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영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툭 떨어트렸다. 불도 붙지 않은 담배는 필터만 잘근잘근 씹힌 초라한 꼴을 한 채 시멘트 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구두에 밟힌 담배가 잔뜩 뭉개지며 터진 담뱃잎이 흩어진다. 뒤에서 전화를 하던 여상이 그 모습을 보고는 아깝다며 잔소리를 했으나 우영은 들은 척도 안 하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友荣嘴里叼着的香烟掉了下来。没有点燃的香烟只是被咬得稀巴烂的过滤嘴,孤零零地掉在了水泥地上。被皮鞋踩扁的香烟散落了一地的烟叶。正在后面打电话的吕尚看到这一幕,心疼地唠叨了几句,但友荣根本不理会,只是把头发往后一捋。

 

 

“윤호는 조금 늦을 거래. 촬영이 조금 밀렸다고.”
“润浩会晚一点到。他说拍摄有点延迟。”

“돈도 많은 새끼가 쉬지를 않냐.”
“钱这么多还不休息吗。”

 

 

작게 중얼거린 우영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약속한 시간보다 부러 10분 늦게 온 건데, 여상은 그런 우영을 안다는 듯이 우영보다 10분 더 늦게 왔다. 살짝 짜증이 나 인상을 구기고 있는 우영을 바라보던 여상이 전화를 끊고는 질린다는 듯이 눈썹을 늘어트렸다. 돈 벌어서 뭐 해, 핸드폰 좀 바꾸지. 우영은 물론 들은 척도 안 했다. 몇 년 전부터 여즉 한 번도 바꾸지 않은 핸드폰은 여상의 손에 들린 핸드폰보다 한참, 하안참 전 기종이었다. 새로 나온 기종이 한참인데 왜 아직도 그 유물을 들고 다니냐며 얘기하는 여상에 인상을 찌푸린 우영이 허공으로 손을 휘저었다. 시끄러워, 내가 알아서 해. 짜증 섞인 목소리에 여상이 쯧, 하고 혀를 찼다.
小声嘟囔着的友荣从口袋里拿出了手机。虽然故意比约定的时间晚来了 10 分钟,但吕尚似乎早已了解友荣的性格,比友荣还晚了 10 分钟才到。看着有些恼火皱着眉头的友荣,吕尚挂断电话后无奈地挑了挑眉毛。赚钱干嘛,不如换个手机吧。友荣当然装作没听见。几年前的手机从未换过,比吕尚手里的手机老了好几代。吕尚说着为什么还拿着那古董手机,友荣皱着眉头挥了挥手。吵死了,我自己会处理的。带着些许烦躁的声音让吕尚咂了咂舌。

 

고등학교 2학년, 구질구질하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우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써 많은 해가 지났다. 산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우영이 되먹지도 않은 고백을 하고 산이 그 고백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날. 그 날을 기준으로 우영은 제법 착실한 삶을 살았다. 진작 놓고 살았던 펜을 다시 들고, 영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생전 관심도 없던 과외까지 찾았다. 윤호는 그런 우영을 보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으나…, 물론 우영도 알고는 있었다. 공부머리가 없는 정우영에게 있어 펜을 쥔다는 것은 퍽 어울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산을 잃어버린 정우영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게 고작이었다.
高二那年,不管郑友荣多么不愿意放下那份执念,许多年已经过去了。伞去美国之前,友荣做了一个不成样子的告白,而伞果断地拒绝了他。从那天起,友荣过上了相当踏实的生活。他重新拿起了早已放下的笔,甚至找了自己从未感兴趣的课外辅导。润浩看着这样的友荣,说这不适合他……当然,友荣自己也知道。对于没有学习头脑的郑友荣来说,拿起笔既不合适,也不匹配。然而,失去了崔伞的郑友荣能做的,也只有这些了。

 

회사 경영에 대한 것들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보다 더 어려운 경영에 자기도 잘 모른다며 귀찮은 티를 내는 여상을 붙잡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작은 구멍 하나 없이 깔끔했던 산의 귀가 자꾸 떠올라서 치렁치렁하게 달고 있던 피어싱도 전부 빼버렸다. 우영의 부모님은 갑작스럽게 철이 든 아들을 보며 좋아했으나 그 계기가 조금 삐딱하다는 것은 몰랐다.
公司经营的事情也开始慢慢学习了。比起学习更难的经营,自己也不太懂,便抓住表现出不耐烦的吕尚请求帮助。总是想起伞那干净得没有一点小洞的耳朵,于是把自己挂着的所有耳环都摘掉了。友荣的父母看到突然变得懂事的儿子很高兴,但并不知道其中的原因有些偏颇。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우영은 자기들만 두고 가지 말라는 윤호(일본 국적)와 여상(병역 비리남)을 두고 냅다 군대로 날랐다. 대학은 가야 된다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부모님도 소용이 없었다. 바짝 깎은 머리를 하고 첫 휴가를 나온 우영을 보고 부모님은 아린 눈물을 흘리셨고, 윤호와 여상은 웃느라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한참 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대해 착실하게 군생활을 끝내고 제대한 우영은 한동안 둘에게 애국자라며 놀림을 받긴 했으나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영은 손가락 다섯 개를 접어도 부족한 옛날을 떠올리며 먼저 들어가자는 듯 턱을 까딱였다.
高中毕业典礼结束后,友荣不顾日本籍的润浩和因兵役丑闻而烦恼的吕尚的挽留,毅然决然地参军了。即使父母抓着他的裤腿说他应该上大学也无济于事。友荣剃了个光头,第一次休假回家时,父母看着他流下了心疼的泪水,而润浩和吕尚则笑得流出了眼泪。这都是很久以前的事了。高中毕业后立即入伍,认真完成军旅生活并退伍的友荣,虽然一段时间内被两人戏称为爱国者,但他毫不在意。友荣回想起那些用五根手指都数不过来的往事,点了点下巴,示意先进去。

 

 

“셋이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我们三个好久没见了。”

“일주일 전에 봤잖아.” “我们一周前见过了。”

 

 

안 나오면 찌라시 퍼트리겠다던 사람이 누군데. 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여상을 흘겼으나 여상은 도통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커다란 룸 안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윤호를 제외하고 딱 둘이었다. 우영은 안주랍시고 주문한 과일안주를 포크로 뒤적였다. 어울리지 않는 작은 포크에 여상이 웃음을 터트리며 소파에 등을 쭉 기댔다.
不出来的话我就散布谣言的人是谁。友荣一脸无语地瞥了吕尚一眼,而吕尚则一副完全不知情的样子耸了耸肩。宽敞的房间里,除了还没到的润浩,只有他们两个。友荣用叉子拨弄着点的水果拼盘。吕尚看到那把不太合适的小叉子,忍不住笑了出来,靠在沙发上。

 

기껏 머리 싸매고 경영에 대해 공부하던 우영은 제대하자마자 곧장 인턴으로 입사했다. 나름 말단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었으나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한, 이제 막 제대한 어린 나이의 우영은 누가 봐도 착실하게 낙하산 루트를 탔다. 그 사이 회사는 줄곧 상승세를 탔다. 여러 회사와 손을 잡은 프로젝트 중에는 여상과 윤호의 기업도 있었다. 모든 낙하산들이 그렇듯 우영은 인턴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사의 자리를 차지했다. 각각의 부장들보다 한참 어린 우영을 두고 아니꼬운 티를 내는 사람은 많았으나 앞에서 표정을 굳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금수저들이 그렇듯 말이다.
尽管友荣费尽心思学习经营管理,但他一退伍就立刻以实习生的身份入职了。他本打算从基层做起,但刚刚退伍、连大学门槛都没踏过的年轻友荣,怎么看都像是走了后门。与此同时,公司一直在稳步上升。在与多家公司合作的项目中,包括吕尚和润浩的企业。像所有走后门的人一样,友荣虽然从实习生开始,但几年后就坐上了董事的位置。尽管有很多人对比各部门经理还年轻得多的友荣心怀不满,但在他面前却没有人敢表现出来。所有含着金汤匙出生的人都是如此。

 

아, 하나 짚고 가자면 S그룹의 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첼리스트인 딸이 호주에서 무면허로 차를 몰다 사람들을 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심지어 붙잡혔을 때는 이미 대마초를 피운 상태여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S그룹의 주가가 폭락했다. 얼마 안 가 경영을 배우던 아들이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진이 사회면을 빼곡하게 장식하고, 최 회장의 측근이 터트린 비리로 최 회장은 여즉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됐다. 보여주기 식으로 재판을 피하기 위해 병원을 오가는 최 회장은 그야말로 하락세였다. 최 회장의 실체를 아는 우영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의 차에 펑크까지 낸 덕에 진작 S그룹과의 일이 틀어진 것이 다행이었다.
啊,先说一下,S 集团的股价几乎每天都在下跌。事情的开端是他那位大提琴家女儿在澳大利亚无证驾驶撞了人。更糟糕的是,她被抓时已经吸了大麻,导致 S 集团的形象受到了巨大打击,股价暴跌。不久之后,正在学习经营的儿子在飞机上对空乘人员施暴的照片占据了社会新闻版面,崔会长的亲信爆出的腐败丑闻使得崔会长不得不坐上了轮椅。为了逃避审判,崔会长频繁出入医院,真是每况愈下。知道崔会长真面目的友荣大声咆哮,还把他父亲的车胎戳破,幸好早就和 S 集团的合作告吹了。

 

 

“오늘 윤호가 산대.” “今天润浩要背伞。”

“제일 비싼 거 가져오라고 해.”
“拿最贵的来。”

 

 

우영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과일안주에 놓인 바나나를 먹었다. 그리고 최산은…. 그렇게 급하게 먹은 것도 아닌데 최산이라는 이름 하나로 턱이 주춤해 혀를 잘못 씹었다. 우영은 물 대신 앞에 놓인 자신의 잔을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핸드폰 액정을 톡톡 두드리던 여상이 곁눈질로 우영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빨리 마시다 훅 가니까 천천히 마셔. 우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바나나를 먹었다. 갑작스럽게 숨을 턱 죄는 이름에 속이 답답하다.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어낸 우영이 마른 눈을 비볐다.
友荣漫不经心地回答着,吃起了水果拼盘里的香蕉。然后崔伞……明明也不是吃得很急,但因为崔伞这个名字,友荣的下巴顿了一下,舌头不小心咬到了。友荣没有喝水,而是拿起了面前的酒杯,大口大口地喝了起来。正在轻轻敲打手机屏幕的吕尚瞥了一眼友荣,摇了摇头。喝得太快会醉的,慢慢喝。友荣随便点了点头,又开始吃香蕉。突然被这个名字压得喘不过气来,友荣感到胸口闷闷的。他解开了衬衫的一颗纽扣,揉了揉干涩的眼睛。

 

산은 비행기를 타던 그 순간부터 S그룹과 연을 끊었다. 단호하게 우영의 고백을 거절하며 비행기에 오른 것이 무색하게도 둘은 연락을 했다. 처음 일주일은 우영이 상실감으로 인해 엄두도 내지 못했고, 줄곧 기본 프로필만 해오던 산의 메신저 프로필이 처음으로 바뀌었을 때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메시지를 적었다. 산타 모니카 비치를 배경으로 찍은 산의 뒷모습은 한국에서 봤을 때보다 더 안정된 느낌이었다. 미국은 어떠냐고, 잘 지내냐고, 보고 싶지 않냐고,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우영은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은 말들을 몽땅 지웠다. 좋냐. 겨우 보낸 두 글자 속에는 날 버리고 가니 좋냐는 속 좁은 의미였는데, 시차 때문인 건지 산은 한참이 지나도 읽지 않았다. 하늘을 밝히던 해가 우영이 보낸 톡처럼 산에게 가까워질 무렵,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던 늦은 밤이 되어서야 답장이 돌아왔다.
伞从登上飞机的那一刻起就与 S 集团断绝了关系。尽管他果断地拒绝了友荣的告白并登上了飞机,但两人还是保持了联系。最初的一周,友荣因为失落感而不敢联系伞,而伞的即时通讯软件的个人资料一直保持不变,直到有一天他换了背景,友荣才颤抖着手慢慢地打字。伞在圣塔莫尼卡海滩拍的背影照片,比在韩国时看起来更加安定。友荣想问美国怎么样,过得好吗,不想我吗,我真的很想你。虽然有很多话想说,但友荣把那些啰嗦的话全都删掉了。只发了两个字:“好么。”这两个字里包含了“你抛下我走了,开心吗”的狭隘意思。也许是因为时差的关系,伞很久都没有读这条消息。当太阳渐渐升起,像友荣发的消息一样接近伞的时候,友荣在辗转反侧的深夜终于收到了回复。

 

응. 앞에 있었으면 한 대 쥐어박았을 그 짧은 답장에도 우영은 만족했다. 산이 탄 비행기가 미국 공항에 도착했을 거라는 생각에 혼자 방에 틀어박혀 눈물을 질질 짤 땐 언제고, 우영은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막지 못했다. 사진을 보내달라며 조르고 졸라 받은 몇 장은 곧장 우영의 배경화면을 차지했다. 그마저도 잠깐이었다. 처음 두어 달은 텀이 느리긴 해도 연락이 됐는데, 그 뒤로는 모든 연락이 끊겼다. 알 수 없음으로 변한 대화창을 나가지도 못했다. 몇 번이고 달라고 조른 덕에 받아낸 사진 몇 장과 바뀔 때마다 저장해두었던 프로필 사진, 짧게 나눈 대화로 몇 년을 버텼다. 이제는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더 많은 고물을 들고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嗯。即使是那条如果他在面前肯定会被打了一下的简短回复,友荣也感到满足。想着伞乘坐的飞机应该已经抵达美国机场了,友荣独自一人在房间里哭得稀里哗啦的时候,友荣忍不住嘴角抽动。几张他苦苦哀求才得到的照片很快就成了友荣的背景图片。不过那也只是暂时的。最初的两三个月虽然联系得慢,但还是有联系的,之后所有的联系都断了。变成“未知”的对话框也无法退出。靠着几张苦苦哀求才得到的照片和每次更换时保存下来的头像照片,以及简短的对话,友荣撑了好几年。现在随身携带的破旧手机里能用的东西比不能用的还多,也是因为这个原因。

 

 

“선물 있대.” “他说有礼物。”

“생일도 아닌데 받아서 뭐 해.”
“又不是生日,收这个干嘛。”

 

 

우영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손에 쥐고 있던 포크로 바나나를 꾹 눌러 반으로 나누었다. 선물을 고르는 센스가 없는 것을 알아서 별로 기대가 되진 않았다.
友荣用小声回答着,用手中的叉子把香蕉压成两半。他知道自己在选礼物方面没有什么品味,所以并没有抱太大期望。

 

 

2.

 

 

밤인데도 덥다. 윤호는 조용한 말투와 어울리지 않게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쇼핑백 두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 윤호는 단정하게 하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윤호의 말에 우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7월에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각각 우영과 여상에게 쥐어준 윤호가 빈 잔을 찾아 술을 따랐다. 작은 사이즈에 대충 시계겠거니 생각하던 우영은 그 속에 든 작고 반짝이는 것에 이마를 짚었다. 작게 노래를 부르며 따라 포장을 뜯던 여상은 고급스러운 박스를 열자마자 무슨…,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밤인데도 덥다. 润浩与他平时安静的语调不符,猛地推开门走了进来。他把手里拿着的两个小购物袋放在桌子上,然后松开了原本系得整整齐齐的领带。“圣诞礼物。”润浩的话让友荣皱起眉头,发出一声无奈的笑声。润浩把不太适合七月的圣诞礼物分别递给友荣和吕尚后,找了个空杯子倒酒。友荣本以为小尺寸的礼物盒里大概是手表,但看到里面那小而闪亮的东西时,他不禁扶住了额头。吕尚一边小声哼着歌,一边拆开包装,当他打开那个精致的盒子时,只说了句“什么…”,便说不出话来。

 

우영은 뒤늦게 윤호의 손가락에 끼워진 은색의 반지를 발견하고는 모르는 척 포장이 뜯어진 그대로 쭉 밀어냈다. 은색의 심플한 반지 안쪽에는 윤호와 여상, 우영의 이니셜이 차례대로 새겨진 채였다. 친구가 제일 소중하다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도 이 반지는 낄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받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굴던 우영은 결국 셔츠를 쥐고 한참을 흔들어대는 윤호에 억지로 손가락에 끼울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윤호의 착각으로 반지는 우영의 약지에나 들어갔다.
友荣发现润浩手指上戴着一枚银色的戒指,假装没看见,直接把包装撕开了。银色的简约戒指内侧依次刻着润浩、吕尚和友荣的首字母。即使回到高中时代,朋友是最重要的,他也没打算戴上这枚戒指。友荣从一开始就装作没收到过这枚戒指,最终在润浩抓着他的衬衫摇晃了半天后,不得不勉强把戒指戴上。即便如此,由于润浩的误会,戒指还是戴在了友荣的无名指上。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거라는 윤호에 결국 유치한 걸 알면서도 손을 모아 사진을 찍었다. 이십대 후반을 달려가는 남자 셋이 하기엔 많이 유치한 짓이었으나 윤호는 아무렇지 않게 허밍을 하며 찍은 사진을 곧장 단톡방에 올렸다. 징그럽다며 고개를 내저을 땐 언제고, 여상은 내심 반지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准备礼物的人的真心被忽视了,润浩最终还是知道这很幼稚,但还是合掌拍了照片。对于三个奔三的男人来说,这确实是很幼稚的行为,但润浩毫不在意地哼着歌,把拍好的照片立刻上传到了群聊。吕尚一边说着恶心,一边摇头,但心里却很喜欢这枚戒指,盯着看了好久。

 

 

“아, 그 소식 들었어?” “啊,你听说那个消息了吗?”

“무슨 소식?” “有什么消息?”

“최 회장 비서가 또 뭐 제보했다더라.”
“听说崔会长的秘书又举报了什么。”

“일찍 손 털었으니 다행이지.”
“早早放手是幸运的。”

 

 

윤호와 여상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우영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산을 찾기 위해 S그룹 쪽의 흐름은 되도록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처음 비리를 제보한 사람부터 돈보다 양심을 선택한 사람들, 기사에 나오는 최 회장의 측근이 누구인지도. 돈으로 알아내지 못하는 건 없었다. 최산 하나 찾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润浩和吕尚的对话,友荣默默地听着,面无表情地点了点头。这是他早已知道的消息。为了寻找突然消失的伞,他尽可能地掌握了 S 集团的所有动向。从最初举报腐败的人,到选择良心而非金钱的人,再到报道中提到的崔会长的亲信是谁。没有什么是用钱查不出来的,只是找到崔伞一个人比较困难。

 

우영은 다시금 눈에 아른거리는 산의 얼굴에 눈을 깜빡였다.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키는 더 컸을까, 너무 말랐던 것만 떠오르는데 살은 조금 쪘을까.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게 아닐까. 물기 어린 잔을 가만히 바라보던 우영이 손가락으로 잔을 툭 밀었다. 점차 녹아가며 아슬하게 쌓여있던 얼음이 작은 소음을 내며 무너지고, 우영은 열이 오른 눈을 감았다. 산의 어머니는 우영과 곧잘 연락을 주고받으셨으나 산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미국 어디에 있었다더라, 아픈 곳은 없다더라, 하는 말이 전부였다. 아마도 알려주지 말라고 했겠지. 우영은 야속한 산의 얼굴을 떠올리며 괜히 잔을 흔들었다. 처음보다 크기가 조금 줄어든 얼음이 잔에 부딪히며 나는 소음이 제법 컸던 건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상이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友荣再次眨了眨眼,脑海中浮现出伞的脸庞。现在的他会是什么样子呢?个子是不是更高了?只记得他以前太瘦了,现在是不是胖了一点?会不会发生了什么意外?友荣静静地看着杯子,手指轻轻推了推杯子。逐渐融化的冰块发出细微的声音,友荣闭上了发热的眼睛。伞的母亲经常和友荣联系,但从不透露伞的行踪。只说他在美国的某个地方,没有生病之类的。大概是伞不让她说吧。友荣想着伞那无情的脸,心里一阵难过,随手摇了摇杯子。冰块撞击杯壁发出的声音比刚才大了些,静静看着这一切的吕尚敲了敲桌子。

 

 

“너 걔 좋아하지?” “你喜欢他吗?”

“누구.” “谁。”

“누구긴 누구야, 사람 홀리고 유학길 밟은 최산이지.”
“谁还能是谁啊,就是那个迷惑人心然后出国留学的崔伞啊。”

“하지가 아니라 했었지.” “不是在做,而是已经做了。”

 

 

갑자기 끼어든 윤호의 말에 여상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딱 봐도 머저리처럼 못 잊은 게 눈에 보이는데, 무슨. 뼈만 골라 때리는 여상의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우영이 뻐근한 목을 주물렀다. 듣는 머저리한테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르고. 둘 쪽으로는 시선 하나 던져주지 않은 채 핸드폰을 집어든 우영이 잠금을 풀었다.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배터리가 한참 줄어든 핸드폰은 이 자리가 끝나기 전에 꺼질 것이 분명했다.
突然插话的润浩让吕尚皱起眉头,挥了挥手。明明看起来就像个傻瓜一样无法忘记,真是的。吕尚的话直戳痛处,友荣愣愣地眨了眨眼,揉了揉僵硬的脖子。根本不知道这话会伤到听的人。友荣没有看向两人,拿起手机解锁。即使没有怎么使用,电量已经大幅减少的手机显然会在这场聚会结束前关机。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핸드폰 배경화면에 덩그러니 놓인 어플을 찾는다. 알 수 없음으로 변한 지 오래인 산의 흔적은 여즉 지워지지 못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데? 답장이 오지 않은 메시지가 처량하다. 일방적으로 한쪽만 짧은 대화와 하도 조르는 탓에 한두 장씩 보내주었던 사진들은, 이제는 눈을 감고도 그 순서를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허공에 굳은 손가락은 화면 한 번 건드릴 생각조차 않았고, 그에 따라 화면이 꺼지며 까만 액정에는 우영의 얼굴만이 전부였다. 평소라면 버럭 소리를 질렀을 머저리가 조용하자 어느새 둘은 과거형과 현재진행형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내기까지 거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내뱉은 머저리가 결국 입을 열었다.
手指自然地寻找着手机背景屏幕上孤零零的应用程序。早已变成未知的伞的痕迹依然未能抹去。到底发生了什么事?没有回复的消息显得格外凄凉。单方面的短暂对话和频繁的请求,使得伞偶尔发来的几张照片,现在闭着眼睛都能记住它们的顺序。僵硬在空中的手指甚至没有触碰屏幕的念头,随着屏幕熄灭,黑暗的屏幕上只剩下友荣的脸。如果是平时,那个蠢货早就会大声喊叫,但此刻他安静下来,两人开始为过去和现在进行时争论不休。看到他们甚至打赌,那个蠢货无奈地笑了笑,最终开了口。

 

 

“좋아했었지.” “我曾喜欢过你。”

“봐, 내가 이겼다. 너 당장 입금….”

“지금도 좋아해.” “现在也喜欢你。”

“입금은 네가 해라.” “入款由你来。”

“좋아는 하는데….” “喜欢是喜欢……”

 

 

못 찾고 있잖아, 잃어버려서. 우영은 들은 척도 안 하는 본인의 친구들을 보며 덤덤하게 얘기했다. 내기에 이겨 윤호에게 계좌를 불러주던 여상은 뒤늦게 우영의 잔을 채워주고는 셋이 고작인 룸을 훑었다.
“못 찾고 있잖아, 잃어버려서.” 友荣看着装作没听见的朋友们,淡淡地说道。赢了赌局,正在向润浩报账号的吕尚,迟迟才给友荣倒满了酒,然后扫视了一下只有三个人的房间。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거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랬어.”
“爱情是用爱情来忘记的,人是用人来忘记的。”

“뭔 개소리야.” “什么狗屁话。”

“떠들썩하게 지내면 잊혀질 거란 거지.”
“吵闹地生活就会被遗忘。”

 

 

3.

 

 

우영은 핑 도는 시야에 인상을 찌푸리며 간신히 일어섰다. 윤호와 여상, 우영 중에 주량이 제일 약한 여상의 얼굴은 이미 빨갛게 오른 상태였다. 어디 가서 주량 약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우영과 윤호도 저마다 이마를 짚거나 축 늘어진 채였으니, 굳이 테이블 위에 놓인 병의 숫자를 셀 필요는 없었다. 우영은 어디에 가냐며 붙잡으려는 여상의 손을 피하고는 룸을 나왔다. 무심코 꺼내 입에 물었던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라이터를 주먹 안에 꾹 쥔 채로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룸 안이나 밖이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시끄러워 골이 둥둥 울리는 느낌이었다. 살짝 비틀거린 우영이 벽을 짚은 채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용케 우영을 알아본 몇 명이 수군거리는 것을 모르는 척, 그 정우영이 아닌 척하며 겨우 빠져나왔다.
友荣在眼前一片模糊中皱起眉头,勉强站了起来。润浩和吕尚、友荣中酒量最差的吕尚脸已经红得发烫了。即使是从来没听过酒量差这种话的友荣和润浩,此刻也各自扶着额头或是无力地瘫坐着,所以根本不需要去数桌上的瓶子数量。友荣避开了试图拉住他的吕尚的手,走出了房间。他无意中叼在嘴里的香烟还没点燃,打火机紧紧握在拳头里,踉跄地迈开了步子。无论是房间内还是外面,喧闹的气氛都让他头痛欲裂。稍微有些踉跄的友荣扶着墙,深深叹了口气,慢慢地上了楼梯。几个人认出了友荣,窃窃私语着,但他假装没听见,假装自己不是那个郑友荣,勉强逃了出来。

 

담벼락에 기대어 이마를 짚고 있던 우영이 결국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진 않았는데 그냥 오늘 컨디션이 별로였던 것 같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히 등을 기댄 채 앉은 상태인데 묘하게 시야가 돈다. 오늘따라 유난히 산의 얼굴이 선명해서, 물론 하루도 선명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나 오늘따라 더 선명해서. 우영은 손가락을 몇 번만 더 접으면 곧 10년이 되는 과거를 짚어가며 허공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시야를 뿌옇게 가리고 흩어지는 연기가 꼭 ‘누구’와 닮아서, 우영은 얼마 피우지 못한 장초를 아무렇게나 날렸다.
靠在墙上,捂着额头的郑友荣最终蹲了下来。他觉得自己并没有喝很多,只是今天状态不太好,就这么想了。明明是靠着墙坐着,但视线却莫名其妙地旋转起来。今天崔伞的脸特别清晰,当然每天都很清晰,但今天特别清晰。郑友荣回忆着再过几次手指就快到 10 年的过去,向空中吐出烟雾。烟雾模糊了视线,散开后像极了“某人”,郑友荣随意地把没抽几口的烟蒂扔掉了。

 

 

“왜 혼자 나갔어요?” “为什么一个人出去?”

“…….” “……”

“저도 조금 취했는데.” “我也有点醉了。”

 

 

안 그래도 술 때문에 어지러운데 때를 모르고 끼어든 목소리 때문에 더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우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영을 보며 그제야 담벼락을 짚고 일어섰다. 누군가 싶어 인상을 찌푸린 채로 한참을 보다가, 곧 아까 룸에서 윤호가 부른 아이돌임을 깨닫고는 아아, 긴 탄식을 뱉었다. 형 많이 취했구나, 그쵸? 우영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아이돌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우영의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뭐야, 씨발. 지끈거리는 머리도 짜증이 나는데 자꾸만 옆에서 붙어오는 탓에 더 정신이 없었다. 그 아이돌은 그룹 내에서 귀여운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다 들었는데, 마냥 꾸며낸 이미지는 아니었던 건지 말투가 퍽 애교스러웠다.
本来就因为酒而感到头晕,突然插入的声音让他更加晕眩。友荣看着向自己走来的身影,这才扶着墙站了起来。他皱着眉头看了好一会儿,才意识到这是刚才在房间里润浩叫来的那个偶像,长叹了一口气。哥,你喝多了吧,对吧?比友荣小五岁的偶像微笑着抓住友荣的胳膊扶住他。什么啊,操。头痛得厉害已经让他很烦躁了,旁边这个人一直黏着他更让他心烦。听说这个偶像在组合里负责可爱形象,看来并不是完全装出来的,语气里满是撒娇。

 

 

“둘이서 몰래 도망이라도 갈래요?”
“我们俩偷偷逃跑怎么样?”

 

 

지끈거리는 머리에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적적하다는 이유로 초대한 이 아이돌은 오늘 우영과 처음 보는 사이였으며, 형이라는 호칭은 둘째 치고 몰래 나갈 사이도 아니다. 뭐야. 찌푸려진 인상은 험악했으나 옆에서 팔을 붙잡고 부축하는 아이돌은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싫어 혼자 어울리지 않고 술만 홀짝이던 우영에게 말을 걸며 안주를 챙겨주기도 했고, 슬쩍 웃으며 연예계 찌라시를 흘리기도 했다. 딱히 관심이 없어서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头痛欲裂,他用拇指按住太阳穴。因为寂寞而邀请来的这个偶像,今天是第一次见到友荣,别说称呼他为哥哥了,连偷偷溜出去的关系都不是。什么啊。皱起的眉头显得很凶,但在旁边扶着他的偶像却没有要离开的意思。因为不喜欢吵闹的气氛,友荣独自一人喝着酒,不与人交往,这个偶像却主动和他说话,还给他拿了些小吃,偶尔还会笑着透露一些娱乐圈的八卦。友荣本来没什么兴趣,连看都没看一眼……

 

하아, 깊은 한숨을 토해낸 우영이 안쪽 포켓을 뒤져 담배를 꺼냈다.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일 때까지 계속 붙어있던 아이돌은 흐흥, 하고 작게 웃었다. 형 저도 담배 하나만 주면 안 돼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괜히 앵앵거리는 것만 같아 짜증이 났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에 결국 손등으로 눈을 아무렇게나 비빈 우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담배 연기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아이돌은 어느새 우영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뺏어 물었다. 귀찮다고 생각하며 마른세수를 했을 즈음, 우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영에 인상을 구겼다. 흐려진 시야 속으로 그제야 얼굴이 들어온다.
哈,深深叹了口气的郑友荣从内侧口袋里掏出香烟。从烟盒里抽出一根叼在嘴里点燃时,一直跟在他身边的偶像轻笑了一声。哥,能给我一根烟吗?传来的声音让人觉得有些烦躁。视线越来越模糊,郑友荣最终用手背随意地揉了揉眼睛,叹了口气。即使烟雾四散,他也没有眨一下眼睛的偶像不知何时已经把郑友荣嘴里的烟抢了过去叼在自己嘴里。觉得麻烦的郑友荣干洗了一把脸,这时他皱起了眉头,看向朝自己走来的身影。模糊的视线中,终于看清了那张脸。

 

 

“…최산?” “…崔伞?”

 

 

우영은 그제야 자신의 팔을 부축하고 있던 아이돌을 확 밀쳐냈다. 작은 비명을 지르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린 아이돌이 다급한 손길로 우영의 손목을 붙잡았고, 돌아본 우영의 매서운 눈길을 알아차린 후에야 슬그머니 손을 놓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友荣这才猛地推开了扶着自己胳膊的偶像。偶像发出一声小小的尖叫,嘴里的香烟掉了下来,他急忙抓住了友荣的手腕,但在看到友荣锐利的目光后,才悄悄松开手,走进了建筑物内。

 

우영은 자신의 앞에 선 멀끔한 차림의 산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를 꾹 물었다. 힘이 들어간 하악관이 움찔거리며 성을 내는 사이, 우영은 자신의 뺨을 툭툭 쳤다. 말이 좋아 툭툭이지 그 소리가 제법 살벌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대며 시선을 던졌다. 얼얼한 볼은 우영에게 꿈이 아님을 얘기하고 있었다.
友荣呆呆地看着站在自己面前穿着整齐的伞,紧咬着牙关。用力的下颌微微颤抖,显得有些生气,友荣轻轻拍了拍自己的脸颊。虽然说是轻轻拍打,但声音相当刺耳,路过的人都偷偷瞥了一眼。火辣辣的脸颊告诉友荣这不是梦。

 

그 옛날과 비교해 더욱 어른스러워진 분위기의 최산이, 지금 정우영 앞에 있다. 비슷하던 키가 조금 더 자랐고 마냥 마르기만 했던 몸이 전과 달리 근육이 붙은 듯 싶었다. 우영과 달리 깔끔했던 귀에는 어느새 피어싱 자국이 있었는데,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피어싱이 제법 어울렸다. 달라진 부분만 찾던 우영은 산과 시선을 마주했다. 몇 부분들만 빼면 산은 그대로였다. 매번 침착한 저 얼굴도, 우영을 바라보는 눈도,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도. 눈꺼풀이 깜빡일 때마다 사르르 올라가는 속눈썹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지?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한 번 놓친 산을 두 번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컥 굳어버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那比以前更加成熟的崔伞,现在正站在郑友荣面前。原本差不多的身高现在稍微高了一些,曾经瘦弱的身体现在也似乎长了些肌肉。与友荣不同的是,伞那干净的耳朵上不知何时多了几处耳洞,原本以为不适合他的耳环现在看起来却意外地合适。一直在寻找变化的友荣与伞的视线相遇了。除了几处变化,伞还是那个伞。那张总是沉着的脸,那双注视着友荣的眼睛,左手腕上戴着的手表。每次眼皮眨动时,那微微上翘的睫毛都让人觉得很漂亮。现在这种情况该怎么想呢?一瞬间,友荣心中涌起一股冲动,但却无法轻易开口。想到曾经错过一次伞,现在可能会再错过一次,友荣的嘴巴僵住了,怎么也张不开。

 

멍하니 얼굴만 바라보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손목을 쥐고 소매를 걷어올리면, 전과 달리 작은 상처나 멍 하나 없이 깔끔하고 흰 맨살이 나왔다. 알고는 있다. 자신의 앞에 선 산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진짜 최산이 맞는데. 우영이 산의 손목을 꾹 쥐었다.
呆呆地只看着他的脸,伸出手小心翼翼地抓住他的手腕,卷起袖子,露出与以前不同的干净白皙的皮肤,没有一点小伤口或淤青。我知道,站在我面前的伞不只是幻影,而是真实的,我知道这是真的崔伞。友荣紧紧抓住了伞的手腕。

 

무슨 말부터 할까. 행복했냐? 나 버리고 가서, 행복했냐? 갑자기 연락 끊고 사라지더니 얼굴은 좋아졌네. 군대는? 미국 가서 누가 괴롭히지는 않았고?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내가 조르지 않아도 사진 좀 많이 보내주지. 겨우 몇 장 보낸 걸로 나는 군대도 버티고, 좆같은 상황도 다 버티고…. 미국에서 친구는 좀 사귀었어? 너 성격 더러워서 받아줄 사람 흔치 않은데. 지금의 넌 몰라도 옛날의 최산은 좀 싸가지 없고…, 귀여웠잖아. 아, 그리고 네가 미국으로 간 사이에 많은 게 변했는데 알고는 있었어? 나는 전부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속에 담아두고만 있었어. 최산, 나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들었을 테지만 최 회장이 더는 너를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고, 나도 이제 그 어린 정우영 아니야. 지금 상황이면 우리 좀 달라질 수 있나?
从哪里开始说起呢?你幸福吗?抛下我走了,你幸福吗?突然断了联系消失不见,脸色倒是好了不少。军队怎么样?去美国没有被人欺负吧?你是怎么知道我在这里的?即使我不催你,也多发点照片给我啊。就靠你发的几张照片,我撑过了军队,撑过了那些狗屎一样的情况……在美国交到朋友了吗?你性格那么差,能接受你的人不多吧。现在的你我不知道,但以前的崔伞有点没礼貌……不过很可爱啊。啊,还有你去美国期间,很多事情都变了,你知道吗?我想告诉你所有的事情,想打电话给你,但没办法,只能把一切都埋在心里。崔伞,我有话想对你说。你可能已经听说了,崔会长现在不能再动你了,我也不再是那个小小的郑友荣了。现在这种情况,我们能有所改变吗?

 

가만히 손목을 어루만지던 우영은 줄을 지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워냈다.
静静抚摸着手腕的郑友荣把一连串浮现的想法抹去了。

 

 

“…언제 왔어?” “…你什么时候来的?”

“이틀 전에.” “两天前。”

“…….” “……”

 

 

누구는 이런 것도 다 섭섭해서 죽겠는데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다. 우영은 엄지로 산의 손목을 살살 쓸었다. 오랜만에 만난 산을 와락 끌어안든, 멱살을 잡든 뭐라도 하고 싶은데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가 많다. 우영은 어두운 밤의 거리가 꼭 공항처럼 느껴졌다.
有人因为这种事都要难过死了,有人却毫不在意。友荣用拇指轻轻抚摸着伞的手腕。好不容易见到伞,想要猛地抱住他,或者抓住他的衣领,做点什么,但身体却迟迟没有动作。周围有很多眼睛在看,很多耳朵在听。友荣觉得这黑暗的夜晚街道就像机场一样。

 

 

“방금은 애인?” “刚才是恋人吗?”

“뭐?” “什么?”

“커플링, 소박하네.” “情侣戒指,真朴素啊。”

 

 

우영은 그제야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깨닫고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윤호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탓에 빼지 못한 반지가 꼭 커플링인 것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허둥대며 반지를 뺀 우영은 꼭 바람이라도 피우다 걸린 사람처럼 반지 안쪽을 들이밀었다. 이거 애들이랑…, 강여상이랑 정윤호랑 맞춘 거야. 셋이 그냥 우정…, 우정으로, 정윤호가 오늘 갑자기…. 우영은 스스로가 허둥대고 있음을 알았다. 취기가 오른 탓에 혀고 꼬여 정리되지 못한 말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라며 튀어나가는 바람에 우영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버벅거리기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산이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는 당황한 우영과 시선을 마주했다.
友荣这才意识到自己无名指上戴着的戒指,叹了口气。润浩瞪大眼睛盯着他看,戒指就像情侣戒一样显眼。慌乱中,友荣把戒指取了下来,像是被抓到出轨一样,把戒指内侧展示给润浩看。这是和大家……,和吕尚、丁润浩一起配的。我们三个只是友情……,友情戒指,丁润浩今天突然……。友荣知道自己在慌乱。因为喝醉了,舌头打结,话语混乱不堪,友荣最终闭上了嘴。一直默默听着他结结巴巴说话的伞,整理了一下被风吹乱的头发,与慌张的友荣对视。

 

 

“나 앞으로 계속 한국에 있어.”
“我以后会一直在韩国。”

“…어.” “…呃。”

“어머니랑 둘이 살 것 같고, 일은 아직.”
“好像和母亲两个人一起生活,工作还没有。”

“우리 회사에 자리 하나….” “我们公司有一个职位….”

“아버지랑도,” “和父亲一起,”

“…….” “……”

“만날 일 없어.” “不会再见面了。”

 

 

우영은 어느 정도 안도가 됐다. 애초에 산이 바보가 아닌 이상 최 회장과 더는 만날 일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랑 둘이 사는 것도 다행이고, 일은 아직이라고 했으나 우영이 회사에 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상관이 없었다. 우영은 마주한 산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어른스러워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귀에 자리하고 있는 피어싱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는데, 우영은 뒤늦게 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우영에게는 익숙한 위치들이었다.
友荣多少松了口气。毕竟,伞不是傻子,至少知道不再和崔会长见面。和母亲一起住也算是幸运,虽然工作还没开始,但友荣可以在公司给他安排个位置,这点倒是无所谓。友荣注视着伞的脸。看着他那变得成熟的脸庞,耳朵上的耳钉再次映入眼帘,友荣不禁轻笑了一声。对友荣来说,这些位置再熟悉不过了。

 

사소한 거 하나에 반응하는 본인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주인 기다려온 개마냥, 연락 끊고 사라진 산에 대한 원망보다 반가움이 더 컸다. 우영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마지막을 눈에 그렸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하복을, 너는 커다란 캐리어를 옆에 둔 채 얇은 코트를. 잠시 입을 벙긋거리던 우영이 산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사용감이 있는 시계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것도 잠시,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는 고개를 들어 산과 시선을 마주한다.
自己因为一件小事而反应过度,觉得自己很可笑。就像等待主人归来的狗一样,比起对断了联系消失的伞的怨恨,更多的是高兴。友荣自然地回想起最后的场景。我满头大汗地穿着夏季校服,你则把一个大行李箱放在旁边,穿着一件薄外套。友荣张了张嘴,犹豫了一下,小心翼翼地拉了拉伞的手腕。短暂地低头看了一眼那块有些磨损的手表,友荣擦了擦脸,抬起头与伞对视。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有太多想说的话。”

“응.” “嗯。”

“네가 갑자기 잠수 탔을 때는 진짜 죽을 것 같더라.”
“你突然消失的时候,我真的觉得自己快要死了。”

“…응.” “…嗯。”

“여유가 없다고 떠난 네 말이 계속 떠올라서 비참했어. 말로만 좋아한다고 떠들었지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네가 돌아왔을 때 내가 비참하지 않을 수 있도록.”
“你说你没有余裕离开了,我一直想着这句话,感到很悲惨。只是嘴上说喜欢你,但实际上我什么都做不了。所以我等了又等。为了在你回来时,我不再感到悲惨。”

“응.” “嗯。”

“최산.” “崔伞。”

 

 

우영이 산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하얀 피부가 우영의 손길에 따라 자국이 남는 것만 같아서 괜히 더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이 근처. 치기 어린 정사 때 새겼던 키스마크의 위치를 떠올리며 엄지로 꾹 누른 우영이 산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손은 예전과 달랐다. 엄지로 꾹 누르고 있던 부분에 짧게 입을 맞춘 우영이 눈을 감았다. 시곗줄 언저리가 입술에 닿았다가 금세 떨어진다. 우영이 얘기할 때마다 옅은 담배냄새와 술냄새가 났다. 여린 손목 위에 한 번, 시곗줄 위에 한 번, 손등 위에 한 번, 자국 하나 없는 깔끔한 네 번째 손가락에도 한 번. 차례대로 입을 맞춘 우영은 약지 위에 입술을 꾹 누른 채 산을 응시했다. 손등 위로 우영의 숨이 닿았다.
友荣小心翼翼地抚摸着伞的手腕。白皙的皮肤在友荣的触碰下似乎会留下痕迹,因此他更加谨慎。大概就在这附近。友荣回想着那次幼稚的情事中留下吻痕的位置,用拇指按了按,拉过伞的手腕。没有用力的手与以前不同。友荣在用拇指按住的地方轻轻吻了一下,闭上了眼睛。手表带附近的皮肤刚碰到唇便迅速分开。每次友荣说话时,总能闻到淡淡的烟味和酒味。在柔嫩的手腕上吻了一次,在手表带上吻了一次,在手背上吻了一次,最后在干净的无名指上也吻了一次。友荣依次吻过后,紧紧地将唇按在无名指上,注视着伞。友荣的呼吸轻轻拂过伞的手背。

 

 

“지금은 어때?” “现在怎么样?”

“…….” “……”

“사실 모르겠어. 네가 아직 여유가 없다고 해도 내가 안 돼.”
“其实我不知道。即使你说你还没有时间,我也不行。”

“…….” “……”

“보고 싶었어.” “我想你了。”

 

 

씨발, 진짜…. 진짜 존나 보고 싶었다고. 우영이 산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몸은 자연스럽게 딸려오고, 우영이 산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근육이 붙었으나 여전히 마른 허리에 팔을 두르고, 술냄새도 모자라 담배냄새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산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유치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괜히 혀를 꾹 깨물고는 눈을 감았다.
“씨발, 진짜…. 진짜 존나 보고 싶었다고.” 友荣拉住了伞的手腕。没有力气的身体自然地被拉了过来,友荣小心翼翼地抱住了伞。虽然肌肉发达,但仍然瘦削的腰间被他环住,尽管知道伞身上不仅有酒味还有烟味,他还是把鼻子埋进了伞的颈窝。幼稚的情感突然涌上心头,他咬紧舌头,闭上了眼睛。

 

 

“나 아직 너 좋아해.” “我还喜欢你。”

“응, 알아.” “嗯,知道。”

“알면 대답 좀 해줘.” “知道的话就回答我吧。”

“…….” “……”

“이제 네 여유 사이에 나 좀 끼워주라, 산아.”
“现在在你的空闲时间里让我加入吧,伞啊。”

 

 

우영이 품에 안고 있던 산을 조금 밀어내며 거리를 만들었다.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 없으면서 술에 취한 혀는 잘도 다정하게 부른다. 갑자기 사라졌다 이렇게 나타날 거면 여전히 예쁘지나 말든가. 우영이 속으로 생각하며 산의 뒷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살짝 힘을 줘 당기면 여전히 예쁜 얼굴이 고스란히 끌려온다. 뻔히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꾹 닫고 있는 산이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우영과 이마를 맞댄 산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대답을 재촉하는 우영이 뒷목을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을 줬는데,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산은 꼭 한국을 떠나기 전의 주말처럼, 우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온전히 산의 의지였다.
友荣稍微推开怀里的伞,拉开了一点距离。明明从来没有这样叫过他,醉酒的舌头却能如此温柔地呼唤。突然消失了又这样出现,还不如一直不漂亮呢。友荣心里想着,轻轻地搂住了伞的后颈。稍微用力一拉,那张依旧漂亮的脸就被完全拉了过来。伞明明知道友荣在等他的回答,却紧闭着嘴不说话,真是让人心寒。伞和友荣额头相抵,慢慢地眨了眨眼。友荣催促着,手上加了点力,过去的记忆自然浮现出来。伞就像离开韩国前的那个周末一样,环住了友荣的脖子。唯一不同的是,这次完全是伞的意愿。

 

 

“키스할래?” “要亲吻吗?”

 

 

산의 말은 온전히 그 의미를 전하기도 전에 입 안에 먹혀들었다. 보는 눈이 적든, 많든. 이 둘의 대화를 듣는 이가 있든, 말든. 더는 남의 눈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다니는 거리에서 성인 남성 둘이 입을 맞추고 있는 장면은 흔하지 않았으니 당연하게 시선이 모였다. 지나다니며 수군대는 것도 모자라 몇 명의 사람이 발걸음을 멈췄을 때가 되어서야 고개를 튼 산이 우영과 이마를 맞댄 채 눈을 깜빡였다. 허리를 끌어안은 팔은 단단했고, 온전히 산을 바라보는 눈은 흔들리지 않는다. 산이 수가 줄어든 우영의 피어싱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伞的话还没完全传达出它的意义,就已经被吞进了嘴里。不管是人多还是人少。不管有没有人在听他们的对话。他们再也不想在意别人的眼光了。在人来人往的街道上,两名成年男性接吻的场景并不常见,所以自然吸引了目光。有人不仅在路过时窃窃私语,甚至有几个人停下了脚步,这时伞才转过头来,与友荣额头相抵,眨了眨眼。环抱着腰的手臂很结实,完全注视着伞的眼睛毫不动摇。伞用手指轻轻碰了碰友荣减少了的耳钉。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았어. 거기서는 아무도 날 모르니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고.”
“想做的事情都做了。在那里没有人认识我,所以也没有什么压力。”

“최산.” “崔伞。”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는데, 내 옆에는 아직도 네가 있더라.”
“过了很久,我才有空环顾四周,发现你还在我身边。”

“…산아.” “…伞啊。”

“그래서 왔어. 내 여유를 만나러.”
“所以我来了。为了见我的余裕。”

 

 

옅은 여름의 바람이 꽃을 흔드는 것처럼 산의 긴 속눈썹이 천천히 내려앉고, 우영이 다시금 입을 맞췄다.
如同浅夏的微风轻拂花朵,伞的长睫毛缓缓垂下,友荣再次吻了上去。

 

한참을 돌아서야 마주한, 연애의 시작이었다.
这是经过漫长的兜兜转转才迎来的恋爱开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