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더 마시면 진짜 안 될 거 같은데.
啊,再喝下去真的不行了。
그런 생각이 뇌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것은 몇 박자 늦은 뒤여서, 흐릿한 시야를 간신히 한 지점에 집중하고 났을 때에는 이미 투명한 액체로 가득한 잔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아, 데자부.
那样的想法在脑海中闪过时,已经晚了几拍,当他勉强将模糊的视线集中在一个点上时,透明的液体已经装满了杯子,放在了眼前。啊,似曾相识。
……그러고 보니 아까도 한 잔 그득한 소주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게 도대체 몇 번째였지는 모르겠지만.
……这么说来,刚才看到满满一杯烧酒时也有同样的想法。不知道那已经是第几次了。
“야, 너, 오늘 진짜 술 잘 받나 보다?”
“呀,你,今天酒量不错啊?”
그렇게 낄낄대는 소리가 멀었다. 썅놈들아, 나 원래 잘 마신다고! 그렇게 외치는 대신 말없이 잔을 들어 올렸다. 쨘, 하는 소리들이 엇박으로 겹쳤고, 뒤이어 부딪힌 잔에서 술이 넘쳐흘러 소매를 적셔왔다. 그게 차갑거나 축축하다는 감각도, 한 번에 털어 넣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액체의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那么嘻嘻哈哈的声音渐渐远去。混蛋们,我本来就很能喝的!他没有这样喊出来,而是默默地举起了杯子。干杯的声音错落地重叠在一起,随之碰撞的杯子里酒溢了出来,浸湿了袖子。那既不觉得冷也不觉得湿,甚至也感觉不到一口气灌满嘴巴的液体的味道。
“정우영, 너 원래 재밌는 놈인 줄 알긴 했지만, 오늘은 지인짜 대박 웃긴다.”
“郑友荣,我本来就知道你是个有趣的家伙,但今天你真的太搞笑了。”
“그으래?” “真的吗?”
“엉, 핵꿀잼.” “嗯,超级有趣。”
핵꿀잼이라고? 내가 지금까지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더라?
核꿀잼이라고? 내가 지금까지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더라?
“더 해 주라, 최산이랑 연애한 얘기.”
“再多讲讲,和崔伞谈恋爱的故事。”
Truth or Dare 真心话大冒险
by. 뻔 by. 뻔
作者:뻔
"Hey, San, have you seen my notebook?" Hongjoong called out from the living room, his voice tinged with frustration.
"Which one?" San replied, poking his head out from the kitchen, a confused look on his face.
"The black one with the stickers on it. I can't find it anywhere," Hongjoong explained, running a hand through his hair.
"Oh, that one! I think I saw Wooyoung with it earlier," San said, pointing towards the hallway.
"Wooyoung! Did you take my notebook?" Hongjoong shouted, heading towards Wooyoung's room.
"Yeah, I borrowed it to write some lyrics. It's on my desk," Wooyoung answered nonchalantly, not even looking up from his phone.
Hongjoong sighed in relief, "Thanks, man. Just let me know next time, okay?"
"Sure thing, hyung," Wooyoung replied with a grin.
"Hey, 伞,你看到我的笔记本了吗?" 弘中从客厅喊道,声音里带着一丝挫败感。
"哪一个?" 伞从厨房探出头来,脸上带着困惑的表情。
"那个黑色的,上面有贴纸的。我到处都找不到它," 弘中解释道,一边用手梳理着头发。
"哦,那个!我好像之前看到友荣拿着它," 伞说着,指向走廊。
"友荣!你拿了我的笔记本吗?" 弘中喊道,朝友荣的房间走去。
"是的,我借来写歌词了。它在我的桌子上," 友荣漫不经心地回答,甚至没有抬头看一眼手机。
弘中松了一口气,"谢谢,兄弟。下次告诉我一声,好吗?"
"没问题,哥," 友荣笑着回答。
눈을 뜨자마자 요란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몸을 웅크린 채로 쿨럭거리는 데에도 머리가 뎅뎅 울렸다. 아, 미친, 머리가 왜 이러지, 하는 자문을 떠올리자마자 어젯밤의 마지막 기억의 조각들이 몰려들었다.
睁开眼睛的瞬间,一阵剧烈的咳嗽声爆发了出来。蜷缩着身体咳嗽时,头也嗡嗡作响。啊,疯了,头怎么会这样,一想到这个问题,昨晚最后的记忆碎片涌了上来。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가득 차오르던 소주잔,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며 테이블을 연신 내리치던 소리, 그리고-
几次险些满溢的烧酒杯,笑得喘不过气来不断拍打桌子的声音,然后——
“일어났어?” “醒了吗?”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에 사고의 흐름이 뚝 끊겼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머리가 아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가까스로 반대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아니나 다를까 예상 밖 목소리의 주인공이 머리맡 스탠드에 물컵을 내려놓고 있었다.
全然没有预料到的声音打断了我的思绪。我本想猛地站起来,但头痛得厉害,实在做不到。勉强转过头去,果然不出所料,那个意外声音的主人正把水杯放在床头灯旁。
“……네가 왜 여깄어?” “……你为什么在这里?”
내 멀뚱한 질문에 최산은 특유의 인내심 깊은 미소로, 그러나 한심하다는 눈빛은 미처 숨기지 못하고 답했다.
在我愣愣的提问下,崔伞带着他特有的耐心微笑回答了我,但他那鄙视的眼神却没能隐藏住。
“왜 여깄긴, 내 집이니까 그렇지.”
“为什么在这里,当然是因为这是我家。”
늬네 집이라고? 눈이 절로 휘둥그레 해졌다. 그러고 보니 침대 시트가 내 침대의 아이보리 색이 아닌 짙은 보라색이었다.
你说这是你家?我的眼睛不由得瞪大了。仔细一看,床单不是我床上的象牙色,而是深紫色。
“내가 왜 너네 집에 있어?”
“我为什么在你家?”
“……와, 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나 보네.”
“……哇,看来你真的一点都不记得了。”
내 연이은 질문에 최산은 일말의 웃음기마저 지워버렸다. 그럴 때의 산이는 한도 끝도 없이 차가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맞댔을 때도 이렇듯 무표정하게 날 응시했었다. 마치 더는 아무런 할 말도,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얼굴로.
在我接连不断的提问下,崔伞连一丝笑意都消失了。那时的伞看起来冷漠得无边无际。最后一次面对面的时候,他也是这样面无表情地看着我。仿佛脸上再也没有任何话语和情感。
“너 어제 꼴아서 너희 집 비밀번호도 기억 못 했다며? 기가 찬다, 기가 차.”
“你昨天喝醉了,连你家密码都记不住了?真是无语,真是无语。”
그나마 이번에는 입이라도 열어 주는 게 고마웠다. 내가 그렇게 취했었나? 하긴, 기억이 드문드문한 걸로 봐서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这次至少他开口说话了,我很感激。我真的喝得那么醉了吗?也是,记忆断断续续的,昨晚发生什么事也不奇怪。
“물 마셔, 자.” “喝水,睡觉。”
내 잔기침에 최산은 스탠드 위에 내려놨던 물컵을 다시 집어 내 눈앞에 들이댔다. 그냥 몸이나 일으켜서 물이나 받아마셨으면 될 걸, 그때까지도 술이 덜 깬 건지 뭔지 나는 그 순간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있었다.
我的轻咳声引起了崔伞的注意,他拿起放在台灯旁的水杯递到我面前。其实我只要自己起来接杯水就好了,但那时我还没完全清醒,不知道怎么回事,我瞬间变成了疑问杀手。
“……우리 어제 잤어?” “……我们昨天睡了吗?”
“……이 미친 또라이 새끼야, 당장 안 나가!?”
“……你这个疯子,马上滚出去!?”
미안해, 아 진짜 미안, 을 수십 번은 연발하고 나서야 최산은 움켜쥐었던 내 머리털을 놓아주었다. 나는 내가 먹을 해장 라면을 끓이면서 최산 몫까지 끓여주는 조건으로 가까스로 용서를 받았다.
对不起,啊真的对不起,崔伞连说了几十遍才松开了紧抓着我头发的手。我在煮我自己要吃的解酒拉面时,答应也给崔伞煮一份,才勉强得到了他的原谅。
옛날엔 해장 라면 담당은 산이였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돌연 서러워졌다. 함께였을 때는 이렇게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신 적도 없지만, 논리적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술병이 난 사람한테 가사노동이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냐?
以前负责做解酒拉面的可是伞啊。想到这里,突然觉得很委屈。一起的时候从来没有喝到断片,但对一个连逻辑思考都做不到的宿醉者来说,做家务是不是太残酷了?
그렇게 묻기에는 아까부터 내 질문이 최산 성질을 돋우기만 하는 것 같아 묵묵히 라면만 끓였다. 내가 그러는 동안 최산은 내가 아까까지 누워 있던 침대 위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서 핸드폰으로 뭔가를 유심히 읽고 있었다.
那么问的话,从刚才开始我的问题似乎只是在激怒崔伞,所以我默默地煮着拉面。在我这样做的时候,崔伞跪坐在我刚才躺着的床上,专心地用手机看着什么。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그 모습을 곁눈질로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눈을 내리깐 채 엄지 손가락만 간헐적으로 움직이며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고요하고 예뻤다.
在等待拉面煮熟的几分钟里,我偷偷地瞥了他几眼。他低着头,只是偶尔动动拇指,专注于屏幕的样子安静而美丽。
내가 최산을 맨 처음에 만난 것도 도서관에서였다. 바로 옆 공용 책상에 앉아 전공책을 눈으로만 찬찬히 훑는 옆모습에 반해 나도 모르게 캔커피를 사서 건넸었다. 그 캔커피는 ‘다이어트 중이라서요, 죄송합니다. 마음만 받을게요.’라고 쓰여진 포스트잇과 함께 돌아왔고, 그날 하루 몸통에 포스트잇이 붙은 채로 두 책상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마음만 받겠다던 최산은 그 후로 내 마음뿐만 아니라 뭐가 되었든 받아주었다.
我第一次见到崔伞也是在图书馆。当时他就坐在我旁边的公共书桌上,专注地浏览着专业书籍的侧脸让我不由自主地买了一罐咖啡递给他。那罐咖啡被一张写着“正在减肥中,对不起,我只能接受你的心意。”的便签纸退了回来,那天一整天那张便签纸都贴在我身上,在两张书桌之间来回奔波。说只接受心意的崔伞,从那以后不仅接受了我的心意,还接受了我的一切。
그랬던 적이 있었다. 曾经有过那样的时候。
“우영아.” “友荣啊。”
불을 끄고 상 위의 냄비받침 위에 냄비를 내려놓던 내 정수리에 최산의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상 앞에 다가앉은 최산이 있었다.
关掉火,把锅放在桌上的锅垫上时,崔伞的声音传入了我的耳中。我抬起头,看到崔伞已经坐在桌前。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你没有什么话要对我说吗?”
라면을 끓여오랄 땐 언제고, 최산은 제 앞에 놓인 수저를 들 생각도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할 말? 내가? 아까 머리를 뜯긴 경험 때문에 한껏 조심스러워진 나는 눈을 연신 깜박이며 대답했다.
说要煮拉面的崔伞,现在却一副连面前的勺子都不想拿的表情问道。要说什么?我?因为刚才被揪头发的经历,我变得格外小心,频频眨眼回答道。
“아… 아니……?” “啊…… 不是……?”
“진짜로?” “真的吗?”
“그…럴걸?” “那……可能吧?”
“확실해?” “确定吗?”
아니, 그렇게까지 물으시면 제가 없는 말이라도 지어서 해야 할 것 같잖아요? 불안함에 입을 꾹 다문 내게 최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어 물었다.
不,不要这样问我,这样我会觉得即使没有也要编出来啊?在我因为不安而紧闭嘴巴时,崔伞眯起眼睛继续问道。
“너 어제 친구들이 여기까지 데려온 건 기억나?”
“你记得昨天朋友们把你带到这里来吗?”
“…….” “……”
“아, 기억은 안 나도 상황이 이러니까 알 거 아냐.”
“啊,即使不记得了,情况这样你也该知道吧。”
“어…….” “呃……”
“근데 걔네들이 여기로 널 데려올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但他们是怎么想到把你带到这里的呢?”
“……그게 무슨 소리야?” “……那是什么意思?”
정말로 모르겠어서 되물은 질문에 최산은 별달리 화내지 않았다. 대신 예의 인내심을 꾹꾹 눌러 담은 입꼬리로 설명했다.
真的不知道所以反问的问题,崔伞并没有特别生气。相反,他用充满耐心的嘴角解释道。
“그니까 내 말은, 걔네는 늬네 과 동기들이잖아. 나는 잘 모르는.”
“所以我的意思是,他们是你们系的同学。我不太认识。”
듣고 보니 그랬다. 굵직한 전공 팀플 준비가 끝난 기념으로 간 술자리였고, 그래서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전부 나와 같은 전공의 동기들이었다. 그중에서 최산을 조금이라도 아는 녀석은 최산과 우연히 같은 동아리에 나가는 두어 명 정도였을 거고, 그나마도 정작 내가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 우리 둘이 아는 사이라는 걸 아는 녀석은 없었다.
听起来确实如此。那是为了庆祝完成了重要的专业团队项目准备而去的酒席,所以在场的全都是和我同专业的同学。在这些人中,稍微认识崔伞的,大概只有偶尔和崔伞一起参加同一个社团的两三个人,而且由于我并没有参加社团活动,所以没有人知道我们俩是认识的。
“그러네……?” “是吗……?”
나는 하등 도움되지 않는 한마디를 뱉었다. 최산은 느린 학생이 혼자서 결론을 도출하기를 기다리는 끈기 넘치는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我说了一句毫无帮助的话。崔伞像一个耐心等待慢学生自己得出结论的老师一样看着我,最终还是放弃了。
“너, 걔네한테 말했어? 우리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你,跟他们说了吗?我们俩是什么关系?”
그 순간 머릿속에 사이렌이 한가득 울려 퍼졌다. 체념한 듯한 최산의 질문에 지워진 줄로만 알았던 어제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那一刻,脑海中响起了无数警报声。因为崔伞那带着绝望的提问,让我以为已经消失的昨天的记忆一下子全都涌现了出来。
어떤 사이였는지 말했냐고? 어떤 사이였는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전부 다 말했다. 심지어는 첫 섹스가 어땠고 두 번째 섹스가 어떻게 달랐고 마지막 섹스가 몇 달 전이었는지도 말했다.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기억나는 것만 그 정도인데, 더 뭘 얼마나 말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你问我说了我们是什么关系吗?我们是什么关系,怎么认识的,为什么那么喜欢对方,我全都说了。甚至还说了第一次性爱的感觉,第二次性爱有什么不同,最后一次性爱是几个月前。真是疯得彻底。记得的就这些,更多的我都不敢想我还说了些什么。
“어? 말했어?” “哦?你说了吗?”
평소 목소리보다 두 톤은 낮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묻는 창백한 얼굴에 대고, 나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平时声音低了两个音调,冷静地问着的苍白脸庞,我实在无法说出真相。
“아, 아니?” “啊,不是吗?”
“말 안 했다고?” “没说吗?”
“어, 안 했는데?” “哦,还没做呢?”
“그럼 걔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널 데려와?”
“那他们怎么知道这里并把你带过来?”
의심과 걱정으로 이제는 거의 잿빛으로 변한 낯빛에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거짓말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在充满疑虑和担忧、几乎变成灰白色的脸上,我自信地说出了自己并不擅长的谎言。
“진짜 안 했어! 내가 취해서 기억하는 주소가 너네 집밖에 없어서 그랬겠지!”
“真的没有!我喝醉了,只记得你家的地址,所以才会这样!”
“진짜로?” “真的吗?”
"어, 진짜라니까? 너 아는 애들 몇 명 있어서 그냥 나도 아는 사이다, 뭐 그런 얘기는 했을 수도 있지."
“哦,真的啦?因为有几个我认识的朋友,所以我可能也提到过你,什么的。”
“……기억 못 하는 거 아니고?”
“……不是记不得吗?”
“야, 내가 아무리 기억을 못 해도, 무슨 말을 안 했는지는 안다, 진짜.”
“喂,我就算再怎么记不住,也知道自己没说过什么,真的。”
횡설수설을 늘어놓느라 숨까지 거칠어진 나를 최산은 지그시 응시하더니 이내 시선을 떨구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입속으로 삼키던 내게 면발을 집어 올린 최산이 한 자 한 자 눌러 말했다.
为了胡言乱语而气喘吁吁的我,崔伞静静地注视着,随即低下视线,拿起了筷子。正当我在心里松了一口气时,崔伞夹起面条,一字一句地说道。
“알았어. 믿는다.” “知道了。我相信你。”
당연히 믿어야지! 그렇게 기세 좋게 외치려던 게 목구멍에 걸려 차마 나오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하게 내 몫의 면발을 양껏 집었다.
当然要相信啊!本来想这么气势汹汹地喊出来,但却卡在喉咙里,怎么也说不出口。于是我点了点头,急忙夹起属于我的那份面条。
얼른 먹고 나가서 이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몇 번째인가 돌아온 캔커피에 붙어서 온 포스트잇 위, 얼핏 봐도 주저하면서 쓴 흔적이 역력했던 필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赶紧吃完出去收拾这个局面才行。几次回来的罐装咖啡上贴着的便利贴,隐约可见犹豫着写下的字迹在眼前闪现。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저 클로짓인데.’
“可是你怎么知道的?我是个隐藏的。”
……그랬다. 나 정우영, 술을 꼭지가 돌아버릴 정도로 퍼마시다가 생각도 없이 아우팅을 해 버렸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전 남친을.
……是的。我郑友荣,喝酒喝到失去理智,毫无思考地出柜了。而且对象还是我的前男友。
“야, 집에 잘 들어갔냐?” “喂,你到家了吗?”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웃음기 묻은 질문이 이젠 지겨웠다. 내가 진짜 어제 네놈 자식들만 안 만났어도! 이게 그 자리에 있었던 다섯 명 중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제 거의 자동응답기의 녹음처럼 대사를 읊었다.
手机那头传来的带着笑意的问题现在已经让我厌烦了。要不是昨天碰到你们这些家伙!这是当时在场的五个人中的最后一个。我现在几乎像自动答录机一样背诵台词。
“어, 대충. 야, 근데, 어제 푼 썰 있잖아.”
“哦,大概。喂,不过,昨天说的那个故事,你还记得吗?”
“어제? 뭐? 아, 최산 썰?”
“昨天?什么?啊,崔伞的故事?”
“어, 그거. 그거 너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哦,那个。那个你真的不能告诉任何人。”
“응? 아, 뭐, 그래, 알았어. 내가 호모 친구 썰을 누구한테 풀겠냐.”
“嗯?啊,什么,好吧,知道了。我能跟谁讲我有个同性恋朋友的故事呢。”
이전에 전화했던 다른 놈들과는 달리 쉽게 수긍하는 듯하던 녀석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덧붙였다.
和之前打电话的其他人不同,这个家伙似乎很容易接受,突然像是想起了什么似的补充道。
“근데 갑자기 왜? 너 허구한 날 푸는 게 연애썰이잖아.”
“可是突然为什么?你整天讲的都是恋爱故事啊。”
그래, 그렇지. 헤테로 친구 놈들 붙잡고 지나간 연애썰을 MSG 팍팍 쳐서 푸는 게 내 취미이자 특기였다. 내 얘기의 재미 여부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호기심으로 관심을 쏟아주는 게 좋아서였다. 게다가 내게는 평생 주워섬겨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전 애인들 썰이 많았고, 여자에 미쳐서 때 되면 여자랑 결혼할 녀석들에게 마주칠 일도 없는 남자 썰 풀어봤자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对,没错。抓住那些异性恋朋友们,添油加醋地讲述过去的恋爱故事是我的爱好和特长。不管我的故事有多有趣,我都喜欢他们纯粹出于好奇而关注我。而且,我有很多前任的故事,讲一辈子也讲不完。再加上那些痴迷于女人,迟早会和女人结婚的家伙们,讲一些他们永远不会遇到的男人的故事也没什么损失。
하지만 이번 상대는 최산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얄팍하나마 공통 지인도 몇 있는, 그리고 아우팅을 죽는 것보다 겁내는, 그런 최산.
但是这次的对手是崔伞。是同一所学校的,有几个薄弱的共同熟人的,还有比死更害怕被出柜的,那样的崔伞。
“아 진짜, 이유가 중요해? 의리 몰라?”
“啊,真的,理由重要吗?你不懂义气吗?”
“알았다, 알았어.” “知道了,知道了。”
건성처럼 들리는 대답이긴 했지만 갑작스레 들먹인 의리에 대한 긍정을 나는 믿을 밖에 도리가 없었다. 얘네한텐 아우팅이 어쩌니 설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의리라는 한 마디가 확실했다. 평생 남자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내가 경험에 의거해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虽然听起来像是敷衍的回答,但我只能相信他突然提到的义气。与其向他们解释出柜,不如用“义气”这个词来表达更为确切。毕竟我一生都在男人堆里长大,这话是基于我的经验,所以你可以相信。
“야, 근데 너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
“喂,你今天晚上有时间吗?”
어, 그럼 수고, 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나를 핸드폰 너머의 녀석이 붙잡았다.
哦,那就辛苦了,我正要挂电话,电话那头的家伙却拦住了我。
“저녁에? 왜?” “晚上?为什么?”
“진짜 지인짜 어렵게 잡은 미팅이 있거든, 근데 이동진 이 새끼가 어제 그거 마시고 술병 났대서.”
“真的好不容易才约到的会议,结果李东振那家伙昨天喝了酒,现在宿醉了。”
저기요, 술병은 나도 났거든요? 게다가 그럼 상대 여자애는 무슨 죄야? 녀석은 그렇게 따져 물으려던 게 쏙 들어가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对不起,我也有宿醉啊?而且那女孩有什么错?他补充了一句,让原本想要追问的话语瞬间消失。
“의리, 알지?” “义气,知道吗?”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차오르는 잔을 보며 나는 절망적인 기분에 빠졌다. 이거 실화? 조건반사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애써 눌러 가며, 나는 그걸 마시는 대신 눈앞에 앉아 있는 여자애가 쉼 없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다행히도 여자애는 이 자리에서 누굴 낚아가기보다는 그저 술동무가 필요했던 듯했다.
看着眼前实时满上的杯子,我陷入了绝望的情绪。这是真的吗?我努力压抑着条件反射般涌上的恶心感,没有喝那杯酒,而是听着坐在我面前的女孩不停地说话。幸运的是,女孩似乎并不是想在这里钓到谁,只是需要一个酒伴。
“그럼 너희 다 같은 과야?”
“那你们都是一个专业的吗?”
“어, 그치.” “哦,对。”
“글쿠나, 역시 남초 과라 다른가 보네. 우린 남자 동기 딱 두 명이다?”
“글쿠나, 역시 남초 과라 다른가 보네. 우린 남자 동기 딱 두 명이다?”
“原来如此,果然是男生多的专业,看来不一样啊。我们班只有两个男生同学。”
“아, 진짜?” “啊,真的吗?”
그렇게 아무래도 좋은 얘기에 건성으로 대꾸해도 걔는 싫은 내색 없이 따라 주는 족족 술잔을 비웠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덩달아 술을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맞장구치는 것 외에 더 보탤 말도 없는 탓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대화 아닌 대화 중간중간 테이블 밑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인스타그램을 확인했지만 거기에마저 재밌는 게 없었다.
所以即使我敷衍地回应那些无关紧要的话题,他也毫无不悦地一杯接一杯地喝着酒。虽然这还算是万幸,但我既不能跟着喝酒,也没有什么话可以附和,实在是无聊透顶。在这种不算对话的对话中间,我在桌子底下摆弄手机,查看 Instagram,但那里也没有什么有趣的东西。
아, 진짜 그놈의 의리 때문에. 평소라면 이런 자리는 장난 섞어 거절할 만도 했지만, 내가 부탁한 비밀 엄수가 걸려 있는 탓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啊,真是因为那该死的义气。平时的话,这种场合我本可以开玩笑地拒绝,但因为我请求的保密承诺,我别无选择。
그래, 이건 벌이다. 술김에 입을 함부로 놀린 죄에 대한 벌임에 틀림없어. 그렇게 겸허하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형벌을 받아들이려고 마음먹은 순간, 쥐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对,这就是惩罚。因为醉酒胡言乱语而受到的惩罚,毫无疑问。就在我谦虚地承认自己的错误并决定接受惩罚的那一刻,手中的手机震动了。
보내져 온 건 사진 한 장이었다. 진보라색 침대 시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에이포 종이 한 뭉치,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둘둘 말린 종이. 나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하마터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했다.
送来的只是一张照片。紫色床单上孤零零地放着一叠 A4 纸,旁边还有一卷卷起来的纸。我一看到那张照片,差点就从座位上跳了起来。
“어? 왜 그래?” “哦?怎么了?”
“아, 미안, 잠깐만, 나 전화 딱 한 통만 걸게.”
“啊,对不起,等一下,我打个电话。”
엉거주춤 일어나는 내게 테이블의 모든 시선이 쏠렸다.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사이에 끊길세라 그 전화를 냉큼 받았다.
我笨拙地站起来,所有人的目光都集中在我身上。就在这时,电话响了。我赶紧接起电话,生怕在跑出去的过程中电话会断掉。
“어, 사진 봤어.” “哦,看到了照片。”
“어딘데 그렇게 시끄러워?” “你在哪儿这么吵?”
인사 한마디 없이 부루퉁하게 물어 오는 최산의 목소리에 때아닌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서로의 전화를 여보세요, 로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곤 했었으니까.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헤어졌던 그 순간까지 우리의 대화가 끊긴 적은 없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는 한가하기 짝이 없는 생각은 핸드폰 너머의 조금 신경질적인 질문에 지평선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没有一句问候,崔伞不高兴地问道,这让我想起了过去。我们几乎从不在电话里说“喂”,因为我们几乎所有的时间都在一起,即使分开的时候也不断地互发信息。从我们开始见面到分手的那一刻,我们的对话从未中断过。仿佛回到了那个时候,这种无聊的想法在手机那头略带神经质的问题下消失得无影无踪。
“어디냐니까?” “你在哪儿?”
“아, 나 후문 근처에 있는 술집.”
“啊,我在后门附近的酒吧。”
“미친, 어제 그 꼴이 되고 술을 또 마시러 갔어?”
“疯了,昨天那样子还去喝酒?”
“얘기하자면 길어. 아 근데 그건 됐고, 너 사진 찍어준 거.”
“说来话长。啊,不过那就算了,你拍的照片。”
그건 다름 아닌 팀플 레포트였다. 어제의 나를 꽐라로 만든, 그리고 제출 일시가 내일 아침인 바로 그 팀플 레포트. 괴짜 교수 때문에 반쯤 울면서 손으로 그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도면도 첨부되어 있는 레포트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게 없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那是一个团队合作报告。正是昨天让我喝得烂醉如泥的那个团队合作报告,而且提交时间是明天早上。因为怪胎教授,我半哭着手绘了世界上独一无二的图纸,并附在报告中。简而言之,没有它我就完蛋了。
“내가 지금 가지러 가도 돼?”
“我现在可以去拿吗?”
내가 그렇게 물은 건 핸드폰을 향해서였는데, 격렬한 반응은 도리어 테이블에서 터져 나왔다.
我那样问是对着手机的,但激烈的反应反而从桌子上传了出来。
“야, 정우영!” “呀,郑友荣!”
“어디 가?” “去哪儿?”
“야, 쟤 빨리 앉혀.” “喂,让他快点坐下。”
좌중의 격렬한 반대 표명에 의리로 나를 유인한 주최 녀석이 일어나서는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在众人的强烈反对声中,用义气把我拉来的主办家伙站起来走向我,问道。
“뭔데, 누군데?” “什么事,谁啊?”
야 진짜, 나 한 번만 봐주라. 여섯 명이서 몇 주 동안 죽을 똥을 싸며 완성한 과제를 술 처먹고 까먹고 최산네 집에 버리고 왔다는 말을 내가 어떻게 제정신으로 한단 말인가. 어제 저지른 만행만 두고 보면 정말 내가 쳐 죽일 놈이 맞는데도 염치없이 살고 싶었다.
"哎,真的,求你看我一眼。我们六个人花了好几周拼命完成的作业,喝醉了忘记带走,还丢在了崔伞家里,我怎么能清醒地说出这种话呢。单看昨天犯下的罪行,我确实是个该死的家伙,但我还是厚颜无耻地想活下去。"
“인기 절정이네, 정우영 씨.” “人气顶峰啊,郑友荣先生。”
핸드폰 스피커 속에서 최산이 빈정거렸다. 내가 뭐라고 변명 섞인 대꾸를 하기도 전에 가벼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手机扬声器里传来崔伞的嘲讽声。我还没来得及辩解,就听到了一声轻叹。
“블루 레인이지? 내가 갖고 가 줄게.”
“蓝雨对吧?我帮你拿过去。”
있잖아, 내가 원래는 종교를 안 믿었었는데, 오늘부터 믿으려고. 내가 전생에 나라, 아니 지구를 구하지 않았고서야 이번 생에 너 같은 천사가 내 삶에 찾아왔겠어? 오늘부터 나는 최산교다, 최산교.
你知道吗,我本来是不信宗教的,但从今天开始我要信了。要不是我前世拯救了国家,不,拯救了地球,这辈子怎么会有你这样的天使来到我的生活?从今天开始,我信崔伞教,崔伞教。
마음 같아서는 그런 오두방정이라도 떨고 싶었지만 옛날 그때도 아니니 꾹 참았다. 센스 있게 검은 쇼핑백 안에 과제를 담아와선 내 발치에 몰래 떨어뜨린 최산을 그 자리의 모두가 반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오두방정이라도 떨고 싶었지만 옛날 그때도 아니니 꾹 참았다。센스 있게 검은 쇼핑백 안에 과제를 담아와선 내 발치에 몰래 떨어뜨린崔伞을 그 자리의 모두가 반겼다。
“내가 그때 진짜 뻥 안 치고 주마등까지 봤다니까?”
“我那时候真的没骗你,连走马灯都看到了。”
“헐, 진짜 죽기 직전이었던 거 아냐?”
“그렇대도! 다섯 살 때 놀이동산에서 회전목마 타던 것까지 스쳐 지나가더라니까?”
“真的吗!连我五岁时在游乐园坐旋转木马的事情都一闪而过了?”
“어떡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怎么办,真的差点出大事了。”
인생의 관심사라고는 제 학과 구성원뿐인 줄 알았던 맞은편의 여자애는 최산의 추임새에 흥이 올랐는지, 시간을 계속해 거슬러 올라가더니 바야흐로 초등학생 때 있었던 일을 과장스럽게 설명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만나는 여자애의 술주정까지 하나하나 진지하게 들어주고 걱정해 주는 게 너무나도 최산다웠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다정한, 내가 잘 아는 최산.
人生的兴趣似乎只有她的学科成员的对面女孩,在崔伞的助兴下,兴致高涨,不断回溯时间,夸张地描述着小学时发生的事情。第一次见面的女孩的醉话,崔伞也一一认真倾听并关心,这真是太像崔伞了。对任何人都温柔和善的,我所熟悉的崔伞。
“그래도 그때 어찌어찌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
“와, 그러게, 진짜 대박이다.” “哇,真的太棒了。”
“그치, 내가 운이 엄청 좋은가 봐.”
“对吧,我的运气好像特别好。”
“음, 운이 좋은 게 아니고 그때가 운이 나빴던 거 아닐까?”
“嗯,不是运气好,而是那时候运气不好吧?”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嗯?那是什么意思?”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자애를 향해 최산은 눈도 깜박하지 않고 답했다.
崔伞毫不眨眼地回答了那个歪着头的女孩。
“네가 살아 있는 건 운이 좋은 게 아니고 당연한 거야. 그때는 잠깐 운이 나빴지만 액땜을 거하게 한 거지. 그러니까 너한텐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你活着不是因为运气好,而是理所当然的。那时候只是运气不好,但你已经大难不死了。所以以后你只会有好事发生。”
최산에게는 이런 느끼한 소리를 진지한 얼굴로 하는 재주가 있었다. 나에겐 이미 익숙한 화법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여자애는 꼭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머지않아 미소로 사르륵 풀어지기는 했지만.
崔伞有一种能用认真的表情说出这种肉麻话的本事。虽然我已经习惯了他的说话方式,但听到这话的女孩脸上还是露出了像是被什么东西打了一下的表情。虽然不久后她的表情就融化成了微笑。
“미안한데,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抱歉,我去一下洗手间。”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뒷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아, 저건 백퍼 최산한테 반했다.
稍微有些踉跄的步伐,边走边摆弄手机的背影显得不太对劲。啊,那百分之百是对崔伞动心了。
남자야 그렇다 치고 여자는 왜 꼬시는 건데? 내가 그렇게 낸 짜증으로 시작된 말다툼도 몇 번인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말로 하는 친절도 못 베푸는 속 좁은 놈이라는 결론으로 싸움이 끝나곤 했다. 당시엔 내가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최산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게 지금은 그냥 혼자서 밴댕이 소갈딱지에 더해 망나니 개자식이 됐지만.
男的就算了,为什么还要勾引女的?因为我发的那点脾气而开始的争吵已经有好几次了。每次争吵的结论都是我这个连话都说不清楚的狭隘家伙。那时候我想着,就算变成一个小心眼的家伙,我也想待在崔伞身边。可现在,我不仅是个小心眼的家伙,还成了个混蛋。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느라 여자애가 화장실에 있을 동안 정작 옆에 앉은 최산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내게는 말도 붙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겠지. 저 혼자 연거푸 잔을 두 번 채우며 알코올을 쭈욱 들이킨 최산은 술집의 시끌벅적한 소음을 뚫고 들려올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独自陷入沉思中,女孩去洗手间的期间,我实际上没有和坐在旁边的崔伞说一句话。当然,他对我可能已经厌烦到不想说话了。崔伞独自连续倒了两杯酒,咕咚咕咚地喝下去,叹了一口深深的气,甚至穿透了酒吧的喧闹声。
“땅 꺼지겠다, 꺼지겠어.” “地要塌了,真的要塌了。”
나도 모르게 그렇게 흘러나온 말에 나 스스로 놀라버렸다. 미쳤나, 지금 감사의 마음 가득 담아 대학로를 따라 삼보일배해도 모자랄 판에 비아냥은 웬 비아냥?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각오로 마주한 최산의 시선은 의외로 평온했다. 아니, 평온이라기보다는 조금 우울한 쪽에 가까웠다. 우울? 왜?
不知不觉中,我说出了那句话,连自己都吓了一跳。疯了吗,现在满怀感激之情沿着大学路三步一拜都不够,怎么还讽刺起来了?做好迎接刺眼目光的准备,迎上崔伞的视线,却意外地平静。不,不如说是有点忧郁。忧郁?为什么?
가벼운 당혹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마침 주최 녀석이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왔다. 나는 미처 안도를 감출 생각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통수에 달라붙어오는 시선이 조금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在轻微的困惑中不知所措的那时,正好主办那家伙用手指敲了敲我的肩膀。我还没来得及掩饰松了一口气的心情,就站了起来。后脑勺上黏着的视线感觉有点湿湿的。
“야, 아까 걔가 최산이 맘에 든대. 어떡해?”
“呀,刚才那个人说他喜欢崔伞。怎么办?”
내가 뭐랬나, 그럴 줄 알았다니까. 질문 뒤에 담배를 한 모금 마시는 녀석에게 나는 가벼운 짜증을 부렸다.
我说什么来着,我就知道会这样。我对那个在提问后抽了一口烟的家伙感到有些恼火。
“뭘 어떡하긴 어떡해, 안된다 해야지.”
“뭘 어떡하긴 어떡해, 안된다 해야지。”
“뭐라고 하면서 안 된다 해? 사실은 게이라 안 된다 할 수도 없잖아.”
“说什么不行呢?其实不能说因为是同性恋所以不行吧。”
“당연히 안 되지! 이씨, 의리, 새꺄!”
“当然不行!这家伙,义气,混蛋!”
답답함에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옆에서 뭐라고 지랄을 하든 그냥 내가 가지러 갈 걸.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었다.
답답함에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옆에서 뭐라고 지랄을 하든 그냥 내가 가지러 갈 걸。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 “那呢?”
“아, 뭐 적당히 둘러 대! 걔한테 별로 관심 없다 하든가, 여자친구 있다 하든가! 어차피 급 끼어든 건데 뭐 어때!”
“啊,随便编个理由!就说对他没兴趣,或者说有女朋友了!反正是突然插进来的,没关系!”
하씨, 뭐 이런 멍청한 녀석을 친구랍시고 뒀지? 후회 안 하기로 마음먹자마자 또 다른 후회가 그 자리를 채웠다. 내 성질에 녀석은 조금 기가 죽어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哈,怎么会把这种蠢货当朋友呢?刚决定不后悔,另一个后悔又占据了那个位置。因为我的脾气,那家伙有点气馁地在嘴里嘟囔着。
“어, 그건 그렇네.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
“哦,那倒是。我不太会撒谎。”
“야, 누군 거짓말 잘해서 하는 줄 아냐? 다 그렇게 거짓말하고 사는 거지.”
“喂,你以为谁是因为擅长撒谎才撒谎的吗?大家都是这样撒谎过日子的。”
그렇게 말해놓고 나는 자괴감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째 어제부터 거짓과 임기응변만 늘어놓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나답지 않았다. 숨기고 거짓말하느니 차라리 욕먹는 게 낫다는 게 내 인생 신조였다. 그래서 커밍아웃 뒤에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절연당했을 때에도 아무렇지 않았고, 그건 최산과의 짧지 않았던 연애를 끝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한 말이 무신경한 건지 아니면 솔직한 건지는 그 마지막 싸움 뒤에도 결론 나지 않았지만, 우리 관계만은 단단히 결론이 났었다. 그때도 뭐,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자살 충동까지는 들지 않았다고 해 두자.
그렇게 말해놓고 나는 자괴감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째 어제부터 거짓과 임기응변만 늘어놓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나답지 않았다. 숨기고 거짓말하느니 차라리 욕먹는 게 낫다는 게 내 인생 신조였다. 그래서 커밍아웃 뒤에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절연당했을 때에도 아무렇지 않았고, 그건 최산과의 짧지 않았던 연애를 끝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한 말이 무신경한 건지 아니면 솔직한 건지는 그 마지막 싸움 뒤에도 결론 나지 않았지만, 우리 관계만은 단단히 결론이 났었다. 그때도 뭐,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자살 충동까지는 들지 않았다고 해 두자.
说完这些话后,我立刻因为自责而闭上了嘴。不知为何,从昨天开始我好像一直在撒谎和随机应变,这真的不像我。与其隐瞒和撒谎,不如被骂一顿,这是我人生的信条。所以在出柜后被家人单方面断绝关系时,我也毫不在意,这在与崔伞结束了不短的恋爱时也是一样的。我说的话到底是无情还是坦率,在那最后的争吵之后也没有得出结论,但我们的关系却是彻底结束了。那时候嘛,虽然也不是完全无所谓,但至少没有产生自杀的冲动。
“알았어, 어떻게든 말해 볼게. 여튼 나와 줘서 고맙다, 야.”
“知道了,我会尽量说的。总之,谢谢你出来见我,哥。”
재떨이 모래 위에 장초를 처박으며 녀석이 하는 소리였다. 나는 한결 편안해진 심정으로 그 어깨를 다소 세게 퍽 치며 웃었다.
他把烟蒂狠狠地按进烟灰缸里的沙子里。我心情轻松了许多,笑着用力拍了拍他的肩膀。
“당연하지, 의리인데.” “当然了,这是义气。”
……는 무슨, 빌어 처먹을 의리고 나발이고 집에 가서 토하고 씻고 자고 싶다고 생각한 건 그로부터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是什么鬼,见鬼的义气和狗屁不通的道理,想回家吐一吐、洗个澡、睡一觉的念头不过是在那之后不到三十分钟就冒出来了。
바니바니 당근당근 아싸 홍삼 에브리바디 홍삼 시체가 벌떡 벌떡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내용물이 빈 술병 다수와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남녀들, 그리고 영혼 없는 빈 껍데기인 나만이 남아 있었다.
“야, 취중 젠가 하자, 취중 젠가.”
“喂,喝醉了玩叠叠乐吧,喝醉了玩叠叠乐。”
아, 제발. 그렇게 빌기도 전에 테이블 위로 나무블록과 환호성이 뒤덮였다. 나는 반쯤 체념한 채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늘어져 곁눈질로 세팅을 지켜보았다. 시선 끝에 적극적으로 젠가 블록을 쌓아 올리는 최산이 걸렸다.
啊,拜托。在我还没来得及祈祷之前,桌子上已经被木块和欢呼声覆盖了。我半放弃地靠在椅背上,斜眼看着他们的布置。视线的尽头,是积极堆积着积木块的崔伞。
쟤가 원래 이렇게 술 게임을 좋아하던 애였나. 뭐가 됐든 빼지 않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주도하지까진 않았던 거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전부 다 부질없어졌다. 애초에 옛날에 최산이 어땠는지, 지금은 어떤지 내가 알 게 뭔가. 내가 어제 그 멍청한 입방정만 떨지 않았어도 최산을 다시 마주칠 일도, 떠올릴 일도 없었을 텐데. 그냥, 또 하나의 지루한 술자리였을 텐데.
他原来就这么喜欢喝酒游戏吗?不管怎样,他虽然不推辞,但也没见他主动带头过。想到这里,一切都变得毫无意义了。说到底,过去的崔伞是什么样,现在又是什么样,我怎么会知道呢?如果昨天我没有说那些蠢话,也许就不会再遇见崔伞,也不会再想起他了。那只不过是另一个无聊的酒局罢了。
“미션이면 뽑은 사람이 미션 수행하기?”
“如果是任务的话,抽到的人就要执行任务吗?”
“어, 그리고 상대는 왼쪽에 앉은 사람.”
“哦,还有对手是坐在左边的人。”
“야, 정우영, 넋 놓고 있지 말고 너부터 뽑아.”
“喂,郑友荣,不要发呆,你先抽。”
주최가 테이블 반대편에서 날 지목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가장 안정적인 가운데 블록을 뽑아냈다.
由于主持人在桌子的另一边点了我的名,我不得不站起来,从中间最稳定的积木中抽出一块。
“전 애인이랑 헤어진 이유는?” “和前任分手的理由是什么?”
블록에 쓰인 질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옆에 앉은 바로 그 전 애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대감에 눈을 빛내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이상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读着写在纸上的问题,我不由自主地瞥了一眼坐在我旁边的前任。虽然对那些满怀期待的人们感到抱歉,但我不能再承担更多的风险了。
“에이, 첨부터 재미없어.” “哎,一开始就没意思。”
“맞아! 빨리 넘어가자, 다음 사람.”
“对!快点过去,下一个人。”
쏟아지는 야유에 항변하고 싶었다. 나라고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줄 아냐, 진짜! 그러나 전 애인 빼고는 내가 해 뜰 때까지도 썰 풀기 쌉가능 어쩌고 하는 불만은 토기와 함께 꾹꾹 눌러두었다. 다음 타자인 최산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블록을 하나 뽑아 들었다.
倾泻而来的嘘声让我想要反驳。你以为我是真的想喝吗,真是的!然而,除了前任,我把所有的不满和陶器一起压抑了下来,什么讲到天亮都没问题之类的。下一个轮到崔伞,他满意地抽出了另一个积木。
“싫은데 억지로 먹었던 음식은?” “你不喜欢但被迫吃的食物是什么?”
“아, 이거 너무 약한데?” “啊,这个太弱了吧?”
누군가가 한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웃었다. 나는 또, 러브샷이나 뽀뽀 같은 거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했지. 최산 역시 가볍게 답했다.
有人说了什么话,大家包括我在内都笑了。我又开始担心,如果抽到像“Love Shot”或者亲吻之类的怎么办。崔伞也轻松地回答道。
“나 별로 그랬던 거 없는 거 같은데, 웬만한 건 안 가리고 다 잘 먹어서.”
“我好像没有特别不喜欢的东西,基本上什么都能吃。”
“에이, 너까지 재미없게 그럴 거야?”
“哎,你也要这么无聊吗?”
“잘 생각해 봐, 뭔가는 있을 거 아냐.”
“好好想想,总会有办法的。”
“맞아, 평소엔 먹어도 그 상황에서 싫었다거나.”
“对,平时吃也没关系,但在那种情况下就不喜欢了。”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한테 호감 사 봤자 다굴만 당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지. 안주 땅콩을 씹으며 그렇게 팔자 좋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据学界的定论,对喝得酩酊大醉的人讨好只会招来群殴。我正嚼着下酒花生,想着这些悠闲的事情。
“아 맞다, 최산, 너, 그거 있지 않냐? 김밥?”
“啊,对了,崔伞,你不是有那个吗?紫菜包饭?”
주최 녀석이 손바닥을 짝 치며 물어왔다. 뜻밖의 음식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가 어리둥절함 반, 궁금함 반으로 일제히 최산을 바라보았다.
主持的家伙拍了拍手掌问道。面对意想不到的食物,围坐在桌子旁的所有人都半是困惑,半是好奇地齐刷刷看向崔伞。
“……김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紫菜包饭?那是什么意思?”
그렇게 되묻는 최산의 어조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싸늘했다. 그 이유가 뭔지에 대한 깨달음이 뒤늦게 내 뒤통수를 세게 가격했다.
崔伞那样反问的语气,即使不看表情也能感受到冷冰冰的。对于原因的领悟迟迟才猛然击中了我的后脑勺。
“어, 너 맛없는 김밥 억지로 먹었던 적 있잖아?”
“哦,你不是有一次勉强吃了难吃的紫菜包饭吗?”
테이블 저편의 주최 녀석을 향해 뜨악한 표정을 열심히 지어보았지만 술에 거나하게 취한 녀석에게는 내 절박함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尽管我努力对着桌子对面的那个家伙做出厌恶的表情,但那个喝得烂醉如泥的家伙完全没有察觉到我的绝望。
“내가 그랬어? 언제?” “我那样说过吗?什么时候?”
“아니 그게, 내가 본 앞에서 그런 건 아니고…….”
“不是的,我不是在你面前看到的……”
“그니까 언제냐고.” “所以到底是什么时候?”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날카롭게 따지는 최산의 질문에 아까까지만 해도 떠들고 웃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崔伞用僵硬的脸庞尖锐地质问,刚才还在喧闹和欢笑的气氛瞬间冷却了下来。
“야, 왜 무섭게 정색하고 그래…….”
“喂,为什么要这么严肃……”
“별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도 돼.”
“没什么大不了的,直接忽略就行。”
“그래, 그냥 넘어 가.” “对,就这样过去吧。”
여자애들의 중재에 느릿하게 젠가가 재개되었지만, 바로 다음 사람이 블록을 뽑고 있을 때 최산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在女孩们的调解下,慢慢地重新开始了叠叠乐,但当下一个人正在抽积木时,崔伞最终猛地站了起来。
“미안, 나 먼저 가 볼게.”
“对不起,我先走了。”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일어난 산이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체 쌀쌀맞은 무표정에 드리운 환멸에 대고 더 있다 가라고 할 용자는 그 누구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술집을 나서는 그 마르고 쓸쓸한 뒷모습을 쫓지 않을 수 없었다.
那一句话说完后,没有人阻止起身的伞。面对他那原本就冷漠的表情和流露出的厌恶,没有人敢让他多待一会儿。但是我无法不追上那个离开酒吧的瘦削而寂寞的背影。
그 무표정도 환멸도, 사실은 전부 다 내 탓이었으니까.
那无表情和厌恶,其实全都是我的错。
“산아, 잠깐만!” “伞啊,等一下!”
터덜터덜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뒤쫓으면서 외쳤지만, 최산은 멈춰 서거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뛰어서 따라잡고 싶었으나 기다란 도면이 든 쇼핑백이 거치적거렸다.
拖着沉重的步伐快速离去的背影,我大声喊道,但崔伞没有停下脚步,也没有回头。我想跑过去追上他,但装着长长图纸的购物袋碍事。
“잠깐만 멈춰 봐, 내가 다 얘기할게, 어?”
최산은 집에 가려면 타야 하는 버스 정류장마저 지나쳐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도면을 끼고 다른 팔로 레포트를 안고 달린 끝에 걔를 따라잡은 곳은 학교 후문 앞에 난 경사로 부근이었다. 일요일 밤이라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나는 간신히 그 어깨를 잡아세웠다.
崔伞已经走过了他要乘坐的公交车站,离我越来越远了。我夹着图纸,另一只手抱着报告,跑了很久才在学校后门前的斜坡附近追上了他。那是一个星期天的晚上,人迹罕至的地方,我勉强抓住了他的肩膀。
“아니, 너는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빠르냐? 요즘에 경보 연습해?”
“不是吧,你怎么走得那么快?最近在练竞走吗?”
따라잡은 안도감에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 봤지만 고개를 숙인 채 멈춰 선 뒷모습은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등신아, 지금 농담할 때냐? 수습하려고 아무 말이라도 꺼내려던 찰나, 고개가 살짝 돌아오며 입술 사이로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跟上后松了一口气,试着开了个无聊的玩笑,但低着头停下的背影没有要转身的迹象。啊,笨蛋,现在是开玩笑的时候吗?正想说点什么来挽回局面时,头微微转过来,嘴唇间轻轻颤抖的声音传了出来。
“……우영아, 나는 너한테 뭐였어?” “……友荣啊,我对你来说算什么?”
갑자기 그렇게 철학적인 질문을 받으면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말문이 막혀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나와 최산의 실루엣이 정면으로 마주했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어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차분하게 쏟아지는 추궁과 비난은 확연히 눅눅했다.
突然被问到这么哲学性的问题,一时无法回答是理所当然的。我和崔伞的剪影正面相对,嘴唇微张却说不出话来。背对着路灯,表情看不太清楚,但平静地倾泻而来的追问和责备却显得格外沉重。
“있잖아, 나는 적어도 너랑 사귀고 있을 때는 널 믿었어. 믿어서, 그 누구한테도 하지 않는 얘기도 했어. 너도 알잖아.”
“你知道吗,至少在我们交往的时候,我是相信你的。因为相信你,我才会说那些从不对别人说的话。你也知道的。”
“어…….” “呃……”
“난 지금도 널 믿어. 아니지, 사실 어제까지도 믿었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이제 널 못 믿는 내가 이상한 거야?”
“我现在依然相信你。不对,其实直到昨天我都还相信你,但现在我不确定了。现在不相信你的我很奇怪吗?”
“아니, 아니야…….” “不,不是……”
나는 대역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렇게 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과를 하고 싶은데 목이 메어 나오지를 않았다.
나는 대역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렇게 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과를 하고 싶은데 목이 메어 나오지를 않았다.
我像个大逆不道的罪人一样低下了头。如果这样能得到原谅,我甚至愿意跪下。想要道歉,但喉咙哽咽,什么也说不出来。
“넌 내가 그렇게까지 호구에 바보 멍청이 같아? 어제 네가 나 아우팅한 거, 오늘 아침 같은 상황이면 일곱 살 먹은 어린애라도 알아. 그래도 나는 넘어갔어. 왜?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거짓말을 그렇게 못하고 싫어하는 정우영인데, 그래도 내 신경을 써주느라 그러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你觉得我真的那么傻吗?昨天你把我出柜的事,今天早上那种情况,连七岁的小孩都能看出来。不过我还是装作不知道。为什么?因为我觉得你那么拼命地否认,一定有你的理由。毕竟是郑友荣,那个最不会撒谎、最讨厌撒谎的人,我想你一定是为了照顾我的感受才这样的。”
정말이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양손 뒤로 숨기고 싶었다. 그러게, 대체 왜 오늘 아침의 나는 왜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해댄 걸까. 아니, 나는 사실 이제는 그 이유를 깨달은 채였다.
真的,我想用双手把那张红得发烫的脸藏起来。到底为什么,今天早上我为什么要说那些根本不成立的谎话呢。不,其实现在我已经明白了原因。
“솔직히 너 만나기 전에 아우팅 당했으면 진짜 손목 긋거나 수면제 먹고 죽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누구한테든 당당하게 얘기하고 다니는 널 만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뀐 거야. 용기도 많이 얻었고. 어차피 언젠가는 커밍아웃할 거였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좋게 생각했어.”
“솔직히 너 만나기 전에 아우팅 당했으면 진짜 손목 긋거나 수면제 먹고 죽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누구한테든 당당하게 얘기하고 다니는 널 만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뀐 거야. 용기도 많이 얻었고. 어차피 언젠가는 커밍아웃할 거였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좋게 생각했어。”
“说实话,在遇到你之前,如果被人揭穿了,我可能真的会割腕或者吃安眠药自杀。但是遇到你之后,看你那么坦然地对任何人说出自己的事,我的想法改变了很多。我也得到了很多勇气。反正迟早都会出柜的,所以没关系,我是这么想的。”
그 와중에도 최산은 내 칭찬을 끼워 넣었다. 그게 정말이지 너무도 최산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在那过程中,崔伞还不忘插入对我的称赞。那真的太像崔伞了,让我心里一阵酸楚。
“근데 너는 그것만 얘기한 게 아니더라?”
“可是你不只是说了那个吧?”
무겁게 끝맺은 질문 끝에 잘게 떨리는 날숨 소리가 따라붙었다. 힘겹게 숨을 한 번 들이쉰 산이가 말을 이었다.
在沉重地结束了问题后,紧随其后的是细微颤抖的呼气声。伞艰难地吸了一口气,继续说道。
“어렸을 때 소풍 갔을 때 누나가 싼 김밥이 너무 맛없었는데도 억지로 먹은 얘기? 너한테만 했어. 좋아하던 애가 전학 가서 사흘 밤낮 울고 단식하면서 엄마한테는 친구 고양이가 죽어서 그렇다고 거짓말한 얘기? 그것도 너한테만 했어. 뭐가 됐든 가족들 얘기는 다 너한테만 했다고. 네가 제일 잘 알잖아.”
“小时候去郊游时,姐姐做的紫菜包饭特别难吃,但我还是勉强吃了的故事?只跟你说过。喜欢的女孩转学走了,我哭了三天三夜,还绝食,但跟妈妈撒谎说是朋友的猫死了的故事?也只跟你说过。不管是什么,关于家人的事情我都只跟你说过。你最清楚了。”
그 말대로였다. 최산은 가족 사랑이 유난히도 지극한 애였고, 그래서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는 일절 가족 얘기를 하지 않았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것도 자칫하면 가족을 잃을까 봐서였다. 무슨 계기가 되었든 가족들이 자신의 다른 모습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봐, 그런 식으로 제 가족과 다른 모든 삶을 철저하게 분리해 놓은 애였다. 그런 애가, 내게만은 숨기지 않고 가족 얘기를 해 주었던 것이다.
那话没错。崔伞是个对家人特别有爱的孩子,所以反而从不跟别人提起家人。他没有出柜也是因为害怕失去家人。不管是什么原因,他都担心家人不会爱他不同的一面,因此他彻底地将家人和其他所有生活分开。这样的孩子,却唯独对我毫不隐瞒地谈起了家人。
“시시콜콜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라도, 이런 얘기는 너랑만 했었는데. 그랬었는데. 진짜, 믿었으니까, 그랬는데…….”
“鸡毛蒜皮的小事也好,这种话题我只和你说过。真的,我相信你,所以才这样……”
그렇게 말끝을 흐리던 최산은 이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감히 안거나 만져서 달래줄 생각을 하지 못하고 품에 안은 쇼핑백 끄트머리만 그러쥐었다.
那么含糊其辞的崔伞很快就开始抽泣起来。我不敢抱他或安慰他,只能紧紧抓住怀里的购物袋角。
“왜 그랬어? 아니, 왜 할 말 못 할 말 다 말해 놓고 나한테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해? 너한텐 내가 그렇게 등신 호구야?”
“为什么要这样做?不,为什么把该说的不该说的都说了,却对我撒谎说没说?在你眼里,我就是个傻瓜吗?”
“아니…….” “不是……”
“뭐라고, 흑, 변명이라도 해 봐, 이 나쁜 새끼야…….”
“什么,呜,哪怕是找个借口也好,这个混蛋……”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는 모습에 대고 나는 연신 고개를 조아릴 밖에 도리가 없었다.
看到他用手背擦拭眼角的样子,我只能不停地低头道歉。
“……변명할 것도 없어, 그냥 내가 나쁜 새끼야.”
“……没有什么好辩解的,我就是个坏家伙。”
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술 끊고 거들떠도 안 볼게. 다시는 네 이름 입에 올리지도, 네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게. 내가 진짜 할 수만 있으면 휴학이라도 하고 너 졸업하고 나서 복학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장학금이 걸려서……. 변명은 안 한다고 해놓고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중얼중얼거리고 있는데, 일순 정수리에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如果你想要的话,我以后就戒酒,再也不碰酒了。我再也不会提你的名字,也不会出现在你面前。如果我真的能做到的话,我甚至想休学,等你毕业后再复学,但因为有奖学金的问题……。明明说了不找借口,却还是这样絮絮叨叨地说着,突然感觉到头顶传来熟悉的疼痛。
“거짓말은 그만 하고, 진짜 네 맘이 어떤지 말해 달라니까, 이 답답 멍충아!”
“别再撒谎了,告诉我你真正的心意,这个让人着急的笨蛋!”
“아, 알았어, 알았어! 아파!” “啊,知道了,知道了!好痛!”
오늘 들어서만 두 번째로 전 남친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머리를 쥐어뜯기며, 나는 체면도 뭣도 잊은 채 내가 조금은 뒤늦게 깨달은 사실을 주말 밤의 적막한 캠퍼스가 떠나가라 외쳐댔다.
今天已经是第二次听到前男友近乎尖叫的喊声,我抓着头发,忘记了所有的面子,周末夜晚寂静的校园里回荡着我稍微晚些才意识到的事实。
“좋아해, 널 아직도 좋아해서 그랬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였는데, 그랬다고 솔직히 말해버리면 너한테 미움받을까 봐 그랬어! 아, 산아, 진짜 아픈데 그만 놔주라 제발, 어?”
“喜欢你,我还喜欢你!真的只是个荒唐的错误,但如果我坦白了,怕你会讨厌我!啊,伞啊,真的很痛,求你放开我,好吗?”
자동으로 닫히는 모텔방 문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릴 만한 굉음을 내며 닫혔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려고 해도 내게는 조금의 관심조차 그런 데에 돌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自动关闭的汽车旅馆房门发出震耳欲聋的巨响,响彻走廊,但我们俩都没有在意。即使想在意,我也没有一点余力去关注那种事情。
입술을 먹어치우는 듯한 키스도, 금방이라도 잡아 뜯을 듯 가슴팍을 움켜쥐어 오는 손길도, 내 양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다리도, 어느 하나 현실적인 게 없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최산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하물며 더는 사귀는 사이도 아닌 우리가 이러고 있다는 게.
입술을 먹어치우는 듯한 키스도, 금방이라도 잡아 뜯을 듯 가슴팍을 움켜쥐어 오는 손길도, 내 양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다리도, 어느 하나 현실적인 게 없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최산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하물며 더는 사귀는 사이도 아닌 우리가 이러고 있다는 게.
嘴唇像要吞噬般的吻,仿佛随时要撕裂胸膛的手,挤进我双腿之间的腿,没有一样是现实的。如此积极的崔伞真是第一次。更何况我们已经不是恋人了,却还这样。
“-무슨 생각 해?” “你在想什么?”
최산이 내 손을 쥐어 제 셔츠 밑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손끝에 와 닿는 살갗의 감촉이 메마르고도 뜨거웠다. 있던 생각도 날아가는 감각이었다.
崔伞抓住我的手,把它拉到他的衬衫下面,问道。指尖触碰到的皮肤感觉干燥而炽热。所有的思绪都飞走了。
한 손으로는 맨 허리를 휘어잡고 다른 손은 머리칼에 집어넣어 뒤통수를 얼굴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그게 흡족스러운지 최산은 코끝으로 웃으며 입을 맞춰 왔다. 몸이 더 맞닿아 올수록 뱃속이 뜨거워졌다. 신발도 벗지 않고 입술도 떼지 않은 채로 현관 왼편의 침대까지 마른 몸을 밀어붙였다. 흰 시트가 깔린 퀸사이즈 침대 위에 최산을 쓰러뜨리다시피 눕혀 놓고, 나는 숨을 고르며 입고 있던 스웨터를 위로 벗었다.
一只手紧紧搂住光裸的腰,另一只手插入头发,将后脑勺拉近脸庞。崔伞满意地笑了笑,用鼻尖轻轻碰了碰,然后吻了上来。身体越贴近,腹中越发炽热。鞋子也没脱,嘴唇也没分开,就这样把干瘦的身体推到了玄关左边的床上。我几乎是把崔伞摔在了铺着白色床单的皇后尺寸床上,然后喘着气脱下了身上的毛衣。
“……우영아, 있잖아.” “……友荣啊,你知道吗。”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누운 채로, 최산이 낯선 천장을 향해 말했다.
我不管他怎么想,崔伞四肢无力地躺着,望着陌生的天花板说道。
“나 사실, 너랑 깨고 나서 엄청 후회했었어.”
“我其实,和你分手后非常后悔。”
“그래? 왜?” “真的吗?为什么?”
그때 된통 싸우고 먼저 헤어지자고 했던 건 최산이었는데. 줄곧 스웨터에만 감싸여 있던 어깨며 배가 드러나니 싸늘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 몸을 최산 위에 포갰다. 우리는 서로 껴안은 채로 옆으로 굴러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내 벗은 등을 양팔로 끌어안은 산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답했다.
那时先提出分手的是崔伞。一直被毛衣包裹的肩膀和肚子露出来后,感觉很冷。我毫不犹豫地把身体靠在崔伞身上。我们互相拥抱着侧身滚动,面对面看着对方。伞用双臂抱住我裸露的背,声音在耳边响起。
“우리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누나가 첨으로 김치 만들었다고 택배로 보내줬거든. 근데 먹어보니까 요리 솜씨가 여전히 마이너스인 거야. 그게 너무 웃겼는데 얘기해 줄 사람이 없어갖고.”
“我们那之后没多久,姐姐第一次做了泡菜,还快递给我了。可是吃了之后发现她的厨艺还是负分。那真的太搞笑了,但没有人可以分享。”
그러고서 말끝에 키득거리고 웃는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별로 웃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도 따라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소리도, 온몸의 진동이다 못해 전율도,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然后他在话尾咯咯地笑了起来,笑声传遍了全身。虽然这不是一个特别好笑的故事,但我也跟着笑了起来。那笑声,那传遍全身的震动,甚至是颤抖,都让我觉得我们现在在聊这些事情真是太好了。
“크흐, 그것도 억지로 먹었어?” “咳咳,那也是勉强吃下去的吗?”
“아니, 이제 누나가 보는 것도 아닌데, 뭐.”
“不是,现在又不是姐姐在看,干嘛。”
“그 정도라니까 나도 궁금하다, 진짜.”
“那样的话我也很好奇,真的。”
“분명히 또 보낼걸, 내가 맛있게 먹었다고 거짓말했거든. 담에 오는 건 너도 먹여줄게.”
“分明他还会再送来的,我撒谎说我吃得很香。下次来的时候我也会给你吃的。”
다음이라는 단어가 이다지도 감동적인 단어였던가. 나는 헤어지고 나서도 내가 줄곧 최산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이 미어지도록 깨달았다.
下一个这个词竟然是如此感动的词。我在分手后再次心痛地意识到,我一直深爱着崔伞。
“아흐, 으응, 으, 흐, 아, 하으-”
“啊呵,嗯嗯,呃,呵,啊,哈呃-”
두 눈을 왼팔로 덮은 채 나오는 대로 신음을 뱉는 최산은 여전히 야했다. 힘이 부치는가 싶다가도, 드리운 그늘 아래 살짝 벌어진 입술로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버티고 선 허벅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两眼被左臂遮住,随意呻吟的崔伞依然性感。虽然看起来有些吃力,但每当在阴影下微微张开的嘴唇呼唤我的名字时,他紧绷的腿上就充满了力量。
“우영아, 아, 으흑, 잠깐만, 잠깐, 흐…….”
“友荣啊,啊,呜呃,等一下,等,呜……”
말을 미처 맺지 못하며 떨리는 숨소리에 나는 붙들고 있던 최산의 발목을 놓아주었다. 한껏 뒤로 젖혔던 다리를 내 양 어깨 위에 걸터 놓으며, 최산은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어느새 축축이 젖은 눈가가 어둑한 조명 아래서도 조금 붉었다.
말을 미처 맺지 못하며 떨리는 숨소리에 나는 붙들고 있던崔伞的脚踝을 놓아주었다. 한껏 뒤로 젖혔던 다리를 내 양 어깨 위에 걸터 놓으며, 崔伞은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어느새 축축이 젖은 눈가가 어둑한 조명 아래서도 조금 붉었다.
“왜, 어디 아파?” “为什么,哪里不舒服?”
“으응? 후으, 아니, 그냥……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嗯?呼,不,只是……想看看你的脸……”
최산의 이런 귀여운 소리를 들으면서 잠깐 기다리라는 건 아무래도 내게는 무리였다. 나는 내가 듣기에도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최산의 왼팔을 낚아챘다.
“야, 잠깐만이라니까, 아, 으응-”
밀어붙일 때마다 침대 시트와 함께 조금씩 밀려나며 최산은 얼굴을 찌푸렸다. 붙잡힌 왼팔 대신 오른팔로 도로 제 얼굴을 가리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내 얼굴, 보고 싶다며, 응? 팔 치워 봐.”
“으응, 흐으, 싫어, 윽-”
“-나도 너 보고 싶어서 그래, 응?”
“아, 싫다니까, 하으, 잠깐만, 그만, 으응, 허리 아파, 응?”
“그러게, 후, 내 목을 잡으면 좀 덜 아플 텐데.”
오른팔 밑에서 반쯤 드러난 눈빛에는 가벼운 원망이 섞여 있었지만, 내 등 뒤에서 포개어 겹쳐진 발목이나 잘게 오르내리는 가슴, 그리고 나를 조여들어오는 감각은 내게 면죄부를 주고 있었다.
“아흑-” “啊呃-”
“너무 예쁘다, 산아.” “太漂亮了,伞啊。”
있는 힘껏 내 목에 매달린 채 내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리는 최산은 정말 예뻤다. 달아오른 양 뺨이, 그 위로 내리 감은 눈꺼풀이, 가벼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잔뜩 긴장해 있는 잔근육 하나하나가, 그리고 쾌락의 절정까지 이끌도록 내게 온전히 내맡긴 그 몸뚱이 전부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있는 힘껏 내 목에 매달린 채 내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리는崔伞은 정말 예뻤다. 달아오른 양 뺨이, 그 위로 내리 감은 눈꺼풀이, 가벼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잔뜩 긴장해 있는 잔근육 하나하나가, 그리고 쾌락의 절정까지 이끌도록 내게 온전히 내맡긴 그 몸뚱이 전부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산아.” “伞啊。”
“응, 으응-” “嗯,嗯-”
“나 한 번만 다시 믿어주라.”
“再相信我一次。”
응? 그럼 안 돼? 어린애가 응석을 부리듯 덧붙인 질문에 최산은 얕게 신음을 흘리면서도 웃었다. 그렇게 눈을 가늘게 접으며 이가 다 드러나도록 웃는 모습을 정말 사랑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嗯?那样不行吗?像小孩子撒娇似的附加问题让崔伞轻轻地呻吟了一声,但还是笑了起来。那样眯着眼睛笑得露出所有牙齿的样子,真的让人爱不释手的记忆涌上心头,心中充满了感动。
“앞으로도 나한테만 얘기하고, 이렇게 예쁜 것도 나한테만 보여 줘.”
“以后也只跟我说话,这么漂亮的样子也只给我看。”
내 투정에 가까운 말에 최산은 웃으며 내 머리를 두어 번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在我近乎抱怨的话语中,崔伞笑着轻轻地摸了摸我的头。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보여 주겠냐, 이 멍충아.”
“……我不展示给你还能展示给谁呢,你这个笨蛋。”
다음 날, 나는 모텔에서 바로 학교로 등교하는 핵인싸라면 핵인싸랄 만행을 저질렀다. 전날 같은 파란만장한 일이 있고 난 뒤, 게다가 밤새 내가 남긴 흔적을 고스란히 단 채 이불 한 장만 덮고 잠들어 있는 최산을 두고 자체 휴강의 유혹을 이기는 것은 초인적인 의지력을 필요로 했다.
第二天,我做了一件超级社交达人才能做的事——直接从汽车旅馆去上学。前一天发生了那么多惊心动魄的事情,尤其是看到崔伞整晚都盖着一条被子,身上还留着我留下的痕迹,要抵抗不上课的诱惑,真是需要超人的意志力。
하지만 내게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성적이 달린 과제가 있었고, 1교시 강의 뒤 그걸 제출하고 나서야 피곤한 눈을 비비며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但是我有一个关系到包括我在内的六个人成绩的作业,第一节课后提交了那个作业后,我才能揉着疲惫的眼睛回家。
“야, 정우영, 그래서 어제 어떻게 됐어?”
……그나저나 이 새낀 수업에는 뭐하러 나왔담. 어제의 주최 녀석이 아직도 술냄새가 날 것 같은 꼬락서니로 강의실을 나서는 내 뒤를 따라왔다.
“아, 뭐가 어떻게 돼, 되기는, 새꺄, 내가 너 땜에-”
네가 김밥 얘기만 안 꺼냈어도 내가 진짜! 하고 외치려던 게 목구멍 너머로 도로 들어갔다. 녀석이 김밥 얘기를 안 했으면 최산이 뛰쳐나가는 일도, 내게 화를 낼 일도,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일도, 우리가 다시 만날 일도 없었겠지.
“……너 어제랑 옷이 그대론데, 설마?”
음흉하게 웃는 녀석에, 나는 그 대가리를 들고 있던 빈 쇼핑백으로 후리면서 눈을 치떴다.
“관심 꺼라, 관심 꺼. 내가 이제 너네한테는 썰의 시옷도 안 푼다.”
때마침 핸드폰이 울려 그때까지도 시시덕거리며 그래, 의리로 봐준다, 하는 녀석을 뒤로할 수 있었다. 그놈의 의리 나부랭이, 내가 두 번 다시 입에 올리나 봐라.
“잘 들어갔어?”
“응. 넌 잘 냈어?” “嗯。你交得怎么样?”
“응, 뭐.”
여보세요, 가 아닌 질문으로 받는 또 하나의 전화가 내게 있으리라고, 어제 이맘때쯤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다정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자식인지 먹먹하게 깨달았다.
喂,不是以问题接听的另一个电话会打给我,昨天这个时候的我甚至无法想象。 听到手机那头传来的温柔声音的瞬间,我恍然意识到自己是多么幸运的家伙。
“있지, 나 생각난 건데.”
내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산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我的这种心情,崔伞是不知道还是知道,他用有些兴奋的声音说道。
“어제 그 질문 있었잖아, 싫은데 억지로 먹었던 음식.”
“昨天有那个问题吧,不喜欢但被迫吃的食物。”
“어, 근데?” “哦,但是?”
“나, 그거 누나가 만든 김밥 말고 또 있다?”
“我,还有那个姐姐做的紫菜包饭吗?”
얘는 아침부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내 침묵에서 혼란을 읽은 건지, 핸드폰 속의 최산이 소리 내어 웃고는 이어 말했다.
这家伙从早上开始突然在说什么呢。是不是从我的沉默中读出了困惑,手机里的崔伞大声笑了起来,然后接着说道。
“캔커피. 미지근한 거 진짜 싫어하는데, 잘생기고 웃긴 애가 고백하면서 주길래 마셨어. 웃기지.”
“罐装咖啡。我真的讨厌温的,但因为是个帅气又搞笑的家伙告白时给我的,所以我喝了。搞笑吧。”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핸드폰을 쥔 손이 달달 떨렸다. 정작 예전에는 하지도 않았던 그때 얘기를 새삼스럽게 하려고, 아침에, 그것도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했단 말인가.
……什么?怎么会有这种人?像是被人打了一下后脑勺一样,握着手机的手微微颤抖。明明以前从来没有提过的事情,为什么偏偏要在早上、而且还是在下课时间打电话来说呢。
최산, 대체 어디까지 귀엽고 사랑스럽고 요망할 셈인지, 그리고 어쩌다 나 같은 게 이런 애의 사랑을 받게 된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떨리는 숨을 길게 뱉고는 어제부터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산아, 있잖아.”
“응, 왜?”
“내가 원래는 종교를 안 믿었었는데, 오늘부터 믿으려고.”
내가 전생에 나라, 아니 지구를 구하지 않았고서야 이번 생에 너 같은 천사가 내 삶에 찾아왔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