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우영이 먼저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서고, 산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구겼다. 초반에야 아파서 엉엉 울었지, 나중에는 오히려 우영에게 매달리기까지 했다. 산은 하도 세게 붙잡힌 탓에 얼얼한 골반과 아릿한 하체가 불편해 침대를 꾹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찌르르 울리는 허리에 입술을 꾹 깨물고는 뒤늦게 흐트러진 옷을 정리했ㄷ. 우악스러운 손길에 잔뜩 구겨진 티셔츠를 쭉 내리고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바지를 주우려다 말았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우악스러운 크기의 것을 받아냈던 아래가 아파왔다. 심지어 흘리지 말라는, 야망가에나 나올 대사까지 치고 간 덕분에 아직 안에는 우영의 정액이 있었다. 산은 결국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간신히 몸을 뒤척였다. 거칠었던 관계에 지친 몸이 여즉 달뜬 숨을 고르지 못했으나 산은 덤덤한 표정으로 입술 안쪽을 꾹 깨물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友荣先去浴室洗澡,伞则发出轻微的呻吟,皱起了眉头。刚开始的时候,他因为疼痛而大哭,后来反而紧紧抱住了友荣。伞因为被抓得太紧,酸痛的臀部和麻木的下半身让他感到不适,他用力撑着床,抬起上半身。咬紧嘴唇,忍住刺痛的腰部,迟迟整理着凌乱的衣服。他拉下被粗暴的手弄皱的 T 恤,正要捡起随意掉在地上的裤子时停了下来。每动一下,下面就会因为接受了过大的东西而疼痛。甚至友荣还说了“别漏出来”这种只有野心家才会说的话,所以伞的体内还留有友荣的精液。伞最终还是躺在床上,勉强翻了个身。尽管因为激烈的关系而疲惫的身体还未平复急促的呼吸,但伞只是面无表情地咬紧了嘴唇内侧。现在该怎么办呢。

 

비교적 빨리 우영이 나오고, 산은 우영의 알몸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새 속옷을 꺼내주었다. 억지로 일으킨 몸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이고 주저앉으려는 것을 벽을 짚고 옷장을 짚으며 간신히 버텼다. 와중에 버티지 못해 엉덩이 사이에서 정액이 주륵 흘러내렸는데, 우영의 노골적인 시선이 닿아 산은 모르는 척 욕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탁, 문이 닫힘과 동시에 힘이 풀린 다리가 와르르 무너졌다. 주저앉은 산은 허벅지 밑으로 길게 늘어진 흔적을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比较快地友荣出来了,伞假装没看到友荣的裸体,递给他一条新的内裤。友荣勉强站起来,但腿上没有力气,几次想要坐下去,只能靠着墙和衣柜勉强支撑着。在这个过程中,他没能忍住,精液从臀部间流了下来。友荣露骨的目光让伞假装没看到,躲进了浴室。啪,门一关上,伞的腿就失去了力气,瘫倒在地。坐在地上的伞看着大腿下长长的痕迹,干洗了一把脸。

 

 

23.

 

 

산이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욕실을 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넘기면서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떨어져 어깨를 적셔갔다. 뻐근한 허리와 불편한 하체에 주춤하면서도 챙겨온 옷을 꾸역꾸역 입은 산이 축축한 머리를 살살 털어냈다. 마찬가지로 덜 마른 머리를 하고 있으면서 용케 후드티를 입은 우영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두었던 자켓을 주웠다. 산은 어쩐지 어색했다. 우영이 자신의 집에 있는 것도, 30분 전만 해도 침대 위에 뒤엉켰던 것도. 산은 다시금 귀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수건으로 뒷머리를 꾹꾹 눌러 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伞围着毛巾从浴室出来了。他随意地把湿漉漉的头发往后拨,发梢上的水滴落下来,打湿了肩膀。尽管腰酸背痛,下半身也不太舒服,伞还是勉强穿上了带来的衣服,并轻轻甩了甩湿漉漉的头发。同样头发还没干透的友荣,巧妙地穿上了连帽衫,捡起了随意扔在地上的夹克。伞感到有些尴尬。友荣在自己家里,还有 30 分钟前两人还在床上纠缠在一起的情景,都让伞觉得不自在。伞再次感到耳朵发热,用毛巾使劲按住后脑勺,防止水滴下来。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우영이 그런 산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인다. 꼭 개를 부르는 듯 건방진 손짓에 산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영은 그 찰나를 견디지 못하고 곧장 손을 뻗어 산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하단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팔짱을 낀 채로 퍽 건방진 시선을 보낸다. 산은 자신을 훑어보는 우영의 시선이 턱 언저리에 남아있음을 알아차렸다. 아까 샤워를 할 때 봤던 우영의 잇자국을 떠올라 무심코 손으로 가리려 했는데, 동시에 우영이 산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연스럽게 티셔츠의 소매를 끌어올리는 우영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이 꼭 칼에 베인 것처럼 아리다. 드러난 맨살에는 푸르고 빨간 멍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书桌上斜靠着的郑友荣看着崔伞,手指轻轻一勾。那傲慢的手势就像在叫狗一样,伞明知道是在叫自己,却没有动。友荣忍不住那一瞬间,直接伸手拉住了伞穿的 T 恤下摆。然后双臂交叉,投来一个非常傲慢的眼神。伞注意到友荣打量自己的目光停留在下巴附近。想起刚才洗澡时看到的友荣的咬痕,伞不由自主地想用手遮住,但同时友荣抓住了伞的手腕。友荣自然地把 T 恤的袖子往上拉,手指触碰的地方像被刀割了一样疼。裸露的皮肤上,在青紫和红色的淤青之间,有一个特别显眼的痕迹。

 

어울리네. 우영의 낮게 중얼거리며 엄지로 손목 안쪽을 꾹 눌러 문질렀다. 이로 잘근잘근 깨무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기어코 키스마크를 하나 새긴 모양이었다.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는 우영의 표정이 우스웠다. 비웃음이 아니라 그냥, 어린애처럼 보여서 웃음이 났다. 손목을 비틀어 빼낸 산이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집었다. 시계에 가려진 키스마크의 존재는 이제 우영과 산, 둘만 아는 사실이었다.
真般配。友荣低声嘟囔着,用拇指按压手腕内侧并揉搓着。他还记得自己轻轻咬着的感觉,看来最终还是留下了一个吻痕。友荣满意地笑着,那表情看起来有些滑稽。不是嘲笑,只是因为他看起来像个孩子,所以忍不住笑了。伞扭动手腕抽了出来,拿起了放在桌上的手表。被手表遮住的吻痕,现在只有友荣和伞两个人知道了。

 

 

“이제 어떻게 할 건데.” “现在怎么办。”

“뭘.” “什么。”

“최 회장이 친아버지가 아닌 거 내가 알았잖아.”
“崔会长不是我亲生父亲,我早就知道了。”

“…….” “……”

“심지어 맞고 산다는 것도 알았고.”
“甚至还知道他被打。”

 

 

우영의 손이 산의 목덜미를 감쌌다. 물기 어린 살에 찬기가 돌았는데, 뜨거운 우영의 손이 목덜미에 닿자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산은 꼭 협박이라도 하는 듯 덤덤히 얘기하는 우영에 고개를 살짝 틀어 시선을 피했다. 꼭 말을 해도 저런 식으로 한다. 물론 그게 어쩔 수 없는 우영의 성격인 것은 알지만, 숨기려고 했던 부분들만 콕 집어 얘기하는 꼴이 야속했다.
友荣的手环住了伞的后颈。湿润的皮肤上泛起了凉意,当友荣炽热的手触碰到后颈时,伞本能地起了鸡皮疙瘩。伞微微转头避开了视线,仿佛友荣在威胁他似的平静地说着话。即使说话也总是那样的方式。虽然知道那是友荣无法改变的性格,但他总是精准地挑出自己试图隐藏的部分来说,真是让人心寒。

 

산은 자신의 목덜미를 감싼 우영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배려 없는 손길에 살짝 휘청이니 곧장 허리에 팔을 둘러 지탱한다. 진득하게 나누었던 키스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서로의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 어정쩡한 자세에 산이 우영의 어깨를 밀어냈으나, 밀린다고 밀려날 우영은 아니었다. 붉게 부어오른 입술 위로 몇 번이고 쪽쪽 입을 맞추던 우영이 허리에 두르고 있던 팔을 거두었다. 나 간다. 아직 덜 마른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우영은 단호하게 몸을 일으켰다. 산은 우영의 올곧은 등을 보며 혀를 꾹 물었다.
伞感受到友荣的手紧紧地握住了他的后颈。因为这不温柔的触碰,他微微摇晃了一下,友荣立刻用手臂环住他的腰支撑住他。那深情的吻仿佛从未存在过,他们的嘴唇轻轻地碰在一起。伞推了推友荣的肩膀,但友荣并没有被推开。友荣在伞红肿的嘴唇上亲了几次,然后放开了环在他腰间的手。“我走了。”友荣坚定地站了起来,头发还没完全干。伞看着友荣笔直的背影,狠狠地咬住了舌头。

 

 

24.

 

 

산은 우영이 집으로 간 후에야 마지막 짐들을 챙겼다. 어머니에게 얘기도 했고, 절차야 며칠은 더 걸리겠지만 공식적으로 유학으로 정리가 될 터였다. 우영이 그렇게 빌고 빌던 섹스도 했으니, 제일 걸리던 미련도 지울 수 있었다. 산은 딱 하나, 최 회장이 문제였다. 원래야 최 회장이 출근한 사이에 몰래 출국할 생각이었다. 산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굳이 최 회장에게 말을 남길 필요도 없었고, 만약 최 회장이 알아차린다면 수를 써 막을 것 같았다.
伞是在友荣回家后才收拾最后的行李的。他已经和母亲谈过了,虽然手续还需要几天时间,但正式的留学手续会办妥。既然和友荣做了他一直渴望的爱,最大的遗憾也可以抹去了。伞只有一个问题,那就是崔会长。原本他打算在崔会长上班的时候偷偷出国。除了伞的母亲,没人知道这个情况,所以也没必要特意告诉崔会长。如果崔会长发现了,可能会想办法阻止他。

 

내가 미국으로 가면, 어머니는 최 회장을 온전히 견딜 수 있을까. 산의 유일한 걱정이었다. 산이 도망간 것을 알아차린 최 회장의 화살이 어머니에게 옮겨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뭐가 됐든 최산의 존재가 둘의 사이의 커다란 벽을 만들었기에, 산의 불안감도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我去美国的话,母亲能完全承受住崔会长吗?这是伞唯一的担心。伞最担心的是,崔会长发现伞逃跑后,会把怒火转移到母亲身上。不管怎样,崔伞的存在已经在两人之间筑起了一道巨大的墙,所以伞的担忧也是不可避免的自然结果。

 

침대 위에 쥐 죽은 듯이 누워 생각에 잠겼던 산이 뒤척이며 뻐근한 허리를 짚었다. 자신의 도망 후에 벌어질 일들이 자꾸만 겁을 주는 바람에 선뜻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崔伞躺在床上,像老鼠一样安静,陷入了沉思。他翻了个身,揉了揉酸痛的腰。逃跑后会发生的事情不断让他感到害怕,以至于他不敢轻易闭上眼睛。

 

산은 당장 미래를 그리면서도, 내일의 아침은 그리지 못했다.
伞虽然能描绘出未来的蓝图,却无法描绘出明天的早晨。

 

 

25.

 

 

모든 일의 시작은 일요일 아침에 시작된다. 최 회장이 나가지 않는 날이었고, 산의 어머니는 아침 일찍 나가신 후였다. 식사 때가 되었다며 찾아온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청소를 부탁한 산은 영 떨어지지 않는 걸음에 마른침을 삼키고는 미리 준비해둔 서류 봉투를 챙겼다. 누가 할 수 있다고 얘기라도 해줬으면 싶었다. 뭐 해, 빨리 가. 산은 멋대로 우영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재촉했다. 하아, 불안감에 떨리는 숨이 그제야 조금씩 진정이 되며 산을 달랜다.
所有事情的开始都是在星期天早上。那天崔会长没有外出,而伞的母亲一大早就出门了。伞请来找他吃饭的女佣帮忙打扫,自己则因为紧张而咽了口唾沫,拿起了事先准备好的文件袋。如果有人能告诉他他能做到就好了。干嘛呢,快去。伞脑海中浮现出友荣的声音,催促着自己。哈,因不安而颤抖的呼吸终于渐渐平复,伞也因此得到了些许安慰。

 

식탁에 홀로 앉은 최 회장을 보고 잠시 주춤하던 산이 다시금 우영의 목소리를 그려냈다. 해. 정우영의 배려 없는 말투 그대로 짧게. 우습게도 만들어낸 그 목소리는 산의 등을 꾹 밀었다. 산은 시곗줄 아래에 있을 흔적을 떠올리며 최 회장에게 다가갔다. 곱지 못한 늙은 눈이 산을 훑으며 아니꼬운 티를 낸다. 산은 최 회장의 시야에 대충 맞추면서도 반찬을 쏟지 않을 위치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툭 던졌다. 답지 않은 건방진 행동에 자연스럽게 닿는 매서운 눈길에 손이 떨려서, 산은 주먹을 꾹 말아쥐며 모르는 척 굴었다. 젓가락을 탁, 세게 내려둔 최 회장이 곧장 서류 봉투를 집었다.
看到独自坐在餐桌旁的崔会长,崔伞稍微犹豫了一下,然后再次模仿起郑友荣的声音。就像郑友荣那毫不客气的语气一样,简短有力。可笑的是,这个模仿的声音却坚定地推动了崔伞的背。崔伞想着手表带下的痕迹,走向崔会长。那双不友善的老眼上下打量着崔伞,露出厌恶的神色。崔伞尽量对准崔会长的视线,同时把手中的文件袋扔到不会洒到小菜的位置。崔伞的手因这种不合时宜的傲慢行为而颤抖,他紧紧握住拳头,假装不在意。崔会长啪的一声重重放下筷子,立刻拿起了文件袋。

 

최산의 마지막 보험이었다. 서류 봉투 안에 든 종이는 꼴랑 두 장이 전부였으나 그 안에 최산이 지금껏 준비한 모든 것들을 담았다. 최산은 어리지만 멍청하진 않았다. 갈 곳이 없고 기댈 곳이 없으니 당장 맞고는 있었으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아줄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종이 위의 글자를 읽어가던 최 회장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종이가 와그작 구겨졌다. 산은 매서운 눈길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崔伞的最后保险。信封里的文件只有两张纸,但里面包含了崔伞至今准备的一切。崔伞虽然年轻,但并不愚蠢。虽然现在无处可去,也没有依靠,但他并不打算一直这样生活下去。崔会长慢慢地读着纸上的字,手上的力气越来越大,纸张被捏得皱巴巴的。伞必须独自承受那锐利的目光。

 

 

“없던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不是没有发生过的事,为什么那么惊讶呢。”

“너….” “你……”

“아버지가 해오신 것들이잖아요.” “这不都是父亲做的吗?”

 

 

산은 덤덤한 말투로 얘기했다. 그깟 상상 속의 정우영이 뭐라고 힘이 되고 있음이 우스워서 머리가 더 차게 식는다. 저 종이 두 장은 최 회장이 해온 것들이자, 최산이 당한 것들이었다.
伞用平静的语气说道。想象中的郑友荣能带来什么力量,这让他觉得可笑,心情也变得更加冷静。那两张纸是崔会长做的事,也是崔伞遭受的事情。

 

 

“저는 미국으로 갈 거예요.” “我会去美国。”

“누구 마음대로….” “谁允许你……”

“아버지가 방해하시면 아마 일주일 내로 인터넷 곳곳에 올라갈 거예요.”
“如果爸爸来干涉的话,可能一周内就会在网络上到处都是。”

“…….” “……”

“미리 부탁한 사람이 있어요.”
“已经有提前拜托的人了。”

 

 

산은 자연스럽게 윤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이른 새벽, 잠이 덜 깬 상태로 덤덤하게 산의 얘기를 듣던 윤호는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고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고소 쪽에 대한 얘기도 꺼냈으나 산이 물렀다. 어디까지나 산이 원하는 것은 최 회장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그런 협박이었다. 쉽게 사라지지 못한 폭력의 흔적들을 찍어 보냈으나 윤호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최 회장을 두고 욕을 하지도 않았고, 최산을 두고 미련하다며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았다. 근데 왜 나한테 부탁했어?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는 산의 말에 전화가 끊기기 전, 윤호가 다급히 물었다. 물어볼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산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름 위를 걸어보라며.
伞自然地想到了润浩的脸。那清晨,润浩还没完全清醒,淡然地听着伞的故事,没有多说什么,就爽快地答应帮忙。虽然提到了起诉的事,但伞退缩了。伞想要的是能够掌控崔会长的那种威胁。虽然拍下了那些难以消失的暴力痕迹发给润浩,但润浩的反应依旧淡然。他没有骂崔会长,也没有指责崔伞愚蠢。可是为什么要找我帮忙?在伞说“明天再联系”之前,电话还没挂断,润浩急切地问道。虽然觉得没必要问,但伞还是用平静的声音回答道。试着走在云端吧。

 

산은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화가 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최 회장은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다. 둘 사이의 오고가는 눈빛이 매서웠다. 누구 하나 먼저 피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던 차가운 정적 끝에, 최 회장이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서류를 챙겨 일어났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으나 산은 자신이 이겼음을 알 수 있었다. 하아. 꽉 막혀 답답한 가슴팍에 식탁을 짚은 채 주저앉은 산은 윤호에게 이제 됐다는 짧은 문자를 하나 보낸 뒤 비틀거리며 방에 올랐다.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얼른 사라지고 싶다고, 산은 생각했다. 혹시나 싶은 불안감에 방문도 잠그고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伞从后口袋里掏出了手机。气得脸色通红的崔会长一句话也没能喊出来。两人之间来回交错的眼神锐利如刀。谁也没有先避开,冷冷的静默持续了片刻,最终崔会长小声咒骂了一句,收拾起文件站了起来。虽然没有任何言语交流,但伞知道自己赢了。哈。伞扶着餐桌坐了下来,胸口闷得透不过气。他给润浩发了一条简短的短信,说“搞定了”,然后踉踉跄跄地回到了房间。他没有想吃东西的欲望。伞只想就这样快点消失。他锁上了房门,哪怕有人叫他也不出去。

 

산은 하루를 꼬박 굶으며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伞整整一天都没吃东西,也没有出房间。

 

 

26.

 

 

산은 윤호에게만 출국 날짜를 알려주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의 속을 썩이던 유학 문제도 최 회장의 손길에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산은 처음부터 다시 준비한 캐리어를 침대 옆에 두었다. 윤호는 혹시 모르니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준비했던 기사를 퍼트리기로 했다. 최산의 보험이었다.
伞只告诉润浩出国的日期。仿佛为了证明金钱能解决一切问题,伞一直烦恼的留学问题也在崔会长的帮助下得到了妥善解决。伞把重新准备好的行李箱放在床边。润浩为了以防万一,决定如果发生什么事情,就立刻发布准备好的新闻。这是崔伞的保险。

 

앞으로 며칠이면 이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최 회장은 집을 오가며 산과 마주칠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방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았던 산이 부쩍 방을 나오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아니꼬운 티가 났다. 그러나 전처럼 막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산은 부러 당당하게 지냈다. 비록 자신을 보는 최 회장이 매번 주먹을 쥐고 있다는 게 보였지만.
再过几天就能摆脱这个讨厌的家了。崔会长每次在家里进进出出时遇到伞,总是皱着眉头,显得很不高兴。以前总是躲在房间里不出来的伞,最近频繁地走出房间,这让崔会长更加不爽。然而,崔会长也不能像以前那样随便对待伞,所以伞故意表现得很自信。尽管他每次看到崔会长都能看出对方握紧了拳头。

 

침대에 가만히 누워 핸드폰을 바라보던 산이 조용히 눈꺼풀을 덮었다. 우영은 이틀 내내 산에게 연락해 왜 학교에 나오지 않냐 물었다. 사실 말이 좋아 물었다고 포장한 거지, 사실상 추궁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은 어영부영 아프다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 솔직히 여즉 허리가 뻐근했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으나 우영은 토요일을 떠올린 듯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躺在床上静静地看着手机的伞悄悄地闭上了眼睛。友荣这两天一直联系伞,问他为什么不来学校。其实说是问,倒不如说是质问。伞含糊其辞地撒了个谎,说自己生病了。其实,说实话,他的腰确实还在酸痛,所以也不算完全撒谎。半真半假,但友荣似乎想起了周六的事情,说知道了,然后挂断了电话。

 

 

“네가 뭐라고.” “你算什么。”

 

 

작게 중얼거린 산이 핸드폰 액정에 고스란히 적힌 이름 석 자를 눈에 담았다. 네가 뭐라고 조용히 살던 나를 툭툭 건드려서 이렇게 만들어. 네가 뭐라고 쥐 죽은 듯이 살던 나한테 희망을 줘. 네가 뭐라고. 평소라면 얼굴 보는 것도 무서워서 덜덜 떨었을 나한테 네가 뭐라고 그 순간에 힘이 된 건지. 산은 자연스럽게 뒤척이며 핸드폰에 등을 돌렸다. 마지막 남은 숙제 정우영이 눈에 아른거린다. 사실대로 얘기했을 때의 우영의 표정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 성격에 얌전히 보내줄 것 같지는 않아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作声地嘟囔着的伞,眼睛盯着手机屏幕上清晰显示的名字。你算什么,竟然打扰了我平静的生活,把我变成这样。你算什么,竟然给了我这个像老鼠一样活着的人希望。你算什么。平时连见你一面都害怕得发抖的我,为什么在那一刻你却成了我的力量。伞自然地翻了个身,把手机背过去。最后一个任务,郑友荣的身影在他眼前浮现。实话实说时,友荣的表情他怎么也想象不出来。以他的性格,应该不会轻易放过他,伞默默地摇了摇头。

 

하얀 시트를 살살 어루만지던 산이 코를 박은 채 눈을 감았다. 우영이 다녀간 후에 분명히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는데, 어쩐지 시트에서 우영의 향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불을 턱까지 끌어다 덮은 채 조용히 숨을 고르던 산이 진동 하나 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침대 위를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정우영. 단호하게 적힌 이름 석 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전화를 걸 용기는 없었고, 유학에 대한 얘기를 꺼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산은 화면 안에 들어찬 우영의 사진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손가락으로 볼 언저리에 있는 점을 꾹 누르기도 하고, 손목을 꾹 물어뜯던 입술을 살살 어루만지기도 했다.
白色的床单被伞轻轻抚摸着,他埋着鼻子闭上了眼睛。友荣离开后,伞明明已经换了新的床单,但不知为何,总觉得床单上还残留着友荣的香水味。伞把被子拉到下巴,静静地调整呼吸,尽管手机没有震动,他还是在床上摸索着找到了手机。郑友荣。伞静静地看着那三个字,按下了友荣的头像。他没有勇气打电话,更没有勇气提起留学的事。伞静静地注视着屏幕里友荣的照片,用手指轻轻按住他脸颊上的那颗痣,又轻轻抚摸着自己咬过手腕的嘴唇。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산이 홀드키를 눌러 꺼진 화면을 응시했다. 사진에 대고도 할 수 없는 말인데 어떻게 얼굴을 보고 할 수 있겠냐고, 괜한 원망이 들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고, 또 며칠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산은 이불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哈。崔伞轻轻叹了口气,按下了锁屏键,凝视着黑掉的屏幕。连对着照片都说不出口的话,怎么能当面说呢?他心里充满了无端的怨恨。今天过去了,明天也会过去,再过几天就会知道了。伞在被窝里蜷缩着身体,闭上了眼睛。

 

시트에서 나는 정우영의 향이 오늘 편히 자긴 글렀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从床单上散发出的郑友荣的香气似乎在告诉我,今晚是无法安稳入睡了。

 

 

27.

 

 

산의 계획은 완벽하게 흘렀다. 첫째, 우영과 잤다. 둘째, 윤호의 도움으로 최 회장과의 마무리를 지었다. 셋째, 최 회장이 입막음용으로 산 몫의 통장과 건물을 여럿 넘겼다. 다섯째, 내심 걱정했지만 아무런 방해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산은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더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를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산에게 있어서 가장 큰 완벽이었다.
伞的计划完美地进行着。首先,他和友荣睡在一起。其次,在润浩的帮助下,他与崔会长的事情有了一个了结。第三,崔会长为了封口,把几张存折和几栋建筑物转给了伞。第四,虽然心里有些担心,但他顺利地到达了机场,没有遇到任何阻碍。伞无论怎么想都觉得这一切是完美的。再也没有人会对他施加暴力,这对伞来说是最大的完美。

 

 

“최산!” “崔伞!”

 

 

다른 짐은 먼저 보내놓은 후여서, 산은 침대 옆에 두고 있던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평일, 연휴 하나 끼어있지 않은 검은 날의 공항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있어도 외국인이나 그의 연인, 혹은 친구들. 산은 홀로 공항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에 든 캐리어부터 처리해야 되는데 어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완벽했던 최산의 계획을 깨트린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다.
其他行李已经先寄走了,伞身边只剩下一个行李箱。平日里,没有假期的黑色日子,机场里几乎没有人。即使有,也是外国人和他们的恋人或朋友。伞独自一人在机场准备离开。首先要处理手中的行李箱,但他听到有人叫他的名字,那声音很熟悉。打破崔伞完美计划的是一个意想不到的人物的出现。

 

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나 구태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 적은 공항에 최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고, 이 커다란 공항에서 저렇게 큰 소리를 내며 부를 사람은 한 명이었다. 뻔하고, 익숙했다. 최산이 이불 속에 처박혀 몇 번이고 더 생각하고 더 떠올린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산은 우영의 얼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윤호를 떠올렸다. 최 회장이나 산의 어머니가 구태여 우영에게 자신의 유학 사실을 알릴 이유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려진 범인이었다. 무엇보다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 아마도 윤호가 무심코 얘기했을 거라 생각했다. 산은 단추 두어 개를 푼 채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우영을 빤히 응시했다. 잔뜩 성이 난 얼굴은 산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화가 난 모양새였다.
伞怀疑自己的耳朵,但即使不深思熟虑也能明白。在人少的机场里,叫崔伞这个名字的人并不多,而在这个大机场里会这样大声呼喊的人只有一个。显而易见,熟悉的声音。因为这是崔伞在被窝里反复思考和回忆的声音。伞看着友荣的脸,自然而然地想到了润浩。崔会长或伞的母亲没有理由特意告诉友荣自己出国留学的事,所以自然地推测出了嫌疑人。更何况友荣还穿着校服,伞认为可能是润浩无意中说漏了嘴。伞盯着解开了两三个纽扣,大步走过来的友荣。友荣生气的脸比伞想象的还要愤怒得多。

 

우영이 여권을 들고 있는 산의 손목을 잡아챘고, 산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友荣抓住了拿着护照的伞的手腕,伞茫然地眨了眨眼。

 

 

“너 뭐야. 씨발, 유학? 너 나랑 장난해?”
“你是什么人?操,留学?你在跟我开玩笑吗?”

“왜.” “为什么。”

“한 번 잤으니까, 대줬으니까. 그렇게 끝을 내?”
“睡了一次,就这样结束吗?”

“보는 눈 많아. 듣는 귀도 많고.”
“看的眼睛很多。听的耳朵也很多。”

 

 

산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살폈다. 겨우 최 회장에게서 벗어났는데,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최 회장이 어떠한 방해도 없이 산을 보내는 이유는 모든 일을 조용히 묻고, 뒷말이 오가지 않는 깨끗한 정리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지장 찍고 정하진 않았으나 그런 조건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데, 우영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구설수에 오르고 싶진 않았다. 모두가 최산! 은 들었어도 그 다음에 온 말들은 듣지 못한 듯 싶었다. 뒤늦게 주변을 살핀 우영은 답답한 상황 때문인 건지 머리를 아무렇게나 헤집었다. 산은 문득 붕 뜬 우영의 뒷머리를 쓸어 정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로 손을 뻗는 대신, 산은 붙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내고는 구겨진 소매를 정리했다.
伞一边说着一边环顾四周。好不容易才从崔会长那里脱身,他可不想让自己的努力白费。崔会长之所以毫无阻拦地放伞离开,是因为他希望所有事情都能悄无声息地解决,不留任何后患。虽然没有正式签字确认,但伞知道有这样的条件存在,他可不想因为友荣的话而惹上麻烦。虽然大家都听到了“崔伞!”但似乎没有人听到后面的话。友荣迟迟才环顾四周,不知道是因为烦闷的情况还是其他原因,他随意地抓了抓头发。伞突然有种想要帮友荣理顺那乱糟糟的后脑勺的冲动。伞没有伸手去整理那乱发,而是扭动被抓住的手腕挣脱出来,然后整理了一下皱巴巴的袖子。

 

 

“네 말처럼 대줬잖아.” “就像你说的那样做了。”

“그렇게 좆같았어? 내가 씨발…, 막말로 내가 진짜 강간이라도 했냐?”
“那么他妈的糟糕吗?我他妈的……,说句难听的,我真的强奸你了吗?”

“한 번 대주면 귀찮게 안 한다며.”
“你说过只要给你一次机会,你就不会再烦我了。”

“최산!” “崔伞!”

 

 

다시금 목소리가 커진 우영에 덤덤하게 주변을 살핀 산이 하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조용하지 못한 둘의 대화에 공항 안의 사람들이 아닌 척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길게 이어지는 정적을 이기지 못한 우영이 산의 어깨를 붙잡았다. 곧장 뛰어온 모양새의 우영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부채질 한 번 하지 않았고, 산은 화가 난 눈을 온전히 마주했다. 양쪽 어깨를 붙잡고 있는 우영의 손이 뜨거웠다.
再一次,友荣的声音变大了,伞淡定地环顾四周,叹了口气,转过头去。机场里的人们假装没看到他们吵闹的对话,这一切都被伞感受到了。无法忍受长时间的沉默,友荣抓住了伞的肩膀。友荣看起来是直接跑过来的,汗流浃背却没有扇一下风,而伞则完全对上了他愤怒的眼神。友荣抓着伞双肩的手很烫。

 

 

“지금 내가 이 상황에서 얘기하는 거 존나 멋도 없고 상황도 좆같고, 등신 같은 거 알아. 근데 씨발, 나는…, 나는 너 없는 사이에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아? 깨질 것 같은 대가리 그냥 벽에 박고 뒤지거나 혀 깨물고 뒤지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고.”
“现在我在这种情况下说这些话真的一点都不帅,情况也他妈的糟透了,像个白痴一样。我知道。但是,操,我……,我知道你不在的时候我有多么纠结吗?感觉脑袋要炸了,直接撞墙死掉或者咬舌自尽都更容易。”

“나 이제 가야 돼.” “我现在得走了。”

“최산.” “崔伞。”

“가야 된….”

“닥쳐 봐, 씨발.” “闭嘴,操。”

 

 

우영의 목소리가 퍽 매서운 티를 냈다. 산은 우영의 윽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할 뿐이었다. 이대로 입 다물고 하는 말 다 들으면 비행기 놓치는데. 산은 자신의 옆에 있는 캐리어를 떠올렸다. 위탁하고 비행기에 오르려면 정말로 시간이 촉박했다. 가지 마. 남은 시간을 계산하던 산은 다시금 들려오는 우영의 목소리에 느릿하게 시선을 옮겼다.
友荣的声音显得非常严厉。伞在友荣的责骂下进退两难,只能看了看戴在左手腕上的手表。如果就这样闭嘴听他把话说完,飞机就要错过了。伞想到了自己旁边的行李箱。要托运并登上飞机,时间真的很紧迫。不要走。正在计算剩余时间的伞,慢慢地把视线移向再次传来的友荣的声音。

 

 

“나 너랑 씹 뜬 거, 그거 개지랄 아니야.”
“我和你闹翻了,那真是糟透了。”

“…….” “……”

“내가 씨발, 너를. 어? 너를 씨발….”
“我他妈的,你。嗯?你他妈的…。”

“…….” “……”

“좋아해.” “喜欢你。”

 

 

산은 겨울의 차가운 바람처럼 훅 끼쳐온 말에 멍한 눈을 깜빡였다. 이번에는 주변에 듣는 사람이고 뭐고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더위에 익은 건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에 익은 건지 우영의 양쪽 뺨이 묘하게 붉었다. 산은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어쩐지 우영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伞被像冬天的冷风一样突然袭来的话语弄得愣住了,眨了眨茫然的眼睛。这次他没有余力去在意周围听到的人。友荣的双颊微微泛红,不知道是因为热还是因为现在的情况。伞觉得友荣的样子有点滑稽,但又莫名地觉得很适合他。

 

산은 우영의 말을 떠올렸다. 확실히 멋은 없었다. 다 흐트러진 교복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산발이 되어 뛰어온 우영의 고백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멋이 없었다. 욕설 가득한 말도 마냥 양아치처럼 보였고, 하는 말을 본인이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산은 다시 한 번 우영의 말을 떠올렸다. 싫었나? 뭐가? 정우영? 아니면 이 고백? 그것도 아니면, 주말의 정사?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산이 우영을 살짝 밀어내 거리를 만들었다.
伞回想起友荣的话。确实没有什么帅气可言。穿着凌乱的校服,满头大汗,头发乱糟糟地跑过来告白的友荣,不仅场面尴尬,还一点都不帅气。满口脏话的样子看起来就像个小混混,让人怀疑他是否真的理解自己在说什么。伞再次回想起友荣的话。讨厌吗?讨厌什么?郑友荣?还是这次告白?又或者是,周末的情事?伞慢慢地眨了眨眼,轻轻推开友荣,拉开了距离。

 

 

“난 아니야.” “我不是。”

“…….” “……”

“아직은 내가 더 중요해. 그리고 여기 남아서 너랑 연애할 이유가,”
“还没到我更重要的时候。而且留在这里和你谈恋爱的理由是,”

“최산.” “崔伞。”

“더는 없어.” “再也没有了。”

 

 

산은 속이 아팠다. 체한 것처럼 꽉 막혀 뻐근해지는 명치 언저리에 인상을 쓰고 싶었는데, 막상 얼굴이 굳은 것은 우영이었다. 산은 자신이 하는 말이 우영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살짝 후회했다. 다른 방식으로 거절해야 됐는데 싶다가도 이 정도면 우영이 자신을 붙잡지 못할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伞感到胃痛。像是消化不良一样,胸口一带紧绷得让他想皱眉,但脸色僵硬的却是友荣。伞知道自己说的话会伤到友荣,有些后悔。他觉得应该用别的方式拒绝,但又觉得这样友荣就不会再纠缠自己了,心里松了口气。

 

무서웠다. 우영이 자신을 붙잡으면 그대로 붙잡힐 것 같아서. 못 이기는 척 우영과의 연애를 시작으로 최 회장의 손에 다시금 목줄을 쥐어줄 것만 같아서. 산은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우영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는 산의 속이 더 쓰라린 기분이었다. 산이 밀어냄과 동시에 툭 떨어지는 우영의 손이 처량해서, 산은 우영의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산과 달리 멀끔한 우영의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우영을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캐리어가 산의 손에 이끌리며 작은 소음을 낸다.
害怕。害怕一旦被友荣抓住,就再也逃不掉。害怕假装无奈地开始和友荣的恋爱后,又会被崔会长重新套上枷锁。伞努力保持着平静的表情。看着友荣的表情,伞的内心更加痛苦。伞推开友荣的同时,友荣的手无力地垂下,那一刻显得格外凄凉。伞静静地注视着友荣的手。与伞不同,友荣的手腕显得干净利落。伞看着无法回答的友荣,慢慢地迈开了步伐。沉重的行李箱在伞的手中发出轻微的声响。

 

우영은 산을 잡지 않았으며, 산은 돌아보지 않았다.
友荣没有抓住伞,而伞也没有回头看。

 

 

28.

 

 

본인의 좌석을 찾아 앉은 산은 핸드폰을 비행기모드로 돌린 후에야 우영에게서 온 연락들을 발견했다. 문자 대부분은 다급함이 느껴지는 오타와 함께 상황에 대해 물어보는 것들이었고, 부재중전화는 우영이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것들이었다.
找到自己的座位坐下后,伞将手机调成飞行模式,这才发现友荣发来的消息。大部分短信都带着急切的错字,询问情况,而未接来电则是在友荣到达机场之前打来的。

 

천천히 그 흔적들을 바라보던 산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과한 숨에 갈비뼈가 아플 때까지 숨을 들이쉬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훅, 가득 들어찼던 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울음이 터졌다. 평일의 퍼스트클래스에는 유난히 사람이 적었다. 그마저도 산의 자리는 남들과 떨어진 자리여서, 산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코트 언저리를 적시고 있는 걸 알면서도 구태여 닦아내지 않았다. 방울을 맺어 떨어지는 눈물에 산은 더욱 서러움을 느꼈다. 핸드폰에는 여전히 우영의 흔적이 보였고, 산은 크게 들숨을 쉬다가도 날숨을 뱉을 때면 눈물을 흘렸다. 산은 결국 눈을 감고 양쪽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慢慢地看着那些痕迹,伞深深地吸了一口气。过度的呼吸让肋骨疼痛,直到再也无法忍受时,他猛地吐出那满满的一口气。与此同时,哭声爆发了。平日的头等舱里人特别少。而且伞的位置与其他人隔得很远,所以即使他知道眼泪顺着脸颊流到大衣边缘,他也没有特意去擦掉。泪珠滴落,伞感到更加悲伤。手机上依然能看到友荣的痕迹,伞深吸一口气,但每次呼气时都会流泪。最终,伞闭上眼睛,用双手捂住了脸。

 

흐윽…, 흐.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울음이 생각한 것보다 커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울음에 격해진 숨이 자꾸만 덜컹이며 산을 괴롭혔다.
呜呜……,呜。比想象中更大的哭声从嘴唇间溢出,他用力咬住嘴唇。激动的哭泣让呼吸变得急促,不断折磨着伞。

 

산에게 있어 들숨은 우영이었고, 산은 그 숨을 뱉어내며 자신의 마음에 점을 찍었다.
对伞来说,吸气是友荣,而伞在呼出那口气时,在自己的心上点了一个点。

 

 

나는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고.
从我第一次见到你那一刻起,我就喜欢上你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