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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좀 이상한 광경이었다.
        
       완전히 멈춰버린 세상에서 동전과 그 위에 있는 내 손가락만 움직이는 광경은.
        
       카네코와 이케다의 손가락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분명히 그 둘의 손가락도 동전 위에 확실하게 놓여있었을 텐데, 동전은 마치 마찰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그대로 움직여 예스를 가리켰다.
        
       게다가 이 동전은 내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자기 멋대로 예스의 자리로 향했을 뿐.
        
       하지만, ‘여’는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여가 행하려는 일을 방해하러 온 것이냐?”
        
       이번에는 동전이 ‘NO’ 쪽을 향했다.
        
       “그렇구나.”
        
       목소리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마지막 질문이구나.”
        
       여는 마치 눈앞에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놓고 고르는 듯 뜸을 들였다. 콧노래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들린 건 아니고. 그건 엄청나게 이상한 감각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 질문으로 하면 되겠구나.”
        
       키득키득, ‘여’는 내 귀에 대고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귀하는— 신을 믿는지 궁금하구나.”
        
       “…….”
        
       만약 내가 지금 입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딱히 뭔가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말하기 싫어서, 는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그냥 할 말을 잃어서.
        
       뭔가 엄청나게 근원적인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별로 대단한 것도 없는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여’는 기쁘다는 듯 말했다.
        
       동전은 여전히 ‘NO’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귀하는 신을 믿지 않는구나. 재미있구나.”
        
       뭐가 그리도 재미있다는 것인지.
        
       “이 몸을 준비한 여를 신으로 생각하지는 않겠구나?”
        
       동전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 미안하구나. 이미 질문을 세 번 다 소비했는데, 하나 더 물어버렸구나. 그러니, 여는 귀하에게 한 가지를 더 알려주고 싶구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분명히 소리만 들리는데도,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숨을 불어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매우 불쾌했다.
        
       “먼저, 약속했던 것부터 알려주자꾸나. 내 이름은—”
        
       목소리는 내 귀에 자기 입을 바싹 붙이고 말했다.
        
       “슈라-니르라스. 천 마리 새끼 양의 어미이니라.”
        
       “…….”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가 재미있기라도 한 것인지, 여는 다시 한번 키득거렸다.
        
       “그리고, 두 번째. 귀하는 나의 천 한 마리 째 새끼 양이니라.”
        
       깜빡.
        
       나의 눈이 깜빡였다.
        
       “앗!?”
        
       그리고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는 것에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다.
        
       “어? 뭐야? 뭐야?”
        
       먼저 소리 지른 쪽은 이케다였다. 어찌나 놀랐는지, 딱 10엔짜리 동전의 높이만큼 허공에 떠 있던 자기 손가락을 얼른 가슴께로 가지고 갔다. 두꺼운 안경이 코 위로 흘러내리자, 그 반대쪽 손으로 얼른 쓸어올렸다.
        
       카네코는 자기 손가락과 내 손가락을 번갈아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팡!
        
       그리고 두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역시 소질이 있잖아! 으응, 그게 아니라 그냥 오컬트 그 자체 아냐!? 이즈미, 봤지, 봤지!? 분명히 갑자기 손가락이 움직였어! 내가 동전을 꽉 누르고 있었는데도 저쪽으로 움직였다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데 오컬트 부가 아니라고!?”
        
       “헛소리하지 마!”
        
       이케다는 버럭 소리쳤다.
        
       “네가 이상한 짓을 했을 뿐이잖아! 뭐야? 마술이니? 부원을 데리고 가려고 속임수까지 쓰다니 너무하네!”
        
       “아니, 세상에 이런 마술이 어디 있다고?”
        
       카네코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케다는 얼른 내 한쪽 팔을 끌어안았다.
        
       “절~대로 못 데려가. 그리고 네 동아리는 정식 인가도 받지 못했고, 고문 선생님도 없잖아? 무엇보다 우리가 콧쿠리상한테 물어보기도 전에 동전이 ‘NO’를 향했다고. 쿠로사와도 싫다고 한 셈이잖아.”
        
       음.
        
       뭐 마지막 질문이 그런 질문이었으니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애초에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거 보면 딱히 그런 거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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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보다, 슈라-니르라스라니.
        
       ……누가 봐도 슈브 니구라스 짝퉁이잖아.
        
       게다가, 뭐? 천 마리 새끼 양의 어미? 설정을 그대로 써먹을 거면 이름은 왜 또 따로 바꾼 건데?
        
       그게 아니라면 역으로 ‘저작권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거나. 아무튼 겹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내 왼손에 있는 건 흑염룡이 아니라 흑염소였나.
        
       삶아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네. 참 없어 보이기도 하지.
        
       “……그럼, 간식 먹어도 될까요.”
        
       “아, 물론이지! 어차피 당장은 먹을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어서 간식도 많이 남아. 부활동비로 책을 사고 남는 돈은 전부 간식을 사거든.”
        
       아주 훌륭한 동아리였군.
        
       그러니까 이 간식은 하나가와 고등학교의 돈으로 산 것이라는 소리다.
        
       내 등록금은 이걸로 뽕을 뽑아야겠다.
        
       대학교에 갈지 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아깝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라야끼 쪽으로 손을 뻗는데—
        
       끼이익, 하고, 뭔가 아까도 들었던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었더라, 하고 머리 한구석이 천천히 돌아가는데, 문예부실의 미닫이문이 맹렬한 기세로 열렸다.
        
       드르륵, 이 아니라 콰르륵, 이라고 하면 될까. 뒤에 쾅! 을 붙이면, 그럭저럭 비슷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도라야끼를 다시 바구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봉지를 까기 전에 떨어뜨렸으니 못 먹게 되지는 않았다.
        
       “……쿠로사와?”
        
       어째 점심시간 때마다 듣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열린 문 쪽을 보았더니 그곳엔 유우키 유카가 서 있었다.
        
       문을 잡은 채, 땀을 흘리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깨에는 뭔가 천으로 감싸인 것을 맨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안에는 ‘무명’이 들어있을 것 같은데.
        
       “……유우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우키? 혹시 친구니?”
        
       이케다가 내 뒤에 숨은 채 물었다.
        
       “뭔가…… 호쾌한 등장이네.”
        
       카네코는 조금 얼빠진 채 중얼거렸다.
        
       유우키의 눈은 나와,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두 명의 세일러복 소녀와, 책상에 펼쳐진 콧쿠리상 종이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그러고 보니 저 가문은 요괴의 기색을 느낄 수 있다고 했던가.
        
       유우키가 나를 보는 시선이 날카로웠다.
        
       “어떻게 된거냐니?”
        
       이케다가 물었다.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카네코가 물었다.
        
       “…….”
        
       유우키는 그제야 지금 내가 그저 문예부실에 앉아 간식을 겨우 하나 집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심을 완전히 거둘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유우키는 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혹시 입부 희망자야?”
        
       이케다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유우키는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이케다를 보며 물었다.
        
       “쿠로사와도 가입했나요?”
        
       “물론이지! 지금 가입하면 간식은 공짜야!”
        
       나중엔 돈 받는 건가?
        
       뭐 상관없지. 공짜일 때 양껏 먹어두자.
        
       나는 겨우 손을 내려서 도라야끼를 집었다.
        
       너무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천천히 내 앞으로 끌고 와, 책상 위에서 천천히 봉투를 뜯었다.
        
       도라야끼는 한국에선 보통 ‘단팥빵’으로 번역되는데, 엄밀히 따지면 둘은 다른 것이다. 단팥빵은 문자 그대로 단팥 속이 들어간 빵이고, 도라야끼는 팬케이크 사이에 팥소를 넣어 붙인 거다.
        
       식감도 완전히 다르고, 맛도 완전히 다르다.
        
       입 안에 조심스럽게 넣고 씹으니, 겉면만 구운 팬케이크가 부드럽게 잘렸다. 평소에 먹는 수분 없는 퍽퍽한 콧페빵 따위와는 다르다.
        
       “……그렇게 맛있어?”
        
       옆에서 보고 있던 이케다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마다.
        
       나는 팬케이크도 좋아하고 팥도 좋아하거든.
        
       아무래도 꽤 유명한 곳에서 사 온 모양이다. 아, 역시 동아리에 가입하길 잘했어.
        
       아르바이트 없이 이걸로 저녁을 때워도 괜찮지 않을까?
        
        
       *
        
        
       결국 도라야끼만 세 개 집어먹고 동아리 활동을 끝냈다.
        
       이케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보다는 오늘 하루 동안 부원을 둘이나 확보할 수 있었다고 엄청나게 좋아했다. 하긴, 문예부라고 매일 책만 읽지는 않겠지.
        
       아니, 원래는 책만 읽어야 하는데 너무 놀다 온 건가?
        
       ……아무튼.
        
       카네코는 유우키는 딱히 오컬트 부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긴 나를 고른 것도 사다코 닮았다고 고른 것이니, 팔에 완장만 차면 누가 봐도 풍기 위원이라고 생각할 유우키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 모양이다.
        
       본인도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덕분에 필요할 때 그…… 슈라…… 슈브 니구라스 짝퉁을 부를 수 있는 조건을 알 수 있었으니까.
        
       내 손목에 새겨진 것을 통해 부른 뒤라서 쉽게 부를 수 있게 된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 말대로 최소한의 조건만 있으면 부를 수 있는 걸까?
        
       크툴루 신화에도 비슷한 설정이 있었다.
        
       대부분의 신은 인간이 발음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이름이라 웬만해서는 인간이 부르는 것으로 소환이 불가능하지만, 하스터만큼은 사람의 발음으로 쉽게 부를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언제나 막 튀어나오는 건 아니고 하스터 맘이라니, 그 슈브 니구라스 짝퉁도 비슷한 것이리라.
        
       애초에 이름도 안 불렀는데 튀어나왔고 말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자꾸 내 발소리와 겹치는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췄더니 그 발소리도 함께 멈췄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우키는 얼른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
        
       나는 결국 유우키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바람이 살짝 불었다. 하늘은 노을 졌고, 우리가 학교 끝난 직후도 아니고 부활동이 완전히 끝난 뒤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학교를 나왔기에 길가에는 학생도 거의 없었다.
        
       분위기만 보면 꼭 고백이라도 주고받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그보다는, 나는 지금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스토커 예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예쁜 여자애가 따라다니는 거야 환영이지만, 등에 일본도를 이고 다니는 애는 좀 그래.
        
       나는 유우키 쪽으로 걸어갔다. 유우키도 그쯤 되니 불지도 못하는 휘파람을 부는 건 포기한 모양인지, 시선을 다시 나한테로 옮겼다.
        
       “……할 말 있어?”
        
       내 질문에 유우키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표정이 되었다.
        
       나더러 대놓고 요괴냐고 묻기는 조금 그럴 거다. 평소에는 요괴 티가 전혀 나지 않으니까.
        
       아니, 애초에 내가 요괴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이 몸은…… 아바타라는 것 같고, 굳이 따지자면 원주인 쪽이 요괴인 셈이니까.
        
       그렇다면, 아마 얘가 느낀 것은 내가 미우라에게 느낀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리라.
        
       “어, 그…….”
        
       하지만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네게 요괴가 따라붙었으니 며칠 뒤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면 나는 미우라를 구할 때 그 고생을 하진 않았을 거다.
        
       “할 말 없으면, 갈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뒤로 돌아섰다.
        
       네가 따라오는 걸 알고 있다고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뒤따라오는 게 몹시 껄끄러워질 테니까.
        
       유우키가 착한 애라는 건 알고 있다. 아마 지금 날 따라오는 것도 순전히 선의에서 하는 일이리라.
        
       그러다가 내 정체가 드러나면 그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질 거고.
        
       그렇게 뒤로 돌아서던 내 몸은, 뭔가에 턱 걸린 것처럼 중간에 멈췄다.
        
       뭐 대단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그냥 유우키가 손으로 내 팔을 잡았을 뿐이다.
        
       “……잠깐만.”
        
       “왜?”
        
       내가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어보자, 유우키는 조금 당황한 듯하다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오늘,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
        
       본인이 말하고도 참 어이없었던 모양이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걸 보면.
        
       “내가 왜?”
        
       “…….”
        
       이번에는 유우키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만약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야키.”
        
       유우키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오늘 저녁, 스키야키야.”
        
       나는 잠깐 유우키를 올려다보았다.
        
       “스키야키.”
        
       유우키가 마치 강조하듯 한 번 더 말했다.
        
       “갈게.”
        
       나는 대답했다.
        
        
       *
        
        
       그리고 나는 그렇게 대답한 결 아주 약간 후회했다.
        
       유우키 유타는 요괴를 사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집안도 대대로 그 직업을 대물림해왔다.
        
       집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약 그냥 평범한 주택이나 맨션이었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다.
        
       유우키의 집은 신사였다.
        
       다마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유우키네 신사가 있는 가마타 역까지는 20분 조금 넘게 걸렸다. 거기서 내려서 다시 15분 정도 느긋하게 걸으니 신사가 하나 나왔다.
        
       “여기야.”
        
       신사는 단독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 중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왠지 관광지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 정말로 사람 사는 거주지까지 들어와야 하는 곳이니까.
        
       “꽤 오래전에 지어진 곳이라 그래. 그러니까 신사가 먼저 지어지고, 근처 주택들이 나중에 지어진 거지.”
        
       유우키의 말에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사 입구에는 토리이가 서 있었다. 새빨갛게 칠해진 토리이 아래에, 천으로 감싼 카타나를 어깨에 지고 서 있는 검은색 세일러복 포니테일 소녀.
        
       뭔가 그림이 무척 어울렸다.
        
       유우키가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들어갔다.
        
       주거지 한가운데 있다고는 하지만 신사는 생각보다 넓었다. 다른 곳은 대부분 평지라는 인상이었는데, 이 신사만 위로 불룩 올라와 있다고 해야 하나. 계단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완만한 경사로가 잠깐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경사로를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유우키 유카, 생각보다 엄청 부잣집 딸이구나, 라고.
        
       뭐 그렇다고 어디 회장 딸처럼 돈을 펑펑 쓸 정도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도쿄에 이만한 땅덩이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게다가 올라가는 와중에 유우키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올라갔다. 보아하니 방문하는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무녀도 있었다!
        
       “아, 쟤는 알바야.”
        
       유우키는 그 무녀와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그런가…….
        
       아니, 나도 읽어본 적은 있으니 알고 있지만, 왠지 관계자 입으로 들으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뭔가 산타클로스 무릎에 앉았는데 옆에 서 있던 할머니가 사실 자기 남편이 분장한 거라고 알려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바로 할아버지께 가자. 지금쯤 방에서 TV보고 계실 테니까.”
        
       ……뭔가 생활의 향기가 짙게 느껴져서 다시 한번 조금 깼다.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꽤 널찍한 신사를 가로질러, 본당을 지나—
        
       —다시 신사 밖으로 나와, 우리가 들어온 반대편의 일반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
        
       어, 신사 안에서 사는 게 아니었어?
        
       “신주는 아버지니까.”
        
       뭔가 다시 한번 환상이 깨졌다.
        
       아니, 그럴 거면 굳이 신사를 가로지를 필요가 있나? 이렇게 가는 쪽이 지하철에 더 가깝기라도 한 건가?
        
       일본식 가정집 특유의 낮은 대문을 지나 문 앞으로 간 유우키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다녀왔어요. 친구 데리고 왔는데 괜찮죠?”
        
       유우키는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렇게 크게 말했다.
        
       안에서는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들어와도 돼.”
        
       나는 말없이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내가 사는 집으로 갈 때는 그냥 현관 바닥에 신발을 대충 벗어던져 두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 친구 집까지 오면서 그럴 정도로 얼굴이 두껍지는 않다.
        
       유우키와 마찬가지로 현관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으응?”
        
       유우키가 아마도 거실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나서야, 거실에 있는 유우키네 할아버지가 반응했다.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는 것을 보니 아마 주무시고 계셨던 모양이다.
        
       거실 쪽에선 TV 소리가 났다. 참치잡이 어선이 파도와 싸우며 와이어 두께의 낚싯줄로 참치를 낚는 다큐멘터리인 것 같다.
        
       “친구 데리고 왔어요.”
        
       “오, 유카.”
        
       할아버지는 조금 늦게 반응하면서 소파에 일어나 앉았다.
        
       “같이 저녁 먹으려고 하는데, 괜찮죠.”
        
       “그럼, 그럼, 괜찮고말고—”
        
       그렇게 말하며, 유우키네 할아버지는 조금 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았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음.
        
       생각해보면 굳이 유우키를 우리 학교에 전학 보낸 건 이 집안의 사람들일 거다. 그러니, 당연히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그런 쪽을 보는 눈이 있겠지.
        
       어쩌면 유우키보다 더 대단할지 모르고.
        
       “……쿠로사와 코토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그냥 눈싸움이나 하고 있기는 조금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으응, 그러냐. 코토네라고 하는구나.”
        
       내 목소리를 들은 유우키네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유카. 혹시 먼저 준비를 조금 해주지 않겠냐? 나는 화장실에 좀 다녀오마.”
        
       “알았어요.”
        
       유우키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를 보며 말했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면서 쉬고 있어. 어차피 아버지도 오셔야 하니까.”
        
       “……응.”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라고 해도 말이지.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으므로 이 시간에 뭘 봐야 할지도 모른다만.
        
       “앉아서 쉬고 있거라.”
        
       유우키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거실에 혼자 남았다.
        
       …….
        
       뭐, 그럼 좀 쉬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파에 조심조심 앉았다가—
        
       “……편하다.”
        
       한순간에 녹아내릴 뻔했다.
        
       누가 이사 가면서 소파 하나 안 버리나? 나 혼자라도 끌고 집으로 갈 생각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TV에서 나오는 참치낚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유카. 대체 데리고 온 거냐?”
        
       “네?”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할아버지는 유카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와 물었다.
        
       “쿠로사와 코토네라고 했나? 네 눈에는 저 애가 어떻게 보이냐?”
        
       “그야…… 고등학생, 이죠?”
        
       아니면 중학생이거나. 쿠로사와의 몸은 또래와 비교하면 마르고 작아 보였으니까.
        
       “할아버지는 뭔가 보이세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고작 그런 것으로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요괴는 사람을 잡아먹지. 단순히 살을 뜯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빨아먹기도 하고, 원망을 핥아먹기도 한다. 유카, 그렇다면 그 요괴를 먹는 존재도 있지 않겠느냐?”
        
       “쿠로사와가요?”
        
       “저 본인은 어떨지 모르지. 뭔가에 쓰였다고 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냄새가 난다. 저 아이는 분명 피를 뒤집어쓴 적이 있어. 그것도 사람의 것이 아닌 피를. 너도 뭔가를 느꼈으니 데리고 온 것이 아니냐?”
        
       “…….”
        
       유카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네, 저도 말씀드리려고 하긴 했는데—”
        
       유카는 쿠로사와를 데리고 오기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
        
       “정체가 뭘까요?”
        
       “……그건 차차 알아가야겠지. 어쨌건 우리가 알게 된 이상 가만히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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