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오로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하는 커플이 몇 쌍이나 될까. 마에다리쿠는 종종 별 쓸데없는 걸 헤아려보곤 했다. 남들 사정은 모르겠지만 일단 리쿠 본인은 사랑 없는 결혼 카테고리에 속해버린 사람이 된지 어언 2년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래, 1년이나 되었다. 토쿠노유우시와 사랑이 부족한 결혼 생활을 해온 게.
世界上有多少对情侣仅仅因为爱情而结婚呢? Maeidariku 经常在思考这种毫无意义的问题。虽然不知道别人的情况,但至少リク自己,已经进入了没有爱情的婚姻类别,差不多两年了。是的,已经超过一年了。与 Tokunoyuushi 过着缺乏爱情的婚姻生活。
그렇다면 결혼 전에는 우리 사이에 이렇다 할 사랑이 있었던가? 리쿠는 단언컨대 없다고 자신했다. 유우시는 언제나 리쿠에게 사랑을 말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이었을 뿐 귀를 넘어 리쿠의 마음으로 도달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리쿠가 느끼기에 유우시가 얘기하는 사랑은 지극히 피상적이며 단순한 것이었다. 리쿠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과 전혀 맞지 않았다.
那么在结婚之前,我们之间有所谓的爱情吗?リク断言说没有。虽然ユウシ总是向リク表达爱意,但那些只是说说而已,很少真正触及リク的心。リク感觉到ユウシ所说的爱是极其肤浅和简单的,与リク对爱情的本质理解完全不符。
이를테면 처음 만난 날 사귀자고 고백한 것, 한달 쯤 사귀었을 때 대뜸 결혼하자고 청혼한 것 등이 그랬다. 리쿠는 유우시의 프로포즈를 소위 말하는 주접식 애정표현의 하나라고 여겨 대충 장단 맞춰주고 넘겼었다. 겨우 한달 만난 애인이 진심으로 결혼하자고 달려든 거였을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그런다고 거대한 페리 한 척 통째로 빌려 도쿄만에 덥석 띄워놓고 진짜 미친 것 같은 프로포즈 대작전 꾸려 올 줄은 정말 더 몰랐고.
就像初次见面那天就表白要交往,交往了一个月就突然求婚一样。リク把ユウシ的求婚当作所谓的老套爱情表达之一,随随便便地配合了一下就过去了。リク真的无法相信一个只交往了一个月的恋人会真心地想要结婚。更不用说会租借一整艘巨大的游艇,在东京湾大张旗鼓地布置求婚现场了。
깜깜한 밤하늘에 터지는 화려한 폭죽과 함께 드론 수십대가 결혼해줘리쿠 글씨를 수 놓을 때, 리쿠는 기쁘기보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복장을 갖춰 입은 오케스트라단이 결혼행진곡 연주를 시작했다. 수줍은 듯 웃고 있는 유우시가 이미 오픈된 웨딩밴드 케이스를 내밀며 걸어 나왔다.
在漆黑的夜空中,绚丽的烟花绽放,数十架无人机编织着“结婚吧,リク”的字样时,リク却更想找个地洞钻进去。更糟糕的是,穿着盛装的交响乐团开始演奏婚礼进行曲。羞涩地笑着的ユウシ已经打开婚礼戒指盒,向リク走来。
나랑 결혼해줄거지 리쿠? 우리 결혼하자.
会和我结婚的吧陸?我们结婚吧。
해줘. 도 아니고 하자. 리쿠에겐 다소 명령문처럼 들렸다. 거절할 기회는 사실 그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뭐에 홀린 듯 왼손이나 내밀어주고 있었다.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부힛거리는 유우시 얼굴이 귀여웠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남에게 상처 주기 곤란해하는 마에다리쿠는 그렇게 왼손 약지에 스스로 족쇄를 찼다.
要你娶我。不是商量是命令——这句话在陸听来带着不容拒绝的压迫感。其实那是他最后拒绝的机会。等回过神来,自己却像被蛊惑般伸出了左手。因为勇志那张泫然欲泣的脸实在可爱得让人狠不下心...天生不擅长伤害他人的前田陸,就这样亲手给左手无名指戴上了枷锁。
결혼 준비를 하면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또 몇 번이나 찾아왔다. 그때마다 유우시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리쿠를 붙잡았다. 리쿠는 눈물과 애교에 금세 함락되는 보편적 감성의 남자였다. 유우시는 눈물을 흘릴 것까지도 없었다. 그렁그렁 일발 장전 한 방에 리쿠가 어쩔 줄을 몰라 알아서 유우시의 입맛을 맞추기 일쑤였다. 세상 서럽게 훌쩍이다 리쿠의 꼬리내림에 바로 웃음 짓는 유우시는 무서운 악마 같기도, 귀여운 고양이 같기도 했다. 리꾸우 좋아해... 품에 안겨 속삭이는 목소리가 매번 리쿠를 어지럽게 했다. 결혼이란 걸 할만큼 내가 유우시를 좋아하나? 생각을 끝맺을 틈도 없었다. 눈꼬리에 눈물 방울 달고 올려다보는 유우시 얼굴 붙잡고 키스하느라.
筹备婚礼时又有好几次想逃跑的冲动。每次勇志都像有读心术般察觉,用尽手段留住陸。这个眼泪和撒娇就能轻易攻陷的男人,根本不需要勇志真的落泪——只要眼眶泛红蓄起水光,陸就会手足无措地主动满足他所有要求。上一秒还委屈抽泣,下一秒就因陸的妥协破涕为笑的勇志,像可怕的恶魔又像撒娇的猫咪。『最喜欢陸了...』每次被搂在怀里耳语的热气都搅得他心神荡漾。『我真的喜欢勇志到愿意结婚吗?』根本来不及思考答案,就被挂着泪珠仰头看他的勇志拽着接吻。
그니까 결혼이라는 인생의 역대급 중대사에 마에다리쿠 자의가 좀 부족했다. 근데 몸 붙이는 건 여지껏 살아온 중 가장 능동적으로 붙여 먹었다. 리쿠는 섹스의 쾌락과 정신적 교감을 비례하게 보는 편이라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상대일수록 쾌감이 증폭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는데 유우시를 만나고 속궁합이라는 개사기적 추상적 관념이 실재한다는 걸 몸소 체험해버렸다. 극상의 만족을 경험해 본 이상 백스텝하기는 어려웠다. 스스로도 좀 별로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유우시와의 결혼이 꽤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이유가 됐다.
说到底前田陸对结婚这件人生大事缺乏主观意愿。但身体契合度倒是活了二十多年里最积极主动的。原本认为性快感与精神共鸣成正比的陸,在遇见勇志后切身领悟了「身体相性」这个开挂般的抽象概念。体验过极致满足就很难倒退——虽然自己也觉得这种理由很糟糕...但确实成了「和勇志结婚似乎不坏」的重要依据。
이제 식장만 들어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유우시 본가에 인사드리러 간 날 리쿠는 진심으로 빤스런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동네 이름만 들어도 전국민이 다 아는 도쿄 한가운데 부촌에, 누가 사는지 뉴스에도 명단이 나오던 세레브 빌리지. 리쿠는 빠르게 상황 파악이 안돼 유우시를 빤히 쳐다봤다. 유우시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댕그랗게 착한 눈 뜨고 어깨나 한 번 으쓱였다. 뭐가 문제냐는 듯이.
本以为只要进了餐厅就万事大吉了。去勇志老家拜访的时候,陆真心决定要好好表现一番。那是位于东京正中心,光听地名全国人民都知道的高级住宅区,住户名单还会登上新闻的名流别墅区。陆一时没反应过来这是什么情况,呆呆地盯着勇志。勇志还是一如既往,睁着那双善良的眼睛,满不在乎地耸了下肩,仿佛在问“怎么了”。
그래 니가 페리 빌려올 때부터 이상하긴 했었지. 우리 둘이 합치면 30년 론 껴서 신축 맨션 하나는 살 수 있다고 했더니 미묘하게 코웃음 치던 것도 수상했고. 나보다 늦게 입사한 주제에 씀씀이 지나치게 크던 것도 알아봤다고. 니가 귀국자녀인 것도 알고 있었고. 좀 여유있게 컸나보다 짐작은 했지만. 그렇다고 니가 우리 회사 회장 아들인 건, 시발 너무 예상 외의 일이잖아...
从你借来佩里开始,我就觉得你不正常。你说我们两个合起来 30 年能买一套新建的联排别墅,那时候你微妙地笑了一声,也很可疑。你比我还晚入职,但是开销却过分大,我也察觉到了。我知道你是归国子女。我猜想你可能是在比较宽松的环境中长大的。但即便如此,你竟然是我们公司董事长的儿子,这真是他妈的出乎意料...
리쿠는 그날 단단히 체했다. 우리 아들을 어떻게 먹여살릴 계획인가. 끝까지 책임 질 자신이 있는가. 등등 리쿠가 연습해 간 유우시 부모님의 예상 질문 기출문제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식사 자리는 근엄하며 엄숙하기만 했다. 후쿠이 시골에서 소박하게 자란 리쿠에겐 왠지 가족보단 면접관의 느낌이 더 세게 왔다. 만날천날 귀여운 척하기 바쁜 유우시도 어쩐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리 긴장해도 앞에 음식이 있으면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유우시를 신경쓰느라 리쿠는 배로 속이 안 좋아졌다.
那天,リク感到非常紧张。他们打算怎样养活他们的儿子?你有信心负责到底吗?等等,リク练习过的ユウシ父母的预期问题一个也没有出现,饭桌上的气氛只是严肃和沉闷。在福井乡下朴实地长大的リク,不知为何,比起家人,面试官的感觉更加强烈。急于装可爱的ユウシ也显得有些僵硬。无论多么紧张,只要面前有食物,ユウシ就会先吃一口再看,这让リク感到胃里不舒服。
어찌저찌 결혼 허락을 받고 함께 리쿠의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둘은 처음으로 대판 싸웠다. 사실 싸웠다기 보단 리쿠의 한풀이 겸 일방적 화풀이에 가깝긴 했다.
无论如何,得到了结婚的允许后,他们一起回到了リク的单身公寓,两人第一次大吵了一架。实际上,与其说是吵架,不如说是リク的单方面发泄和怒火的爆发。
"왜 그동안 말 안 했어? 말할 기회 많았잖아."
"为什么一直不说?明明有很多机会可以告诉我的。"
"...물어보면 말하려고 했어. 리쿠가 안 물어봤잖아."
"...你要是问了我就说的。可陸你根本没问啊。"
"하? 내가 대체 뭘 알고 물어볼 수 있는데. 너 돈 좀 있어보이는데 혹시 회장님 아들? 이랬어야 한다는 건가?"
"哈?我怎么可能知道该问什么。看你挺有钱的样子,难道要我问'你该不会是会长儿子吧'这种话吗?"
"미안해..." "对不起..."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표정. 유우시는 화가 난 리쿠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걸로 이렇게 화를 내는 리쿠가 이해 안돼 죽겠다는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一点也不抱歉的表情。优希一边留意着愤怒的陆的视线,一边露出了这样的表情,好像他对陆为什么会因为这种事发这么大的火感到无法理解。
또 비밀이 있냐 물으니 없다고 했다. 자꾸 없다고 강하게 부정하길래 되레 의심이 들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라 다그쳤더니 망설이다 우물쭈물 털어놓기 시작했다.
又问有没有别的秘密,他说没有。他总是强烈地否定没有,反而让我起了疑心。我敦促他坦白,犹豫了一下,他才吞吞吐吐地开始说出来。
"리쿠 전 여친들 조사했어..."
"里库调查了他的前女友们..."
"...뭐?" “……啥?”
"여자만 사귀었길래.. 타입이 궁금해서..."
“听说你只跟女生交往……所以好奇你的类型……”
"....." “……”
"다들 좀 통통한 체형이던데.. 리쿠 그런 취향이었어?"
“她们身材都有点肉肉的……陆,你有这种癖好吗?”
리쿠는 화내는 것도 잊은 채 그냥 멍해졌다.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 사라져갔다.
里库甚至忘记了生气,就那样呆呆地站在那里。他的脸上,表情一点一点地消失了。
"첫사랑은 유이짱이지? 아직 후쿠이에 살던데..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잖아. 근데 왜 아직 인스타 팔로우 하고 있는 거야? 설마 첫사랑 아직 못 잊었어?"
"初恋是唯你吧?你到现在还住在福井吧.. 不是和别的男人结婚了,还生了孩子吗?那你为什么还一直在关注他的 Instagram?难道你到现在还没忘记初恋吗?"
"... 유우시." "...优希。"
"그렇다 해도 상관 없어. 그래도 팔로는 끊었으면 좋겠네."
"即使如此也没关系。不过,我还是希望他能取消关注。"
"유우시." "优希。"
"나 사실 리쿠 계좌 잔고도 알아. 그래서 무리하지 말라고 말한 거야. 내가 다 하면 되니까."
"我其实也知道里库的账户余额。所以我才说不要勉强,我说我全都可以搞定。"
"우리 헤어지자." "我们分手吧。"
에?! 유우시가 눈을 크게 떴다. 평소 듣기 힘든 하이톤으로 반문했다. 무슨 소리야?
诶?!勇志瞪大了眼睛。用平日里难以听到的高音反问道。什么声音啊?
"나 너랑 결혼 못하겠어. 도저히 안되겠다."
"我没法和你结婚。绝对不行。"
"갑자기 무슨 말이야?"
"突然说什么呢?"
"너라면 하겠어? 내가 말해주지 않은 나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상대랑 살 붙이고 살고 싶겠냐고 말하는 거야."
"换作是你会愿意吗?要和一个知晓我所有未曾说出口之事的人,相依为命共度一生,你愿意吗?"
"그니까 그게 뭐가 문젠데?"
"所以,这有什么问题呢?"
유우시는 진심으로 이해 안된다는 얼굴을 했다.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엔 고작 이딴 이유로 나와의 헤어짐을 말하는 거야? 라고 써 있는 듯했다.
尊希露出了完全不懂的真挚表情。那张满是烦躁的脸,竟然因为这种理由要和我分手吗?看起来像是写满了这样的文字。
"리쿠가 말해주지 않으니까 혼자 알아봤어. 리쿠 취향에 맞추고 싶으니까 조사한 거야. 리쿠가 힘들고 부담 느끼는 거 싫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한 거야. 뭐가 문제야?"
"因为里库没有告诉我,所以我一个人去了解。我想迎合里库的喜好,所以我调查了。我不想看到里库感到困难和负担,所以我说我会全部自己来承担。有什么问题吗?"
난 리쿠가 나를 칭찬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我以为里库会表扬我...
이어지는 유우시의 말에 리쿠는 싸울 의지를 완벽하게 상실했다.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리쿠의 식어버린 태도를 보아 이윽고 유우시가 울먹거리기 시작했지만 리쿠는 전에 없이 냉정해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 결혼을 무르고 유우시에게서 발을 빼고 싶어졌다.
在优希连续的话语中,里库完全失去了斗志。从一开始就是无法沟通的对手。看着里库冷淡的态度,优希终于开始呜咽起来,但里库却比以前更加冷静了。他渴望尽快结束这场婚姻,摆脱优希。
"늦었으니까 오늘은 자고 가. 내가 나가서 잘게."
"....."
"내일 내가 들어올 땐 집에 유우시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안 보고 싶어."
"왜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그러게 왜 나를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들었어."
리쿠는 우는 유우시를 버려두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성큼성큼 현관으로 걸어가 구두에 발을 쑤셔넣는데 유우시가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리쿠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등판에 얼굴을 부비며 막 울었다. 나한테 왜 그래... 가지 마...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나랑 결혼해준다며..."
"말 나온 김에 좀 묻자. 나랑 결혼이 왜 하고 싶은 거야?"
유우시를 떼어낸 리쿠가 똑바로 마주보고 섰다.
"우리 만난지 삼개월 됐어. 너나나나 우리 서로 잘 몰라. 니가 그 망할 조사를 아무리 해도 결국 넌 날 몰라. 우리 아직 그런 사이야. 근데 무슨 결혼을 해? 니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질문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답을 바란 건 절대 아니었는데 열심히 고민하던 유우시가 꿈에도 듣기 싫은 오답을 내놨다. 그것도 확신에 찬 눈으로.
"으응..? 리쿠 잘생겼고 섹스 잘 해."
"....."
"그래서 내가 좋아해..."
아아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정말 영원히 바이바이 하고 싶어지는 완벽한 작별 인사로 들렸다.
거기서 기필코 끝을 냈어야 하는 건데. 마에다리쿠는 또다시 그릇된 선택을 하고야 만다. 그야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단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분노의 농도가 희석되어 있었고, 화가 난 원인보다 유우시의 상처받은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리쿠는 누구보다 퍼스널스페이스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이었지만 그걸 유우시에게 설명해준 기억은 없었고... 늦잠 덕에 피로가 풀린 탓인지 자꾸만 유우시 역성을 드는 생각만 하게 됐다. 그래도 걔가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닐텐데... 아무래도 날 많이 좋아하니까...
인간은 때때로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게 그 길을 가기 마련이다. 모텔방을 나와 집으로 향하면서 계속 유우시 생각을 했다. 더이상 보기 싫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는데. 하룻밤 지났더니 또 보고 싶기도 했다. 만약 유우시가 아직 제 집에 남아있다면... 그렇다면 제대로 얘기를 하고 다시 사이를 되돌려볼까. 어느새 택시가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유우시는 가지 않고 버티는 중이었다. 밤새 울었는지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감지도 빗지도 않은 머리카락은 마구 엉켜 뻣뻣한 빗자루 비슷했고... 도어락을 해제하고 들어오는 리쿠에게 우다다 달려와 유우시가 삐쳤을 때마다 나오는 너미워제일싫어죽여버릴거야 눈빛을 쏘아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리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근데 괘씸한 마음이 남아서 원하는 대로 해주기가 싫었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복잡한 눈으로 유우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잉... 결국 참다 못한 유우시가 먼저 우는 소리를 내며 양 팔을 내밀었다. 리쿠는 그제야 유우시를 품에 넣고 빳빳한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리쿠 미워... 벌써부터 외박하고..."
아니 이게 내가 잘못한 건가? 허그보다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힘을 주고 리쿠를 껴안는 유우시 때문에 어정쩡한 자세로 힘겨루기만 하는 자세가 연출됐다. 결국 리쿠는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해버렸다. 어차피 헤어질 것도 아닌데 이 이상 다투는 게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분이 안 풀리는지 주먹으로 리쿠 등을 몇 대 때려준(진짜 아팠다.) 유우시가 리쿠를 끌고 와 소파에 앉히고 종이와 펜을 꺼내 쥐여줬다. 각서 써.
"무슨?"
"앞으로 외박하면 죽겠습니다. 라고."
"그럼 너도 써."
"내가 왜? 난 외박 안 해."
"리쿠 동의 없이 뒷조사 하지 않겠습니다. 불법으로 개인 정보 열람하지 않겠습니다. 결혼해도 프라이버시를 준수하겠습니다. 라고 써."
"에..."
"쓰기 싫어? 그럼 나도 안 써."
리쿠 미간이 좁아들었다. 저 피곤함을 가득 담은 질린다는 눈. 넌 아쉬울 거 하나 없지. 또 조금 서러워진 유우시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말은 나도 안 써 라고 했지만 저 속 뜻은 분명 이 결혼 파토내겠다는 뜻일 거고. 리쿠는 늘 어쩔 수 없다는 양 져주는 듯한 태도를 취하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우시가 리쿠를 꺾었다는 생각이 든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덜 좋아하는 사람에게 묘한 갑질을 당하는 것도 같지만... 유우시는 일단 리쿠가 원하는 걸 제공하기로 했다. 별 법적 효력도 없는 종이 한 장으로 리쿠가 안심할 수 있다면 뭐. 리쿠 옆에 쭈그리고 앉아 리쿠가 불러주는 대로 악필을 휘적였다.
다 쓰고 착한 눈으로 리쿠를 올려다보니 리쿠가 뿌듯한 얼굴로 유우시 정수리를 쓰다듬어줬다. 유우시는 이제 맘 놓고 아양 떨었다. 어젯밤 혼자 리쿠 없는 침대에서 리쿠 냄새만 맡으며 울며 잠들었던 외로운 시간을 보상 받고 싶었다. 나 저렇게 좁고 딱딱한 데서 혼자 자본 거 처음인데... 어리광 부리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왠지 리쿠가 싫어할 것 같은 눈치여서.
"아 맞다. 리쿠한테 말 안 한 거 하나 더 있는데."
"제발. 싫어."
"에...? 듣지도 않고?"
"하... 뭔데."
리쿠 승진할 거야. 내가 아빠한테 말했어. 이것도 싫어? 나 또 잘못했어...?
유우시는 말이 없는 리쿠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를 썼다. 얼마 안 가 리쿠가 무표정으로 고맙다고 했다.
마에다리쿠는 제법 야망이 있는 남자였다. 본인도 몰랐던 출세욕을 방금 유우시의 말 한 마디로 강하게 느껴버려 좀 당황하는 중이었다. 리쿠는 자존심과 독립심이 강한 편이었는데, 그보다 주제파악을 훨씬 더 잘했다. 토쿠노유우시와의 결혼이 꽤괜인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일단 유우시의 기본 생활 방식이 그닥 남을 거슬리게 하는 편이 아니었고 집에만 오면 리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긴 했지만 그것도 신혼의 맛이려니 하고 넘기면 그럭저럭 알콩달콩한 기분이 들었다. 대놓고 뜨겁진 않았는데(리쿠가 느끼기엔) 적당히 따듯하긴 했다. 리쿠는 이 정도 온도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며 만족했다.
평화로운 일상 중 가끔 유우시의 이상행동이 있었다.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1. 누드에이프런으로 퇴근하는 리쿠를 맞이하기.
리쿠는 이날 집에 오자마자 놀라 자빠질 뻔했다. 나름 연애경험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기상천외한 섹시 이벤트는 받아본 적도 없었다. 맨몸에 앞치마만 있고 다리 베베 꼬고 있는 유우시를 보고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감도 안 잡혔다. 처음엔 볼에 바람 넣고 귀여운 척하고 있던 유우시도 원하는 리액션이 안 나오자 점점 무서운 표정이 되어갔다.
"왜 안 좋아해?"
"이걸 왜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건데?"
"안 섹시해?"
"..섹시한..가..?"
리쿠는 성욕이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 매일 같이 이어지는 유우시와의 섹스로 모든 정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게다가 낙하산으로 명패만 세워두고 놀고 먹는 유우시와는 다르게 회사에서 받는 정신적 육체적 기빨림도 무시할 수 없었고. 우선 씻기도 전에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달려드는 판타지적 섹스는 절대로 리쿠의 취향이 아니었다.
근데 취향을 논하기엔 남편님 얼굴이 썩어가고 있어서요... 리쿠의 나락 감지 센서는 다행히 제 역할을 잘하는 편이었다. 실시간으로 바닥을 치는 유우시의 표정이 리쿠 귓가에 시끄러운 경보음을 마구 울려댔다. 리쿠는 없는 힘을 쥐어짜내 유우시를 번쩍 안아 들었다. 또 금방 기분이 풀린 유우시가 리쿠 목덜미를 껴안고 막 좋아했다. 역시 날 좋아하는구나 리쿠♡
밥 먼저? 목욕 먼저? 아님 나부터?♥
진짜 얘는 저딴 쇼와적 대사를 또 어디서 배워온 거지... 리쿠가 아는 한 유우시는 자신 이외에 연애 경험이 제로였다. 분명 말도 안되는 드라마에서 보고 배웠거나 사촌동생인 사쿠야가 장난친답시고 리쿠 앞에서 승부대사로 해보라며 부추겼을 거다.
당연히 유우시. 라고 답한 리쿠의 발걸음은 어쩐지 욕실로 항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면 이 피로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해서. 다행히 같이 씻는 걸 좋아하는 유우시는 불평이 없었고 발기가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것에 비해 서기는 또 벌떡벌떡 잘 섰다. 과정은 망섹이었으나 결과는 폭섹하리라. 어찌 됐든 어영부영 섹쇼하는 신혼 라이프를 즐겼다.
2. 마에다리쿠 골초 강요 사건
이건 생각할 때마다 골 때려서 리쿠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일이다. 대충 요약해보자면 유우시는 리쿠를 관념적 골초로 생각했던 모양이고(리쿠:도대체 왜?) 자신을 배려해서 자신 앞에선 담배를 안 피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정말 비흡연자였던 리쿠에게 큰 실망을 하여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종내엔 한 번 흡연을 배워보라며 강요하기 시작한 사건을 말한다.
"피우고 싶으면 유우시가 피워; 난 하고 싶지 않아;;"
"에... 리쿠는 좀... 생긴대로 안 노네..."
내가 뭘 어떻게 생겼길래? 나 골초 관상인가;; 리쿠는 유우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짐작해보자면 유우시가 분명 이상한 감성의 미국 마초영화 같은 걸 봤을 거고 흡연장면에 어딘가 버튼이 눌렸을 게 뻔했다. 한동안은 리쿠 얼굴만 봐도 담배 얘기를 할 거란 소리다. 리쿠는 어디서 모형담배라도 구해볼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그냥 뭐든 요구하면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유우시 버릇 좀 고쳐주고 싶어서.
담배사건과 같은 결로 위스키 스트레이트로 마시라고 강요한 일(리쿠는 온더락은커녕 하이볼도 싫어한다), 운전할 때 예민한 표정 지으라고 시킨 거, 카페 가서 망고복숭아쥬스 주문했더니 캐붕 츳코미 들었던 사건 이하 몇백몇십개 정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가끔씩 아니 사실은 자주 리쿠는 피로감을 느꼈다. 유우시가 좋아하는 건 진정한 마에다리쿠 인간 본연이 아니라 유우시 취향으로 잘 가꿔진 꾸며낸 리쿠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3. 눈에 뻔히 보이는 폐급 질투 유발
이것도 결국 사쿠야가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빵떡 닮은 꼬맹이 고교생은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늘 사촌 형인 유우시의 결혼 생활에 훈수를 뒀다. 연애경험 제로로 결혼에 골인한 유우시보다 젠지 감성으로 연애하는 본인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걸 또 바보 같은 유우시는 곧이 곧대로 듣고와서 리쿠를 상대로 시험하고. 리쿠는 언젠가 사쿠야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어른들의 사정에 끼어들지 말고 입시나 열심히 하라며 슬쩍 돌려서 말해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유우시랑 사촌 아니랄까 봐 직언 아니면 통 알아듣지 못하는 사쿠야를 포기한 전적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가르쳐주는 연애스킬 따위 당연히 리쿠에게 먹힐 리 없었고 사쿠야에 대한 유우시의 신뢰도도 점차 떨어져갔다. 리쿠는 잘 됐다고 생각하며 유우시를 좀 귀여워했다. 유우시는 저럴 때가 귀여웠다. 작정하고 목소리 갈아끼우며 애교 부릴 때 말고 무방비하게 천연 속성을 드러낼 때. 사랑받고 싶다고 안달나서 투정 부릴 때 말고 가만히 기다릴 때. 당분간 사쿠야랑 연락 안 할 거라고 삐친 유우시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었더니 유우시 귀가 빨갛게 익었다. 유우시는 리쿠가 예고 없이 애정을 줄 때 꼼짝없이 굳어버렸다. 에... 이런 건 내 담당이잖아... 같은 말을 하면서. 사쿠야랑 놀 시간 있으면 나랑 놀아줘. 리쿠는 빨갛게 익어버린 유우시 귓바퀴를 앙앙 물면서 헐렁한 잠옷 셔츠 안으로 불쑥 손을 집어 넣었다.
사쿠야발 연애 지식은 하도 풋내 나는 미완성의 그것이라 어이없긴 해도 귀엽고 웃기긴 했는데 유우시는 얼마 안 가 진짜 리쿠가 질투할 만한 행동을 해내고야 말았다. 그게 의도치 않은 행동이라 더 문제라면 문제였고.
유우시 지인 중에 오시온이라는 한국인이 있었다. 결혼 전 청첩장 모임에서 그를 봤을 때부터 리쿠는 느낌이 좀 쎄했다. 처음엔 단순한 의문이었다. 멘쿠이(얼빠)라면 둘째가래도 서러울 유우시가 어째서 그와 사귀지 않았지?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오시온이 미남형이었다. 국적 차이로 언어의 장벽이 있다기엔 오시온이 일본어를 너무나 잘했고. 심지어 리쿠가 모르는 유우시의 과거사와 성격적인 면면을 그날 그자리에서 오시온이 가르쳐줬다. 이 지점에서 리쿠의 자존심에 좀 금이 갔다. 유우시 남편 자격으로 청첩장을 돌리러 온 사람은 난데 왜 오시온이 나한테 유우시를 당부하고 있지? 마치 애틋한 사연으로 헤어진 전남친이라도 되는 마냥.
리쿠는 적당히 들어주다 능숙하게 대화 주제를 틀었다. 티는 안 났지만 기분이 꽤 저기압이었다. 자꾸 한국식 호칭으로 유우시를 부르며 습관적 스킨십을 하는 오시온이 신경쓰였고 그걸 아무런 경계도 없이 다 받아주는 유우시한테 꽤 짜증이 나서.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유우시한테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 화풀이를 했던 것도 같고. 영문을 모르는 유우시만 불퉁한 표정으로 리쿠 미워 말했었지.
오시온을 만나는 건 결혼식 당일이 마지막이었음 했는데. 생각보다 그를 만날 일이 종종 생겼다. 일단 오시온의 거주지가 리쿠와 유우시 신혼집 근처였고(있는 집 자식들 사는 동네 다 거기서 거기라) 오시온은 요청한 적도 없는 한국 음식을 자꾸만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왔다. 물론 리쿠만 달갑지 않았을 뿐 유우시는 방방 뛸 정도로 좋아했다. 게다가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유우시를 불러내기까지 했다. 자전거를 타자고 하질 않나, 쇼핑 같이 가달라고 하질 않나.. 하다하다 코시엔 관람까지 같이 다녀왔을 땐 너무 완벽한 국제연애커플의 데이트 코스 짜임새 같아서 헛웃음마저 나왔다.
분명 유우시는 리쿠에게나 맞춰주지 어디서나 만만해 보이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오시온한테는 모든 벽을 허물고 순둥이처럼 굴어줬다. 그걸 단박에 간파한 리쿠는 유우시가 오시온만 만났다하면 순식간에 기분이 참 뭣 같아졌고.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이런 유치한 질투심으로 고민하는 자신이 웃겨서 그만뒀다. 말해봤자 유우시가 못 알아들을 게 뻔했다. 왜냐면 유우시는 정말 오시온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서. 유우시를 납득시키려면 리쿠가 오시온을 경계하고 걱정해서 질투가 난다는 일련의 과정을 전부 말로 풀어놓아야 할텐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냥 쪽팔렸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유우시가 없었다. 말 안 하고 외출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뒤늦게 라인을 뒤져보니 오늘 친구들 만나서 늦을 것 같다는 메세지가 와있었다. 두시간이나 전에 보냈는데 이제야 읽었다. 유우시 또 삐쳤겠네. 리쿠는 재밌게 놀다 돌아오라는 답장을 보내고 씻으러 들어갔다. 껌딱지 같은 유우시 없이 홀로 조용히 보내는 저녁 시간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평화롭고 좋았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유우시가 안 들어왔다. 리쿠는 슬슬 짜증이 났다. 외박은 곧 죽음이라며 빠른 귀가를 강조하던 건 유우시가 아니었던가? 더 문제는 아까 보낸 리쿠의 답장을 여즉 미독하고 있는 유우시였다. 너 대체 얼마나 재밌는 거에 정신이 팔렸길래. 리쿠는 귀찮느니 뭐니 해도 기본적으로 칼답이 스탠스인 사람이었고 유우시는 본인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읽씹/안읽씹을 습관적으로 해대는 사람이었다. 리쿠가 먼저 연락을 하는 일도 거의 없긴 했지만(항상 리쿠가 보내기도 전에 유우시에게서 문자 폭탄이 오는 편) 그래도 유우시에게서 답이 없을 땐 주로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유였다. 굉장히 맛있는 걸 먹는 중이거나, 굉장히 흥미로운 컨텐츠를 보는 중이거나.
이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이유로 회신이 없을 때와 야심한 시각 집밖을 나가서 연락 스루하는 건 엄연히 다른 얘기지. 리쿠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버리고 빠르게 옷을 갈아 입었다. 대충 차키와 지갑만 챙겨 집을 나서는데 한 가지 불길한 예감이 찌릿하게 뇌리를 스쳐갔다. 오시온.
지하 주차장에서 차가 올라오는 걸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오시온이 살고 있는 맨션 쪽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전력질주로 뛰어와서 뒷덜미가 금세 흠뻑 젖어들었다. 오시온은 4층 산다고 했었다. 몇 번 유우시를 데리러 왔을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로변 쪽으로 테라스가 터진 호수였던 것 같고... 이윽고 오시온의 맨션 앞에 다다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리쿠는 답지 않게 욕을 했다. 오시온 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차를 빼내면서 계속해서 유우시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 실패 멘트를 다섯 번쯤 들으니 미칠 지경이 됐다.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여섯번째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드디어 그 돌아버릴 것 같던 연결음이 끊어지고 목소리가 들렸다. 리쿠는 이미 평정심을 잃은지 오래였다. 싸울 때도 안 내던 큰 소리로 어디냐고 물었다.
-여보세요? 아 리쿠군? 나 시온인데 우시가 너무 많이 취해서...
아마 과속 딱지가 몇 장이나 날아올 거다. 리쿠는 미친사람처럼 밤거리를 폭주해서 달려와 놓고 또 주정차 금지 구역에 멋대로 차를 세웠다. 대충 비상등 켜놓고 급하게 내려 오시온이 일러준 술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만취 상태로 이자카야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유우시를 일으켜 빼내고 축 처진 몸을 업어야하나 들처메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오시온이 더 빠르게 움직여 유우시를 부축하려 했다. 우시 괜찮아? 리쿠 왔어. 리쿠는 지금 그런 꼴을 잠자코 봐줄만한 참을성이 휘발된 상태였다. 오시온에게 반쯤 기대어 있는 유우시를 세게 잡아당겨 바로 세웠다. 이미 취해서 정신이 나간 유우시보다 오시온이 더 놀란 눈을 하며 리쿠를 쳐다봤다.
똑바로 걸어. 리쿠가 자꾸만 쓰러지려는 유우시 허리를 받쳐 안고 차까지 무리하게 걷게끔 만들었다. 만취한 와중에도 리쿠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아까보단 자세를 바로 하려는 노력을 하는 듯 보였다. 조수석에 유우시를 집어넣고 의자를 뒤로 제껴 눕혀주는데 오시온이 또 따라 나왔다. 유우시 핸드폰을 손에 들고.
"감사합니다."
짧게 목례를 하고 손에 들린 폰을 빼앗아 드는데 오시온이 정도를 모르고 신경을 긁었다.
"근데 우시 요즘 무슨 일 있나요?"
"네?"
"아니 아까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르다 막 울길래... 리쿠군도 알겠지만 우시가 그렇게 잘 우는 애가 아니잖아요."
가라오케까지 다녀오고 아주 환장하게 놀았군. 리쿠는 더 이상 짜증을 숨기지 않고 오시온을 쳐다봤다. 잘 우는 애가 아니긴. 유우시는 원래 눈물이 많았다. 오늘도 노래 부르다 그냥 울고 싶어졌나보지.
"뭐 울고 싶었나 보죠.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쪽이 상관할 건 아닌 것 같은데."
"네? 되게 말을.. 남편이 아니라 남처럼 하시네요."
리쿠는 뭔가 오시온을 한 대 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내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오밤중에 시내 한복판에서 외국인이랑 치고 박고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고, 또 그 싸움의 원인이 본인의 제어할 수 없는 질투심에서 비롯된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애써 감정을 갈무리하고 오시온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남편인 제가 먼저 알았겠죠? 필요 없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우시 일어나면 연락 달라고 전해주시고요~"
정말 마지막까지 사람을 긁네. 역시 오시온은 특별하게 재수가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운전석 문을 열던 리쿠가 타려다 말고 오시온을 불러 세웠다. 근데,
"네?"
"유우시예요. 우시가 아니라."
그 이상한 호칭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네. 리쿠는 얼 빠진 오시온을 버려두고 차를 움직였다. 한 방 날렸다는 기분은 전혀 안 들었고 오히려 점점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29개의 댓글
진짜아아아 너무 좋아 죽을거같아아아아
이새키 엄청난 질투남이연네 ㅋ
아 진짜 너무 귀엽다 니혼진mz고딩사쿠야가 전수해준 내 남자 질투 유발 작전˚₊·—̳͟͞͞♥이 얼마나 훈녀스킬이었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얼마나 귀여울까 !!!!!!!!!!!!!!!!!!!!!!!!!!!!
헉.......... 너무 귀엽다 진짜 미친 !!!!!!!!!!!!!!!!!!!!!!!!!!!!!!
리쿠야 화내지마><♡ 일본에선 프라이버시?가 어디까지 존중되는지는 모르겠나~_~ 한국에선 전여친 전썸녀 수색이 흔한일이라고 ㅋ 싸이월드 파도타기에서부터 인스타 염탐까지 내려온 "내 남자 취향 탐구"문화이올시다
이게 사랑 아니면 뭔데,,,
방긋 웃는중
마에다상 사랑해서 결혼한거 아니라며… 지금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지 설명해봐
마에다야.. 니 그거 사랑이다...
마에다 우시 왠지 슬퍼서 우는것같아 이 머저리야
유우시 취향으로 잘 가꿔진 꾸며낸 리쿠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 아니 이 문단 전체가 완전ㅋㅋㅋ 유유시 일기장 들춰본거 아니냐구요ㅠㅠㅋㅋㅋ
헉 잠만 너무재밌잖아
근데 마리쿠 대단하다 나엿으면 회장님 아들인 거 알았을 때 표정관리 못하고 계속 실실 웃엇을 듯 한 한달 동안
마에다제발너자신을알라
누가 나 유우시랑 사랑 가득한 결혼한다고했냐..
유우시 좀 귀엽고 사랑스럽고 나랑 속궁합도 잘 맞는데
그외에 모든게 나랑 너무 안 맞고 이상함
볼수록 어이없는 애임
왠 외국인형이랑 넘 친해서 좀 신경쓰이게나하고..짜증나네...
ㄴ 엄청 사랑하는거 같구만 ...
와 진짜 재밌어요
사랑없는결혼 <-뭐라는거여. 사랑이줄줄새는데지금
엄청
사랑하는데 지금
질투 안하는척하다가 밤에 남자들이랑 있다니까 눈에서 활활 불뿜으면서 황정음 데리러가는 지붕킥 이지훈 같음 ㅋㅋ
ㄹㅇ 존나 사랑해서 결혼했구먼 무슨ㅋ
존나 좋아서 결혼했구만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