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粉红香蕉1


(연한 독자님께서 표지 선물 주셨어요❤) 
(感谢亲爱的读者赠送封面礼物❤)






백수의 삶은 무료하다. 친구도 없는 아웃싸이더 백수의 삶은 한층 더 무료하다. 심지어 남자친구랍시고 사귀던 놈과 갈라선 지 일주일째인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无业游民的生活是空虚的。没有朋友的圈外人生活更是加倍的寂寞。尤其是和那个所谓的男朋友分手一周后的现在,这种感觉愈发强烈。

하나 다행인 건, 그리 죽고 못 살 세기의 사랑은 아니었기에 슬프지는 않다는 점. 그저 심심할 뿐. 그냥 마음이 허할 뿐. 아니, 마음보다 몸이 더 허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솔직히 막말로는 연인과 헤어진 건지 섹스 파트너와 헤어진 건지 분간도 안 가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헌팅술집에서 분위기 타서 장난 반으로 시작한 연애였고, 사귀는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된 데이트는 몇 번이나 했더라. 허구헌날 집에서 몸의 대화나 주구장창 해댔으니 이건 뭐 손에 꼽을 추억도 없고. 서로 좋아했던 건 맞나 의구심까지 드는 중이었다.
唯一值得庆幸的是,这段感情并非那种要死要活的世纪之恋,所以并不觉得悲伤。只是无聊罢了。只是心里空落落的。不,更准确地说应该是身体比心灵更空虚。坦白讲,甚至分不清到底是和恋人分手还是和性伴侣分道扬镳。这段始于猎艳酒吧、半开玩笑开始的恋情,交往几个月来正经约会的次数屈指可数。整天窝在家里没完没了地进行"身体对话",连值得铭记的回忆都寥寥无几。现在甚至开始怀疑彼此是否真的喜欢过对方。

이별의 타격이 너무 없어 민망한 와중에, 그래도 나름 적적한 기분은 내보려고 대낮부터 편의점 앞에서 혼자 노상이나 깠다. 세상 엄청난 이별에 힘겨운 척.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인 척. 없어 보이게 과자봉지 하나 뜯어 펼쳐 놓고 캔맥주 홀짝대고 있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었다.
由于分手冲击小到令人尴尬,为了好歹营造些落寞氛围,大白天就独自在便利店门口上演街头买醉。假装正在经历痛彻心扉的别离,假装自己是电视剧里苦情的女主角。寒酸地拆开一包零食,小口啜饮罐装啤酒,这世界真是荒诞至极。


"어이어이, 대낮부터 청승이냐."
"哎呀哎呀,大清早就这么精神啊。"


참고로 이 동네에는 나 말고도 백수 한량이 한 명 더 있다. 이름하여 이재현. 내 앞집 사는 동갑내기 이웃사촌. 대학 졸업하자마자 찐백수 된 나와 달리, 졸업 반 학기 남겨두고 영리하게 휴학한 짭백수. 내 몇 안 되는 인간관계 중에 크나큰 비중을 차지하고 계신 놈이었다.
顺带一提,这巷子里除我之外还有个资深光棍,名叫李在贤。住我前屋的同岁表亲邻居。和我这种大学刚毕业就光荣加入光棍大队的不同,他是离毕业还剩半学期时潇洒休学的半吊子光棍。在我寥寥无几的人际关系中,这家伙可是占着举足轻重的分量。

특유의 심드렁한 말투 + 다 헐어빠진 아디다스 슬리퍼를 찍찍 끄는 소음만 들어도 그 주인이 명확했기에, 뒤돌아보는 것조차 귀찮아 대충 손만 휙 들어 보였다. 그러자 인사에 성의가 없다느니 뭐니 타박하며 내 맞은편 의자로 다가와 털썩 걸터앉는다. 더없이 익숙한 얼굴과 조우했다.
光听那特有的拖沓腔调+破洞阿迪达斯拖鞋啪嗒啪嗒的声响,就足以确定来人身份,连回头都嫌麻烦,只随意扬了扬手。结果这厮一边数落我打招呼没诚意,一边大剌剌地晃到对面椅子瘫坐下来。就这样和那张熟悉到不行的脸打了个照面。


"어디 갔다 와?"
"去哪儿鬼混回来了?"

"운동."
"运动。"


언제나처럼 펑퍼짐한 후드티나 한 장 걸쳐 입은 후리한 차림이었다. 그래도 이재현은 나보다 한결 나은 등급의 백수라서 매일 운동은 꼬박꼬박 다닌댔다. 헬스장에서 뽀송뽀송 샤워까지 끝마치고 나왔는지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에다 두 뺨이 제법 탱글한 모습이었다.
和往常一样,他随意套了件宽松的连帽卫衣,一副邋遢打扮。不过李载贤毕竟比我高一个段位的无业游民,据说每天都雷打不动去健身。看他头发湿漉漉的,脸颊还泛着健康的弹性,估计是在健身房冲完清爽的淋浴才出来的。


"어으, 목말라. 내놔."
"啊,口渴。给我。"


걸쭉한 추임새와 함께 내 손에 들린 캔맥주를 냅다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키는 꼴을 빤히 쳐다봤다.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오르락내리락 잘도 움직이길래 한번 쳐보려다가 참았다. 대신 쓸데없는 말장난이나 걸고 싶어졌다.
他粗声嘟囔着,突然抢过我手里的罐装啤酒咕咚咕咚灌起来。我直勾勾盯着他上下滚动的喉结,差点忍不住想弹一指。最后还是憋住了,转而想跟他斗几句无聊的嘴皮子。


"간접키스 개꿀."
"间接接吻爽翻了。"

"또 또 입맛 떨어지게 할래?"
"又要来倒我胃口吗?"


내 아무 말에 오만상 찌푸린 이재현이, 즉시 캔을 팽개치고 손등으로 제 입술을 북북 닦아댔다. 그러게 누가 입 대랬나. 지가 대놓고. 어찌 됐건 저 인간 기분 더럽게 만든 게 뿌듯해서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李宰贤对任何话都摆着臭脸,立刻扔掉易拉罐用手背使劲擦嘴唇。活该,谁让你直接对嘴喝的。看他心情被搞砸的样子,我得意得咯咯笑出了声。


"야. 나 헤어졌다."
"喂,我分手了。"


내 연애 따위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이재현이지만, 굳이 tmi를 던져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나는 관종이니까.
虽然李宰贤对我的恋爱连一丝兴趣都没有,但为了强行抛出些无关紧要的细节还是开了口。毕竟我是个存在感饥渴症患者。


"알아."
"知道。"


그런데 반응이 어째 무덤덤함을 넘어 지극히 건조했다. 마치 나 백수다, 라는 당연한 사실을 들은 것처럼.
但对方的反应何止是平淡,简直干涸到极点。就像听到"我是无业游民"这种理所当然的事实般。


"어떻게 알아?"
"怎么知道的?"



"바보세요? 나 니 앞집 살아요."
"你是傻瓜吗?我就住你家对面。"

"......"
"How are you?" 输出:

"맨날 들락거리면서 붙어먹던 놈 안 보이는데 당연히 눈치 까지, 그럼."
"整天进进出出蹭吃蹭喝的家伙突然不见了,当然会注意到啊,这还用说。"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다닥다닥 밀착된 이 동네 주택에서는 서로의 사생활이 썩 잘 보장되지 못했다. 시야며 방음이며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스무 살부터 몇 년 동안을 꼬박 부대껴 지내면서 제일 편해진 이재현이기에 에라 모르겠다 오픈 마인드로 산 지 꽤 됐다.
听这么一说倒也在理。在这片鳞次栉比紧密相连的住宅区里,彼此的私生活很难得到保障。视野和隔音效果都让人在意的地方很多。不过从二十岁开始独居至今,多年来与邻里磕磕绊绊相处下来,早已习惯成自然的李在贤索性抱着'管他呢'的开放心态生活了很久。

서로의 집 비밀번호는 이미 각자 집 비밀번호만큼이나 익숙했다. 그간 배달 음식 수백 번 나눠 먹은 정도 있고, 한 번씩 술 꼴아서 사리분간 못 할 때면 구조대마냥 출동해서 집에 착착 처넣어준 의리도 있고, 이재현 바쁠 때는 반려견 다롱이 산책도 내 담당이고.
彼此家的密码早就熟稔得像自家密码一样。这些年分摊过上百次外卖,醉酒不省人事时像救援队般出动把人扛回家安顿的义气也有,李在贤忙不过来时,连他养的宠物狗多龙的遛弯任务都由我承包。

다 말하자면 끝도 없었다. 가족보다 자주 보는 동네 친구로서 상부상조하면서 곧잘 지내온 우리였다. 앞집 사는 것만으로도 인연이거늘, 성격이든 성향이든 제법 잘 맞아서 웬만한 소꿉친구나 동성 친구 뺨칠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인 건 확실했다.
要细说起来简直没完没了。作为比家人见面还频繁的邻里朋友,我们互相扶持着过得相当融洽。光是住对门就已是缘分,性格脾气又格外合拍,确实亲密无间到能让普通发小或同性朋友都相形见绌的程度。


뜬금없이, 스무 살 이재현의 첫인상을 문득 회상했다. 또래 남자애들보다 한결 앳되고 말랑하던 얼굴선. 이슬만 먹고 살 듯 청초하며 가련한 사슴 한 마리가 따로 없었지. 지금이야 비록 헬스에 빙글 돌아버린 근육밤비로 진화했지만, 그때의 이재현은 과장 안 보태고 나보다 세 배 정도는 예뻤었다.
突然没来由地,二十岁李在贤的第一印象浮现在脑海。比起同龄男生更显稚嫩柔软的脸部线条,像只饮露水为生的清秀小鹿般我见犹怜。虽说如今已进化成沉迷健身的肌肉狂魔,但当年的李在贤毫不夸张地说比我好看三倍有余。

꼴에 입학하자마자 붙었던 오랜 수식어도 있다. 연영과 손예진이라고, 그가 군대 다녀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학교 학우들 사이에서 곧잘 통용되던 별명이었다. 이재현 본인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해서 들을 때마다 꽥꽥 토악질하지만, 그리 극혐하는 꼴 보면서 놀려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사실.
这位刚入学就喜提的古老头衔也值得一提。"演艺系孙艺珍"——在他入伍前还是我们学校同学间广为流传的绰号。李在贤本人完全无法接受,每次听到都夸张干呕,但看他极度嫌弃的模样反而更让人想逗弄取乐。

당시 교복 잼민이였던 내 친동생 이주연도 놈의 미모를 검증한 바 있다. 그 잼민이가 엄마 심부름 한답시고 내 자취방 몇 번 찾아오다가 이재현과도 꽤 친해졌는데, 그 사슴 같은 얼굴을 볼 때마다 심히 넋 놓고 감탄했었거든. 재현이 형 너무 청순해욯...
当年还穿着校服的初中生妹妹李周妍也曾认证过这家伙的颜值。那小鬼头借着给妈妈跑腿的由头来过我出租屋几次,跟李在贤混熟后,每次见到那张小鹿般的脸都会失神惊叹:"在贤哥也太清纯了吧..."

물론 청순한 건 어디까지나 그 잘난 낯짝뿐이어서 문제였다. 그때도 성격 꼬라지는 지금과 똑같이 한 지랄 하셨으니까. 그래, 성격까지 청순했다면 내가 쟤랑 아직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겠냐고. 진작 한입에 와앙 잡아먹고도 남았다.
当然,所谓的清纯仅限于那张漂亮脸蛋罢了,这才是问题所在。那时候的性格也和现在一样疯疯癫癫的。是啊,要是连性格都清纯的话,我怎么可能现在还和她做朋友?早就一口把她吞了都不够解气。


아련한 과거에서 불현듯 깨어나, 지금 내 눈 앞의 퍽퍽한 현실을 직시했다. 뭘 봐. 하릴없이 틱틱대며 제 슬리퍼 사이 발등이나 긁적거리고 있는 화상 한 마리. 저게 도대체 동태인지 인간인지. 남이사 이별을 했건 말건 무신경하기 짝이 없는 기색은 여전했다.
从朦胧的往事中猛然惊醒,直面眼前干巴巴的现实。看什么看。一只百无聊赖地吧嗒着拖鞋、用脚背蹭着另一只脚的家伙。那到底是冻僵的明太鱼还是人类啊。对别人分手与否都漠不关心的态度倒是一如既往。


"헤어졌다니까? 위로를 해줘야 될 거 아니야!"
"都说了分手了!你不是应该安慰我吗!"

"헤어졌는데 뭐 어쩌라고. 슬프냐? 안 슬프잖아. 심심하기나 하겠지."
"分手了又怎样?难过吗?明明一点都不难过。就是闲得慌吧。"

"...무당인가."
"...是巫师吗。"

"몇 달이나 사귄 게 더 신기해, 시간 아깝게."
"交往了几个月才更神奇呢,浪费时间。"


그리 진지한 연애가 아니었다는 건 이재현도 뻔히 알던 사실이었다. 그토록 잘 붙어먹다가 헤어지고 남남 되어도 별로 아깝거나 아쉽지 않은 인연. 남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소모성 유희.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라는 것은 참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李载贤也心知肚明,这段感情本就不够认真。曾经如胶似漆,分手后形同陌路也毫不惋惜的缘分。除了一无所有,只剩消耗性的游戏。细想之下,人际关系真是虚无得令人绝望。

만약 이재현과도 둘이 어쩌다 눈 맞아서 충동적으로 연애 갈겼더라면 똑같은 결말을 맞았으려나. 별 쓸데없는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이었다. 이재현은 그렇게 손절 쳐버리기에는 너무 괜찮은 놈일 뿐더러, 전남친과 이웃으로 지내는 건 상당히 빡센 스토리니까.
如果当初和李载贤也是偶然看对眼就冲动恋爱的话,大概也会迎来同样的结局吧。尽是些无谓的胡思乱想。值得庆幸的是,李载贤这家伙好到让人舍不得断联,更何况和前男友做邻居实在是太过狗血的剧情。

내가 본인 가지고 시답잖은 망상이나 하는 중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팔 벌려 기지개 켜며 턱 빠지도록 하품이나 쩍쩍 해대는 이재현이었다.
不知道李宰贤是否清楚自己正沉溺于无聊的妄想中,只见他张开双臂伸着懒腰,打着几乎要脱臼的哈欠咂嘴作响。


"하여튼 존나 관종이라니까, 이거. 뭐 얼마나 대단한 이별 하셨다고 지 뽕에 취해서."
"总之就是个超级显眼包,说什么经历了多么刻骨铭心的分手,陶醉在自己的悲情里。"


이재현 특징. 입만 털었다 하면 사람 뼈를 기깔나게 잘 때린다. 그의 말마따나 대낮부터 편맥 까는 게 영 구질구질해 보이는 건 알지만은, 나름 백수만이 즐길 수 있는 헝그리 감성이기도 하고. 더 깊이 파고들자면 술 땡기는 명백한 이유도 존재하기는 했다.
李宰贤的特点是,一旦开口就能精准戳人痛处。虽然正如他所说,大白天就喝烧酒确实显得很寒碜,但这大概也是无业游民才能享受的颓废美学吧。往深了说,倒也不是没有想喝酒的正当理由。


"사실, 내가 지금 이 술을 마시는 건... 걔랑 헤어져서가 아니야."
"其实我现在喝酒...并不是因为和她分手。"


센치한 나에 취해 잔뜩 의미심장한 척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담아듣지도 않는 이재현은, 지 눈앞의 과자 봉지 따위나 구경하느라 헤벌레 정신 팔린 채였다.
我沉醉于自己的多愁善感,刻意摆出意味深长的架势。但无论怎样,李宰贤都充耳不闻,只顾盯着眼前的零食包装袋发呆走神。


"오, 이 과자 단종된 거 아니었냐? 새로 나와?"
"咦,这款零食不是停产了吗?又出新款了?"

"지금 과자가 중요해? 나 술 왜 마시는지 안 물어봐? 빨리 물어봐!"
"现在零食重要吗?你怎么不问问我为什么喝酒?快问啊!"


이미 제 것인 양 과자를 붙들어 쥔 후드티 소매를 붙잡고 채근했다. 그에 마지못해 예의상 나를 훑어주는 눈에는 귀찮음과 하찮음이 만연했다.
他像对待自己所有物般攥住零食袋,我拽着他连帽衫袖子不停追问。他勉强敷衍地扫了我一眼,眼里满是不耐烦与轻蔑。


"술 왜 마시는데."
"为什么喝酒。"


마지못해 심드렁하게 묻는 목소리. 엎드려 절받기란 이런 걸까. 정말이지 하나도 궁금해 보이지 않는 기색이었다.
勉强用懒洋洋的声音问道。这就是所谓的俯首帖耳吗?看起来真是一点都不好奇的样子。


"어엄청 우울하고 짜증 나는 일이 생겼어."
"发生了超级郁闷又让人火大的事。"

"뭔 일."
"什么事。"

"너 핑크바나나 알아?"
"你知道粉红香蕉吗?"

"뭔 바나나가 핑크야, 그건 적폐지. 바나나 이즈 옐로우. 아이 럽 델몬트."
"什么香蕉是粉色的,那是垃圾。香蕉是黄色的。我爱都乐。"


구린 영어발음으로 실없이 궁시렁대며 과자를 한 움큼 집어 우적거리는 이재현이었다. 바나나 이즈 옐로우 이 지랄. 아는 브랜드도 델몬트밖에 없으면서. 내가 말하는 핑크바나나는 그런 시답잖은 과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업계 매출 1위를 자랑하는, 알 사람은 다 아는 대형 성인용품샵을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듯한 그 태도에 쯧쯧 혀가 절로 차졌다.
李在贤用蹩脚的英语发音嘟囔着废话,抓起一把零食塞进嘴里大嚼特嚼。"香蕉是黄色"这鬼话。就知道个都乐品牌。我说的粉红香蕉可不是那种无聊的水果。他那种仿佛这辈子第一次听说国内最知名、行业销售额第一、圈内人尽皆知的大型成人用品店的态度,啧啧,让人不自觉地咂舌。


"등신. 여친 없는 거 티 내냐?"
"白痴。是怕人不知道你没女朋友吗?"


지금이야 휴학 백수니까 맨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해대는 놈이지만, 그래도 한창 연영과 손예진 시절에는 그 반반한 낯짝 앞세워 여자 제법 만나고 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꼴에 의외로 건전하고 퓨어한 잼민연애만 즐기신 모양이었다. 역시 청순의 대명사답다고 해야 하나, 이걸.
虽然现在是个休学无业游民,整天窝在房间里打游戏的家伙,但记得当年在表演系和孙艺珍同窗时,好歹也仗着那张俊脸没少跟女生约会。没想到意外地只沉迷于纯情幼稚的早恋游戏,果然不愧是清纯的代名词啊。


"어이어이, 꼽 줄 거면 소개나 시켜 주고 나서 꼽을 주시오."
"喂喂,要介绍就好好牵线搭桥完了再介绍啊。"

"아니, 진짜 모르냐고! 핑크바나나! 들어본 적도 없어?"
"不是吧你真不知道?粉红香蕉!听都没听过?"

"그거 존나 이름만 들어도 먹기 싫은데 굳이 알아야 해? 몰라, 맛있는 거 아니면 관심 없어."
"那玩意儿光听名字就恶心到不想吃,有必要知道吗?不知道,不是美食就别来烦我。"

"먹는 거 아니라고, 제발 좀!"
"都说了不是吃的,拜托别这样!"


참다 못해 휴대폰 집어 들고 핑크바나나 웹페이지에 접속한 뒤 액정 화면을 이재현 코앞에 들이밀었다. 성의 없이 과자나 씹어대던 그의 눈이 별 감흥 없이 힐끗 화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확히 3초 뒤, 캑캑대는 기침 소리와 함께 그 잘난 입술에서 과자 부스러기가 우수수 튀어나왔다. 황급히 상체 숙인 채 목 부여잡고 숨넘어갈 듯 위태로운 그 꼬락서니를 한심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내 무릎까지 붙은 과자부스러기를 팍팍 털었다.
实在忍无可忍,我抓起手机登录 Pink Banana 网页,将屏幕直怼到李载现眼前。他正漫不经心嚼着饼干,眼神懒洋洋地瞥向屏幕。整整三秒后,随着一阵呛咳声,饼干渣从他引以为傲的嘴唇里喷溅而出。看着他慌忙弯腰掐住脖子、呼吸困难的狼狈相,我只能投以嫌弃的目光,使劲拍掉溅到膝盖上的饼干屑。


"미개인이야? 드러워서 못 봐주겠네."
"野蛮人吗?脏得没眼看。"

"지금 시발 드러운 게 누군데! 대낮에 맥주 노상 까면서 보여줄 화면이냐, 그게?"
"现在他妈谁更脏啊!大白天在街上开啤酒给人看这种东西?"

"그럼 이걸 뭐 언제 보여줘? 으슥한 밤에? 새벽에?"
"那这个要什么时候给我看?夜深人静的时候?还是凌晨?"

"됐고 저기로 좀 치워!"
"够了 往那边挪开点!"


못 볼 걸 봤다는 듯 오만상 찌푸리며 내 휴대폰을 팍 밀어낸다. 하여튼 이재현 꽉꽉 막혀서 우리 아빠보다 보수적이라는 건 진작 알았지만 오바가 수준급이었다. 이렇게까지 기피할 일인가. 화면 가득 띄워진 남녀의 적나라한 살색 사진들과 형형색색 성인용품들을 대충 훑다 화면을 껐다.
他一脸看到不该看的东西的表情,皱着眉头猛地推开我的手机。早就知道李在贤这家伙思想保守得比我爸还严重,但这也太夸张了吧。至于这么避之不及吗?我匆匆扫了眼屏幕上那些赤裸的男女肤色照片和五颜六色的情趣用品,关掉了画面。


"내가 여기 이벤트에 당첨됐었거든? 남자친구랑 같이 매장 방문하면 무려 30만원치 상당 성인용품들을 골라담기 할 수 있는! 미친 이벤트였어. 당첨 확률 극악이었다고."
"我之前在这个活动里中奖了哦?只要和男朋友一起到店,就能挑选价值 30 万韩元的情趣用品!疯狂的活动吧。据说中奖概率超级低。"

"그래서."
"所以。"

"헤어져서 못 받게 됐잖아, 개빡치게. 솔직히 아깝지 않냐? 뭐 길거리 아무 남자 붙잡고 같이 가달라고 할 수도 없고."
"分手了所以拿不到了,真让人火大。说实话不觉得可惜吗?总不能随便抓个路过的男人让他陪我一起去吧。"

"아까운 건 모르겠고, 좀 꼬신데?"
"可不可惜我不知道,不过有点想撩你?"


하기야 예전부터 나 잘 되면 제일 슬퍼하고 나 잘못되면 제일 좋아 죽는 놈이었다. 송곳니 다 드러내고 키득키득 악랄하게도 웃어대는 낯에 주먹이라도 한 방 꽂아 넣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찰나,
说来这家伙从前就那样,我过得好他就最伤心,我倒霉他就高兴得要死。看着他龇牙咧嘴笑得那么阴险,我正认真考虑要不要给他脸上来一拳的瞬间,


"...잠시만. 너 남자 아니야?"
"……等等。你不是男的吗?"

"나? 갑자기? 상남자지."
"我?突然这么问?纯爷们儿啊。"

"됐네! 됐어!"
"行了!够了!"


갑자기 머릿속 전구가 반짝 켜졌다. 그래, 이재현도 생물학적 남자였지! 이 새끼 끌고 가면 해결될 문젠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곧바로 맥주캔을 내려놓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도통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단 듯 멍 때리고 있는 놈의 가냘픈 손목을 즉시 낚아챘다. 황소 못지않은 기세로 씩씩하게 앞을 향해 걸었다.
突然脑海中灯泡一亮。对了,李宰贤也是生物学男性啊!把这小子拽过去问题不就解决了?我怎么早没想到?!立刻放下啤酒罐猛地站起身,一把抓住那还懵着不知所以然的家伙纤细的手腕。以不输公牛的架势雄赳赳地向前走去。


"야, 어디 가!"
"喂,你去哪儿!"

"핑크바나나! 여기서 은근 가까워!"
"粉红香蕉!离这儿还挺近的!"

"돌았냐? 내가 거길 왜 가!"
"疯了吗?我干嘛要去那儿!"

"왜겠어? 한 20분 정도만 내 남친 해봐."
"还能为什么?暂时当我 20 分钟的男朋友吧。"

"좀 씨발, 상황이 너무 더럽다는 생각 안 드니?"
"喂 他妈的 你不觉得这情况太恶心了吗?"

"어쩔요. 연영과 전공 뒀다가 뭐해? 이럴 때 쓰는 거지. 연기 연습 한다고 생각해."
"能怎么办。把演艺和专业都搁置了还能干啥?就是为这种时候准备的啊。就当是演技练习吧。"

"야 인마, 내가 이러려고 연기 배운 줄 알아? 어?"
"呀 臭小子 你以为我学表演是为了干这个吗?嗯?"


내게 질질 끌려오는 이재현이 목에 핏대 세우고 꽥꽥대거나 말거나, 이 황금 같은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핑크바나나 가보자고. 
无论被我硬拽来的李宰贤是涨红脖子大呼小叫还是怎样,我都绝不能错过这黄金机会。走,去粉红香蕉。












아이 씨, 뭐 하는 데야? 엄마야! 이거 다 뭐야! 울며 겨자 먹기로 핑크바나나 소굴에 입성한 이재현은, 덮어쓴 후드 끈을 있는 대로 조여 눈알만 간신히 드러낸 채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 같은 모양새였다. 하다못해 조선 시대 양반집 규수도 이 정도로 질겁하진 않을 듯했다. 그냥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哎呀,这是在干什么啊?妈妈!这都是些什么呀!李在贤哭丧着脸硬着头皮闯进粉色香蕉窝,把兜帽绳拉到最紧只露出眼珠子,大呼小叫个不停。那模样活像被拖进屠宰场的牛。就算是朝鲜时代两班家的小姐也不至于吓成这样吧。简直让人无语。


"내숭 떨지 좀 마! 이 나이 먹고 성인용품샵 처음 와 봐?"
"别装了!这么大岁数第一次来成人用品店?"

"어이! 처음 아닌 게 더 이상하거든?"
"喂!不是第一次才更奇怪好吧?"

"성인이 성인용품샵 오는 게 뭐 어때서 난리야. 오늘따라 아다같이 굴고 있어, 참 나."
"成年人来成人用品店有什么好大惊小怪的。你今天特别像阿达(傻子),真是的。"

"아니, 넌 여자애가... 말을 해도 꼭..."
"不是,你一个女孩子...说话总是..."

"여자애가 하는 말 남자애가 하는 말 따로 있냐? 하여튼 이래서 넌 안 돼, 그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문제거든."
"女孩子说的话和男孩子说的话还分不同吗?总之你这样就不好了,问题就在于你那过时的思维方式。"

"아 왜 맨날 혼내! 따라와 줘도 지랄이냐!"
"啊为什么老是训我!跟你来了也要挨骂吗!"


엄마 못지않은 내 잔소리에 빈정 팍 상했는지 소리 높여 삑삑 반항하는 그였다. 하긴,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친구 성인용품 받게 해 주겠다고 팔자에도 없는 핑크바나나에 끌려와 주는 게 썩 쉬운 일은 아니니까.
或许是被我不输给老妈的唠叨惹恼了,他提高嗓门吱吱喳喳地反抗起来。不过仔细想想,他说得确实有道理。毕竟被硬拉来帮忙拿朋友的情趣用品——这种八字没一撇的粉红香蕉差事,确实不是什么轻松活儿。


"미안 미안, 사과한다 친구야. 상품 받으면 너도 좀 나눠줄게."
"对不起对不起 我道歉朋友 收到商品后也会分你一些的"

"됐거든? 필요 없거드은?"
"不用了行吗?我不需要"

"근데 너 얼굴 빨개졌어."
"不过你脸红了哦"

"아 좀, 아니라고!"
"哎呀 不是啦!"


아니긴. 술 한 사발 들이킨 것마냥 벌게진 두 뺨이 볼만했다. 계속 놀리자 사방팔방 눈치 살피며 후드 모자 끈을 더 꽉꽉 조여서 숨는다. 하여튼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 부끄럼도 많은 데다 뼛속까지 유교보이였다. 민망함에 활어처럼 몸서리치는 그를 끌고 매장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섰다.
才不是呢。他那涨红的脸颊像灌了一碗烈酒似的,倒挺有看头。继续逗他时,他四下张望鬼鬼祟祟地拉紧连帽衫抽绳,整个人都快缩进去了。明明长得不像会害羞的人,骨子里却是个儒教男孩。看他尴尬得像活鱼般直扭身子,我拽着他往店铺深处走去。

시발 뭐야 저게. 어휴, 저건 또 왜 저렇게 생겼냐. 어우 드러워 진짜. 세상이 말세다 말세야. 쇼윈도 안에 줄줄이 전시된 흉흉한 딜도나 바이브레이터 따위의 것들을 보고 기겁하는 그의 뒤로, 예고 없이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름 아닌 직원이었다.
我操那是什么。哎哟,那玩意儿怎么长成那样。呕真要吐了。这世道没救了没救了。正当他对橱窗里陈列的一排狰狞假阳具和振动棒之类的东西大惊失色时,毫无预兆地,一道黑黢黢的影子笼罩下来——正是店员。


"어서 오세요, 달콤한 밤을 책임지는 핑크바나나입니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欢迎光临,这里是承包您甜蜜夜晚的粉红香蕉!请问需要什么商品呢?"

"안녕하세요, 저희 커플 이벤트 당첨돼서 상품 수령하려고 왔는데요!"
"您好,我们抽中了情侣活动奖品,特地来领取的!"


내 반사신경은 탁월했다. 재빨리 이재현 옆에 달라붙어 사이 좋게 팔짱을 꼈다. 직원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며 몰래 그의 발을 툭툭 걷어차자 마지못해 덩달아 쭈뼛쭈뼛 허리 숙이는 그였다. 경직된 입술을 애써 치켜올린 어거지 미소도 함께였다.
我的反射神经相当出色。迅速贴近李载贤身边,亲密地挽起他的胳膊。向工作人员鞠躬问好时,偷偷用脚轻踢他的小腿,他只好不情不愿地跟着僵硬弯腰。那强扯嘴角的勉强笑容也如出一辙。


"네, 축하드립니다! 천천히 둘러보시고 이 카트에 원하시는 상품 채워 오시면 돼요."
"好的,恭喜您!请慢慢挑选,把想要的商品放进这个购物车就行。"

"혹시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참고로 저희는 좀 하드한 플레이를 선호해요."
"能麻烦推荐一下吗?顺便说我们比较偏好硬核玩法。"

"미쳤어?"
"疯了吗?"


눈을 확 뒤집으며 반박하려는 이재현의 등 뒤에 몰래 손을 올려서 꼬집어 비틀었다. 놈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연영과 간판께서 이렇게까지 연기 몰입을 못 해서야. 어차피 지랑 나랑 진짜로 써볼 것도 아닌데 왜 지레 겁부터 집어먹고 난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이 모든 건 나 혼자만의 해피타임을 비롯해 내 미래의 남자친구를 위한 거였다. 내 거니까 철저히 내 취향에 맞춘다는 소리였다.
李在贤瞪大眼睛正要反驳,我悄悄把手搭在他背后拧了一把。那家伙发出无声的惨叫。延英和看板娘连这点演技投入都做不到。反正又不是真要和他实践,不明白他为什么先怕成这样。这一切都是为了我独享的快乐时光,以及未来的男朋友准备的。既然是自己的东西,当然要彻底符合我的口味。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당도한 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수갑에 채찍에 목줄에, 거의 고문 기구처럼 험악하게 생긴 재갈이며 로프까지. 그 외에도 뭔 듣도 보도 못한 서슬 퍼런 기구들이 즐비했다. 이쯤에서 이재현을 힐긋 곁눈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려 버린 낯짝에는 그 흔한 핏기 하나 없었다.
跟随员工指引抵达的地方堪称新世界。手铐、皮鞭、项圈,还有形似刑具的狰狞口球与绳索。更有许多闻所未闻的骇人器具琳琅满目。这时我偷瞄了眼李在贤。果然状态很差,惨白的脸上不见半点血色。


"하드 플레이 선호하시는 거 맞죠? 남자친구분 표정이 안 좋으신데..."
"您偏好硬核玩法对吧?您男朋友脸色似乎不太好..."

"아, 우리 자기가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요. 그럼 오늘은 우리 좀 소프트하게 가볼까, 자기야?"
"啊,我家这位比较害羞。那今天我们温柔点好不好,亲爱的?"


팔짱을 더 꽉 끼고 체온을 부비적대는 내게로 멀거니 향하는 그의 눈빛은 이미 혼이 반쯤 나가 공허했다. 알아서 하세요... 자기야.들릴락 말락 맥없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他茫然望来的眼神空洞失神,仿佛魂魄已抽离大半,只是机械地抱紧双臂在我身上蹭取体温。"随你便吧…亲爱的。"断断续续的微弱呢喃声几不可闻。


"그럼 우리 제일 기본적인 콘돔부터 사자! 뭐 유명한 거 있던데, 돌기형에다가 핫젤 발라진 거? 그거 보여주세요!"
"那我们先从最基础的避孕套买起吧!听说有款带颗粒的热感型很出名?请拿那个给我们看看!"

"네, 페퍼돔 말씀하시는 거 맞죠? 이쪽으로 오세요. 이번에 새로 나온 초박형 에어돔도 같이 보여드릴게요, 남성분도 성감 느끼시기에 되게 좋아요."
"您说的是倍力乐吧?这边请。顺便给您看看新出的超薄空气套,男性佩戴也能获得很好的快感体验。"

"그거 혹시 조루가 써도 되는 건가요?"
"那个…早泄的人也可以用吗?"

"네...?"
"啊...?"


대한민국 남자 5명 중 3명은 조루라는데, 어쩌면 미래의 내 남자친구 역시 조루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피어난 순수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해진 느낌.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끼얹은 양 정적이 흘렀다.
韩国男性中每五人就有三人存在早泄问题,这让我不禁担忧起未来男友可能也难逃此劫——一个纯粹源于忧虑的疑问。但不知为何气氛突然变得诡异,仿佛被泼了盆冷水般陷入死寂。

머지않아 직원이 살짝 웃음을 참으며 이재현을 쳐다보는 순간 직감했다. 내가 또 의도치 않게 이 불쌍한 남성을 한 방 멕였구나.
当不久后员工憋着笑意偷瞄李在贤时,我瞬间顿悟:自己又不小心给这位可怜男士来了记暴击。


"...큼큼."
"……咳咳。"


졸지에 조루남 만든 게 미안해져서 헛기침과 함께 힐끔 눈치를 보니, 기가 찬단 표정으로 천장이나 올려다보며 피식 웃고 마는 이재현.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반박할 가치조차 못 느끼는 듯했다. 나 조루 아니라느니 울고불고 화내면 그림 더 이상해질 뻔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역시 간지를 아는 놈이었다.
突然被说成早泄男让我有些愧疚,假装咳嗽偷瞄他的反应,只见李宰贤一脸难以置信的表情望着天花板嗤笑出声。荒唐到连反驳都觉得多余。要是哭闹着辩解"我才不早泄"反而会更尴尬,这样倒也算幸运。果然是个懂氛围的家伙。


"조루이시면 에어돔은 안 맞으실 수도 있겠네요. 다른 제품 추천해 드릴게요! 사정 지연을 도와주는 롱래스팅 콘돔이 있거든요~"
"如果您有早泄情况,可能不适合使用空气避孕套呢。我为您推荐其他产品吧!这款持久延时避孕套能有效延长射精时间哦~"



"예 뭐, 그러세요."
"行吧,随你便。"


이제는 아예 남 일이라는 양 직원 말에 건들건들 대답해 주는 여유까지. 이 지독한 핑크바나나 세계관에 잡아먹혀 기어이 해탈하신 모양이었다.
此刻他竟游刃有余地应付着店员事不关己的搭话,看来已彻底超脱于这个荒诞的粉红香蕉世界观之外了。

그렇게 고생 끝에 종류별로 콘돔 몇 개 고르고 나니, 아무래도 이재현에게 선물 한두 개쯤 해야 할 것 같아 자연스럽게 남성 코너로 향했다. 영문 모르고 휘적휘적 따라오던 그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단단하게 이어진 팔짱을 툭툭 치며 조심스레 귓속말을 소근거려 왔다.
历经辛苦挑选了几款避孕套后,总觉得该给李载贤带一两件礼物,便自然而然地走向了男性专区。他懵懵懂懂地跟在我身后晃悠,突然像是察觉到了异样,环顾四周后轻轻拍了拍我紧挽着他胳膊的手,凑近耳边小心翼翼低语道。


"눈 없냐? 여기 다 남자 거잖아, 멍충아. 너 쓸 거 없어."
"没长眼睛吗?这儿全是男士用品,笨蛋。没你能用的东西。"

"당연히 나 쓸 건 없지. 난 고추가 없으니까."
"我当然用不上,我又没那玩意儿。"

"그럼 왜,"
"那你干嘛,"

"네 거 고를 건데? 우리 재현이 고추 헌정용."
"要选你的那个吗?给我们载贤的辣椒献祭用。"

"...또 또 개소리 할래?"
"...还想继续胡说八道吗?"


펄쩍 뛰는 놈을 무시하고 흥미롭게 쇼윈도를 구경했다. 갖가지 남성용 마스터베이터들의 향연. 그 색감이며 모양이며 크기며 다채로웠다. 여기 오면 남자들 눈알 팽팽 돌아가겠는데. 직원이 멀리 있음을 확인한 후 이재현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无视那个暴跳如雷的家伙,饶有兴致地观赏起展示橱窗。各式男性自慰器的视觉盛宴——无论是色彩、造型还是尺寸都令人眼花缭乱。男人来这里怕是要看直了眼。确认店员距离尚远后,狠狠捅了李载贤的侧腰。


"왜, 싫어? 밤마다 외롭지 않아?"
"怎么,不喜欢?每晚不会寂寞吗?"

"전혀, 이게 누굴 변태로 아나. 게임하다 보면 생각도 안 나거든?"
"完全,这算谁的变态啊。玩游戏的时候根本不会想到吧?"

"어차피 공짠데 줄 때 받아!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너도 수확 하나는 있어야 될 거 아니야."
"反正是免费的就收下吧!都跟到这里来了,你总该有点收获才行吧。"


됐다며 여전히 질색하는 이재현을 뒤로 하고 바쁘게 쇼윈도를 돌며, 가구 쇼핑하는 신혼부부마냥 한참을 티격댔다.
说完便撇下仍在嘟囔的李宰贤,匆匆绕过橱窗,像购物中的新婚夫妇般徘徊了好一阵子。


야야, 이거 어때? 무한 신축성 자랑하는 최고급 실리콘, 온도 자동 조절 기능에다가 러브젤도 증정한대! 아, 쪽팔리니까 작게 좀 말해! 상품 설명 읽은 건데 뭐! 존나 싫으니까 너나 사. 그러고 싶어도 난 넣을 고추가 없다니까? 고추 있는 네가 사! 아오 시발 아까부터 고추 고추! 너 왜 자꾸 나 성희롱하냐? 조만간에 신고 먹일 줄 알어라.
哎呀,这个怎么样?采用无限伸缩性材质的顶级硅胶,还带自动调温功能外加赠送润滑剂!啊,烦死了小声点!商品说明我都看了但...超讨厌的你要买自己买!想买我还没辣椒钱呢?有辣椒钱的你买啊!嗷该死的从刚才就辣椒辣椒!你干嘛总对我性骚扰?等着瞧迟早让你尝尝新鞋的滋味。


"그래서 진짜 안 골라?"
"所以真的不选吗?"

"안 골라. 필요 없다고."
"不选。不需要。"

"야... 딱 말해. 너 고자지."
"喂...直说吧。你是个太监吧。"

"아니, 솔직히 혼자 하는데 뭔 기구를 써, 거추장스럽게."
"不是,说实话一个人用啥工具啊,多碍事。"


그 거추장스러운 기구를 몇십씩 주고 사서 쓰는 사람들이 널린 게 문제지. 이렇게 공급이 넘치는 건 다 이유가 있지 않겠니? 뭐든 니 별 볼 일 없는 오른손보다는 환상일걸. 팔팔하게 피 끓는 남자가 이 나이에 벌써부터 성욕이 뒈져 버리면 어떻게 하니. 뭐 성균관 유생이세요? 쏟아붓고픈 잔소리가 산더미였다. 굴러온 복을 걷어차는 이 유교보이의 선비 행태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问题就在于有太多人花几十块钱买那些碍手碍脚的器具来用。供应如此过剩岂会没有原因?反正总比你那无用的右手强百倍。一个血气方刚的男人在这年纪就没了性欲可怎么行。莫非您是成均馆的儒生?堆积如山的说教令人作呕。这个践踏天降福气的儒教男孩的士大夫做派简直令人窒息。

내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든 말든, 그저 진절머리 난다는 눈빛으로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이재현이었기에 결국 내 손으로 직접 골랐다. 딸 치는 것조차 귀찮아할 것 같은 이 남자를 위한 초밀착 전동 오나홀. 그것도 세상 귀엽고 깜찍한 바나나 모양의.
无论我用多么怜悯的眼神注视,李在贤只是满脸厌烦地想逃离现场,最终我亲手为他挑选了——连打飞机都嫌麻烦的男人专属超贴身电动飞机杯,而且还是世界上最可爱俏皮的香蕉造型。


"바나나 써보고 꼭 생생한 후기 부탁해~"
"试用完香蕉记得分享真实体验哦~"

"어, 꺼져."
"喂,滚开。"

"내숭쟁이."
"装模作样。"

"지랄 말고."
"别发神经。"


저렇게 새침하게 튕기면서 집 들어가자마자 헐레벌떡 써보면 웃기겠다.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 천하의 이재현이 지 고추에 냅다 바나나 꽂는 거 아냐. 실없는 상상에 애써 웃음 참으며 그 넓은 등짝을 한껏 토닥여 줬다. 즐딸 기원.
想象着她那副故作高冷的样子,一回家就急不可耐地试用,实在滑稽。活在时尚里死在时尚里的天下李宰贤,难道会直接往自己那儿插香蕉吗?强忍着无厘头幻想带来的笑意,我重重拍了拍她宽阔的后背。祝您手冲愉快。

마침내 남성 코너를 나가는 길, 또 저만치 직원이 보이길래 얼른 기계적으로 팔짱을 끼고 달라붙어 앵겼다.
终于走向男装区出口时,又瞥见远处有店员身影,便立刻机械地挽住她胳膊贴上去装亲热。


"아잉 자기야~"
"哎哟宝贝~"

"엉, 자기야. 혀 짤렸어 자기야?"
"嗯?亲爱的,舌头打结了吗?"

"야야, 직원 갔다."
"喂喂,员工走了。"

"그럼 떨어지세요, 인간아. 속 안 좋아."
"那就滚吧,人类。真恶心。"


짧고 굵었던 연기였다. 새햐앟게 불태웠다. 토하기 직전이라며 내 몸을 투덜투덜 밀어내던 이재현이 별안간 어디를 향해 성의 없이 턱짓했다.
那是一场短暂而浓烈的烟火。燃烧得耀眼夺目。李载贤嘟囔着推开我的身体,说自己快要吐了,突然又漫不经心地朝某个方向扬了扬下巴。


"야, 진짜 토 나오지 않냐. 저딴 거 사는 새끼들 총살하고 싶다니까."
"喂,真的要吐出来了。真想把买那种东西的混蛋们统统枪毙。"


이재현이 가리키는 끝을 따라가니, 보기만 해도 역겨운 리얼돌이 줄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런 것도 팔아? 핑크바나나 착한 줄 알았는데 살짝 정 떨어질 뻔. 공감의 의미로 고개 끄덕이는 내 옆에서 우욱 게워내는 모션을 취하는 그였다. 오지게도 혐오스러운 모양이었다.
顺着李载贤所指的方向望去,只见一排排光是看着就令人作呕的实体娃娃陈列着。那种东西也有人买?本以为粉红香蕉是个正经品牌,差点让我好感全无。在我点头表示赞同时,身旁的他突然做出干呕的动作,看来是恶心到极点了。

그나저나 이재현을 토 나오게(?) 만드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틈을 타 여성 코너를 혼자 둘러보던 중, 웬 씹타쿠처럼 생겨먹은 거구의 남자가 거친 숨을 그르렁대며 다가오길래 기함을 했다. 요즘처럼 예민한 세상에 설마 면전에다 대고 이상한 말을 할까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话说回来,让李载贤反胃(?)的事情还不止于此。趁他暂时去洗手间的空档,我独自在女性专区闲逛时,一个长得像死宅的魁梧男人喘着粗气逼近,吓得我惊叫出声。在这般敏感的世道,原以为他不敢当面说什么奇怪的话,便保持静止不动。


"저, 근데요... 이런 인위적인 것보다..."
"那个...比起这种人工的东西..."

"네?"
"啊?"

"진짜 남자랑 해보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要是和真正的男人试试...不是更好吗。"


비계 낀 목구녕으로 더듬더듬 웅얼대는 음성은 두 귀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여자가 진짜 남자랑 못 해봐서 자위기구 사는 거라는 그 발상부터가 끔찍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받아야만 하는 존재, 즉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전제가 당연하다시피 기저에 깔린 게.
那从带着喉结的嗓子里含糊不清嘟囔出的声音,足以让人怀疑自己的耳朵。女人因为没和真男人做过才买自慰器具——这种想法本身就够可怕的。其背后理所当然地暗藏着一种前提:女人是必须被男人选择的存在,即比男人低等。


"뭔 말을 하고 싶으신 건데요?"
"您到底想说什么?"

"제가... 기분 좋게 해드릴게요. 하룻밤... 방만 잡아 주시면..."
"我会...让您心情愉悦的。只要...订一间房过夜..."


이쯤에서 간단히 정의하자면 미친놈이었다. 그야말로 도태의 끝을 달리는 생명체. 여자랑 섹스하고 싶어 죽겠는데 모텔방 잡을 돈 하나 없는, 심지어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자기객관화 안 돼서 자신감만 넘쳐나는. 백날천날 인터넷 망가세계에만 갇혀 사느라 사회성도 더럽게 없어서 이딴 식으로 꼬시면 진짜 여자랑 잘 수 있다 착각하는 최악의 남성상.
简而言之他就是个疯子。堪称进化链末端的残次品——那种满脑子想着和女人上床却连开房钱都没有、又胖又丑还毫无自知之明盲目自信的货色。整天泡在二次元黄图里导致社交能力烂透,居然以为用这种套路真能骗女人上床,简直是男性之耻。


"어이, 강남에 집을 사준대도 하기 싫겠구만 뭔 방을 잡아 달래."
"喂,就算送你江南区的房子也不想搭理,还妄想让我开房?"


듣던 중 반가운 목소리가 등장했다.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 발언이었다. 어느새 츄리닝 반바지에 양손 꽂아 넣고 껄렁껄렁 다가온 이재현이 띠껍기 그지없는 눈으로 남자를 훑어 내렸다. 어후... 씹. 퀴퀴한 땀 냄새에 일차적으로 타격 받고, 키는 제 가슴팍 언저리에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부피감은 세 배인 그 꼬락서니에 자연스레 눈살 찌푸리는 것까지. 혐오의 과정은 완벽했다.
交谈间突然响起熟悉的声音,简直道出了我的心声。只见李在贤把双手插在运动裤口袋里晃过来,用令人极度不适的眼神打量着那男人。呕...靠。先是扑面而来的酸臭汗味暴击,再看那身高将将够到我胸口却有三倍宽的油腻体格,我下意识皱起眉头——整套嫌恶反应行云流水。



"원래 그렇게 여자만 보면 밥 먹듯이 성희롱하세요? 예?"
"你平时见到女人就像吃饭一样习惯性骚扰吗?嗯?"

"......"
"How are you?" 输出:

"걍 그만 살고 디지세요, 산소 아까우니까."
"干脆别活了去死吧,浪费氧气。"


내 손목을 자연스레 끌어당겨 제 뒤에 숨긴 그가, 제 성깔치고는 비교적 정중하게 따발총을 쐈다. 갑작스러운 죽음 요구에 어안이 벙벙해진 씹타쿠가 두꺼운 안경알 속에서 누렇게 찌든 눈을 껌벅였다.
他自然地拽过我的手腕藏到身后,以我的暴脾气来说还算克制地连开了几枪。面对突如其来的死亡要求,那个死宅男愣在原地,在厚厚的镜片后眨巴着发黄浑浊的眼睛。


"누, 누구..."
"谁、谁啊..."

"나 얘 남자친구지. 보면 몰라? 돈도 없는데 눈치도 없고 뭐 하는 새끼야."
"我可是她男朋友。看不出来吗?又没钱又没眼力见,你算什么东西。"

"아, 저, 죄송..."
"啊,那个,对不起..."

"너 이 씨발. 혹시 리얼돌 사러 왔냐?"
"你这混蛋。该不会是来买实体娃娃的吧?"


별안간 인상 빡 구긴 이재현이 남자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풉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웃음 나오는 대로 웃기엔, 내 앞의 이 남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사색인지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였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재현의 리얼돌 추측은 사실인 것 같았다. 아무 부정도 못 하고 꾸무적대는 꼴만 봐도 알만했다.
李在贤突然绷紧表情,严肃地朝男人发问。他勉强憋住快要爆发的笑意。考虑到眼前这个男人面色惨白仿佛随时会哭出来,作为人类最起码的礼节还是该忍住不笑。更何况可悲的是,李在贤关于实体娃娃的猜测似乎是真的。看他支支吾吾不敢否认的样子就明白了。


"사려던 거 사서 집에서 혼자 놀아 새끼야. 왜 남의 여자친구한테 껄떡대, 좆같게."
"想买的东西买了就自己在家玩吧小崽子。为什么对别人的女朋友嬉皮笑脸,真他妈欠揍。"

"...죄송합니다."
"……对不起。"

"왜 자꾸 나한테 죄송하대, 얘한테 죄송해야지."
"干嘛老跟我道歉,该对她道歉才对。"


이재현의 까칠한 타박에 서둘러 날 향해 고개 숙여 연신 사과하는 남자였다. 그가 두툼한 뱃살 낑낑 접어가며 허리를 더 숙일수록 육수 같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과 두 번 받았다가는 숨넘어갈 것 같아서 겨우 제지하고 훠이훠이 떠나보냈다. 끝까지 남자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이재현이 뒤늦게야 시선을 거두고 헛웃음 쳤다.
李载贤尖刻的训斥下,男人慌忙向我低头连连道歉。他费力折叠着厚厚的肚腩不断弯腰,汗水像汤汁般涔涔流下。眼看他要行第二个礼时我赶紧制止,生怕他当场背过气去,摆摆手打发他走了。李载贤直到最后都死死盯着男人远去的背影,良久才收回视线,发出一声嗤笑。


"리얼돌 사는 새끼들 병신인 건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병신이었네."
"早知道买实体娃娃的家伙们是傻逼,没想到比想象的更傻逼。"

"그러게."
"就是啊。"


가만 보면 이재현은 동족 혐오를 상당히 잘 하는 편이었다. 태생부터 상타치에다 강강약약의 표본으로서, 같은 남자가 등신짓 한다 싶으면 누구보다 찰지게 잘 패대니 웬만한 사내놈들은 이재현 앞에서 설설 긴다고 봐도 무방했다. 내 앞에서 하도 좆밥처럼 구니까 시시때때로 이 인간의 입지를 망각해서 문제지, 여러모로 무서운 놈인지라 깝치지 말아야겠다 매번 다짐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작심삼일이었다.
细看之下,李载贤确实很擅长同族嫌恶。出身就是上等资质,强弱分明的典范,一旦觉得哪个男人在犯蠢,他揍起人来比谁都狠辣,寻常男人在他面前连大气都不敢出。因为老在我面前表现得像个废物,常常让人忘记这家伙的地位才是问题所在,毕竟是个方方面面都可怕的家伙,每次都告诫自己别招惹他,但不出三天又故态复萌。


"야, 근데 확실히 연영과 맞네. 배역 과몰입 제대로 한다?"
"哎,不过和延宇角色确实配。这入戏程度绝了吧?"

"뭐가."
"怎么。"

"방금 내 남자친구라며, 그것도 존나 자연스럽게."
"刚才还自称是我男朋友,而且装得那么自然。"

"뭐라냐. 내가 언제."
"说什么呢,我什么时候。"

"왜 남의 여자친구한테 껄떡대냐며? 좆같다며~"
"为什么对别人的女朋友嬉皮笑脸?真恶心~"

"몰라, 내가 언제에."
"不知道,我什么时候。"


눈 하나 깜짝 않고 시치미 뚝 떼며 능글맞게 구는 태도마저 지극히 저다워서 웃음이 났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재현은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他连眼睛都不眨一下,装模作样地摆出油滑态度,那副模样实在太过滑稽,让人忍不住发笑。虽然不愿承认,但李在铉确实有几分可爱之处。


"사실 내 남자친구는 여기에 많지."
"其实我男朋友在这里并不多。"

"오냐, 남자친구 많이 사서 행복해라."
"好啊,多交几个男朋友祝你幸福。"


눈여겨 봐둔 기구들을 쓸어 담으며 온통 행복에 겨운 내 머리 위에, 친히 손까지 올려 토닥토닥 쓰다듬어 준다. 이러니까 꼭 나는 발정 나서 헥헥대는 개 같고 이재현은 그 개를 키우는 온화한 주인 정도 되는 느낌. 이게 맞는 건가 싶어 영 기분이 미묘했다. 그래도 확실히 핑크바나나 무드에 적응됐는지, 어느새 후드모자도 벗어젖히고 온전히 제 얼굴 드러낸 모습은 박수 쳐줄 만했다. 마이 컸다 이재현.
我边扫荡早就看中的器材边沉浸在幸福中,这时他竟亲手将手搭在我头顶温柔抚摸。这下可好,我活像只发情喘气的狗,李在铉倒成了温厚养狗的主人。越想越觉得微妙,不过显然已适应了粉红香蕉的氛围,不知何时连兜帽都甩到脑后,完全露出真容的模样值得鼓掌。李在铉,真有你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분홍색 바나나 그림이 수놓아진 현란한 박스를 품 안 가득 안아 들고 당당하게 핑크바나나를 나설 때였다.
历经重重波折后,当怀抱着印有炫目粉红香蕉图案的礼盒,昂首阔步走出 Pink Banana 时。


"우리 예쁜 커플분들~ 이벤트 당첨 다시 한번 축하드리구요, 제품 사용 후에 좋은 후기도 꼭 부탁드려요!"
"我们可爱的情侣们~再次恭喜各位中奖,使用产品后还请务必分享好评哦!"

"넵, 감사합니다!"
"好的,谢谢!"

"아찔한 밤, 짜릿한 밤, 황홀한 밤 되세요! 지금까지 핑크바나나였습니다!"
"愿您度过目眩神迷、心跳加速、神魂颠倒之夜!以上是 Pink Banana 为您呈现!"


하나 간과한 점, 직원분들이 모두 나와서 구호까지 합창하며 이렇게까지나 열렬히 우리를 배웅해 줄은 몰랐다. 극강의 수치를 못 이긴 이재현은 결국 다시 새빨개진 채 허버허버 후드모자 덮어쓰느라 정신 없었다.
有一点被我忽略了,没想到所有员工都出来齐声欢呼,如此热烈地为我们送行。承受不住极致羞耻的李在贤,最终又满脸通红地手忙脚乱戴上连帽衫帽子,狼狈不堪。


"나약하다, 재현아. 끝까지 나처럼 당당했어야지."
"太软弱了,在贤啊。你应该像我一样坚持到底堂堂正正的。"

"거 조용히 하지? 이 엿 같은 핑크박스 던져 버리기 전에."
"还不给我闭嘴?在我把这该死的粉色盒子扔掉之前。"

"미안. 많이 무거워? 그거 우리 집까지 옮겨 주라."
"抱歉。很重吗?麻烦把这个搬到我家去吧。"

"......"
"How are you?" 输出:

"아무리 그래도 눈으로 욕을 하고 그러냐~ 치킨 살게."
"就算那样也用眼神骂人啊~ 活该被揍。"


사람을 눈빛으로 팬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었는데, 이재현 덕분에 쓸데없이 체감하게 됐다. 물론 금세 치킨에 현혹되어 방싯방싯 아깨비 웃음 내보이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택시에서 내려서 우리 집 현관으로 향할 때까지 이재현의 궁시렁거림은 멈추질 않았다. 평생 할 성인용품 구경을 오늘 다 했다나 뭐라나.
原本完全不懂"用眼神打人"是什么意思,也压根不好奇,多亏李在贤让我白白体会了一把。虽然当下确实被炸鸡诱惑得咧嘴傻笑了一会儿,但那也只是暂时的。从出租车下来直到走向我们家玄关为止,李在贤的絮絮叨叨就没停过。今天算是把一辈子该看的成人用品都看完了。


"어이. 난 네가 이렇게까지 욕망에 미쳐버린 인간일 줄 몰랐다."
"喂 我真没想到你会是被欲望冲昏头脑到这种程度的人"

"원래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욕망에 미쳐 있어."
"其实每个人类都各自沉溺于欲望之中"

"됐고, 나 이제 바나나 말만 들어도 존나 싫어. 절대 안 먹어."
"够了,我现在光是听到香蕉两个字就烦得要死。绝对不吃。"

"듣는 바나나 섭섭하게 왜 그러냐. 너 바나나 주인이잖아!"
"听着的香蕉多委屈啊,你可是香蕉的主人!"


이재현이 든 핑크박스 안에서 그 문제의 바나나를 꺼내 해맑게 흔들자, 또 못 볼 걸 본 것처럼 기 쫙쫙 빨린 얼굴로 외면해 버린다. 겨우 생겼던 핑크바나나 면역이 그새 또 증발한 모양이었다.
当李在贤从粉色盒子里掏出那根问题香蕉,阳光灿烂地摇晃时,对方又像看到不该看的东西般瞬间垮下脸别过头去。好不容易建立起的粉色香蕉免疫力似乎转眼又蒸发了。


"맞다, 바나나랑 같이 콘돔도 몇 개 챙겨줄게. 재현이에게 조만간 쓸 일이 생기길 기도하며."
"对了,我会给你带些香蕉和几个避孕套。祈祷在贤你很快就能用上吧。"

"쓸 일 없으니까 넣어둬라, 제발."
"反正用不上就放着吧,求你了。"

"마, 쓸 일 없는 게 말이 되나! 왕년에 잘나가던 이재혀이 아인교! 무려 연영과 손예진!"
"妈呀,说什么用不上!当年风光的李载现不是白叫的!那可是演艺系孙艺珍级别!"

"...아오, 이게 진짜."
"……哎哟,真是够了。"


이재현 놀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건 부정 못 할 팩트였다. 일부러 더 빡치라고 오바스러운 말투로 약을 올렸다. 평소 같았으면 참다못해 내 이마에 꿀밤이나 한 대 박았겠지만, 지금 이재현은 힘줄 빡 오른 두 팔로 박스를 지탱한 상태라 손을 쓸 수 없는 게 신의 한 수였다. 약 올라 죽고도 남을 거라는 뜻이었다.
戏弄李载现是全世界最有趣的事——这是无可否认的事实。我故意用夸张的语气火上浇油。要搁平时他早忍无可忍给我脑门来个爆栗了,但此刻他正青筋暴起地用双臂撑着箱子腾不出手,简直是神之一手。这明摆着是在说"气死你也拿我没办法"。

유치찬란하게 장난기 들끓는 와중에, 또 내 머리 속으로 불꽃 같은 아이디어가 스쳤다. 지금 이 순간 이재현 신경을 빡빡 긁어서 빡침 게이지 극한으로 올려줄 최악의 멘트가 떠오르고 만 것이었다. 넌 이제 딱 뒤졌다. 씰룩쌜룩 올라가는 입꼬리에 애써 힘 준 다음, 알통이 선연히 두드러져 탐스러운 팔뚝을 쿡쿡 찔렀다.
在幼稚又闹腾的嬉戏氛围中,我脑海中又闪过火花般的灵感。此刻,一个能彻底激怒李宰贤、将他怒气值拉到极限的糟糕台词突然浮现——你完蛋了。我强压住嘴角抽搐的笑意,故意用指节戳了戳他肌肉线条分明、充满诱惑力的手臂。


"재현아, 재현아."
"宰贤啊,宰贤。"

"또 뭐! 너 내가 전부터 성 떼고 부르지 말라 했지, 드럽다고."
"又干嘛!我早说过别用这么恶心的称呼叫我。"

"나 진지하게 할 말 있어."
"我有正经事要说。"


저만치 높이 있는 귀에 닿기 위해 힘껏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겨우겨우 근처에 오자마자 그 귓바퀴에다 대고 미지근한 숨결을 후 불어넣었다. 놀라서 움찔 피하려는 놈의 어깨를 붙든 채, 최대한 촉촉하고 끈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为了够到那高高在上的耳朵,我不得不拼命踮起脚尖。好不容易靠近后,立刻朝那耳廓呼出一口温热的鼻息。趁对方受惊躲闪之际一把按住他的肩膀,用尽可能湿润黏腻的声音低语道。


"콘돔 있잖아, 정 쓸 일 없으면..."
"不是有避孕套嘛,实在用不上的话..."

"......"
"How are you?" 输出:

"오늘 밤에 나랑 쓸래?"
"今晚要和我用吗?"


내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끝나자마자 쌍욕 갈기며 핑크 박스 내던지고 멱살부터 붙잡아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뻣뻣한 침묵이 흘렀다. 그 자리에 우뚝 못 박혀 선 그대로, 고운 쌍꺼풀 선이 다 보이도록 눈을 내리깔아 내 얼굴만 묵묵히 쳐다보는 이재현. 얘 왜 이래.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외려 동공지진 나는 건 나였다.
我这番不似人言的鬼话刚说完,本以为会换来一顿臭骂,粉红盒子会被摔在地上,衣领也会被揪住。但反常的僵硬沉默在空气中蔓延。李在贤像根木桩杵在原地,低垂的睫毛让双眼皮线条一览无余,只是沉默地凝视着我的脸。这家伙怎么回事?这完全出乎意料的反应反而让我瞳孔地震。


"......"
"How are you?" 输出:


소리 없는 그의 시선이 내 눈에서 코로, 코에서 입술로 천천히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상당히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他无声的视线从我眼睛到鼻子,再从鼻子到嘴唇缓缓下移的感觉清晰可辨。氛围正朝着相当微妙的方向流动。


"생각하고 뱉은 말이야?"
"这话是经过思考才说出口的?"

"...어?"
"...啊?"


생각을 하긴 했지. 너 열 받게 만들고 그 반응 꿀잼으로 관전할 생각. 그런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일이 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새낀 도대체가, 진짜 나랑 하룻밤 붙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뭘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지랄이지.
思考确实思考过。本想惹你发火然后欣赏你炸毛的滑稽反应。但事情好像要闹得比预期大了。这混蛋到底怎么回事,搞得像真要和我滚一夜床单似的,这么较真发什么神经。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아무리 개쓰레기 욕망덩어리인 나지만, 친구와 사고 치는 순간 좆빠지게 후회한다는 클리셰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특히 눈앞의 이 이재현과는 꼴같잖은 원나잇 한 번에 날려버릴 그런 시시콜콜한 우정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친구 없는데.
冷汗涔涔而下。即便是我这种欲望缠身的垃圾,也深知在连累朋友闯祸的瞬间会后悔莫及这种老套剧情。尤其是眼前这个李宰贤,我们之间不是那种会因为一夜荒唐就毁掉的廉价友谊。本来就没几个朋友。


"당연히 생각 안 하고 뱉었지! 농담이야 농담. 내가 미쳤다고 너랑 선을 넘냐."
"当然是没过脑子就脱口而出的!开玩笑的啦。我疯了吗怎么会和你越界。"


애써 태연한 척, 두 팔 휘저어 손사래 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전혀 따라 웃지 않은 채로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는 이재현이었다.
我强装镇定,挥舞双臂摆手干笑。但李宰贤始终面无表情地念着台词,完全没有附和我的笑容。



"핑크바나난지 나발인지, 그딴 데 같이 간 것부터가 선 진작에 넘었고."
"从一起去什么粉红香蕉还是鬼知道的地方开始,界限早就越过了。"

"......"
"How are you?" 输出:

"농담이랍시고 나한테 이런 말 하는 것도 선은 개나 준 것 같은데."
"开玩笑也该有个限度,对我说这种话简直是把底线喂了狗。"


말문이 턱 막혔다. 하긴, 여기는 할리우드가 아닌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이니까. 굉장히 서늘하게 정색하고 뼈 때리는 대한의 유교보이로 인해 기가 죽었다. 아니 내가 잘못은 했는데... 근데 이재현 많이 빡쳤나. 나도 아까 그 씹타쿠처럼 참교육 당하는 걸까.
我一时语塞。也是,这里不是好莱坞而是儒教之国大韩民国。面对这位神色冷峻、言辞犀利的韩国儒教男孩,我彻底蔫了。虽然确实是我的错...但李载现是不是太较真了?难道我也要像刚才那个死宅一样接受"爱的教育"吗。

망하기 직전인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빠르게 고민하다, 그냥 그대로 뻔뻔하게 철판 깔기로 했다. 일단 핑크박스를 열어 낱개로 된 콘돔 샘플들을 한가득 꺼냈다. 줄 건 주고 빨리 떠밀어 보내는 게 상책이었다.
在即将社死的危急关头快速思索对策后,我决定厚着脸皮蒙混过关。先打开粉色盒子掏出一大把散装避孕套样品。最佳方案就是赶紧给完东西把人打发走。


"자, 됐고 일단 넣어둬 넣어둬! 너 이거 집에 쟁여두면 1년은 쓰겠다 야."
"行了行了先收起来!这玩意儿囤家里够你用一年的我跟你说。"


이재현의 허벅지까지 덮는 펑퍼짐한 후드 시보리를 훌러덩 들어 올렸다. 바지가 드러나는 순간 그의 몸이 흠칫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두 팔로 받쳐 들고 있는 핑크박스도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李宰贤掀起垂至大腿的蓬松雪纺连帽衫下摆的瞬间,能明显感觉到他身体陡然僵硬。双手捧着的粉色礼盒也开始剧烈晃动。


"...야, 야, 잠깐만. 옷 내려."
"…喂、喂,等等。把衣服放下来。"


잠깐만이거나 말거나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기에, 눈에 보이는 바지 주머니 야무지게 벌려 콘돔을 죄다 쑤셔 넣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집어넣다 말고, 별안간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로 인해 손이 뚝 멈췄다.
根本无暇顾及他的制止,我急不可耐地扯开他裤袋,把避孕套全塞了进去。正疯狂塞着,视线里突然闯入的异物让我的手猛然顿住。


"어?"
"啊?"


다소 기이한 광경이었다. 놈이 입고 있는, 헐렁하기 짝이 없는 나이키 반바지. 그 가운데 앞섶이 지나치게 두툼한 모양새로 불거져 있었다.
这光景着实诡异——那条他穿着的、松垮到极致的耐克短裤。裤裆处正以异常饱满的轮廓高高隆起。


"......"
"How are you?" 输出:


이 텐트 뭔데. 설마. 천천히 눈 들어 그의 얼굴을 살폈다. 시선을 마주치려 했지만 늦은 모양이었다. 이미 좆됐음을 감지한 듯, 이마가 구겨질 만큼 두 눈 질끈 감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마는 이재현이었다. 자포자기한 태도였다.
这帐篷怎么回事。难道...。缓缓抬眼打量他的面容。试图对上视线却为时已晚。李在贤像是察觉到大势已去,紧紧闭着眼睛连额头都皱成一团,猛地低下头去。完全是自暴自弃的态度。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금 멍하니 앞섶을 쳐다봤다. 아무리 모른 척 하려 해도 이건.
说不出话来,又呆呆盯着衣襟前。再怎么装傻这次也...


"저기, 이재현. 너 지금 고추..."
"那个...李在贤。你现在该不会是..."

"...어이. 그만 말해라."
"...喂。别说了。"

"아니, 고추가 쫌 커졌는데?"
"不是,辣椒好像变大了一点?"

"그만 말하라고!"
"别说了!"

"이미 다 말했어... 너 고추 커졌다고."
"我已经全说完了...你辣椒变大了。"

"씨발!!!"
"操!!!"


심지어 지금도 실시간으로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려다, 온 얼굴이 죄다 붉어진 채로 씩씩대는 모양새가 하도 험악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적당히 사과하면서 사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甚至想补充说现在好像还在实时变大,但整张脸涨得通红、气呼呼的样子实在太吓人,只好紧紧闭上嘴。看来还是适当地道歉并收敛为好。


"나도 쫌 당황스럽다 야... 나 땜에 커진 거면 미안."
"我也挺慌的啊...如果是因为我才闹大的,那对不起。"

"미안할 짓을 왜 해!"
"干嘛要做这种该道歉的事!"


"진짜 미안."
"真的对不起。"


개빡쳤네 이재현. 하도 살벌해서 아랫니가 달달거릴 지경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누가 흥분하랬나? 장난으로 귓속말 좀 한 거 가지고 누가 발딱 세우랬냐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겠기에 눈치 한번 살핀 다음, 콘돔으로 꽉 찬 바지 주머니에 마지막으로 그 바나나를 살며시 넣어 줬다. 어쨌거나 병을 줬으니 그걸 해결할 약도 줘야 했다.
李载现真是气死我了。那杀气重得我后槽牙都在打颤。不是,谁让你激动了?就开个玩笑耳语了几句,谁准你直接炸毛的?这话终究没能说出口,我偷瞄了眼他的脸色,最后把香蕉悄悄塞进他塞满避孕裤的裤兜里。毕竟给了病毒,总得配个解药吧。


"급해 보이는데... 빨리 집 가서 바나나 꽂아."
"看起来很着急啊...赶紧回家把香蕉插上。"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뱉냐?"
"你管这叫说人话?"

"미안..."
"对不起..."

"꺼져 제발."
"滚开,求你了。"


아까 본 핑크바나나의 핫핑크 인테리어보다, 이 핑크박스의 색감보다, 지금 나보고 꺼지라고 윽박지르는 이 인간의 뺨따구 피부색이 더 핑크핑크했다. 놀랍게도.
比起刚才看到的粉红香蕉屋的艳粉内饰,比起这个粉红盒子的色调,此刻冲我吼着“滚开”的这家伙脸颊上的肤色还要粉嫩得多。真是惊人。


"씨발 내가 너 다시는 안 본다."
"妈的 我再也不想见到你。"


기어코 우리 집 현관 앞에 핑크박스를 던지듯 팽개친 다음, 뒤도 안 돌아보고 호다닥 도망치는 핑크인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앞집 이웃치고는 딱히 현실성 없는 발언도 함께였다.
最终他把粉红盒子像投掷般扔到我家玄关前,头也不回地一溜烟逃走的粉红人类。对于近到摔倒就能碰到鼻子的前院邻居来说,那番话也实在缺乏现实感。

천하의 이재현이 저렇게까지 쪽팔려 뒤질 것처럼 구는데 차마 붙잡을 수는 없었다. 다만,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후드 모자 나풀대는 그 등짝에다 대고 목놓아 소리쳤다.
天下无敌的李宰贤居然羞耻到那种快要死的样子,实在让人不忍拉住他。只是对着他全速奔跑时随风翻飞的连帽衫背影,我扯开嗓子喊了一声。


"야! 바나나 꼭 꽂아! 알겠지? 젤도 바르고! 조임 3단계가 제일 적당하대!"
"呀!香蕉一定要插好!知道吗?果冻也要涂!据说调三档松紧最合适!"


부디 내 간절한 외침이 닿길 바라며. 언젠가는 이재현에게서 끝내주는 바나나 리얼후기를 들을 수 있길 바라며.
但愿我恳切的呼喊能够传达。期待有一天能听到李在贤给出超棒的香蕉真实评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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