헐적으로 살아있는 느낌. 우영도 저와 같았을까.
伞觉得自己很可悲。即使是对友荣一如既往的事实感到安心,他也同样没有资格。伞回想起友荣不在的这几天。独自忍受的那些时光显得那么遥远。偶尔才有活着的感觉。友荣也和我一样吗。

산이 병실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지켜보던 우영이 저 멀리서 밑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산의 표정을 살피려는 행동이었다. 
伞呆呆地站在病房门口一动不动,远处观察的友荣歪着头看着他。这是为了看清伞的表情。



"최산, 삐졌어?" “崔伞,你生气了吗?”

"......그런 거 아니야." “……不是那样的。”

"그럼 거기서 뭐해. 빨리 일루 와 앉아."
“那你在那里干什么?快过来坐下。”



우영이 제 침대 발치를 두드렸다. 산은 주춤주춤 걸어가 우영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놀릴 거리가 생겨 신이 난 얼굴을 하고서 우영은 일단은 고맙다며 그걸 품에 받아 들었다. 미안. 산의 기어들어가는 사과에 우영이 다 안다는 듯 픽 웃었다.
友荣敲了敲我的床脚。伞踌躇地走过去,把花束递给友荣。友荣脸上带着找到取笑对象的兴奋表情,先是道谢,然后把花束抱在怀里。对不起。伞小声道歉,友荣像是全都明白似的笑了笑。



"걱정했냐?" “担心了吗?”

"당연하지." “当然。”

"그럼 됐어. 너도 무서웠잖아 나만큼."
“那就好。你也害怕了吧,和我一样。”



싱겁게 납득한 우영은 맨발로 걸어가 미니 냉장고와 캐비닛을 뒤져 먹을 것들을 잔뜩 꺼내왔다. 온통 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언제든 산이 올 것을 대비했다는 듯. 
乖乖接受的郑友荣光着脚走到迷你冰箱和橱柜前,翻找出一堆可以吃的东西。全都是崔伞喜欢的东西。仿佛随时准备好崔伞会来一样。



"애들 난리 났겠네." “孩子们肯定闹翻天了。”

"응. 학교에 소문 쫙 퍼졌어."
“嗯。学校里到处都是这个传闻。”

"학교 가기가 벌써 두렵냐 왜."
“为什么已经害怕去学校了?”

"당분간은 너 엄청 피곤할 듯."
“当分你会非常疲惫。”

"너희 부모님은 뭐라셔? 많이 놀라셨겠다."
“你父母怎么说?他们一定很惊讶吧。”

"니네 부모님만 하겠니." “你以为只有你父母会这样吗。”

"우리 엄마 아빠는 거의 기절이지 뭐."
“我们妈妈爸爸几乎要晕倒了。”



우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일상의 대화들 사이로 산은 타이밍을 쟀다. 정말로 알고 싶은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 따위가 아니었으므로. 마침 잠깐의 정적과 함께 틈이 생겼고, 산은 계속 혀 뒤에서만 맴돌던 질문을 꺼내 뱉었다. 
友荣苦笑了一下。日常对话中,伞在等待时机。因为他真正想知道的并不是周围人的反应。正好有一瞬间的沉默,伞抓住了这个空隙,终于把一直在舌尖打转的问题说了出来。



"너는 어때?" “你怎么样?”



산이 묻자 우영이 손가락으로 제 가슴팍을 가리키며 반문했다. 나? 뜻밖이라는 듯 우영의 목소리가 솟았다. 산은 고갤 끄덕였다. 
伞问道,友荣用手指指着自己的胸口反问道:“我?”友荣的声音中透出一丝意外。伞点了点头。


낙조가 고인 병실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산을 보던 우영의 고개가 창쪽을 향했다. 해는 순식간에 질 것이다. 낮이 끝나는 찰나의 시간. 대부분의 변화가 그렇듯 이 또한 절대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夕阳映照的病房一片红色。郑友荣看着伞的头转向了窗户。太阳很快就会落山。这是白天结束的瞬间。就像大多数变化一样,这也是一种绝对无法停止或逆转的事情。


산은 우영이 긍정하길 내심 빌었다. 발현의 득과 실을 따지자면 득이 압도적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소수의 알파들은 특권 계층으로 분류되고, 실제로 수많은 배타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니까. 혹자는 이것을 알파 우월주의라 비판했지만 산은 그저 신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라 받아들였다. 
伞内心祈祷友荣能认同。如果要权衡觉醒的利弊,显然利远远超过弊。少数 Alpha 被归类为特权阶层,实际上享受着无数的排他性福利。有人批评这是 Alpha 至上主义,但伞只是认为这是顺应神的旨意。


신의 뜻. 인간을 사랑해서 구세주를 보냈다는 그에게 단 한 번도 의존해 본 적 없는 산일지라도, 이것이 미지의 존재가 짜놓은 원대한 계획의 일부라면 미천한 범인으로서 복종하는 수밖에. 
神的旨意。即使是从未依赖过那位因爱人类而派遣救世主的伞,如果这真是未知存在所编织的宏伟计划的一部分,作为卑微的凡人也只能服从。


그러나 선택받은 우영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재가동된 생을 한 줄로 축약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산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축하한다는 말을 예행연습처럼 속으로 되뇌며. 
然而,被选中的友荣久久没有说话。似乎要将重新启动的生命浓缩成一句话并不容易。伞耐心地等待着,心里像排练一样反复默念着祝贺的话。


마침내 우영의 시선이 산에게로 돌아왔다. 단단한 눈썹 뼈 아래로 그늘이 져 원래도 서늘한 눈매가 더욱 냉랭했다. 별안간 긴장한 산의 앞에서 우영이 버릇처럼 한쪽 입꼬리를 당겼다. 다음 대답은 어쩐지 예상 가능했고,
终于,友荣的视线回到了伞身上。坚硬的眉骨下投下阴影,原本就冷峻的眼神显得更加冷酷。突然紧张起来的伞面前,友荣习惯性地勾起了一边的嘴角。接下来的回答不知为何可以预见,



"좆같아." “真他妈的。”



어김없이 적중했다.  一如既往地命中了。






3.


우영은 재학 중인 소수의 알파들과 금세 친해져 무리를 지었다. 퇴원 직후엔 우영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몰려 도떼기시장을 이뤘는데, 다 똑같아 보이는 놈들 중 우영은 알파들만을 잘도 골라내었다. 아마도 페로몬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구별한 것일 테지만. 산은 그게 신기한 동시에 당연한 괴리감을 느꼈다. 
郑友荣很快就和在校的少数 Alpha 们打成一片,形成了一个小团体。刚出院时,每到休息时间,总有学生涌到走廊上来看他,场面就像集市一样热闹。在看似相同的一群人中,郑友荣总能准确地挑出那些 Alpha。大概是通过信息素之类的东西来辨别的吧。伞对此感到既神奇又理所当然的疏离感。


2학년이 되고 우영과 반이 나뉘었다. 우영을 찾아가면 주위엔 최소 세 명 이상의 알파들이 모여 있었다. 우영은 알파 형질에 완전히 적응한 후 자연스럽게 군림하는 위치에 섰다. 처음부터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듯. 알파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升上二年级后,我和友荣分到了不同的班级。每次去找友荣时,他周围总是围着至少三个以上的 Alpha。友荣完全适应了 Alpha 的特质,自然而然地站在了统领的位置上。仿佛他从一开始就为了这个而生。他带领着 Alpha 们的样子一点也不显得突兀。


그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한다는 걸 산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몰라 그냥 느껴지던데. 방식에 대해 묻자 우영은 하나마나 한 설명을 했다. 나중에서야 우영이 희귀한 우성 인자를 타고났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얻은 힘은 절대로 전복될 수 없다는 그들 간의 순리와 법칙을 새로 사귄 알파 친구를 통해 들어 알았다. 그러나 그만큼 대단하다는 정우영의 페로몬도 무형질의 최산 앞에선 하등 소용없는 것이라. 산은 머리로는 이해하되 도무지 실감할 수 없었다.
他们之间也存在等级制度,这一点伞在理论上是知道的。只是感觉而已。问起方式时,友荣做了一个无关紧要的解释。后来伞才通过新结识的 Alpha 朋友得知,友荣拥有稀有的优性基因,从中获得的力量绝对不会被推翻,这是他们之间的顺理成章和法则。然而,即使是如此强大的郑友荣的费洛蒙,在无形的崔伞面前也毫无用处。伞在脑海里理解了这一点,但却无法真正感受到。



하나 다행인 건 우영 덕분에 알파 무리에 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베타인 산이 경멸스러워도 우영의 곁이라면 누구도 감히 티 내지 못했다. 아직도 형질로 사람을 배척하는 씹새끼가 있냐며, 우영은 산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다 들으란 듯 외쳤다. 
唯一值得庆幸的是,由于友荣的缘故,伞融入 Alpha 群体并不困难。尽管伞是 Beta,令人鄙视,但在友荣身边,没有人敢表现出来。友荣一边把手臂搭在伞的肩膀上,一边大声喊道:“现在还有因为性别排斥人的混蛋吗?”

우영에게 동의하는 일부는 산과 금세 친해졌고 산을 받아들이는 데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자존심 강한 알파들 사이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一些同意友荣的成员很快就和伞亲近了,并且对接受伞没有任何抵触。这在自尊心强的 Alpha 之间是很罕见的事。



"근데 너 진짜 베타야?" “可是你真的是 Beta 吗?”



불쑥 한 친구가 물었다. 순식간에 세 명분의 눈길이 산에게로 쏟아졌다. 누군가 가져온 게임기 속 캐릭터에 몰두한 우영만이 시선을 손끝에 고정한 채였다. 산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마주 앉아있던 다른 알파가 기다렸다는 듯 자기 무릎을 탁 친다. 
突然,一个朋友问道。瞬间,三个人的目光都集中到了伞身上。只有专注于某人带来的游戏机里的角色的郑友荣,视线依然固定在手指尖上。在伞还没弄清问题的意图之前,对面坐着的另一个 Alpha 像是早就等着似的,拍了拍自己的膝盖。



"와 나도 궁금했는데. 너 베타 맞지?"
“哇,我也很好奇。你是 Beta 对吧?”

"아니 처음에 얘 봤을 때 열성이라 냄새가 안 나나 했거든."
“不是,我第一次见到他的时候,还以为他是个 Beta,因为闻不到他的味道。”

"어 맞아. 좀 그런 느낌이 있어."
“哦,对。确实有那种感觉。”

"근데 베타라는 거야." “但是他说他是个 Beta。”

"약간 의외라고 해야 하나." “应该说有点意外吧。”



산은 대답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기나 했다. 관심 없는 척 대화에서 빠져있던 우영이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伞没有回答,只是尴尬地笑了笑。一直装作不感兴趣的郑友荣突然开口了。



"그럼 뭐 가짜 베타도 있냐?"
“那有假 Beta 吗?”

"그건 그런데......" “那是这样……”

"산이 베타 맞아." “伞是 Beta 没错。”



우영이 딱 잘라 정의했다. 말을 꺼냈던 친구가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는 게 보였다. 답지 않게 단호한 어투에 산은 괜히 우영의 눈치를 봤다. 책상에 걸터 앉아 게임기를 두드리는 우영은 다시금 이쪽 사정엔 흥미를 잃은 얼굴이었다. 
友荣斩钉截铁地定义了。开口的朋友似乎有些尴尬,挠了挠后脑勺。伞看到友荣罕见的坚定语气,不由得看了看他的脸色。坐在桌子上敲打游戏机的友荣再次对这边的情况失去了兴趣。



"나 베타지. 이거 봐, 아무 냄새 안 나잖아."
“我可是 Beta。你看,完全没有气味吧。”



산은 처음 의문을 제기했던 친구의 앞으로 손목을 쭉 내밀었다. 몸 곳곳에 묻은 페로몬 향이 그들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랬으니,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산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서 본질을 증명했다. 
伞把手腕伸到最先提出疑问的朋友面前。身体各处散发的费洛蒙气味就像他们的身份标志一样,没有任何气味的伞通过没有任何气味来证明了自己的本质。

뻗어진 산의 손목 가까이로 친구가 코를 붙였다. 오 확실히 아무 냄새 안 나. 친구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부 위로 닿는 숨결에 간지러워진 산이 손목을 빼자 지켜보던 다른 녀석이 보다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며 나섰다. 또 무슨 절차가 필요하냐고 불평하는 사이 예고도 없이 산의 셔츠 깃 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朋友把鼻子凑近伞伸出的手腕。哦,确实没有任何气味。朋友惊讶地睁大了眼睛。伞被皮肤上的呼吸弄得痒痒的,抽回了手腕,旁边另一个人说要更确切地确认一下。就在伞抱怨又需要什么程序的时候,另一个人毫无预警地把脸凑近了伞的衬衫领口。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식겁한 산이 바짝 얼어붙은 게 재밌는지 턱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개가 상대를 구별하기 위해 냄새를 맡듯 산의 목줄기를 킁킁거리던 알파가 마침내 떨어져 나갔다. 산은 어쩐지 민망해져 목을 벅벅 긁었다. 
椅子向后推时发出了刮地的声音。伞吓得僵住了,听到下巴底下传来的笑声,似乎觉得他这样很有趣。就像狗为了辨别对方而嗅闻一样,那个在伞的脖子上嗅来嗅去的 Alpha 终于离开了。伞有些尴尬地挠了挠脖子。



"얘 베타 맞아. 백 퍼."
“他是个 Beta。百分之百。”

"아무 냄새 안 나?" “没有闻到任何气味吗?”

"걍 살냄새 나는데." “就是有股体香。”



나도, 나도 맡아볼래. 그리곤 체험관처럼 이놈이고 저놈이고 달려들어 산의 목에 코를 들이밀었다. 산이 질색하며 파닥여봐도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기가 막혔다. 하고 싶은 건 하고, 갖고 싶은 건 반드시 가지는 삶을 살아온 알파들의 안하무인을 산은 이런 때에 체감했다. 
我也,我也想闻闻看。然后像体验馆一样,这个家伙那个家伙都扑上来,把鼻子凑到伞的脖子上。伞虽然厌恶地挣扎,但没有人理会他,这让他感到无比愤怒。伞在这种时候才真正体会到那些想做什么就做什么,想要什么就一定要得到的 Alpha 们的目中无人。


다들 멀어지고 나서야 산은 참았던 숨을 뱉었다. 목 부근이 간질거렸다. 친구들은 어느새 산의 살냄새에 대해 토론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차피 산은 발현의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보통 인간인데, 만약을 가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굳이 말을 막지 않은 것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大家都走远了之后,伞才吐出憋住的那口气。脖子附近有些痒痒的。朋友们不知何时已经开始热烈讨论起伞的体香了。反正伞是一个觉醒可能性几乎为零的普通人,假设这种情况有什么意义呢?但他并没有阻止他们说话,因为他不想破坏气氛。


친구들을 따라 웃던 산이 고개를 들었을 때 한 손에 게임기를 쥔 우영과 눈이 마주쳤다. 화면 속에는 게임 오버를 알리는 영상이 계속해서 재생되는 중이었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동작에 바짝 좁아진 우영의 미간이 드러났다.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우영이었다. 모로 꺾어진 옆얼굴에서도 왜인지 모를 심란함이 읽혔다. 할 말이 가득한 얼굴인데, 일자로 다물린 입은 수업종이 칠 때까지도 열리질 않았다.
朋友们跟着笑的伞抬起头时,和手里拿着游戏机的友荣对上了眼。屏幕上不断播放着游戏结束的画面。友荣拨开滑落的刘海,紧皱的眉头显露出来。先移开视线的是友荣。从侧脸看去,不知为何显得有些心烦意乱。明明有很多话想说,但紧闭的嘴巴直到下课铃响也没有打开。






4.


후관 건물의 벽에 기대 있던 산이 운동화 끝으로 공연히 바닥을 찼다. 소리가 조금 컸나 싶어 움츠러들었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빼 저쪽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마주 선 두 사람은 이쪽 사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모양이었다. 빼꼼 내민 눈을 도로 돌리려다 말고 산은 저를 향해 선 우영을 관찰하려 눈가를 좁혔다. 아니나 다를까 우영의 표정이 심드렁했다. 고백받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伞靠在后馆建筑的墙上,用运动鞋尖无聊地踢了踢地面。声音有点大,他缩了缩脖子,然后悄悄地抬起头观察那边的动静。幸好,面对面的两个人似乎没有时间顾及这边的情况。伞正准备收回探出的目光,却又眯起眼睛观察起站在他面前的友荣。果然不出所料,友荣的表情显得很冷淡,完全不像是一个被告白的人应有的表情。


우영은 인기가 많았다. 베타일 때도 툭하면 선물이나 편지 따위를 쥐고 돌아오더니 알파가 돼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백이 이어졌다. 그러나 혼자 나갔던 우영은 늘 혼자인 그대로 돌아왔고, 그때마다 알파 친구들은 우영에게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평생을 함께 할 원앤온리를 고르라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사귀고 헤어지는 관계조차 만들지 않는 우영의 순진함이 의외라며 없는 자리에선 뒷말도 나왔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어 산은 늘 말을 아꼈다. 
友荣很受欢迎。即使是 Beta 的时候,他也经常带着礼物或信件回来,而成为 Alpha 后,几乎每天都有告白。然而,每次独自外出的友荣总是独自一人回来,每当这时,Alpha 朋友们总是嘲笑他眼光太高。又不是要选一个共度一生的唯一伴侣。友荣连适当交往然后分手的关系都不建立,这种纯真让人意外,背后也有不少议论。伞因为无法偏袒任何一方,总是保持沉默。


지난주엔 옆 동네 예고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는 오메가 여학생이 교문에서 기다리더니. 오늘은 입학식 때부터 화려한 외모로 이름을 날린 1학년 오메가 남학생이 우영을 불러냈다.
上周在隔壁艺术高中,那个无人不知的 Omega 女学生在校门口等着。今天则是从入学典礼开始就以华丽外貌闻名的 1 年级 Omega 男学生把友荣叫了出来。


결국 인류의 역사란 아름다움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산은 이 오메가가 우영의 연애 상대로 제격이라 멋대로 판단했다. 정우영이라면, 저런 애 정도는 만나야 하지 않겠냐며. 
最终,人类的历史不就是争取美丽的斗争过程吗?伞擅自判断这个 Omega 是友荣的理想恋爱对象。他认为,如果是郑友荣的话,不就应该和那样的人交往吗?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우영은 떨떠름했다. 이전의 거절 과정과 비교해도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우영을 마주한 남학생의 꼿꼿했던 고개가 점차 바닥으로 떨구어지는 것이 보였다. 적당히 다정하게 대해줄 법도 한데, 우영은 늘 상대에게 미련 한줌 남기지 않겠다 작정한 듯 칼같이 선을 그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냉담한 얼굴. 산은 차가운 말을 뱉는 우영이 낯설었다. 
但是与期待相反,友荣感到有些不快。与之前的拒绝过程相比,这次也没有什么不同。可以看到,面对友荣的男学生那原本挺直的头逐渐低垂了下来。虽然可以适当地对他友好一些,但友荣总是像下定决心不留一丝留恋似的,冷酷地划清界限。那张冷漠的脸很少见。伞觉得说出冷酷话语的友荣很陌生。



"산아 나와! 집에 가자!" “伞啊,出来!我们回家吧!”



쟤 또 저러네. 他又那样了。

산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자신의 이름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주춤주춤 모습을 드러냈다. 남학생을 뒤로 한 채 직진해 걸어온 우영이 산의 어깨로 길게 팔을 둘렀다. 우영의 걸음에 맞추며 산은 힐끔 뒤를 돌아봤다. 풀 죽은 작은 등이 애처로웠다. 오늘의 고백을 완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싶어서.
伞听到自己名字在空中回荡,皱起了眉头,慢慢地现身了。友荣绕过那个男学生,径直走向伞,把手臂长长地搭在伞的肩上。伞配合着友荣的步伐,回头瞥了一眼。那垂头丧气的小小背影显得格外可怜。今天的告白需要多大的勇气才能完成啊。



"너 고백받을 땐 나 찾지 말랬지."
“我不是告诉过你,不要在告白的时候找我吗。”

"뭐 어때. 고백은 고백이고 너는 넌데."
“那又怎样。告白是告白,你还是你。”

"그래도. 가고 나서 부르던가 하라니까."
“还是。走了之后再叫我。”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到那时我怎么等得了。”



정작 우영은 아무런 미안함도 죄책감도 못 느끼는 듯해 산은 대신 속이 상한다. 속 편하게 저녁 메뉴나 고민하는 우영을 째려보던 산이 우영의 옆구리에 냅다 주먹을 꽂았다. 어우 밉상이야. 타격감이 있는지 우영이 억 소릴 내며 산에게 매달린다. 운동으로 단련된 팔이 간만에 제 역할을 해준 모양이었다. 
郑友荣却似乎没有感到任何歉意或内疚,伞替他感到心烦。伞瞪着一心只想着晚餐菜单的郑友荣,突然一拳打在他的肋骨上。真是讨厌。郑友荣发出一声痛呼,紧紧抱住伞。看来他平时锻炼的手臂终于派上了用场。



"엄청 예쁘더만. 완전 연예인인 줄."
“真漂亮啊。完全像个明星。”



산이 슬쩍 우영을 떠본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 곳을 문지르다 말고 우영의 표정이 썩는다. 말투가 삐딱했다. 
伞偷偷地试探了一下友荣。不出所料,友荣揉了揉被打的地方,脸色变得难看起来,语气也变得尖锐。



"예쁘면 어쩌라고." “漂亮又怎样。”

"아니......그냥. 예쁘더라는 거지." “没有……只是。很漂亮。”

"넌 내가 얼굴만 보고 아무하고나 만나서 자고 그랬으면 좋겠어?"
“你希望我只是看脸,随便找个人约会然后睡觉吗?”



우영의 논리가 널을 뛰었다. 만나는 건 둘째 치고 친구의 잠자리 사정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었던 산은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왼쪽 뺨으로 우영의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郑友荣的逻辑跳跃了。见面是其次,崔伞根本没打算干涉朋友的床事,他结结巴巴地说不出话来。左脸颊感受到了郑友荣直勾勾的目光。


그러고도 우영은 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래서 방금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회복력을 잃지 않기 위해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런 우영의 방식에 익숙해져 산 역시도 들러붙은 우영을 그러려니 하게 됐다. 얌전히 우영에게 발을 맞추던 산은 문득 깨닫는다. 익숙해졌다기보단 길들여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然后友荣还是没有从伞身边离开。所以刚才的事就变得无关紧要了。为了不失去恢复力而保持物理距离。这是友荣的方式,伞也习惯了友荣的依赖。乖乖地跟着友荣步伐的伞突然意识到,与其说是习惯了,不如说是被驯服了更准确。


조용하던 우영이 발이 묶인 사람처럼 정지했다. 반동으로 휘청이는 산을 우영은 어렵지 않게 제 앞으로 세워 놓았다. 눈빛이 사나워 산은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지레 겁을 먹는다. 
郑友荣像被困住的人一样停了下来。反作用力使崔伞摇晃,但郑友荣轻松地把他稳住。崔伞的眼神凶狠,像是做了大错事一样,吓得不敢动弹。



"야 최산." “呀,崔伞。”



부르는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진작에 사과를 했어야 했나. 그러나 산이 반응하기도 전에 우영의 손이 다가왔고.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려던 산의 목덜미로 우영의 커다란 손바닥이 감겼다. 
低沉的声音呼唤着。并不是那个意思,早该道歉了。然而,在伞还没来得及反应之前,友荣的手已经伸了过来。伞本能地想要后退,但友荣的大手掌已经抓住了他的后颈。


우영은 산의 목에 코를 묻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놀란 산은 꼼짝도 못 한 채 굳는 게 전부였다. 우영은 고개를 틀어 반대쪽 목의 체취까지 빠지지 않고 맡았다. 마셨다 내쉬는 호흡이 몇 번. 적나라한 감각에 산은 허벅지 안쪽이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는다. 하아. 우영이 만드는 한숨까지도 촉감으로 느껴졌다.
友荣把鼻子埋在伞的脖子上,深深地吸了一口气。惊讶的伞僵住了,一动也不动。友荣转过头,连另一边脖子的气味也不放过。几次呼吸之间,伞感到大腿内侧一阵紧缩。哈啊。连友荣的叹息声也能感受到。



"이 미친 새끼들이......." “这群疯子……”



산과 거리를 두고 멀어진 우영이 세수하듯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산은 뒷목에 붙었다 떨어진 우영의 체온이 남긴 잔상에 몸을 떨었다. 원래 우영의 손이 이렇게 뜨거웠나. 산은 제 손으로 우영의 손끝이 짚은 자리를 살살 어루만졌다. 
伞和友荣拉开距离后,友荣像洗脸一样抚摸着自己的脸。伞因为友荣的体温残留在后颈而颤抖。友荣的手原来这么热吗?伞用自己的手轻轻抚摸着友荣指尖触碰过的地方。



"왜 그러는데." “为什么这样。”

"너 지금 알파들 냄새 존나 많이 나."
“你现在身上有很多 Alpha 的味道。”

"어?" “啊?”

"페로몬 묻었다고. 이놈 저놈 거."
“沾上信息素了。这家伙那家伙的。”



우영은 음절 하나하나를 씹듯이 발음했다. 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우영이 코를 박은 피부 위를 손톱으로 털어내듯 긁었다. 그런다고 사라질 흔적이 아닌 것을 알아 우영은 산의 손목을 잡아 손을 치워냈다. 그새 붉은 줄이 옅게 그였다. 
友荣咬字清晰地发音。伞愣了一下,然后用指甲在友荣埋头的皮肤上轻轻刮了刮。知道这样做不会消除痕迹,友荣抓住伞的手腕,把他的手移开。那时,皮肤上已经留下了淡淡的红痕。



"아까 베타인지 확인한다 어쩐다 하면서 애새끼들이 묻힌 건가 보네."
“刚才确认是不是 Beta 的时候,那些小家伙们好像被埋了。”

"아아. 근데 그게 뭐 잘못된 건가?"
“啊啊。但是那有什么错吗?”

"잘못됐냐니." “你说错了吗。”

"아니 난 못 맡으니까......상관 없는 거 아냐?"
“不是我闻不到……没关系吧?”



산은 우영이 저렇게까지 과민하게 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베타의 몸에 알파향이 좀 묻었기로서니. 어차피 산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들이라 굳이 알 필요도 없지 않나 했다. 산의 무신경한 태도에 우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伞不理解友荣为什么会如此敏感。一个 Beta 身上沾了点 Alpha 的气味而已。反正这些对伞完全没有影响,根本不需要在意。伞的冷漠态度让友荣苦笑了一下。



"너 집에 가면 샤워해?" “你回家会洗澡吗?”

"당연하지. 너는 안 씻냐?" “当然了。你不洗吗?”

"집 가자마자 목 빡빡 닦어."
“回家后马上把脖子擦干净。”



우영의 명령조에 산은 괜한 오기가 붙는다. 
在友荣的命令下,伞产生了无谓的倔强。



"아 내가 알아서 할게." “啊,我自己会处理的。”



가방을 고쳐 멘 산이 우영을 버려두고 혼자 앞장서 걸어나갔다. 우영은 바로 따라붙지 않고 뒤에서 고함부터 내지른다. 
伞调整了一下背包,丢下友荣,独自一人走在前面。友荣没有立刻跟上,而是在后面大声喊叫。



"최산!! 목 빡빡 씻으라고!!" “崔伞!!把脖子好好洗干净!!”

"알겠다고!!!" “知道了!!!”



산도 지지 않고 정면을 보며 소릴 질렀다. 왜인지 피실피실 웃음이 샜다. 산이 웃고 있는 걸 우영도 알아챘을 것이다.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싶더니 달려들듯 목으로 우영이 안겼다. 
伞也不甘示弱地直视前方大声喊叫。不知为何,他忍不住笑了起来。伞在笑,友荣也一定察觉到了。脚步声越来越近,友荣像是要扑过来一样,紧紧地抱住了伞的脖子。






5.


우영이 하루 종일 연락을 받지 않았다. 바쁜가. 워낙에 찾는 이가 많아 주말 동안 집에 붙어있는 꼴을 보기가 어렵다는 걸 알기에 산은 세 시간째 부재중인 우영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해 주는 것과 마음이 꽁한 건 조금 다른 문제라.
郑友荣一整天都没有联系。可能是太忙了。因为知道他周末总是很忙,很难见到他待在家里,伞试图理解已经三个小时没有回复的郑友荣。但是,理智上的理解和心里的失落是两回事。


산은 지워지지 않은 숫자 일을 노려봤다. 오 분 전에 확인했을 때와 비교해 대화창은 한치의 변화도 없었다. 고작 이런 걸로 우선순위가 밀린 걸까 걱정하는 것이 비약인 줄 알면서도 산은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걱정을 끊어낼 수가 없었다. 
伞盯着未删除的数字工作。五分钟前检查时,聊天窗口没有任何变化。尽管知道担心这种小事是夸张的,但伞还是无法停止脑海中不断滋生的担忧。


언젠가 너와 내가 공유하는 시제가 달라질 때, 우영을 놓아주기로. 산은 혼자 다짐했다. 우영이 알파가 되고 난 후부터 쭉 아주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 수 없어서 고유하고 그렇기에 외로울 테니. 산은 우영의 외로움을 감당하는 방법을 몰랐다. 
当有一天你我共享的时态发生变化时,我决定放手友荣。伞独自下定了决心。这是友荣成为 Alpha 后,经过长时间的深思熟虑后得出的结论。因为我们无法生活在同一个时间里,所以是独特的,因此会感到孤独。伞不知道如何应对友荣的孤独。


휴대폰을 발치로 밀어버린 산이 응석 부리듯 인형에 얼굴을 부볐다. 말이야 쉬웠다. 당장 몇 시간 연락이 없는 것만으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센 척이냐 따진다면 할 말이 없었다. 허공에서 양발을 허우적대던 산이 이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 
伞把手机踢到脚边,像撒娇一样把脸埋进了玩偶里。说起来容易。要是有人质问他,明明只是几个小时没联系就这么坐立不安,还装什么坚强,他也无话可说。伞在空中挣扎的双脚很快就无力地垂了下来。

지금은 어려워도 나중에, 조금 더 크고 나면 가능할 것이라 산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겁하지만 시간에 맡기는 걸로. 
现在虽然很难,但以后,等再长大一些就会有可能了,伞这样安慰自己。虽然有些懦弱,但还是决定交给时间。



"산아 심부름 좀 다녀올래?" “伞啊,能帮我跑个腿吗?”



노크도 없이 아들의 방문을 열어젖힌 산의 모가 용건부터 드밀었다. 산이 매가리 없이 비척비척 일어나며 물었다. 뭔데요.
伞的母亲没有敲门就推开了儿子的房门,直接说明了来意。伞有气无力地摇摇晃晃站起来问道:“什么事?”



"우영이네에 이것 좀 전해주고 오면 되는데."
“你只需要把这个送到友荣家就行了。”



라는 말과 함께 찬합이 든 쇼핑백 하나가 내밀어졌다. 산이 용수철 튀듯 뛰어오른 건 안 봐도 뻔한 그림이었다. 
“라는 말과 함께 찬합이 든购物袋 하나가 내밀어졌다. 伞이 용수철 튀듯 뛰어오른 건 안 봐도 뻔한 그림이었다.”



해서 장소는 우영의 집 앞이었다. 일단 급하게 달려오긴 했는데 도착하고 보니 안에 우영이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산은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불규칙한 호흡을 애써 진정시킨 후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초인종을 눌렀다. 길게 이어지던 벨소리가 그치고. 문 너머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없자 어쩐지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참담해진다. 
于是地点是在友荣的家门前。虽然急忙跑了过来,但到达后发现并不能保证友荣会在里面。伞自责地抓着头发。努力平复不规则的呼吸后,他尽量装作镇定地按下了门铃。长长的铃声停止了。门后没有等到任何消息,伞不禁感到一阵失落,仿佛被骗了一样。


그럼 그렇지. 산은 차가운 현관문에 이마를 기댔다. 나쁘게 생각 말고 그냥 착한 아들 노릇 했다 치기로. 한숨을 폭 내쉰 산이 익숙하게 도어락 비밀번호를 찍었다. 친해진 지 한 달 만에 우영이 공유한 것이었다. 
那当然。伞把额头靠在冰冷的玄关门上。别想太多,就当是做了个好儿子吧。伞深深地叹了口气,熟练地输入了门锁密码。这是友荣在他们认识一个月后分享给他的。


주인 없는 집을 함부로 들락거리는 게 예의는 아니라, 산은 소리를 죽여 신발을 벗었다. 방학이면 거의 내 집처럼 들락거리는 곳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했다. 
擅自出入没有主人的房子是不礼貌的,伞悄悄地脱下了鞋子。因为放假期间几乎像自己家一样频繁出入,所以他对哪里有什么东西了如指掌。


곧장 주방으로 가 미션부터 완수한 산이 허리를 짚고 텅 빈 거실을 둘러봤다. 버릇처럼 열어 본 카톡 대화창은 아까와 똑같았다. [나 지금 너네 집이다ㅋㅋ] 입력한 새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고 주르륵 삭제되었다. 슬슬 머리가 지끈거려와 이마를 짚었다. 이런 걸로 밀고 당길 사이나 되나 우리가. 
伞直接走向厨房,完成了任务后,双手叉腰环顾空荡荡的客厅。习惯性地打开了 KakaoTalk 对话框,发现还是和刚才一样。[我现在在你家哈哈] 输入的新消息没有发送出去,而是被迅速删除了。头开始隐隐作痛,他按住了额头。我们之间的关系,难道还需要这样推拉吗?



윽.



그때 적막한 집안에서 실낱같은 목소리 하나가 새어 나왔다. 번개 맞은 듯 소스라친 산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이어지는 한숨 소리가 산을 헤매지 않게 도왔다. 우영의 방이었다. 
那时,寂静的家中传出一丝微弱的声音。像被雷击中一样,伞惊慌失措地四处张望,寻找声音的来源。接着传来的叹息声帮助伞找到了方向。是友荣的房间。


산은 조용히 우영의 방 문고리를 돌렸다. 맞은편 침대에 돌아누운 등이 보였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었지만 우영이 확실했다.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던 산의 몸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어쩐지 허탈해져 입가로 피실피실 웃음까지 샜다.
伞悄悄地转动了友荣房间的门把手。对面的床上露出了一个翻身的背影。虽然被子盖到了头顶,但伞确定那是友荣。紧张得僵硬的伞的身体松弛了下来。不知为何,他感到一阵虚脱,嘴角甚至露出了微笑。



"뭐야, 정우영. 집에 있었어?" “什么呀,郑友荣。你在家吗?”



저벅저벅 걸어간 산이 우영의 침대 앞에 섰다. 이쯤 되면 얼굴을 내보일 만도 한데 우영은 꼼짝도 않고 웅크려만 있었다.
伞一步一步走到友荣的床前。到了这个地步,友荣应该露出脸来了,但他却一动不动,只是蜷缩着。



"그런데 왜 아침부터 연락이 안 돼. 걱정했잖아."
“可是为什么从早上开始就联系不上你,我很担心啊。”

"......." “……”

"혹시 어디 아프냐?" “你是不是哪里不舒服?”



말하며 이불을 걷어내는 찰나, 엄청난 악력에 손목이 붙들렸고 방어할 새도 없이 산의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说着掀开被子的瞬间,手腕被巨大的力量抓住了,还没来得及防御,伞的身体就被狠狠地摔在了地上。

시야가 빙글 돌았다. 척추에서 시작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산은 감은 눈을 떠 순식간에 제 위를 덮은 우영을 본다. 시야를 채우는 건 정우영과 천장 딱 두 가지뿐이었다. 
视野一阵晕眩。从脊椎开始的疼痛蔓延到全身。伞睁开紧闭的眼睛,瞬间看到压在自己身上的郑友荣。视野中只有郑友荣和天花板两样东西。



"야 너 갑자기 무슨......" “喂,你突然怎么……”



말을 가로막듯 우영의 손아귀로 힘이 실렸다.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산이 비명을 내질렀다. 괴로워하는 산을 내려다보는 우영에겐 표정이 없었다. 산의 간절한 부름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껍데기만 우영일뿐 알맹이는 전혀 다른 것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 겁에 질린 산의 호흡이 가빠졌다. 러트. 알파의 폭주였다. 
말을 가로막듯 友荣的手掌用力握紧。手腕骨头仿佛要碎裂般的疼痛让伞尖叫起来。低头看着痛苦的伞,友荣的脸上没有任何表情。即使伞急切地呼唤,也没有得到回应。虽然外表是友荣,但内在似乎完全变成了另一个东西。伞被吓得呼吸急促。发情期。Alpha 的暴走。


우영이 방심한 틈을 타 필사적으로 손길에서 벗어난 산이 문을 향해 달렸다. 문고리에 닿고도 일방적인 몸싸움에 헛손질만 이어졌다. 결국 멱살이 잡혀 벽에 처박히고서야 산은 희망을 접는다. 애초에 알파란 베타 따위가 힘으로 당해낼 수 있는 족속들이 아니었다.
趁着友荣放松警惕的瞬间,伞拼命地从他的手中挣脱,向门口跑去。虽然手已经碰到了门把手,但在单方面的肢体冲突中,他只能徒劳地挥舞着手臂。最终,伞被抓住衣领,狠狠地撞在墙上,这才放弃了希望。毕竟,Alpha 这种存在不是 Beta 能够凭力量对抗的。


진작 눈치채고 도망쳐야 했는데. 다른 형질이었다면 우영의 페로몬을 감지하고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산은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니라서. 



"우영아, 나야 산이. 정신 좀 차려봐......제발."
“友荣啊,是我,伞。清醒一点……拜托。”



회유든 구걸이든 가능한 것들은 모두 시도해봐야 했다. 발버둥 치는 산을 통제하기 위해 우영은 산의 손목을 끌어 벽에 밀어붙였다. 천천히 올라온 고개가 산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먹잇감을 탐색하는 눈빛.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상대하는 듯한 감각이 소름 끼쳤다. 산은 울지 않으려 입술을 물었다. 
无论是劝说还是乞求,能尝试的都必须试一试。为了控制挣扎的伞,友荣抓住伞的手腕,把他推到墙上。慢慢抬起的头正面凝视着伞。那是探寻猎物的眼神。映在那双眼睛里的自己显得无比无力。就像在面对一个完全陌生的人一样,令人毛骨悚然。伞咬住嘴唇,不让自己哭出来。



"너 이러면 안 돼, 너......이러다가 나중에 후회해. 응?"
“你这样不行的,你……这样下去以后会后悔的。嗯?”



오메가의 향을 갈증 하듯 우영이 산의 쇄골로 코를 갖다 댄다. 원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으니 물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무색하게 우영은 산의 목에 얼굴을 뭉개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겹쳐진 몸엔 틈 하나 없었다. 
欧米茄的香气像渴望一样,友荣把鼻子靠在伞的锁骨上。因为无法满足自己的欲望,原本以为他会退缩的期待变得毫无意义,友荣把脸埋在伞的脖子里,紧紧地抱住他。两人的身体紧密相贴,没有一丝缝隙。


높아진 체온에 우영의 전신이 불덩이 같았다. 가슴과 가슴이, 배와 배가 맞붙으며 옷감 아래로도 열감이 선명히 전해졌다. 우영의 허벅지가 산의 무릎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민감한 곳을 꽉 눌러 압박해오는 행위의 의도는 명백했다. 
高涨的体温让友荣的全身像火球一样。胸膛贴着胸膛,腹部贴着腹部,即使隔着衣料也能清晰地感受到热度。友荣的大腿挤进了伞的膝盖之间。压迫敏感部位的行为意图非常明显。

산은 노골적인 자극에 기함하며 상체를 비틀었다. 그럴수록 우영은 산과의 거리를 좁혔다. 더 깊게. 마치 한 덩어리가 되겠다는 듯이. 
伞因露骨的刺激而喘息,扭动着上半身。越是这样,友荣就越靠近伞。更深地,仿佛要融为一体。



"안 돼, 우영......하지, 마." “不行,友荣……不要。”



계속되는 마찰에 산이 우영의 어깨로 무너져 끙끙거렸다. 반응하는 몸이 야속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벽에 쓸린 손등은 따끔거리고 우영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부딪힌 몸 여기저기가 죄다 얼얼했다. 이미 만신창이였으나 진짜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야 했다. 산은 계속해서 한 겹 너머의 우영을 불러냈다. 우영아. 내 말 들리지. 대답 좀 해주라. 정우영. 나 엄청 무섭거든 지금? 우영아 제발. 
继续的摩擦让伞倒在友荣的肩膀上呻吟。反应的身体虽然让人恼火,但也无可奈何。手背被墙擦伤了,刺痛不已,和友荣纠缠在一起的身体到处都在疼。虽然已经遍体鳞伤,但至少要避免最糟糕的情况。伞不断地呼唤着另一边的友荣。友荣啊。你听得到我说话吗?回答我一下吧。郑友荣。我现在真的很害怕。友荣啊,拜托了。

닿기만 한다면 우영이 모른 척할 리가 없었다. 우영에게 범해질 위기에 처하고도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또한 우영이라. 시련과 구원이 모두 우영의 몫이라는 점에서 이 순간 우영은 절대자와 같았다. 
只要一碰到,友荣绝不会装作不知道。即使面临被友荣侵犯的危险,唯一能依靠的也只有友荣。因为试炼和救赎都是友荣的责任,此刻的友荣就像是绝对者。



"......산아." "......伞啊."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리자 산은 하마터면 눈물이 터질 뻔했다. 서서히 고개를 세우는 우영에 산이 시선을 맞췄다. 맞아 나야 산이. 영아 정신 좀 차려봐. 응?
等候已久的声音传来,伞差点就要哭出来了。慢慢抬起头的友荣与伞对视。对,是我,伞。友荣,清醒一点,好吗?



"산아." "伞啊。"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손목을 옥죄는 힘은 쉬이 덜어내지질 않았다. 하얗게 질린 손끝의 감각이 무뎠다. 
然而,出乎意料的是,束缚手腕的力量并没有轻易减弱。苍白的指尖感到麻木。



"어, 우영아 일단 손 좀 놓고......"
“呃,友荣啊,先放开手……”

"각인할래." “要刻印吗?”



뭐? 반문할 새도 없이 우영이 각도를 꺾어 산의 목에 잇날을 박았다. 임계점을 지난 알파의 본능은 이성을 앞섰다. 생살이 찢기는 고통에 산이 이를 악물었다. 오메가들이 느낀다는 각인의 쾌락이라곤 전혀 없는. 흡사 짐승의 습격처럼. 
“什么?”还没来得及反问,友荣就改变了角度,将牙齿嵌入了伞的脖子。超越临界点的 Alpha 本能战胜了理智。伞咬紧牙关,忍受着撕裂生肉的痛苦,完全没有 Omega 们所说的那种烙印的快感。简直像是野兽的袭击。



"아파......아, 흐윽." “好痛……啊,呜。”



힘겹게 신음하는 산을 달래듯이, 손목에 붙어 있던 우영의 손이 미끄러져 올라왔다. 손가락 사이사이가 얽히며 손금들이 겹쳐졌다. 그것이 산을 견디게 했다. 사람들이 종교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이유를, 문득 알 것도 같았다. 
伞艰难地呻吟着,仿佛在安抚他一般,友荣的手从他的手腕滑了上来。手指交缠在一起,掌纹重叠在一起。这让伞得以忍受。人们盲目地奉献于宗教的原因,伞突然有些明白了。



"씨발......" “操……”



우영이 입을 틀어막은 채 튕겨지듯 뒤로 물러났다. 마침내 두 팔다리가 자유로워졌지만 산은 한 발짝 떼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잠깐 정신이 돌아온 건지 산을 내려다보는 우영의 표정이 절망적이었다. 그에 산의 심장이 쿵 떨어진다. 
郑友荣捂住自己的嘴,猛地向后退去。终于,四肢恢复了自由,但伞却一步也迈不出去,瘫坐在地上。郑友荣低头看着伞,脸上的表情充满了绝望,伞的心猛地一沉。



"가." “去。”

"......우영아 나," “……友荣啊,我,”

"씨발 최산!! 빨리 도망가라고!!" “操,崔伞!!快跑啊!!”



음절 단위로 뚝뚝 끊기는 말이 우영이 간신히 버티고 있음을 알려왔다. 벽을 잡고 일어난 산이 비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고작 세 걸음. 아까는 이걸 못 디뎌서. 
音节断断续续的声音告诉友荣他正在勉强支撑着。抓住墙壁站起来的伞踉跄着打开房门冲了出去。仅仅三步。刚才他连这都做不到。


운동화에 발을 넣을 여유도 없이 우당탕 현관 밖으로 쏟아진 산이 멍하게 하늘을 응시했다. 버티고 서있기가 고단해 산은 쪼그라들듯 서서히 무릎을 접어 웅크렸다. 우영이 씹어 놓은 살갗 주변이 건드리지 않아도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려왔다. 통각이 역류하듯 가슴에서 비슷한 통증이 피어올랐다. 어디가 더 아픈 건지 모르겠다. 누가 더 아플지 역시 모르겠다. 산은 꽉 감은 눈두덩이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运动鞋都来不及穿上的伞,跌跌撞撞地冲出了玄关,呆呆地仰望着天空。站着都觉得疲惫的伞,慢慢地弯下膝盖,蜷缩了起来。友荣咬过的皮肤周围,即使不碰也像被火烧一样火辣辣地疼。类似的疼痛从胸口涌上来,仿佛痛觉在逆流。我不知道哪里更痛,也不知道谁会更痛。伞用手掌盖住紧闭的眼睛。






6.


저녁부터 누런색 멍이 번지더니 잇날 자국 주위가 온통 푸르고 벌겠다. 도저히 맨 목으로는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산은 한 여름에 감기 핑계를 댔다. 반팔 교복 위로 손수건을 칭칭 두르고 나타난 아들을 하도 마음 아파해서 어머니껜 조금 죄송했다. 죽을 챙겨준다는 것을 극구 만류하고 쫓기듯 집을 나섰다. 거짓말이 체질이 아니라 매 순간이 위기였다. 
从晚上开始,黄色的淤青逐渐扩散,第二天咬痕周围变得一片青紫。伞根本无法裸露着脖子出门,只好在盛夏里找了个感冒的借口。母亲看到他在短袖校服外面围着手帕出现,心疼得不得了,伞对此感到有些愧疚。他极力拒绝了母亲要给他准备粥的提议,匆匆离开了家。因为不擅长撒谎,每一刻对他来说都是危机。


원래라면 우영과 중간에서 만나 같이 등교를 했겠지만, 오늘은 산이 먼저 출발했다. 일이 있어 빨리 간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혹여나 우영과 마주칠까 잽싸게 우영의 집 앞을 지나쳤다. 읽음 표시가 찍히는 카톡은 일부로 피했다. 
原本伞会和友荣在中途碰面一起上学,但今天伞先出发了。他发了条短信说有事要早走,生怕碰到友荣,迅速经过了友荣家门口。故意避开了显示已读的 KakaoTalk 消息。


학교에 도착해서도 우영을 피하려 산 혼자만 바빴다. 쉬는 시간엔 냅다 화장실로 튀었고 점심시간에도 종칠 무렵에 급식실로 숨어들어 도둑질하듯 밥을 퍼먹었다. 복도 저쪽 끝에서 우영의 머리카락이라도 보일라치면 전속력으로 내뺐다. 너 오늘 이상하다? 감기라며 뭘 그렇게 뛰어다녀. 지쳐서 널부러진 산을 향해 짝꿍이 걱정을 보탰다. 얼떨결에 반 친구들에 섞여 10분간 팔자에도 없는 공차기를 하고 온 참이었다. 산은 뻘뻘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쓰게 웃었다. 
到学校后,伞为了躲避友荣而忙得不可开交。休息时间他直接跑到厕所,午饭时间也在打铃的时候偷偷溜进食堂,像偷东西一样狼吞虎咽地吃饭。只要在走廊那头看到友荣的头发,他就会全速逃跑。你今天很奇怪啊?不是说感冒了吗,怎么跑来跑去的。累得瘫倒在地的伞,听到同桌的担心。刚刚他还混在班里的同学中,踢了十分钟自己平时根本不踢的足球。伞擦着不停流下的汗水,苦笑了一下。


대충 하루 이틀만 버티면 흔적도 옅어지고 그다음엔 대강 아무 핑계로 때울 수 있지 않을까. 종례시간 이후 진학 상담을 이유로 선생님께 호출까지 받자 세상이 나를 돕는구나 했다. 산은 우영에게 먼저 가라 연락하고 교무실로 뛰었다. 피하고 있다는 게 티 나겠지. 그러나 요령이 모자라니 별 방도가 없었다.
大概只要再忍耐一两天,痕迹就会变淡,然后可以随便找个借口搪塞过去。放学后,因为升学咨询的理由被老师叫去办公室时,我觉得世界在帮我。伞联系友荣让他先走,然后跑向教务室。逃避的行为肯定会被看出来,但因为缺乏技巧,也没有别的办法。



상담을 마친 후 교무실 문을 닫았을 때엔 학교가 텅 빈 시간이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교실로 돌아온 산은 뒷문 입구에서 제 책상을 차지하고 앉은 익숙한 등을 발견한다. 당연한 중력처럼 우영과 산은 서로를 찾아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산은 꾸중을 기다리는 아이마냥 입이 말랐다. 
咨询结束后,当教务室的门关上时,学校已经空无一人了。伞慢慢地走上楼梯,回到教室,在后门入口处发现了一个熟悉的背影,正占据着他的桌子坐着。就像自然的引力一样,友荣和伞总是能找到彼此。虽然没有做错什么,但伞却像等待责骂的孩子一样,嘴唇干裂。


우영은 가방을 걸치고 일어섰다. 정면으로 대면한 우영의 시선이 산의 목을 감은 손수건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오히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友荣背上包站了起来。面对面的友荣视线停留在伞脖子上的手帕上。什么都没问,反而不知道该说什么。



"가자." “走吧。”

"......" “……”



우영이 말했다. 산은 머릴 끄덕이고 잽싸게 움직여 자기 가방을 챙겼다. 앞선 우영의 등이 멀어지려 했다. 우영아. 부르자 예외 없이 고개가 돌아왔다. 저 지구력이 간절했던 순간이 있었다. 불현듯 상처가 욱신거려와 산이 손수건 위를 짚었다. 
友荣说道。伞点了点头,迅速行动起来,收拾自己的包。前面的友荣的背影渐渐远去。友荣啊。叫了一声,他毫无例外地回过头来。曾经有那么一刻,他渴望那种耐力。突然,伤口一阵刺痛,伞按住了手帕。



"......나 할 말 있어." “……我有话要说。”



결국 내 손으로 파헤치는 방법뿐이었다. 어설픈 연기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가 없어서. 
最终,我只能用自己的双手去揭开真相。因为拙劣的演技无法守护任何东西。



고백 장소로 늘 같은 곳을 선택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사람들 눈을 피해 얘기할만한 데가 딱히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산은 우영이 서있던 자리에 서서 우영의 시야를 체험했다. 산이 늘 숨어 있던 건물 모서리가 제법 잘 보였다. 빼꼼 내민 머리가 걸리고도 남는 위치였다. 우영은 한 번도 그런 소릴 한 적 없었는데. 
告白的地点总是选择同一个地方,这一点我一直不理解,但现在我才意识到,在学校里没有什么地方可以避开人们的视线好好谈话。伞站在友荣曾经站过的位置,体验了一下友荣的视野。伞总是藏身的建筑物角落看得一清二楚。露出的小脑袋正好被看见。友荣从来没有提过这件事。



"목에 이거 말인데, 사실." “其实,这个在脖子上的东西。”

"내가 그런 거잖아." “那是我做的。”

"알고 있었어?" “你知道吗?”

"어." “哦。”



차분하게 운을 뗀 산이 잠시 벙쪘다.
崔伞平静地开了口,暂时愣住了。



"......근데 왜 말 안 했어?"
“……但是为什么不说呢?”

"무슨, 야 니가 말할 기회도 안 줘놓고 뭔 소리야."
“什么,你连说话的机会都不给我,还说什么呢。”



어이없는지 우영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건 그래. 골몰하던 산은 허무하게 수긍했다. 
郑友荣忍不住笑了出来。那倒也是。陷入沉思的伞无奈地同意了。

러트 중의 블랙아웃은 흔한 일이라던데. 우영은 기억에 공백이 없는 사람처럼 산을 빤히 응시했다. 너의 목에 이를 박아 넣던 그 찰나의 감촉까지도 또렷하다는 듯이. 어쩐지 그런 우영을 똑바로 볼 수 없어 산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发情期中的失忆是常见的事。郑友荣像是没有记忆空白的人一样,直直地盯着崔伞。仿佛连将牙齿嵌入他脖子的那一瞬间的触感都记得清清楚楚。崔伞不知为何无法直视这样的郑友荣,眼珠子四处乱转。



"잘 모르지만 진짜 큰일 날 뻔한 거 아냐? 너 나 오메가로 착각하고 그런 거잖아. 내가 오메가가 아니라 다행이었지."
“잘 모르지만 진짜 큰일 날 뻔한 거 아냐? 너 나 오메가로 착각하고 그런 거잖아. 내가 오메가가 아니라 다행이었지.” “虽然我不太清楚,但这不是差点出大事了吗?你把我误认为 Omega 了吧。幸好我不是 Omega。”



무엇이 우영의 욕망을 부추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산은 우영이 발정하는 모든 필요조건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无法知道是什么激起了友荣的欲望。伞完全不符合友荣发情的所有必要条件。



"만약에 내가 오메가였으면 어쩔 뻔했냐."
“如果我真的是 Omega 怎么办。”



조용히 듣고 있던 우영이 하늘을 향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화가 여엉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산은 조금 움츠러들었다. 
静静听着的郑友荣向天空大大地叹了口气。他显然对这段对话很不满意。伞有些缩了缩。



"산아." "伞啊。"

"응." “嗯。”



겁부터 집어먹는 산이 웃긴지 우영은 뺨을 쓸며 혼잣말을 했다. 아 얘를 어떡하냐. 
伞因为害怕而先怯场,友荣觉得好笑,摸着脸颊自言自语道:“啊,这孩子该怎么办呢。”



"내가 니 이름 불렀어 안 불렀어."
“我叫你名字了还是没叫?”

"언제." “什么时候。”

"어제." “昨天。”

"......불렀어." “……叫了。”



그러고 보니 우영은 산을 정확히 인지하고도 그랬다. 산의 이름을 부르며. 각인하고 싶다고. 
这么说来,友荣确实是认出了伞才那样做的。还叫着伞的名字,说想要刻印。



"너 오메가로 착각한 적도 없고. 니가 오메가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 나는."
“我从来没有把你误认为是 Omega。我也从来没有觉得你不是 Omega 是件好事。”



아무 따위와 헷갈린 게 아니었다. 너라서 그랬다고, 우영은 둘러말하는 법 없이 산을 겨냥했다. 
不是因为和任何人混淆了。是因为你,友荣毫不拐弯抹角地对伞说道。



"니가 오메가였으면 어쩔 뻔했냐고 했지."
“我说过如果你是 Omega 会怎么样。”



우영이 공기를 밀듯이 산에게로 걸어왔다.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나긋한 우영의 목소리에 발이 묶인다. 어떤 불가항력처럼. 
郑友荣像推开空气一样走向伞。想要后退,但被郑友荣柔和的声音束缚住了脚步。就像某种不可抗力一样。



"진짜 말해줘? 니가 오메가였으면," “真的要告诉你吗?如果你是 Omega 的话,”

"......" “……”

"내가 어떻게 했을지." “我会怎么做。”



산의 숨이 뜨거워졌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우영의 상상이 감각으로 전이되는 듯했다. 저 입술이, 혀가, 뭉툭한 손끝, 뜨거운 손바닥이 산의 어디를 어떤 식으로 망가뜨렸을지가 느껴졌다. 목덜미로 열이 차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伞的呼吸变得炙热起来。即使不一一列举,友荣的想象似乎也在感官中传递。那嘴唇、舌头、粗糙的指尖、炙热的手掌,伞能感觉到它们是如何在自己的身体上肆虐的。热气从脖颈升起,脸颊也变得通红。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산은 고개를 떨군다. 한 걸음 앞에 우영의 신발이 보였다. 뻗으면 닿을 거리. 함부로 쥘 수도 있을 텐데 우영은 공연히 주먹만 말고 폈다. 산은 불현듯 그 거리감으로부터 무언가를 깨닫는다. 닿지 않아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우영의 마음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再也无法忍受了,伞低下了头。一步之遥,友荣的鞋子映入眼帘。伸手就能触及的距离。明明可以随意抓住,但友荣只是徒劳地握紧又松开拳头。伞突然从那种距离感中领悟到了一些东西。有些东西即使不触碰也能传达。友荣的心就是那种东西。


산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伞抬起了头。



"너 혹시 나 좋아해?" “你是不是喜欢我?”



우영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푸하. 소리까지 내며 웃는다. 헛다리를 짚었나 하는 불안감에 산이 방황하는 사이. 우영이 기가 차다는 투로 답했다. 
友荣并没有太惊讶,甚至发出了“噗哈”的笑声。在伞因为不安而感到迷茫的时候,友荣用一种无奈的语气回答道。



"야 너는 그걸 이제 알았어?"
“哎,你现在才知道吗?”



눈을 꿈벅거리던 산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심장이 큰 폭으로 피를 밀어나는 감각. 온몸 구석구석으로 우영이 박동시킨 피가 돌았다. 우영은 산의 눈높이에 맞춰 천천히 자세를 낮춘다. 쏟아져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끝으로 익숙하게 정리해 주며, 우영은 산이 다시 저를 봐주길 기다렸다. 
眼睛眨巴眨巴的伞无力地坐了下来。心脏剧烈地跳动着,血液被强力地推送到全身各处。友荣的血液在伞的全身流动。友荣慢慢地蹲下身子,与伞的视线齐平,用手指熟练地整理着伞散乱的刘海,等待伞再次看向自己。



"그럼......우린 어떡해?" “那我们怎么办?”



산이 길을 찾듯 물었다. 우영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伞像在寻找路一样问道。友荣则毫不在意地回答,好像走错路并不是什么大不了的事。



"그냥 좋아하는 거지 뭐." “就是喜欢而已。”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못 해줘."
“……我什么都不能为你做。”

"참나. 누가 너한테 뭐 해달래?"
“真是的。谁让你做什么了?”



너를 잃어야 하는 천국이라면 가지 않겠다고. 우영은 노을 지던 병실에서 산을 마주한 날 이미 다짐했으니까. 
如果是必须失去你的天堂,我不会去的。友荣早在夕阳西下的病房里面对伞的那天就已经下定决心了。



"나는 계속 너 좋아할 거야. 너는 너 알아서 해."
“我会一直喜欢你的。你自己看着办吧。”



조금 슬픈 눈이 되어버리는 산을 우영은 장난스럽게 받아넘겼다. 아 울지마악 너 왜 내 사랑 비극 만들어어! 뭐래 안 울었그든!!!
稍显悲伤的伞,友荣却戏谑地回应道:“啊,不要哭啊,你为什么要把我的爱情变成悲剧!” “说什么呢,我才没哭呢!”



"페로몬 그딴 거한테 안 져."
“我才不会输给那种信息素。”



감히 의심할 수 없었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겠다 나서는 그 발칙한 자신감마저 정우영다웠다. 우영은 지지 않을 것이다.
感到怀疑是不可能的。那种敢于挑战神的旨意的大胆自信正是郑友荣的风格。友荣不会输的。



"내가 다 이겨." “我全都赢了。”



미끈하게 웃는 우영을 보며 산도 눈가를 허물어뜨렸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산은 우영에게로 쓰러지듯 안겼다. 산의 무게에 밀려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우영이 아프다 엄살을 떤다. 미안한 만큼 산은 우영의 목을 더 힘껏 안았다. 곧 우영의 팔도 지정된 자리처럼 산의 허리에 감겼다.
看着微笑的郑友荣,崔伞也忍不住笑了。再也无法忍受,崔伞扑向了郑友荣。被崔伞的重量推倒在地的郑友荣假装疼痛地叫了一声。感到抱歉的崔伞更加用力地抱住了郑友荣的脖子。不久,郑友荣的手臂也像是找到归宿般地环绕在崔伞的腰间。


우영은 그제서야 산을 욕심껏 쥔다.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우영의 감정이 맞닿은 곳을 통해 산에게로 번져 나갔다. 
友荣这才贪婪地抓住了伞。从浓度高的地方到浓度低的地方,友荣的情感通过接触点传递给了伞。

언젠가 이 묽기가 비슷하거나 같아지는 날. 우리는 사랑 다운 사랑을 하고 있을 테지.
总有一天,当这种稀薄度变得相似或相同时。我们会拥有像样的爱情。


방향은 정해졌고 가속을 내는 일만 남았다. 처음 가보는 길에도 산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方向已经确定,只剩下加速前进了。即使是第一次走的路,伞也完全不害怕。

정우영이라는 빛 하나 때문에.
因为郑友荣这道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