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빈은 미칠 듯이 무료했다. 방금 전 최연주가 주고 간 편지와 직접 만들었다는 수제 쿠키가 한쪽 바닥에 성의 없이 방치돼 있었다. 박원빈은 턱을 괸 채 선물을 내려다보다 책상 위로 상체를 늘어뜨렸다. 박원빈이 고개를 살짝 틀어 하늘을 곁눈질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확실히 볕이 더 뜨거워졌다. 5교시만 되면 춘곤증으로 사정없이 고개를 흔들어대는 애들 때문에 정년까지 얼마 안 남은 나이 든 교사는 출석부로 교탁을 탁탁 내려치는 게 일상이 됐다. 교사의 호통에 박원빈이 뭉그적대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朴元彬无聊得快要发疯。刚刚崔 연주送来的信,还有据说是亲手做的手工饼干,都被他没精打采地扔在一边。朴元彬用手托着下巴,看了看那些礼物,然后把上半身趴在了书桌上。他微微转头,斜眼看着天空。万里无云的碧蓝天空。的确,阳光更热烈了。一到第五节课,孩子们就因为春困症而不停地摇头晃脑,眼看就要退休的老教师只能用考勤簿敲打讲台,这已经成了家常便饭。老师一声怒吼,朴元彬慢吞吞地勉强起身。

 

박원빈은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요즘 박원빈 머릿속은 온통 정성찬이다. 학교에서 키스까지 해대던 여친을 뺏으면 정성찬이 노여워할 줄 알았는데 어째 타격감이 영 별로였다. 되려 박원빈한테 귀찮은 일만 늘었다. 시간 날 때마다 저를 찾아오는 최연주 때문에 오히려 박원빈이 골머리를 앓았다. 정성찬은 도대체 뭐가 재밌어서 최연주랑 이딴 짓을 했던 거지. 박원빈은 정성찬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朴元彬心不在焉地听着课。最近,他的脑子里全是成灿。他以为抢走成灿在学校里卿卿我我的女朋友,成灿会勃然大怒,但结果却毫无打击感。反而,朴元彬自己麻烦事更多了。因为崔 연주总是抽空来找他,反而让朴元彬头疼不已。成灿到底觉得和崔 연주做这种事有什么意思呢?朴元彬完全无法理解成灿。

 

“편지 안 읽어보냐?”  “不看看信吗?”

“먹어.”  “你吃。”

“뭐?”  什么?

“저거 먹고 싶어서 그러잖아. 나 안 먹으니까 너 먹으라고.”
“明明想吃才这样的吧。我不吃,所以让你吃。”

 

박원빈은 쿠키를 향해 턱짓했다. 친구 놈은 앞자리 의자를 당겨 앉아 주섬주섬 쇼핑백을 들어 편지는 박원빈 책상 위에 두고 쿠키만 챙겼다. 근데 진심 편지 안 읽음? 박원빈은 인상을 쓰고 편지를 책상 서랍에 밀어 넣었다. 친구 놈이 박원빈의 싹수에 혀를 내둘렀다. 자기 친구라지만 이번 일은 박원빈이 너무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의 여자친구를 작정하고 꼬시다니. 유교 국가에서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그래놓고 저 태도 좀 봐.
朴元斌朝饼干努了努嘴。他朋友拉过前面的椅子坐下,磨磨蹭蹭地拿起购物袋,把信放在朴元斌的桌上,只拿走了饼干。“我说你真不看信啊?” 朴元斌皱着眉头把信塞进课桌抽屉里。他朋友对朴元斌的德行直摇头。虽然是自己的朋友,但这次朴元斌做得太过分了。再怎么说,也不能处心积虑地勾引哥哥的女朋友啊。这在有儒家传统的国家是绝对不允许的。而且你看看他现在的态度。

 

그 사이 앞문으로 들어온 반장이 화이트보드 위에 자습 두 글자를 크게 적었다. 그걸 본 박원빈은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냈다. 박원빈 친구가 양심상 쿠키를 한 번 더 권유했다. 박원빈이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친구 놈은 혀를 찼다. 너 그러다 벌 받아 인마. 그러건 말건 박원빈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켰다. 아 재미없어. 재미없어. 그러다 무심코 시선을 옮겼는데 박원빈의 얼굴에 별안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체육복 차림에 축구공을 손에 들고 운동장으로 걸어가는 정성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원빈은 눈으로 열심히 정성찬을 쫓았다. 정성찬은 친구와 주먹질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쳤다. 정성찬은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큰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정성찬과 무려 16년을 부대끼며 산 박원빈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웃음이었다. 박원빈 심장이 쿡쿡 쑤셨다.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이 나더니 몸에 열이 올랐다. 박원빈은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불끈거렸다.
这时,班长从前门进来,在白板上大大的写了“自习”两个字。 朴元斌见状,从书包里拿出耳机。 朴元斌的朋友出于良心,又劝了一次饼干。 朴元斌不耐烦地转过头。 朋友咂了咂舌。“你这样会遭报应的,臭小子。” 朴元斌没理他,戴上耳机开始放音乐。“啊,没劲,真没劲。” 突然,他无意中转移视线,朴元斌的脸上立刻焕发了光彩。 因为他看到郑成灿穿着运动服,手里拿着足球,正走向运动场。 朴元斌的眼睛 열심히 追随着郑成灿。 郑成灿和朋友互相捶打着肩膀,开着玩笑。 郑成灿笑得眼睛都弯了起来。 他晃动着高大的身躯笑着。 和郑成灿相处了足足 16 年的朴元斌,从未见过他露出这样的笑容。 朴元斌的心脏一阵阵抽痛。 感觉内脏都扭曲了起来,身上也开始发热。 朴元斌咬紧牙关, 턱 肌肉 紧绷着。

 

정성찬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운동장을 훨훨 날아다녔다. 정성찬은 골키퍼가 중앙으로 걷어찬 축구공을 받아 바로 중거리 슛으로 이었다. 상대 골키퍼가 온몸을 날렸으나 정성찬이 날린 공은 막지 못했다. 친구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제대로 신이 난 정성찬을 보며 박원빈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정성찬이 부모에게 버려지지 않았다면, 더 나은 양부모를 만났다면,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가정에 입양을 갔다면, 고작 운동장 따위가 아니라 더 큰 세상에서 마음껏 재주를 떨치고 있지 않았을까. 
郑成灿如鱼得水般在运动场上自由飞翔。他接住守门员踢到中央的足球,直接一脚中距离射门。对方守门员奋力扑救,却没能拦住郑成灿踢出的球。看着和朋友们击掌欢庆,兴高采烈的郑成灿,朴元斌突然冒出一个想法:如果郑成灿没有被父母抛弃,如果他遇到了更好的养父母,如果他被领养到不是我们家的其他家庭,他是不是就不会仅仅局限于运动场,而是在更大的世界里尽情施展才华呢?

 

그럼 나는?  那么我呢?

 

내내 창밖을 보던 박원빈이 마침내 정성찬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박원빈 표정이 어딘가 못마땅해 보였다. 정성찬은 박원빈 없이도 너무나, 아니 오히려 더 잘 살아갈 것 같았다. 박원빈은 어쩐지 씁쓸했다. 뒤늦게 우애 깊은 형이 갖고 싶어지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이 또한 열등감의 일종인가? 박원빈은 자꾸 헷갈렸다.
一直望着窗外的朴元斌终于将视线从郑成灿身上移开。朴元斌的表情看起来有些不满。郑成灿没有朴元斌似乎也能过得很好,甚至可以说更好。朴元斌不知为何感到一丝苦涩。难道是现在才想拥有一个友爱的哥哥吗?或者这又是自卑感的一种?朴元斌总是感到困惑。






본헤드플레이  本垒打

2



박원빈이 본인 때문에 혼란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정성찬은 저를 찾아온 최연주와 지금 뜻밖의 대면 중이다. 한 번쯤은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정성찬은 말끝을 흐리는 최연주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 이해해. 정성찬의 은은한 목소리가 살랑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최연주가 고개를 들어 저보다 한참 높은 정성찬 얼굴을 들여다봤다.
正成灿自然不知道朴元彬正因他而痛苦挣扎,此刻正与前来找他的崔 연주 意外相遇。 “总觉得应该正式道个歉才行……” 崔 연주 话语含糊,正成灿将手放在她的肩上。 “没关系,我理解。” 正成灿温和的声音随微风飘散。 崔 연주 抬起头,仰望着比自己高出许多的正成灿。

 

“화 안 나?”  “没生气?”

“박원빈 걔가 보기보다 여려. 네가 잘 챙겨줘.”
朴元彬那家伙,比看起来要脆弱。你好好照顾他。

“성찬아.”  成灿。

“처음이라 모르는 것도 많을 거고.”
毕竟是第一次,有很多不懂的地方。

“…….”  “……”

“용건 끝났지?”  说完了吗?没事我走了。

 

최연주는 정성찬을 잡지 못했고 어차피 정성찬은 최연주에게 잡혀줄 생각이 없었다. 미련 가득한 최연주를 뒤로한 채 정성찬은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교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정성찬은 얼마 못 가 미술실로 이동하던 박원빈과 맞닥뜨렸다. 본인을 향해 눈을 흘겨대는, 그래봤자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인 주제에. 정성찬은 기어이 그런 박원빈 이름을 부르고 박원빈에게 성큼 걸어갔다. 박원빈 형을 봤으면 반갑게 인사를 해야지. 정성찬이 손으로 박원빈 머리칼을 헝클었다. 박원빈이 정성찬 팔을 쳐냈다. 두 사람의 묘하게 날 선 대면에 애먼 옆 사람들만 숨이 턱턱 막혔다.
崔延珠没能留住成灿,反正成灿也没打算被崔延珠抓住。留下满是留恋的崔延珠,成灿面无表情地往教室走。没走多远,成灿就和正要去美术室的朴元彬撞上了。那家伙正瞪着他,不过那眼神,也就只是只穿靴子的猫罢了。成灿偏偏叫住了朴元彬,大步走向他。“看到了朴元彬哥,不得热情地打个招呼吗?”成灿伸手揉乱了朴元彬的头发。朴元彬拍开了成灿的手。两人之间微妙而紧张的对峙,让周围无辜的人们都喘不过气。

 

“성찬아!”  “成灿啊!”

 

하필이면 그때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최연주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정성찬이 몸을 틀자 정성찬 뒤로 가려져 있던 박원빈이 최연주 시야에 들었다. 최연주가 놀란 얼굴을 했다. 주변 애들은 본능적으로 호기심을 짓눌러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피하고 정성찬, 박원빈, 최연주 세 사람만 남았다. 정성찬은 급격히 굳어지는 박원빈 표정을 포착했다. 정성찬은 혹시 모를 시선을 생각해 자리를 파할까 하다가 부러 가만히 있었다. 정성찬은 세 사람의 체면 대신 본인의 즐거움을 선택했다. 정성찬을 따라온 최연주가 당황한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박원빈은 최연주와 정성찬을 번갈아 쳐다봤다. 박원빈 역시 예고 없이 닥친 삼자대면이 반가울 리 없었다. 상당히 어이없었다. 하긴. 정성찬 네가 그럼 그렇지. 기가 찬 박원빈이 코웃음을 뱉어내자 최연주가 박원빈 팔을 잡았다. 박원빈이 싸늘한 얼굴로 최연주를 내려다봤다.
偏偏就在那时,崔 연주以绝妙的时机出现在两人面前。成灿转过身,被成灿挡在身后的朴元斌进入了崔연주的视线。崔연주露出了惊讶的表情。周围的人本能地感觉到应该压抑住好奇心。人们一个个离开,只剩下成灿、朴元斌、崔연주三人。成灿捕捉到了朴元斌迅速僵硬的表情。成灿考虑到可能会有视线,本想结束这场面,却故意静静地待着。成灿选择了自己的愉悦,而不是顾及三人的颜面。跟着成灿来的崔연주似乎很慌张,说不出话。朴元斌轮流看着崔연주和成灿。朴元斌同样不喜欢这突如其来的三人会面。相当无语。果然。成灿你就是这样。无语的朴元斌嗤之以鼻,崔연주抓住了朴元斌的胳膊。朴元斌用冰冷的表情俯视着崔연주。

 

“놔.”  “放开我。”

“원빈아 그게 아니라….”  元斌啊,不是那样的……

 

울상이 된 최연주가 정성찬을 봤다. 정성찬은 최연주를 위하는 척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으며 박원빈 성질머리에 불을 지폈다. 
泫然欲泣的崔汝珠看向成灿。成灿假装为崔汝珠着想,口是心非地说着,点燃了朴元斌的火气。

 

“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거 전부 오해야.”
“我知道你现在在想什么,但那些全部都是误会。”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我看起来像在想什么?”

“…….”  “……”

“넌 절대 몰라.”  “你永远不会知道。”

 

박원빈이 떠나자 최연주가 사색이 됐다. 그런 최연주와 달리 정성찬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정성찬은 예상했던 것보다 박원빈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 외려 실망했다. 최연주를 달래느라 수업에 늦은 정성찬이 조용히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책을 펴고 뒤처진 필기를 따라잡느라 정신없던 정성찬 머리에 불현듯 박원빈 얼굴이 떠올랐다. 펜을 쥔 정성찬 손이 순간 멈칫했다. 넌 절대 몰라. 그 말을 뱉던 박원빈이 왜 그렇게까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는지 정성찬은 조금 의아했다. 그새 최연주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나. 그러나 그런 생각도 아주 잠시일 뿐이다. 정성찬은 다시 필기를 시작했다. 역시 넘치는 사랑으로 자란 애들은 첫사랑도 유난스럽게 앓는다고 생각했다.
朴元斌离开后,崔汝珠脸色大变。与这样的崔汝珠不同,成灿连眼睛都没眨一下。成灿反而对朴元斌的反应不如预期强烈而感到失望。为了安慰崔汝珠而上课迟到的成灿,悄悄地从教室后门进来,坐到了座位上。正当成灿埋头补着落下的笔记时,朴元斌的脸突然浮现在脑海中。握着笔的成灿的手瞬间停住了。你永远不会知道。成灿有些疑惑,说出这句话的朴元斌,为什么会露出那么受伤的表情。难道在那期间,已经真心喜欢上崔汝珠了吗。然而,这样的想法也只是暂时的。成灿重新开始做笔记。果然是被爱过剩的孩子,初恋也格外地折腾。

 

정성찬에게 박원빈의 삐딱한 태도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별로 놀랍지 않았는데 본인을 벌레 보듯 하는 박원빈의 경멸 어린 시선이 계속 신경을 긁었다.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성찬은 박원빈을 붙잡았다. 이쯤에서 적당히 당근 하나 쥐여 줄 생각으로.
郑成灿来说,朴元斌那别扭的态度也不是一天两天的事了,所以倒也没觉得多惊讶,只是朴元斌把自己当虫子一样看待,那充满轻蔑的视线一直在挠他的神经。晚自习结束后回家的路上,郑成灿拉住了朴元斌。想着差不多该给点甜头安抚一下了。

 

“박원빈.”  “朴元斌。”

“…….”  “……”

“연주랑 나 아무 일도 없었어.”
我和汝珠之间什么都没发生。

 

그러나 정성찬의 말이 역효과를 냈다. 당근은커녕 박원빈 심기를 제대로 거슬렀다. 박원빈이 평소답지 않게 일단 분노를 삼켰다. 박원빈 본인도 이토록 분노가 이는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한번은 참아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속내와 달리 박원빈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고작 정성찬의 입에서 연주라는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박원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然而,成灿的话适得其反,非但没起到安慰作用,反而彻底惹恼了朴元斌。朴元斌一反常态地强压下怒火。他自己也不清楚为何如此愤怒,所以打算忍一次。但不幸的是,他的脸色却出卖了他。仅仅是成灿口中说出“汝珠”这个名字,就让朴元斌的脸涨红,一阵青一阵白。

 

“연주가 너 많이 좋,”  汝珠她很喜欢你...

“더러운 새끼.”  你这肮脏的家伙。

“뭐?”  什么?

“넌 태생부터가 글러 먹은 새끼야. 너 같이 근본 없는 것들은 누가 치대기만 해도 그저 좋아서 이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해.”
你从骨子里就烂透了。像你这种没根没底的货色,随便被人揉搓两下就高兴得找不着北,连是非都分不清了。

“박원빈.”  “朴元斌。”

“넌 자존심도 없냐? 동생이 가로챈 여자하고 다시 붙어먹고 싶어?”
你连自尊都没有吗?想和你弟弟抢走的女人再续前缘?

 

박원빈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결국 넘어버리고 말았다. 절대로 정성찬을 이딴 허접하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박원빈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분노에 가려 흐릿했던 박원빈 시야에 그제야 정성찬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왔다. 독한 새끼. 이런 말을 듣는 와중에도 정성찬은 표정 변화 하나 없다. 일말의 동요도 없는 까만 눈동자가 박원빈을 향했다.
朴元斌最终还是越过了不该越过的界线。他原本绝不想用这种低劣又露骨的方式来对付成灿。然而覆水难收,他知道已经无法挽回。被愤怒蒙蔽而模糊的视线,这才清晰地捕捉到成灿的表情。真是个狠角色。听了这些话,成灿的脸上竟然没有一丝变化。那双毫无波澜的黑色眼眸,直直地盯着朴元斌。

 

“원빈아.”  元彬啊。

“…….”  “……”

“말은 좀 가려서 하자.”
说话最好注意点。

 

참는 데 도가 튼 정성찬이라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아 박원빈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정성찬은 지금 박원빈을 충동적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박원빈 태도가 정성찬의 수용 범위를 넘었다. 정성찬은 노력으로 얻은 것도 아니면서 박원빈이 그깟 출신 믿고 기세등등할 때마다 어떻게든 넘어뜨리고 싶었다. 그리고 정성찬의 뜻대로 박원빈은 늘 고꾸라졌다. 그래서 오늘도 박원빈을 적당히 뭉개 줄 생각이었다. 말만 잘 들으면 박원빈이 좋아하는 칭찬도 하나 덤으로. 그런데 오늘 정성찬은 희한하게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成灿是出了名的能忍,所以面不改色,朴元斌并没有察觉,但他此刻正被冲动支配着。朴元斌的态度已经超出了成灿的容忍范围。成灿总是想方设法地要扳倒朴元斌,就因为他仗着那点出身而趾高气昂,仿佛那些东西是他努力得来的一样。而且往往如成灿所愿,朴元斌总是会栽跟头。所以今天他也打算适当地揉捏一下朴元斌。如果他听话,还可以额外赏他一句他喜欢的夸奖。可是今天,成灿却反常地难以控制自己的情绪。

 

“이 와중에 꼴 받게 또 가르치려 드네. 씨발 야.”
“我真是服了,这种时候还想教训我。CNM。”

“야 아니고 형.”  “不是,叫哥。”

“형은 지랄. 니 혹시 형 페티쉬 있냐?”
“哥个屁。你是不是有恋哥癖?”

“…….”  “……”

“집에서는 범생인 척 학교에서 여자랑 비비적거리는 주제에 나한테 형 대접이 그렇게 받고 싶어?”
“在家里装模范生,在学校里跟女人腻腻歪歪的,就这么想让我把你当哥看?”


하필이면 그때 정성찬 머리 위에 있던 가로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깜빡. 깜빡. 깜빡깜빡깜빡. 그러다 팟 소리를 내며 불빛이 빠른 속도로 옅어졌다. 완전한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정성찬은 침묵했다.
偏偏就在那时,成灿头顶上的路灯开始闪烁。闪烁。闪烁。闪烁闪烁闪烁。然后“啪”的一声,光芒迅速黯淡下去。直到完全陷入黑暗,成灿都沉默不语。

 

“처신 잘해. 아버지 귀에 괜한 소리 들어가지 않게.”
“给我小心点。别让你爸听到什么不该听的。”

 

박원빈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본인의 승리를 예감했다. 비록 치졸한 수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결과가 꽤 만족스러웠다. 정성찬 특유의 생글거리는 웃음이라던가, 몇 개월 차이도 안 나면서 지만 어른인 척하는 꼴이라던가, 평소 정성찬이 박원빈한테 하던 모든 것들을 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박원빈은 충분했다.
朴元斌下了最后的通牒。并且预感到了自己的胜利。虽然用了卑鄙的手段,但这个结果也算相当满意了。光是看不到成灿那特有的嬉皮笑脸,看不到他明明没差几个月却装大人的样子,光是看不到平时成灿对朴元斌做的那些,朴元斌就足够了。

 

“너 나한테 돌려줄 거 있지 않냐?”
“你是不是有什么东西要还给我?”

“갑자기 뭔.”  “突然说什么呢。”

“네가 가져간 편지.”  “你拿走的信。”

“…….”  “……”

“내가 모를 줄 알았어?”
“你以为我不知道?”

 

정성찬은 이미 일 년이나 지난 일을 이제 와 운운할 생각이 결단코 없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유치했다. 그러나 정성찬은 어쩔 수 없었다. 박원빈이 기어오르지만 않았으면 본인도 영원히 묻으려던 일이다. 그러니까 정성찬은 잘못이 없다.
郑成灿已经没有打算现在再提起已经过去一年的事情了。他自己也觉得太幼稚了。但是郑成灿也没办法。如果朴元斌不爬到他头上,他自己也打算永远埋藏这件事的。所以郑成灿没有错。

 

“개새끼가.”  “你他妈的。”

 

분을 못 이긴 박원빈이 정성찬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정성찬 고개가 돌아갔다. 주먹질에도 박원빈 분이 안 풀렸다. 이 새끼는 방금 피할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맞았다. 그걸 박원빈이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러니까 일부러. 박원빈이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그때 꺼졌던 가로등이 다시 켜졌다. 정성찬이 터진 입가를 손등으로 대충 닦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정성찬은 박원빈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미소를 지었다.
怒不可遏的朴元彬一拳揍在成灿的脸上。成灿的头被打偏过去。即使是拳头也无法平息朴元彬的怒火。这狗崽子明明刚才可以躲开的,却故意挨了这一下。朴元彬不可能不知道。所以他是故意的。朴元彬咬紧了嘴唇。就在这时,熄灭的路灯又亮了起来。成灿用手背随意地擦了擦破裂的嘴角。在路灯的光芒下,成灿露出了朴元彬最厌恶的笑容。

 

“와 진짜 세네.”  “哇,真有劲儿。”

“…….”  “……”

“박원빈 다 컸다.”  “朴元彬长大了啊。”


정성찬 이 개 좆 같은 새끼가ㅡ!
成灿你这狗娘养的!



그래서 박원빈은 제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최연주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내가 오해할 일 만들지 마. 박원빈 말에 최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찬이 최연주랑 붙어 시시덕거리는 꼴은 상상만 해도 치가 떨렸다. 박원빈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최연주의 달갑지 않은 스킨십이나 눈살 찌푸려지는 애정 표현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성찬이 조금이나마 행복할 방법은 이렇게라도 막아내고 싶었다. 박원빈은 모르지 않았다. 정성찬을 향한 박원빈의 삐뚤어진 마음은 박원빈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자란다는 것을. 승패를 떠나 박원빈 마음에 남는 건 결국 생채기뿐이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눈 감고 귀 닫았다. 기어코 정성찬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그 이유는 반드시 박원빈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투지와는 별개로 박원빈 마음은 공허했다. 어차피 정성찬 그 개 같은 자식 인생 속 박원빈은 안중에도 없는데. 왜 부질없는 싸움에 혼자만 목메고 있는 건지. 박원빈 본인조차 본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所以朴元彬握住了崔妍珠的手,她正抓着他的胳膊,眼泪止不住地往下掉。“以后别让我再误会了。” 听了朴元彬的话,崔妍珠点了点头。光是想象成灿和崔妍珠腻在一起嬉笑打闹的样子,朴元彬就感到一阵恶寒。除非朴元彬死了,否则绝不能让那种事情发生。就算要忍受崔妍珠令人不快的肢体接触和让人皱眉的示爱,他也想用这种方式阻止成灿哪怕一丝一毫的幸福。朴元彬并非不知。他那份扭曲的感情正在啃噬着他的自尊心。无论胜负,留在朴元彬心中的最终都只有伤痕。即便如此,他还是闭上眼睛,堵住耳朵。他一心想看到成灿嚎啕大哭的样子。而那个原因,必须是因为朴元彬自己。然而,与这种斗志截然不同的是,朴元彬的心中一片空虚。反正成灿那狗东西的人生里根本就没有朴元彬的位置。为什么自己要为了毫无意义的争斗如此执着呢?就连朴元彬自己也无法理解自己。

 

이게 다 거지 같은 비 때문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봄비가 오후부터 부슬부슬 내렸다. 점차 하늘이 흐려지고 학급 분위기는 다운됐다. 빗방울이 굵지 않아 금방 그칠 줄 알았는데 비는 잔잔히 계속 내렸다. 봄비는 박원빈의 하교 때까지 계속됐다. 우산이 없어 입구에서 머뭇거리던 박원빈이 건물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막상 맞아보니 그런대로 맞을 만해서 박원빈은 슬슬 걷기 시작했다. 얇은 빗줄기는 조금씩 박원빈의 교복을 적셨다. 축 늘어진 머리칼이 자꾸 눈을 찔러 박원빈은 고개를 숙이고 앞머리를 툭툭 털었다.
都怪这该死的雨。毫无预兆的春雨从下午就开始淅淅沥沥地下。天空渐渐阴沉,班级气氛也变得压抑。雨点不大,本以为很快就会停,但雨却细细地下个不停。这场春雨一直下到朴元斌放学。没有雨伞的朴元斌在门口犹豫着,终于迈出了大楼。真正淋到雨,感觉也还能接受,朴元斌便慢慢地走起来。细细的雨丝一点点地打湿了朴元斌的校服。耷拉下来的头发不停地扎着眼睛,朴元斌只好低着头,甩了甩刘海。

 

갑자기 비가 그쳤다.  突然,雨停了。

 

“박원빈. 우산 없어?”  “朴元斌,没带伞吗?”

“…….”  “……”

“이거 쓰고 가.”  “用这个走吧。”

 

갑자기 나타난 정성찬이 박원빈에게 우산을 씌웠다. 비가 그친 게 아니었다. 박원빈은 정성찬을 말없이 올려다봤다. 정성찬도 말없이 박원빈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정성찬이 박원빈의 손을 잡아 들고 우산 손잡이를 강제로 쥐여줬다. 정성찬이 생긋 웃었다. 박원빈은 그런 정성찬에게 화를 낸다거나 짜증을 부린다거나 성질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정성찬이 박원빈의 손에서 제 손을 뗐다.
突然出现的成灿给朴元斌撑起了伞。雨根本没停。朴元斌默默地抬头看着成灿。成灿也默默地俯视着朴元斌。然后,成灿抓住朴元斌的手,强行把伞柄塞了过去。成灿咧嘴一笑。朴元斌没有对这样的成灿发火、抱怨,也没有变得暴躁。成灿松开了握着朴元斌的手。

 

“조심해서 가.”  “小心走。”

 

정성찬은 빗속을 달려 앞서 걷던 친구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박원빈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박원빈은 절대로 정성찬을 이길 수 없다. 정성찬이 차가워도, 박원빈의 수치심을 들쑤셔도, 박원빈을 이겨도, 박원빈에게 져도, 박원빈의 머리칼을 헝클어도, 박원빈에게 우산을 내줘도, 박원빈에게 여자친구를 뺏겨도, 박원빈에게 주먹을 맞아도, 결국에 좆 같아 지는 건 박원빈이었다. 정성찬이 뭘 해도, 뭘 하지 않아도 박원빈이 지고야 마는 게임인 것이다. 정성찬이 숨만 쉬어도 박원빈은 괴로울 테니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成灿跑进雨里,钻进了走在前面的朋友的伞下。朴元斌呆呆地站在原地。朴元斌绝对赢不了成灿。无论是成灿冷漠也好,还是他挑起朴元斌的羞耻心也好,无论是成灿赢了,还是朴元斌赢了,无论是成灿弄乱他的头发,还是把伞让给他,无论是被成灿抢走女朋友,还是挨了成灿一拳,最终倒霉的,还是朴元斌。成灿做什么也好,什么都不做也好,这都是一场朴元斌注定会输的游戏。成灿光是呼吸,朴元斌都会痛苦,所以胜负早已注定,没什么两样。

 

“…씨발….”  …西八…

 

박원빈은 우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사이 제법 굵어진 빗방울이 박원빈 몸 구석구석에 빠르게 스몄다. 그리고 정성찬의 정성을 길바닥에 내다 버린 박원빈은 다음날 결국 감기에 들었다.
朴元斌将雨伞狠狠地摔在地上。转眼间,变粗的雨点快速地渗透到朴元斌身体的每一个角落。而将成灿的心意丢弃在路边的朴元斌,第二天果然感冒了。



비가 그치자마자 찾아온 때이른 초여름의 후끈한 열기에 애들은 당장 에어컨을 틀어달라 성화를 부렸다. 그중에 박원빈만 오한에 떨었다. 박원빈은 수업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잤다. 혼자만 덜덜 떠는 박원빈이 불쌍해 친구 녀석이 그 위에 덮어 둔 셔츠는 애석하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수업이 시작하고 교실에 들어온 영어 교사가 박원빈을 가리켰다. 친구가 박원빈 상태를 읊으니 교사가 당장 보건실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박원빈 옆자리 애가 박원빈 어깨를 살살 건드렸다. 박원빈이 얼굴을 들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도움을 거절한 박원빈이 느릿한 걸음으로 교실을 나와 고분고분 보건실로 걸음을 옮겼다. 보건 교사가 준 해열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박원빈은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린 뒤 왼쪽으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박원빈은 잠결에 이마에 닿은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는데 약 기운에 취해 그 형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雨刚停,就迎来了早到的初夏闷热,孩子们嚷嚷着要立刻开空调。只有朴元斌独自一人瑟瑟发抖。整个课堂上,朴元斌都趴在桌子上睡觉。看着独自哆嗦的朴元斌可怜,朋友给他盖上的衬衫,可惜也无济于事。上课铃响后,走进教室的英语老师指了指朴元斌。朋友把朴元斌的情况说了下,老师立刻指示把他送到医务室。朴元斌旁边的同学轻轻地碰了碰朴元斌的肩膀。朴元斌抬起头,呼出灼热的呼吸。拒绝了帮助的朴元斌,慢吞吞地走出教室,乖乖地向医务室走去。吃了保健老师给的退烧药,躺在了床上。朴元斌将被子拉到脖子根,然后向左侧蜷缩着身体睡觉。朴元斌在睡梦中感觉到了额头上有人触碰,但因为药效的作用,没能看清是谁。

 

“깼어?”  “醒了?”

 

완전히 잠에서 깬 박원빈이 제일 처음 본 건 최연주였다. 박원빈은 순간 실망했다. 이내 실망의 이유를 깨달은 박원빈이 고개를 숙이고 헛웃음을 흘렸다. 정성찬이 여길 왔을 리가. 그 사이 최연주가 제 이마와 박원빈의 이마에 번갈아 손을 갖다 댔다. 열은 많이 떨어진 것 같은데. 박원빈은 반사적으로 최연주 손을 쳐내려다가 최연주의 손을 쥐고 얌전히 침대 위에 내려놨다.
完全从睡梦中醒来的朴元斌最先看到的是崔沇珠。朴元斌瞬间感到失望。意识到失望的原因后,朴元斌低下头,发出一声苦笑。成灿不可能来这里。这时,崔沇珠轮流用手探了探自己的额头和朴元斌的额头。“烧好像退了不少。” 朴元斌下意识地想要甩开崔沇珠的手,但最终还是握住了她的手,安静地放在了床上。

 

“괜찮아.”  “没事了。”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你知道我有多担心吗?”

“유난은.”  “真爱小题大做。”

“유난이라니. 열이 그렇게나 펄펄 끓었는데.”
“小题大做?烧得那么厉害!”

 

그 손은 아무래도 최연주의 것이었나. 박원빈은 최연주를 향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연주가 두 손으로 박원빈의 얼굴을 감싸고 아프지 말란 말이야 애틋하게 말했다. 박원빈은 괴로웠다. 보건실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필이면 보건 교사도 자리를 비워 보건실에는 박원빈, 최연주뿐이었다. 박원빈이 억지로 최연주 장단에 맞춰주고 있던 때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를 야릇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형성됐다. 그 분위기는 당연히 최연주에게만 해당했다. 최연주가 침대를 짚고 있는 박원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那只手,怎么想都是崔沇珠的。朴元斌勉强对着崔沇珠露出笑容。崔沇珠用双手捧住朴元斌的脸,心疼地说:“不要生病啊。” 朴元斌感到难受,恨不得立刻冲出医务室。偏偏保健老师又不在,医务室里只有朴元斌和崔沇珠两个人。朴元斌勉强配合着崔沇珠的时候,不知从何而起,一种暧昧的氛围瞬间形成。当然,这氛围只对崔沇珠有效。崔沇珠把玩着朴元斌放在床上的手。

 

“원빈아.”  元彬啊。

 

하필이면 커튼까지 쳐져 1인용 침대 하나 빠듯하게 든 좁은 공간에 두 사람이 부대꼈다. 최연주의 고개가 틀어지고 최연주와 박원빈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최연주는 눈을 지그시 감고 박원빈의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았다. 최연주의 혀가 살짝 열린 박원빈의 입술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최연주가 박원빈의 입술을 집어삼킬 듯이 빨았다. 박원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타액이 질척거리는 소리에 홀로 흥분한 최연주가 흐응 콧소리를 내며 속도를 올렸다. 최연주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박원빈의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박원빈 위에 올라탄 최연주가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박원빈을 내려다봤다.
偏偏窗帘还拉着,一张单人床就显得拥挤不堪的狭小空间里,两个人身体紧挨着。崔沇珠的头偏了过去,两人的嘴唇碰在了一起。崔沇珠微微闭上眼睛,双臂搂住了朴元斌的脖子。崔沇珠的舌头从微微张开的朴元斌的嘴唇缝隙里钻了进去。崔沇珠仿佛要吞噬朴元斌的嘴唇般吮吸着。朴元斌什么都没做,只是那黏腻的口水声,就让独自兴奋的崔沇珠发出“嗯哼”的鼻音,加快了速度。在崔沇珠积极的动作下,朴元斌的上身向后倒去。骑在朴元斌身上的崔沇珠,将滑落的头发捋到耳后,居高临下地看着他。

 

“너 처음이구나?”  “你是第一次吧?”

 

최연주가 수줍게 웃었다. 행동과는 매우 이질적인 웃음이었다. 박원빈은 제가 어떤 얼굴로 최연주를 마주하고 있는지 몰랐다. 박원빈의 표정 같은 건 안중에 없는 최연주가 침대를 두 손으로 짚고 허리를 숙여 박원빈의 입술을 물었다. 앞니로 박원빈의 입술을 가볍게 잘근거리다 이내 한 손으로 박원빈의 골반을 더듬기 시작했다. 박원빈은 하의 안으로 들어오려는 최연주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키며 최연주를 거칠게 밀어냈다.
汝珠羞涩地笑了。那笑容和她的举动完全不搭调。吴是温不知道自己正用什么样的表情面对汝珠。完全不在意吴是温表情的汝珠,双手撑着床,弯下腰,咬住了吴是温的嘴唇。她先用门牙轻轻啃咬着吴是温的嘴唇,然后,一只手开始摸索吴是温的骨盆。吴是温一把抓住了汝珠想要伸进自己裤子的手,撑起上半身,粗暴地推开了汝珠。

 

“원빈아?”  “是温?”

“정성찬이랑도 했냐?”  “和成灿也这样做了吗?”

“응?”  “嗯?”

“이런 짓거리, 정성찬하고도 했었냐고.”  “这种事,你和成灿也做过吗?”

“…그게 무슨 말이야.”  “……你是什么意思。”

 

그게 무슨 말인지 박원빈도 몰랐다. 박원빈은 옷매무새를 정리할 틈도 없이 보건실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 짧은 새 최연주의 향이 박원빈 옷 곳곳에 베어 박원빈을 계속 따라왔다. 역겨웠다. 최연주의 냄새도, 최연주와 그런 짓거리를 했을 정성찬도, 전부 다. 박원빈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박원빈은 비로소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토록 열렬히 부정해 온 감정은 박원빈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작 한순간 만에 수면 위로 올랐다. 박원빈은. 정성찬을. 사랑. 한다. 형. 그 이상으로. 박원빈은 가능하다면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박원빈 마음은 외면당할수록 더 질기고 강해졌다. 겨우 열등감 정도로 퉁치기엔 덩치가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기어코 물 위로 둥둥.
吴是温也不知道自己是什么意思。他甚至没来得及整理衣着,就如同逃跑一般离开了医务室。就在这短短的时间里,汝珠的气味已经渗透到吴是温的衣服各处,一直跟随着他。真令人作呕。汝珠的味道也好,和汝珠做过这种事的成灿也好,全部都让人恶心。吴是温颓然地坐在地上。他终于要直面自己的感情了。那份他一直极力否认的感情,仿佛是为了嘲笑他的努力一般,只在一瞬间就浮出了水面。吴是温,爱着。成灿。胜过对哥哥的情感。如果可以,吴是温想一直回避这份感情。但是,越是被他回避,这份感情就越顽固,越强烈。仅仅用自卑感来搪塞,已经无法掩盖它庞大的体积。所以,它最终还是浮出了水面,漂浮着。

 

박원빈은 곧장 조퇴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허공을 응시했다. 박원빈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박원빈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뒤엉켰다. 뒤죽박죽 섞여 박원빈을 어지럽게 만드는 몹쓸 것들은 전부 정성찬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원빈은 넋이 나간 채로 혼자 웃다가 괴로운 듯 소리를 질렀다가 끝내는 혼자 지쳐 바닥에 드러누웠다.
吴是温立刻请了病假。回到家,躺在床上,凝视着虚空。他的眼神空洞无神。吴是温的脑海里,无数的想法和情感纠缠在一起。那些乱七八糟,搅得他心烦意乱的,全部都与成灿有关。吴是温失魂落魄地独自笑着,又痛苦地叫喊着,最终独自疲惫地倒在了地上。



빈이가 전화를 안 받아 걱정되네. 아버지랑 갑자기 장례식장 갈 일이 생겨서 집에 늦게 들어간다. 네가 빈이 좀 살펴 봐줘.
彬伊不接电话,真让人担心。 父亲突然要去参加葬礼,所以会很晚回家。 你帮我照看一下彬伊。

 

정성찬은 야자를 끝내고 교문을 나서며 뒤늦게 문자 하나를 확인했다. 발신인은 어머니. 부모님 말 잘 듣는 정성찬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박원빈 방문에 노크를 했다. 그러나 안에서 아무 대답이 없다. 그냥 돌아서려다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방문을 여냐며 화를 내야 할 박원빈이 방 안에 없었다. 설마 아직도 귀가를 안 했나. 정성찬이 방 불을 켜고 핸드폰을 꺼내 박원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박원빈 방 안에서 벨이 울렸다. 침대 위 이불을 들춰내니 덩그러니 놓인 박원빈 핸드폰이 발견됐다. 순간 불안을 감지한 정성찬이 가방을 내려놓고 집안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안방, 서재, 주방, 베란다, 세탁실, 화장실, 어디 한 군데 빼놓지 않고 샅샅이 뒤졌다. 그래도 박원빈이 안 나타났다. 정성찬은 박원빈을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집을 나서려 했다. 그리고 신발을 신다 멈칫.
成灿结束晚自习,走出校门,才迟迟地确认了一条短信。发信人是母亲。 听父母话的成灿一到家,就立刻敲了朴元彬的房门。 但是里面没有任何回应。 刚想转身离开,却猛地打开了房门。 应该冲他发火,质问他为什么未经允许就擅自打开房门的朴元彬,却不在房间里。 难道还没回家? 成灿打开房间的灯,拿出手机给朴元彬打电话。 结果朴元彬的房间里响起了铃声。 掀开床上的被子,发现了孤零零地放在那里的朴元彬的手机。 瞬间感到不安的成灿放下书包,开始翻遍整个家。 安房、书房、厨房、阳台、洗衣房、卫生间,没有放过任何一个角落,仔仔细细地搜寻。 可是还是没找到朴元彬。 成灿一心想着找到朴元彬,不顾计划,贸然地想要出门。 然后在穿鞋的时候停住了。

 

정성찬이 제 방문을 열고 불을 켜자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박원빈이 보였다. 일찍이 조퇴했다면서 여태 교복 차림으로, 머리는 엉망이 된 채 힘없이 축 늘어져 침대 끝에 걸터앉은 박원빈을 보았다.
成灿打开自己的房门,打开灯,看到了呆呆地坐在床上的朴元彬。 明明早就提前退学了,却还穿着校服,头发也乱糟糟的,无力地耷拉着,坐在床边。

 

“여기서 뭐 해.”  “你在这儿干什么。”

 

정성찬의 음성을 들은 박원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听到成灿的声音,朴元彬慢慢地抬起了头。

 

“아직도 아파?”  “还疼吗?”

 

정성찬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박원빈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박원빈은 호흡이 가빠올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계속 웃었다. 그러다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정성찬을 보자마자 최연주의 향이 박원빈 코끝에 맴돌았다. 박원빈은 정성찬에게 묻고 싶었다. 정성찬 너 최연주랑 잤냐고. 박원빈은 간신히 말을 삼켰다. 그런 걸 왜 묻냐고 역으로 물으면? 그것보다 만약 정성찬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박원빈은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凝视着成灿的朴元斌突然笑了出来。朴元斌像个疯子一样一直笑,直到呼吸急促。然后露出了虚脱的表情。一看到成灿,崔延珠的香味就在朴元斌的鼻尖萦绕。朴元斌想问成灿。成灿,你和崔延珠睡了吗?朴元斌好不容易才把话咽了回去。如果反过来问他为什么要问这种问题呢?比起那个,如果成灿回答说是呢?朴元斌没有自信承担后面的事情。

 

“대답해.”  “回答我。”

“…….”  ……

 

박원빈은 제게 다가온 정성찬을 올려다봤다. 고개를 한참 젖혀야 겨우 정성찬 얼굴이 보였다. 깨달은 마음과는 별개로 박원빈은 아직도 정성찬을 울리고 싶다. 정성찬이 괴롭기를 바란다. 내가 아니라 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박원빈이 정성찬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정성찬이 박원빈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니라 네가 고통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내 발목을 붙잡고 나에게 간절히 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사랑해달라고. 제발 너도 나를 사랑해달라고.
朴元斌抬头望着朝自己走来的成灿。他得仰起头好久,才能勉强看见成灿的脸。尽管已经意识到了自己的心意,朴元斌仍然想让成灿哭泣。他希望成灿痛苦。如果不是我,而是你,那该有多好。如果不是我爱成灿,而是成灿爱我,那该有多好。如果痛苦的人不是我,而是你,那该有多好。在无论如何也无法承认的感情中挣扎,最终抓住我的脚踝,恳求我,那该有多好。恳求我爱他。求求你,也爱我吧。

 

“박원빈.”  “朴元斌。”

 

그 와중에 박원빈은 제 이름을 부르는 정성찬의 입술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성찬은 어떻게 반응할까? 불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볼까? 아니면 내 머리통을 후려치려나.
然而,就在这当口,朴元斌的视线却被叫着自己名字的成灿的嘴唇夺走了。如果听到这样的话,成灿会怎么反应呢?会像看什么肮脏的东西一样看着我吗?还是会想敲我的脑袋?

 

우리 키스할래?  我们要不要接吻?

 

“나는 정성찬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我希望你,成灿,去死。”

 

그 말을 뱉는 순간 정성찬은 갑, 박원빈은 을이 될 텐데. 박원빈은 그러기가 죽을 만큼 싫었다.
说出这句话的瞬间,成灿就会变成甲方,朴元斌就会变成乙方。朴元斌死也不想那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