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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부터 가오 두둑하게 쥐고 태어난 인생은 비교적 순조롭게 잘 풀려 왔다. 사업 탄탄히 굴리시는 부모님 덕에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유복하게 자랐고, 하드웨어도 잘 빠진 터라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 알차게 누렸으며, 뭐든 중간 이상은 하는 능력치와 적당히 더러운 성깔머리 탓에 어디 가서 지고 들어가는 일 없이 만년 상타치. 사내놈들 사사로운 서열질에 큰 흥미 안 부려도 눈 떠 보니 피라미드 꼭대기였다.
天生就手握傲人资本的命运,人生相对顺遂。在事业稳固的父母荫庇下,得以随心所欲地成长,硬件条件优越的外貌更让他在这个外貌至上的社会享尽各种红利。万事都能做到中上水平的实力加上恰到好处的痞气,让他从未在任何场合低过头,始终是人生赢家。即便对男性间无聊的等级游戏兴致缺缺,睁眼时却已站在金字塔顶端。

다만 이 잘난 삶은 어느 기점에서부터 은근히 하찮아지기 시작하는데. 재현은 그 기점이 여주와의 만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但这完美人生从某个节点开始悄然褪色——在载贤心里,这个转折点无疑是与女主的相遇。


남중-남고 지독한 루트를 밟고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남녀 성비 5:5를 자랑하는 연영과의 환경은 재현에게 다소 적응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수많은 여자 동기들과 선배들이 퍽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왔다. 설렘 따위의 기분 좋은 불편함이 아니라, 다른 종족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본능적인 경계와 거부였다. 철저히 남자들로만 구성된 생태계에서 자연스레 윗대가리 먹고 살다가 덜컥 혼선이 생겼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走过男中-男高的极端升学路线,初入大学时,面对影视系 5:5 的男女比例,载贤感到难以适应。成群陌生的女同学和学姐让他浑身不自在,这不是带着悸动的美好困扰,而是面对异族般本能的戒备与排斥。在纯男性生态圈里自然形成的上位者姿态,突然遭遇了性别错位的混乱。

그 시점에 대뜸 마주치게 된 여주는 첫인상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꼭두새벽에 술을 궤짝으로 들이붓고 번지수 잘못 찾아 재현 집 도어락을 삑삑 눌러대다 그대로 넉아웃. 자다 깨서 생전 처음 보는 여자애 들쳐업고 부리나케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의사 왈, 그냥 취해서 뻗은 거라길래 곧장 경찰서로 방향을 틀어야 했지만.
就在此时撞进他生活的女主,初见便不同凡响。凌晨酗酒如牛饮,认错门牌号对着载贤家的电子锁乱按,最后直接醉倒不省人事。睡梦中惊醒的他,人生第一次背着陌生女孩狂奔急诊室。听闻医生诊断只是醉酒昏睡后,本该立刻转向警察局——

후에 알고 보니 앞집 이웃에다 동갑에다 같은 학교였더랬다. 안녕, 나랑 친구 할래? 숙취 찌든 얼굴 비비적대며 찾아와 태연히 악수 청하던 그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터졌던 기억.
后来才知道,原来是对门的邻居,同龄还同校。“嗨,要和我做朋友吗?”那张宿醉未醒的脸蹭过来,若无其事地伸手要握手的模样,让人不禁失笑。


- 장난하나. 새벽에 그 민폐를 부려놓고 친구 하자고?
“开什么玩笑。凌晨闹出这么大动静,现在说要交朋友?”

- 미안하니까 친구 하자는 거지~ 내가 잘해줄게. 귀엽게 생겨 가지구 왜 그래.
“就是因为抱歉才想交朋友嘛~我会好好对你的。长得这么可爱干嘛这么凶。”


그야말로 뻔뻔함의 극치. 생긴 건 곱상해도 타고난 기 때문에 남들이 만만히 못 대하는 재현더러 귀엽다니 뭐니 서슴없이 손 내미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게 썩 싫지 않았던 것 같다.
简直厚颜无耻到极点。明明长了张清秀的脸,却因天生自带气场让人不敢小觑的载炫,居然被人毫不避讳地说可爱还主动伸手——这还是头一遭。问题是,自己似乎并不讨厌这种感觉。

희한하게 다른 이성들과 달리 쉽게 터놓고 친해졌다. 오래 알았던 사이도 아닌데 마냥 편했다. 여주는 무슨 배짱인지 재현을 막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 한주먹거리 주제에 건방지게 맞먹으려 드는 꼴이 깜찍해 그냥 냅뒀다. 야야 거리면서 서로의 집에 곧잘 드나들 만큼 가까워지고 나서는 그냥 머리 긴 남자애구나 생각하게 됐고, 그게 옳다고 본인도 모르게 세뇌했다. 지극히 당연하게 친구의 선을 설정했다. 가끔 여주가 선을 넘는다 싶으면 칼같이 예민 떨면서 아득바득 다시 선을 그었다. 친구와 연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재현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오류였으니.
奇怪的是,与其他异性不同,我们很快就能敞开心扉变得亲近。明明认识的时间不长,却莫名感到自在。女主不知哪来的胆量,总爱对宰贤动手动脚。明明是个小不点还敢嚣张地顶撞,那副模样实在可爱,我也就随她去了。后来我们熟到可以互相串门,整天"呀呀"地打闹,渐渐地我只把她当作一个长发男孩,甚至不知不觉给自己洗了脑。我理所当然地划定了朋友的界限。每当觉得女主越界时,就会敏感地大发脾气,手忙脚乱地重新划线。让友情与爱情的界限模糊,这违背了宰贤的人生信条。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점차 나이 먹으면서 이성들과의 인간관계에 익숙해졌을 때쯤, 남들 다 하는 연애도 몇 번 해보는 내내 항상 의문점이 있었다. 이여주는 나한테 도대체 뭐지. 여주더러 선 넘는다고 성깔 부려 봤자 정작 남몰래 선을 더 넘는 건 자신이었다.
但这并非易事。随着年岁渐长,当我已经习惯与异性相处时,在尝试了几段恋爱后,始终有个疑问挥之不去:李艺珠对我而言到底算什么?就算我冲她吼"越界了",实际上偷偷越界的总是我自己。

이를테면, 여자친구를 여주 이름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인생 처음으로 뻥 차여 봤을 때라든가. 혹은 덜컥 꿈에 나타난 여주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도 잘 안 하던 몽정을 했을 때라든가. 씨발 주여, 이 못난 어린양의 죄를 용서하소서… 쪼그려 앉아 팬티 박박 빨아대는 내내 믿지도 않는 하느님 찾으며 정신없이 회개했었다.
比如第一次因为把女友叫错成艺珠的名字而被狠狠踹飞时;又或是某天突然梦到艺珠,导致连中学时代都没怎么有的遗精现象发生时...他妈的,主啊,请宽恕这只迷途羔羊的罪孽...我蹲在地上拼命搓洗内裤时,甚至向素不相识的上帝疯狂忏悔。


그렇게 긴긴 시간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팔자에도 없는 핑크바나나 따라갔다가 하루아침에 거하게 사고 치고 연애까지 골인한 이 시점, 의문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선 넘은 감정을 품게 됐나. 그 이유와 계기는 뭔가. 쉬이 대답할 수 없는 미제였다.
就这样兜兜转转漫长时光,直到今天。莫名其妙跟着粉红香蕉跑,结果一夜之间闯下大祸还谈起了恋爱,时至今日那个疑问依然存在:到底从什么时候开始怀揣了越界的感情?原因和契机又是什么?这始终是个难以回答的未解之谜。

아마 그 철모르던 시절에도 영훈 여주 둘이 배알 꼴렸던 거 보면, 그 스며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었겠거니 막연히 추측하는 수밖에.
或许在那个懵懂无知的年纪,看到英勋和女主两人暗自心动时,只能模糊地推测那份情愫的渗透过程远比想象中漫长。












앞서 말했다시피, 재현은 유일하게 여주 관련된 일에서만 하염없이 하찮아지곤 했다. 핑크바나나에 질질 끌려갔을 때나 아랫도리 사정 들킬 때도 충분히 하찮았으나 근래 정점을 찍은 사건은 따로 있었다.
如前所述,在涉及女主的事情上,载贤总是会变得无比卑微。无论是被拽去粉色香蕉的时候,还是下半身秘密差点暴露时都足够狼狈,但近期有一件事让他彻底跌入谷底。

그래, 그 날은 어쩐지 아침부터 일이 좀 꼬인다 싶었다. 알람 못 듣고 계속 자는 바람에 헬스 출석 도장을 못 찍었고,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서 발을 헛디뎌 저세상 갈 뻔했으며, 밥을 대충 챙겨 먹으려고 보니 쌀이 한 주먹도 채 안 남았더라.
是啊,那天早上开始就觉得诸事不顺。因为没听到闹钟睡过头错过了健身房打卡,进浴室洗漱时脚底打滑差点去见了阎王,想随便弄点吃的却发现米缸里连一把米都不剩。

그러다 끝끝내 최종 보스로 맞닥뜨린 것은… 인생에서 손꼽을 최악의 수치플. 
最终迎面撞上的终极 BOSS 竟是…人生最耻辱的社死现场。


'혀 깨물고 뒤져버리기 좋은 날씨다.'
'真是适合咬紧牙关一头栽倒的天气。'


주연이 뛰쳐나간 현관문을 망연히 바라보며 재현이 마음속으로 읊조린 한 마디였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실감조차 제대로 안 되긴 하는데, 뭐가 어찌 됐든 좆된 것만은 확실했다. 다만 그것이 아직 피부로 와닿지는 않아서 문제였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나. 약 3분간 가만히 멍 때리던 재현은 비교적 침착하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在主演冲出去的玄关门茫然望着,宰贤在心底默念的一句话。刚才到底发生了什么甚至都没能真切感受到,但不管怎样完蛋了是肯定的。只是问题在于还没能切身感受到罢了。该如何收拾这局面。发呆约 3 分钟后,宰贤比较冷静地拿起了手机。



처남
妹夫




주연아
主演啊

형이 미안하다
哥哥对不起

잊어 주면 고맙겠다
请忘记的话会很感谢


장난해요?
在开玩笑吗?

그게 잊는다고 잊혀져요?
那个说忘记就能忘记吗?

형이라면 잊을 수 있겠어요?
如果是哥哥的话就能忘记吗?


쉽진 않겠지ㅠ
应该不容易吧ㅠ

진짜 미안
真的很抱歉


여자친구랑도 아직 키스 안 해 봤는데..
和女朋友到现在都还没接过吻呢..

눈물 나요
好想哭


보통 그걸 키스라고 하진 않아 ㅋ
一般那个不叫接吻啦 哈哈

뽀뽀 정도로 합의 보자
就当是亲亲达成共识吧


죄송한데
不好意思

속이 안 좋아서
心里不舒服

더는 형이랑 연락 못 하겠어요
不想再和哥哥联系了


형도 속이 좋진 않어..
哥哥心里也不好受...


이 얘기 더 하시면 차단할게요
再提这事我就拉黑了


1 그랴 미안..
1 对不起啦..

1 쉬어라
1 休息吧

1 너희 누나한테는 무조건 비밀이다
1 对你们姐姐必须保密

1 형의 마지막 부탁
1 哥哥最后的请求






어라. 이주연 이 새끼 착한 줄 알았더니 사람 카톡을 막 씹네. 궁시렁대며 휴대폰을 집어던진 재현은 옆에 세워진 전신거울로 힐긋 시선을 던졌다.
哎呀。我还以为李周延这家伙是个好人,结果居然无视别人的 Kakao 消息。嘟囔着把手机扔掉的宰贤,用余光瞥了一眼旁边立着的全身镜。

그 순간 거울 가득 비치는 형상은, 나비넥타이 초커에 연결된 목줄을 늘어뜨린 채 토끼귀를 쫑긋대는 거구의 바니보이였다. 그뿐일까. 근육 빡 올라선 허벅지를 아찔하게 감싼 가터벨트, 상체를 여기저기 수놓은 검은 하네스까지. 맨살 위에 하네스 두르는 건 차마 못 해 먹을 짓이라 와이셔츠 하나 챙겨 입은 걸 신의 한 수라고 해야 할까.
那一瞬间,镜中映出的身影竟是个戴着蝴蝶领结项圈、垂着宠物链,竖起兔耳的巨型兔男郎。不仅如此——肌肉紧绷的大腿被吊袜带危险地缠绕,上半身各处点缀着黑色束带。终究没敢直接裸身穿束具,勉强套了件衬衫倒算是明智之举。

아아, 세상아. 좆된 게 피부로 확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재현은 그제야 소리 없는 악을 지르며 방바닥을 뒹굴었다. 머리통에 씌워놨던 깜찍한 토끼 머리띠가 하얀 털 퐁퐁 날리며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啊啊,完蛋了。当这个事实通过皮肤真切传递时,宰贤终于无声地咒骂着在地上打滚。头上戴的可爱兔耳发箍随着白色绒毛无力飘落。


"이런 씹... 핑크바나나 개 씨발...!"
"这该死的...粉红香蕉混蛋...!"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뒤질 징조라더라.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 말을 재현은 이번만큼 절절히 체감한 적이 없었다. 생전 안 하던 개짓거리를 저질렀고 이대로 뒤져야만 속 시원할 상황에 놓였다.
人若反常必有祸,这话虽是玩笑,但这次我算是真切体会到了。平生没干过的荒唐事都做了,落到这般地步,只有死才能解恨。

이 모든 사태의 원흉? 역시 그놈의 핑크바나나였다.
这一切的罪魁祸首?还是那该死的粉红香蕉。












며칠 전, 지극히 평화롭던 어느 날. 이 망할 사이트로부터 예고 없이 날아온 택배가 사건의 첫 시작이라 하겠다. 여전히 심상치 않은 비주얼의 핑크 박스. 보기만 해도 진저리를 쳐야 했지만 스멀스멀 피어나는 호기심을 이길 순 없었다.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도대체 왜 온 건지 두려움 반 궁금증 반으로 택배 박스를 뜯어낸 순간.
几天前,某个极其平静的日子。这个该死的网站突然寄来的快递就是一切的开端。依旧是那扎眼的粉红包装盒。光是看着就让人起鸡皮疙瘩,但按捺不住的好奇心还是占了上风。怀着恐惧与好奇各半的心情拆开快递的瞬间——这没订购的包裹到底为何而来?


2jaehyeon0913님, 핑크바나나입니다~^^ 작성해 주신 바나나홀 후기가 좋아요 100개를 돌파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감사한 마음으로 저희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웃게 할 큐티섹시 바니보이 코스튬! 깜짝 이벤트로 즐겨보세요!♥
2jaehyeon0913 用户,这是粉红香蕉哦~^^您撰写的香蕉洞好评突破 100 个啦!知道吗?!为表感谢我们准备了小礼物~^^能让心爱的她笑开怀的可爱性感兔男郎装扮!快来享受这个惊喜活动吧!♥


핑크색 포스트잇에 쓰인 문구와 그 아래 비닐포장된 내용물을 보고 재현은 그야말로 기함을 했다. 여주가 하도 닦달해서 영혼 없이 작성했던 후기. 그 뭣 같은 바나나를 제대로 써 보지도 않고 막 휘갈긴 텍스트가 좋아요 100개를 넘었다는 것부터 환장할 노릇인데, 작은 선물이랍시고 보내 준 이 정체불명의 의상이 더 황당했다. 후기에 여자친구 어쩌고 tmi를 흘린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看到粉色便利贴上写的字句和下面塑料包装的内容物,载贤简直要晕过去了。女主角不停催促下他心不在焉写下的评论。那篇连香蕉都没好好使用就胡乱涂鸦的文字竟然获得超过 100 个点赞已经够让人崩溃了,而所谓"小礼物"送来的这套莫名其妙服装更令人荒唐。他完全没想到在评论里提到女朋友的私密信息会招来这种后果。

미친 사이트 아니야 이거. 엄연히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는 성인 남자더러 이딴 걸 입으라고 보내? 따지기 위해 곧장 핑크바나나 온라인 몰에 접속한 재현은 살짝 멈칫했다. 가지각색 화려한 배너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하나.
这网站疯了吧?让一个要维持社会体面的成年男性穿这种东西?载贤立刻登录粉色香蕉网购平台想理论,却突然愣住了——在五颜六色的华丽横幅广告中,有个特别醒目的存在。



"사랑받는 남자가 되고 싶다면? 여성 고객 만족도 1위. 후기폭발. 신상 코스튬 바니보이……"
"想成为受欢迎的男人吗?女性顾客满意度第一。评论爆炸。新款兔男郎 cosplay 服装..."


오, 이런 인기 초절정 상품을 선물이랍시고 보내준 거? 여기 누나들 쿨하네.
哦?把这种人气爆款当礼物送?这里的姐姐们真会玩。

순간 재현의 잘난 눈썹이 찡긋했다. 또 이 죽일 놈의 단순함과 호기심이 문제였다. 엄지는 제멋대로 배너를 클릭해 들어갔고, 상품 페이지에 접속하자마자 몇백 개가 넘는 생생 후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여자친구 반응 미쳤습니다. 최고였어요. 제 생에 다신 없을 플레이. 다섯 번 했네요……
瞬间再现的傲人眉毛挑了挑。又是这该死的单纯和好奇心惹的祸。拇指擅自点击横幅进入后,刚跳转到商品页面,数百条鲜活评价便如潮水般涌来。"女朋友反应太疯狂了""简直完美""这辈子都不会再有的体验""已经玩了五遍……"


"등신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딴 걸 쳐입을 생각을 하냐."
"蠢货。再怎么也不该想着穿那种破烂玩意儿。"


고추 떼라 새끼들아. 가오가 다 뒤져가지고는. 쯧쯧 혀를 차대며 내용물을 집어 든 재현이 성의 없는 손길로 비닐을 벗겼다. 퐁실퐁실 깜찍한 토끼 머리띠를 보자마자 기어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대체 이게 뭐라고 여자들이 좋아 뒤집어진다는 건지, 한번 써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머리에 살짝 얹어 봤다. 그 상태로 거울을 향해 돌아앉았다.
兔崽子们连辣椒都怕。品味真是烂透了。啧啧咂舌的再现随手抓起内容物,漫不经心地撕开塑料膜。看到蓬松可爱的兔耳发箍瞬间,终究没憋住嗤笑出声。完全搞不懂女人们为什么为这种东西发疯,抱着"干脆试试看"的心态轻轻戴在头上,转身对着镜子端详。


"......"


끔찍해서 눈알 찌르고 싶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봐줄 만했다. 고개 각도를 이리저리 틀어 매무새를 정리했다.
原以为会丑得想戳瞎双眼,意外地还能接受。摆弄着脑袋调整角度整理造型。


"그래 뭐, 난 잘생겼으니까."
"好吧,反正我长得帅。"


아무래도 토끼의 완성은 얼굴이지. 뿌우. 무의식적으로 볼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 아 씨, 근데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说到底兔子的精髓还是脸蛋啊。噗。不自觉地往脸颊充气又泄掉。啊靠…不过好像确实有点可爱…

스스로에 살짝 심취한 재현은 홀린 듯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내용물을 더 꺼냈다. 리본 초커? 목줄? 이건 뭐 나라도 좋아하겠네. 이 정도쯤이야 선심 써서 모가지에 한번 달아 줄 수 있지. 이건 말로만 듣던 가터벨트? 존나 변태 씹덕 같지만 그래도 내가 또 허벅지 하나는 쌔끈하니 잘 빠졌으니까. 근데 이 멜빵 닮은 흉물스러운 새끼는 뭐야, 어디에다 하는 거야. 결국 남들의 후기를 꼼꼼히 찾아본 다음에야 하네스의 명칭과 착용법을 파악한 재현이었다. 별 씨발, 동물들의 전유물을 인간이 도대체 왜.
略微自我陶醉的载现像被蛊惑般膝行上前,又掏出更多物件。丝带项圈?宠物颈链?这玩意儿连我都会喜欢吧。这种程度就当发善心给你挂脖子上好了。这就是传说中的吊袜带?虽然像变态死宅专用但谁让我大腿线条够漂亮呢。不过这形似背带的丑东西是啥,到底该怎么穿啊。最终翻遍网友测评才搞清束具名称和穿法的载现。妈的,人类干嘛非要抢动物的专属装备。


"…이런 건 와이셔츠랑 입어야 되나."
"…这种是不是得配衬衫穿啊。"


한평생 후드와 맨투맨, 츄리닝만 고수하던 재현에게는 하나같이 낯선 아이템들이었다. 물론 안 낯선 게 더 이상했다. 마침내 얼레벌레 풀착용을 끝낸 재현은 거울 앞에서 어색하게 하네스 만지작대며 침을 꼴깍 삼켰다. 스스로 봐도 꽤 그럴싸하면서 여러모로 호기심 자극하는 모양새긴 했다.
对于一辈子只穿连帽衫、卫衣和运动服的载贤来说,这些装备件件都陌生得很。当然,更奇怪的是他居然不觉得陌生。终于手忙脚乱穿戴整齐的载贤站在镜前,笨拙地摆弄着背带,喉结紧张地滚动了一下。连他自己都觉得这身装扮像模像样,确实透着股让人心痒的猎奇感。

섹스 안 해 준다고 하루가 멀다 난리 치는 애한테 이딴 꼴로 이벤트 한번 해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아, 한번 해볼까. 존나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한 게 언제였더라. 쿨타임 찼지 아마.
要是给那个整天闹着不做爱就发疯的家伙来这么一出特别活动,不知道会是什么反应。啊,要不试试?那家伙肯定会高兴疯了吧。话说上次做是什么时候来着...冷却时间应该到了吧。

잠은 각자 집에서 자자는 제안은 사실 스스로도 달갑지는 않았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구르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부족한데, 애써 선비짓 하면서 참는 중이었다. 표면적 이유로는 아무래도 여주 체력이 못 따라올까 봐, 하는 순수한 걱정. 그리고 보다 딥한 이유를 파고들자면... 지금껏 간신히 숨겨온 질 나쁜 섹스 취향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서. (S와 M을 굳이 따지자면 재현은 빼도박도 못한 전자였다.)
提议各自回家睡觉这件事,其实他自己心里也老大不乐意。坦白说恨不得 24 小时都在床上翻滚厮磨,却偏要装正人君子硬忍着。表面理由是担心女主体力不支——多么纯洁的忧虑。至于更深层的原因...是怕自己藏了这么久的恶劣性癖会突然暴露。(非要分 S 和 M 的话,载贤绝对是如假包换的前者。)

한번 발동 걸리면 이성 차리기 힘들다는 걸 잘 알기에 어떻게든 자제해야 했다. 여주가 하자고 매달리는 거 매번 여유롭게 튕겨내면서 속으로는 저가 더 죽을 맛이었다. 앞에서는 쿨한 척 고상한 척 오지게 하는 주제에 뒤돌아서면 낑낑 허벅지 꼬집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他太清楚自己一旦失控就难以恢复理智,所以必须拼命克制。每次游刃有余地拒绝女主求欢时,内里早被欲望折磨得死去活来。人前装得冷静自持风度翩翩,转身就掐着大腿根疼得直哼哼的日子,他已经过了不知道多少天。

하지만, 언제까지 자제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특히 전에 주고받았던 대화가 불현듯 떠오르고야 만 이 시점에서는.
然而,能克制到何时呢?我不禁产生疑问。特别是此前交流的对话突然浮现在脑海的这个时刻。


- 이재현이 내 앞에서 야한 옷 입어주고 속옷 이벤트 같은 것도 막 해줬음 좋겠다.
- 真希望李宰贤能在我面前穿上性感衣服,还搞些内衣活动之类的。

- 뭐, 야한 속옷 사줘?
- 怎么,要给你买性感内衣吗?

- 아니, 듣고 싶은 대로 듣지 말고 네가 입어 달라고!
- 不是!别只听你想听的,我是让你穿给我看!

-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걸.
我?还不如重新投胎来得快。

- 기대도 안 했어, 곰 같은 새끼.
压根没指望过,你这熊崽子。


그 곰 같은 새끼가 여우짓, 아니, 토끼짓 한번 해주면 상당히 좋아 죽겠지. 그냥 다 제쳐놓고, 여주가 흥분해서 허겁지겁 달려들 거 상상하니 사정없이 꼴렸다. 그 작은 손에 목줄 휘어잡힌 채로 병신같은 토끼귀 흔들며 연신 박아댈 생각에 아랫도리 묵직해져서 혼자 한 발 빼야 했다는 건 비밀.
那熊崽子要是耍个狐狸把戏——不,兔子把戏,我怕是会爽到升天。抛开一切想象,女主兴奋得手忙脚乱扑过来的样子,光是想想就硬得不行。被那双小手攥着项圈,蠢兮兮晃着兔耳朵不停往里顶的画面,害得我下半身发胀,不得不独自后退一步——这事儿得保密。

아무튼 그렇게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까지 짜서 벌인 작전이었다. 알바 빼고 시간 비워서 여주 집에 몰래 침입한 다음, 팔자에도 없는 바니보이 코스튬 챱챱 입은 다음에 목줄만 빼꼼 내놓고 문 닫아 숨었다. 집에 돌아온 여주가 목줄 발견하고 침실 문 열면, 곧장 달려들어 키스 갈기고 침대에 집어던지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돌렸는지 모른다.
总之这就是我精心策划的作战。特意调班空出时间,潜入女主家后火速套上见鬼的兔男郎装,只露出项圈一角关上门躲好。等女主回家发现项圈推开卧室门,就冲上去强吻再摔到床上——脑内模拟演练了多少遍连我自己都数不清。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오매불망 대기하다가 꾸벅꾸벅 졸 때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늦게 정신 바짝 차려서 신경 곤두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목줄을 만지작대는 의아한 손길이 느껴졌다. 머지않아 열린 침실 문 사이로 여주가 들어오자마자 두 눈 질끈 감고 껴안아 당기며 입술부터 푹 처박았다.
像等待主人的小狗般望眼欲穿地守候着,正昏昏欲睡时,突然听见玄关开门声,一个激灵清醒过来,浑身神经瞬间绷紧。果不其然,门外传来摆弄项圈的窸窣声。未几,卧室门缝刚被推开,女主人才踏进来就被紧紧搂住,她刚闭眼就被拽入怀中,嘴唇随即被深深堵住。

기분 탓인가, 왜 입술 느낌이 낯설지. 키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크고 듬직하지… 무심코 생각하면서 멋있게 침대로 내던졌다. 심지어 평소보다 많이 무겁길래 밥을 많이 먹었나 보다 싶었다. 뭐 여기까지는 모든 게 계획대로 순탄했다.
是错觉吗?为何唇瓣触感如此陌生。今天他的身形怎么格外高大结实…正漫不经心思忖着,已被帅气地抛到床上。甚至比平日沉得多,心想莫非吃多了饭。不过至此一切尚在计划之中。


"...아앟!"
"...啊呃!"


꾹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 내던져진 이가 건장한 남성이라는 참극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直到猛然睁眼才发现——被摔在床上的,竟是个魁梧男性,悲剧就此降临。


"형...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욯."
"哥哥...你怎么能这样对我。"


침대에 반쯤 누운 주연이 울먹울먹 떨리는 음성을 틔워냈다. 평소에 그토록 좋아라 하던 청순가련 재현이 형은 어디 가고, 정체불명 바니보이를 올려다보는 눈빛은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진 듯했다. 흐려진 동공에는 은은한 혐오와 멸시가 서려 있었다. 재현은 누군가가 자신을 그딴 띠꺼운 눈으로 쳐다보는 게 난생 처음인지라, 한순간 닥친 멘붕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굳어 입조차도 떼지 못했다.
周延半倚在床上,颤抖的声音带着哭腔。平日里那么喜欢的清纯可人的在贤哥哥不知去了哪里,此刻她抬头望向这个身份不明的兔男郎的眼神,简直像天塌了一般。涣散的瞳孔里交织着隐约的厌恶与轻蔑。在贤有生以来第一次被人用如此恶心的眼神盯着,瞬间精神崩溃,从头到脚都僵住了,连嘴都张不开。

그 동안 겨우 먼저 이성을 차려 몸을 일으킨 주연이 핏줄 선 손등으로 입술을 벅벅 쓸어 닦았다.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이후로는 재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삐딱하게 훑더니,
好不容易先回过神的周延用手背狠狠擦了擦嘴唇。擦了又擦,反复擦拭。之后便用扭曲的目光将从贤从头到脚扫视了一遍,

아니, 뭔 토끼가... 씨밯."
哈,什么兔子...该死的。


말랑말랑한 솜사탕 발성으로 냅다 쌍욕을 후려갈겼다. 순둥이 이주밥 인생 첫 나쁜 말이었다. 멀거니 서 있던 재현은 곧장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用软绵绵的棉花糖般嗓音突然甩出一串脏话。这是温顺的朱渊人生中第一次说粗话。愣在原地的载现立刻怀疑起自己的耳朵和眼睛。


"주연아, 너 지금 형한테 욕한 거냐."
"周延啊,你刚才是在对哥哥说脏话吗?"



"지금 욕이 안 나오게 생겼엏?!"
"你现在这副模样让人不想骂都难啊?!"


주연이 목에 핏대까지 세워 버럭버럭 외쳤다. 평소에는 훙냥대며 반쯤만 뜨던 눈을 희번뜩 부라린 채였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어디 하늘 같은 형한테. 뒷골 바짝 당겼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면전에 저 솥뚜껑 대왕주먹 안 날아온 게 다행이었으니까.
周延脖颈青筋暴起地怒吼着。平时总是眯缝着的睡猫眼此刻瞪得溜圆。可看着看着,这哪是对待天一般的哥哥该有的态度。虽然后脑勺发紧,却也无话可说。没被那铁锅盖大的拳头当面砸过来已经算走运了。

형 진쯔 최악이에욯! 첫 키스 강탈당한 열다섯 소녀 같은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던 주연은 그 길로 미련 없이 현관을 뛰쳐나갔고, 카톡의 1은 이후로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型真子最糟糕了!初吻被强行夺走的十五岁少女般颤抖着的主演,毫不犹豫地冲出玄关,此后 KakaoTalk 上的‘1’久久未消失。

어이, 너만 싫냐? 나도 싫거드은! 재현 역시 정신적 충격에 이불만 퍽퍽 걷어차다, 꼴도 보기 싫은 바니보이 코스튬을 바닥에 벗어던졌다. 그걸 또 주섬주섬 다시 포장해서 여주 침대 아래에 처박아 숨길 때는 진심으로 비참해져서 눈물 찔끔 흘렸다.
喂,就你讨厌吗?我也超讨厌啊!在精神冲击下踹着被子的载现,把看不下去的兔男郎服装甩到地上。又手忙脚乱重新包好藏到女主床底时,真心悲惨得掉了几滴眼泪。

의도치 않게 처남(?)과 찍은 비극 시트콤 한 편. 이 내막은 여주에게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무덤까지 가져갈 수치플로 남았다. 대체 왜 그딴 걸 입고 그딴 이벤트를 기획했을까, 눈 감고 뽀뽀는 왜 했을까! 머리칼을 벅벅 쥐어뜯으며 후회해 봤자 소용 없었다. 평소 이재현에게서 가오 빼면 시체. 망신살이라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잘난 맛에 콧대 치켜세우며 살아 왔는데, 언제 이렇게 노간지 줄줄 매달고 나락행이 됐나. 어디 쥐구멍이라도 파고들고 싶어 몸부림쳐야만 했다.
意外与小舅子(?)合拍的悲剧情景剧一集。这内幕绝不能泄露给女主,成了要带进坟墓的羞耻 play。到底为什么要穿那种衣服策划那种活动啊!闭眼亲亲又是为什么啊!抓狂揪头发后悔也晚了。平时在李载现面前气场全开,连丢人现眼都不知道就趾高气扬活到现在,什么时候变成挂着老橘子皮坠入地狱的德行。简直想找个老鼠洞钻进去打滚。


이 말 같지도 않은 사건 이후로 가여운 재현에게는 핑크바나나로 인한 두 번째 트라우마가 자리 잡았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전에는 여주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 의지로 참았다면,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극악 상황에 도달했다. 작은 뽀뽀라도 할라치면 그 날 주연과의 끔찍한 기억이 생생하게 상기되곤 했다. 섹시큐티 바니보이 꼴로 달려드는 자신의 모습이 리플레이로 펼쳐질 때마다 현타 와서 죽을 맛이었다.
这场荒唐事件后,可怜的载现又因粉红香蕉留下了第二重心理创伤。这比想象中更严重——从前是能肌肤相亲时主动克制,如今却沦落到想做也做不到的绝境。每次想稍微亲热,那天和主演的恐怖记忆就会鲜活重现。每当自己穿着性感兔男郎装扑过去的画面在脑海回放,就社死到想撞墙。

하다못해 매일 밤 꿈에는 끊임없이 주연이 등장해 멱살 짤짤 붙들고 괴롭혀 댔다. 저주받은 토낗! 더럽닿 더러웧! 우리 누나랑 당장 헤어져욯! 악몽의 무한궤도에 시달리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나 결국 줄담배나 뻑뻑 피우며 눈부신 아침 해를 맞는 일상이었다.
甚至每晚梦里都会不断出现主演揪住衣领纠缠不休的场景。被诅咒的家伙!肮脏!龌龊!立刻和我姐姐分手!在噩梦的无限轨道中煎熬,睡两小时就起床,最终只能狠狠抽着细烟迎接刺眼晨光的日常。


이쯤에서 지독한 모순점 하나. 스킨쉽이 가뭄 수준으로 척박해진 이 상황에서 여주가 이전과 달리 적극 갈구하지도, 덮치려 들지도 않는 게 또 내심 서럽기만 했다. 그저 미지근한 물처럼 그러려니 하는 반응. 마치 원래부터 섹스리스 커플이었던 것마냥.
此时出现一个残酷的矛盾点。在肌肤接触贫瘠如旱季的现状下,女主一反常态地既不主动挑逗也不扑上来,反而让我内心酸楚。她只是像温水般淡然接受,仿佛我们本就是无性恋爱关系。

내가 안 하니까 포기한 걸까. 지친 걸까. 아니면 질린 걸까. 나는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건데... 씨발 이러다 헤어지자 하면 어떡하냐고. 불안감과 조바심에 손톱 뜯으면서도 막상 여주 얼굴 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속만 타들어 가길 여러 번. 평소에 이런 저런 일 쿨하게 잘 넘기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바니보이의 타격은 아무래도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탓이었다. 그 날의 기억을 지우는 약이 있다면 천금을 줘서라도 들이키고만 싶은 재현이었다.
是因为我不做就放弃了吗?累了?还是腻了?我并非不想而是不能啊...妈的要是她提分手怎么办?啃着指甲焦虑不安,可真正见到她又束手无策,只能反复焦心。平日对各种事情都能洒脱应对的性格,却因"芭比男孩"的冲击在脑海中挥之不去。若真有消除那天记忆的药,哪怕倾家荡产也想灌下去。












혼자만의 마음고생으로 살은 3kg 이상 빠진 채, 학교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반강제로 나갔다. 이재현 너는 그 얼굴로 연애도 안 하냐는 지겨운 질문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짠이나 쳤다.
独自承受心理折磨瘦了 3 公斤多,被半强迫参加同学酒局。面对"李在贤你这张脸居然不谈恋爱"之类烦人问题,我轻描淡写地无视并碰了杯。

동기들에게 여자친구의 존재를 굳이 언급하지 않은 이유의 8할은, 맞은편에 앉아 팔자 좋게 맥주나 홀짝대는 영훈이었다. 동기들 특성상 여자친구의 '여'자를 언급하는 순간 사진 보여달라 과가 어디냐 신상 캐기 들어갈 게 뻔한데, 어떤 경우든 영훈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죽어도 절대로.
在同伴面前刻意不提女友存在的原因,八成是因为坐在对面悠闲喝着啤酒的英勋。以这群人的特性,只要提到女友的"女"字,接下来肯定会被要求看照片、追问住址、深扒个人信息。但无论哪种情况,我都不想让英勋知道。死也不愿意。


- 야 재현아, 걔 좋아해? 내가 고백한다는데 왜 네가 화를 내.
- 喂宰贤,你喜欢她?我要告白你发什么火。

- 안 좋아한다고, 씨발. 내가 미쳤냐, 걔를 좋아하게?
- 说了不喜欢,妈的。我疯了吗,怎么可能喜欢她?

- 그럼 내가 사귀든 말든 상관 없잖아. 애새끼처럼 왜 이러는데.
- 那我和她谈不谈恋爱关你屁事。你他妈发什么神经。



- 그거야 당연히, 너네 사귀다 헤어지면 나만 불편하고, 또... 너네 둘이 별로 어울리지도,
- 那还用说,你们要是交往后分手,只有我会不自在,而且...你们俩本来就不怎么般配,

- ......

- ...아 모르겠고, 나 진짜 좆 같으니까 고백 그딴 거 하지 마라. 개지랄나는 꼴 보기 싫으면.
- ...啊烦死了,我真是糟透了,所以别搞什么告白之类的蠢事。不想看你们发神经就给我消停点。


과거에 그 앳된 낯으로 영훈과 다투면서 나누었던 대화가 어렴풋이 스쳤다. 무논리 무맥락으로 점철되어 유치하게 박박 우겨만 댔던 그때.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기분이 좆 같은지, 왜 영훈이 고백을 안 했으면 좋겠는지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해 퍽 답답했었으니까.
记忆中那张稚嫩的脸曾与英勋争执的对话隐约掠过。那些毫无逻辑、前言不搭后语却固执己见的幼稚时光。其实也是无可奈何。连自己都不明白为何心情糟透、为何不愿英勋告白,这种憋闷感当时几乎让人窒息。

뭐 어찌 됐건 그 트롤짓으로 결국 보기 좋게 쫑나 버린 여주와 영훈. 물론 멋도 모르던 스무 살 풋내기 감정이었다는 건 알지만, 죄책감을 동반한 찝찝함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다. 둘의 그 짤막한 과거는 재현에게 마치 눈 안에 들어간 속눈썹과도 같았다. 별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존재감만 커서 상당히 거슬리고 불쾌한 존재. 몇 년 동안 서로에게 서로의 언급을 일절 삼가 온 만큼, 앞으로도 마주칠 일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중이었다.
总之那场闹剧最终让女主和英勋彻底闹掰。虽知不过是二十岁毛头小子的懵懂感情,但伴随罪恶感的膈应至今萦绕不散。那段短暂往事对宰现而言,犹如掉进眼里的睫毛——微不足道却存在感极强,令人极度不适。多年来彼此刻意避提对方,如今仍衷心祈祷永不再见。


"야, 갑자기 김영훈 새내기 때 기억나네. 입학할 때부터 여자 선배들한테 인기 졸라 많아서 재수 없었는데."
"呀,突然想起金英勋大一时的样子。从入学开始就超受女生前辈们欢迎,真是让人不爽。"

"맞다. 근데 얘 갑자기 썸인가 여친인가 생겨 가지고 한참 옆구리에 끼고 다녔잖아. 그때 누나들 눈에 피눈물 좀 났었다고."
"没错。但这家伙突然有了暧昧对象还是女朋友来着,有段时间总搂着人家腰晃来晃去。当时学姐们眼睛都快哭出血了。"

"인정. 그때부터 솔로 이재현이 확 치고 올라왔지."
"确实。从那时候起单身贵族李在贤就强势崛起了。"


이 와중에 동기들은 눈치도 더럽게 없었다. 그들이 안주 씹어대며 옛 추억팔이랍시고 시시콜콜 떠드는 대화들이, 취기로 흐려진 귀에 조각조각 흩어져 박혔다. 썸인가 여친인가… 한참 옆구리에 끼고 다녔잖아…
在这期间同期生们还迟钝得要命。他们嚼着下酒菜以追忆往昔为名絮叨的琐碎对话,随着醉意模糊的听觉零碎地扎进耳朵。暧昧还是恋爱…有段时间总搂着人家腰晃来晃去…

맞아, 그랬지. 아주 눈꼴 시리도록 잘도 딱 붙어서 끼고 다녔지.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에 억지로 술을 탈탈 털어 넣었다. 알코올에 달궈진 식도가 알싸했다.
是啊,就是那样。他们黏糊得让人眼睛生疼,硬是把不愿回想的画面和烈酒一起灌进喉咙。被酒精灼烧的食道火辣辣的。


"아, 나 그때 썸 생겨서 인기 떨어진 거였냐? 그건 또 몰랐네."
"啊,我那时候是因为暧昧对象才人气下滑的吗?这个我倒不知道呢。"


빤히 턱 괴고 듣고만 있던 영훈이 마냥 능글맞게 받아치며 웃었다. 남들보다 현저히 낮은 목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 왔다. 특유의 희고 붉은 손가락 끝이 테이블을 의미 없이 톡톡 두드리는 게 보였다.
一直托腮听着的英勋突然嬉皮笑脸地接话笑了。那明显低于常人的嗓音格外清晰地传来,瞥见他特有的白里透红的指尖正百无聊赖地轻叩桌面。


"억울하다 억울해~ 누구 때문에 사귀지도 못했는데."
"好委屈好委屈~都怪谁害我谈不成恋爱。"


숨겨진 주어가 분명한 발언. 재현은 허공에 술잔 든 손을 저도 모르게 멈췄다. 문득 그 상태로 시선이 마주쳤다. 왜, 우리 재현이 꼬와? 뭐가 문제냐는 양 해맑기만 한 영훈의 눈이 깜박거렸다. 씨발. 김영훈 저거 저렇게 빙그레 웃는 낯짝으로 썅놈같은 말 지껄일 때면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隐含主语分明的发言。在虚空中举着酒杯的手不自觉地停了下来,突然以这样的状态四目相对。为什么,我们载炫可爱吗?那双仿佛在问"有什么问题吗"般天真烂漫的荣勋眼睛忽闪忽闪。妈的。金荣勋那家伙知不知道,当他顶着那张笑得甜腻的死脸满嘴喷粪时,让人想给他个爆栗。



"뭘 봐."
"看什么。"


인상 빡 구기고는 볼캡 대충 눌러쓰고 담뱃갑 챙겨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쫄래쫄래 따라 나온 영훈이 친절하게도 라이터를 건넸다.
他垮着脸把鸭舌帽随便往头上一扣,揣上烟盒往外走时,荣勋像等候多时般屁颠屁颠跟出来,还殷勤地递上了打火机。



"내가 불 줄 테니까 넌 담배 주라. 쌤쌤?"
"我来点火你递烟,扯平?"


쌤쌤은 얼어 죽을. 별 듣도 보도 못한 사기꾼 계산법도 함께였다. 대꾸하기도 귀찮아 대충 담뱃갑만 열어 내밀었다.
双双真是冷得要死。还夹杂着闻所未闻的骗子算法。懒得搭话,随便拆开烟盒递了过去。


 "뭐야, 히말라야 피우냐?"
"什么呀,抽喜马拉雅吗?"


능숙하게 하나 빼어 문 영훈이 불 붙이면서 질색팔색을 했다. 여자친구 때문에 냄새 약한 걸로 일부러 바꾼 건데 그 깊은 뜻을 알기나 하나. 차마 전할 수 없는 말을 삼키는 도중에도 영훈의 깜찍한 시비는 계속 이어졌다. 맛대가리도 없는 거 왜 피우냐느니, 이거 내가 군대에서 첨 피웠다가 버린 거라느니 불만스레 쫑알대는 면전에다 뿌연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 하얀 얼굴에 하얀 거 뿜으니 제법 잘 어울린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英勋熟练地抽出一支点燃,满脸嫌弃。明明是为了女朋友才特意换成味道淡的烟,可谁能懂这番苦心。咽下难以启齿的话时,英勋还在不停俏皮地挑刺。什么没滋没味的抽它干嘛啦,这玩意儿我当兵时试过一次就扔啦,边抱怨边往人脸上噗地喷出白烟。看着白雾笼罩那张白皙的脸,竟莫名觉得挺般配。


"아, 이 씹새끼 싸가지 터진 건 여전하네."
"啊,这狗崽子还是这么没教养。"


졸지에 남의 니코틴 테러당한 영훈이 재현의 어깨를 퍽퍽 내려침과 동시에 그 면전에다 똑같이 연기를 뱉어냈다. 역시 이쪽도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英勋突然遭受他人的尼古丁暴行,一边重重拍打载贤的肩膀,一边朝对方脸上喷吐同样的烟雾。果然他也是个睚眦必报的性格。


"엉. 그래서 너랑 나랑 끼리끼리 친하잖냐."
"嗯。所以咱俩才臭味相投这么要好嘛。"


짜증 섞어 뇌까리는 대답에 제 콧구멍에서 연기 퐁퐁 뿜어내며 까르르 웃어대는 영훈. 거의 뭐 기관차 수준이었다. 허파에 바람이 쳐들었나, 뭐가 웃긴다고 처 웃어. 재현은 두 뺨이 그득 패일 만큼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뻑뻑 빨았다.
英勋听着这夹杂烦躁的嘟囔,从自己鼻孔里噗噗喷着烟圈咯咯笑起来,活像个蒸汽火车头。不知是肺里灌进了风还是怎的,有什么可笑的就笑成这样。载贤神经质地猛嘬香烟,两颊都鼓得快被撑破了。


"이재현 넌 인마, 나만 한 친구가 어딨냐~ 복 받은 줄 알아."
"李载贤你这家伙,除了我哪还有这么铁的朋友~你就偷着乐吧。"

"뭐가 또."
"又怎么了。"

"친구 때문에 연애 포기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니까. 크, 스무 살 영훈이는 지금 생각해도 멋있었다, 인정?"
"为了朋友放弃恋爱可不是谁都能做到的事。呵,二十岁的英勋现在想来还是很帅吧,承认吧?"


지랄한다. 이 얘기 하기 싫어서 자리 피하려고 했던 건데 결국엔. 욕설 눌러 삼키며 애꿎은 눈썹뼈만 쓸어대는 재현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돌멩이가 박힌 양 불편해졌다. 네가 연애 포기한 그 여자애랑 나랑 요즘 끝내주는 연애질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 아주 뒤집어지려나. 그 여자애가 핑크바나나 매니아라는 것도. 사실 나도 썩 알고 싶진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지금 걔가 존나 보고 싶어 죽겠다는 것까지.
真是疯了。本来不想谈这个才躲开的,结果还是...脏话咽了回去,可怜的颧骨被反复揉搓的宰贤。心里像卡了块石头般不自在。要是我现在告诉你,那个你为她放弃恋爱的女孩正和我谈着一段超棒的恋爱,你会不会气疯?而且那女孩还是个粉色香蕉狂热粉。其实我也不太想知道这些,但事情就这样发生了。啊,还有一件事。我现在他妈想她想得要死。

매캐한 연기를 폐부까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밤하늘을 향해 아무렇게나 흩뜨렸다. 화한 멘솔 향이 시원스레 기도를 긁었다. 하여간 술 마시면 이게 문제였다. 없던 흡연 욕구도 불러일으키니까. 담배만 안 피웠더라면 집 들어가기 전에 여주 얼굴이나 잠깐 보러 들렀을 텐데.
将浓烈的烟雾深深吸入肺底,再随意吐向夜空。清凉的薄荷味粗暴地刮过喉咙。所以说喝酒就是这点不好。连戒掉的烟瘾都会被勾起来。要是没抽烟的话,回家前还能顺路去看看女主角的脸。

담뱃재 털다 말고 주머니 뒤적거려 휴대폰을 꺼내 든 재현이 여주로 가득 찬 팔불출 배경화면을 엄지로 쓸었다. 물론 영훈 몰래였다.
在烟灰缸边掸了掸烟灰又掏口袋拿出手机的宰现,用拇指划开满是女主角的锁屏壁纸。当然这是背着英勋偷偷做的。


"아 참, 나 오늘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도 되냐?"
"啊对了,我今晚能在你家借宿一晚吗?"

"뭔 개소리야. 귀찮다, 오지 마."
"说什么胡话呢。烦死了,别来。"

"왜에! 나 막차 끊겼다고! 간만에 보는데 섭섭하게 굴지 말라고!"
"为啥啊!我末班车都赶不上了!难得见面别这么扫兴嘛!"


불쌍한 척 찡찡대는 영훈을 한심스레 쳐다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눅눅하게 뇌를 녹인 취기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살짝 안일해진 탓이었다. 아무리 이웃집이라지만 걔 이 시간에 집 밖으로 안 나올 텐데, 설마 둘이 마주치기야 하겠어. 설마 운명이 그 정도로 개망나니 장난질을 칠까. 누구 엿 처먹일 일 있나.
我勉强点头,用怜悯又厌烦的眼神看着装可怜的英勋。或许是酒精像湿海绵般融化了大脑,让我一时松懈了。虽说住得近,但这时间他总不会出门吧?难道真会倒霉到迎面撞上?命运总不至于开这种荒唐玩笑。谁稀罕看这种热闹。

이후로 한 시간 가까이 술자리를 더 하다, 거나하게 취해서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영훈 이끌고 비틀비틀 집에 데려왔다. 절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멍청함이 야속했다.
后来我们又喝了一小时,当我醉醺醺地把满脸通红的英勋踉跄拽回家时,悔意涌上心头。早该坚决拒绝的。人类这种无法预见后果的愚蠢真让人恼火。


"어이, 나 편의점 들렀다 갈 테니까 집 들어가 있어. 비번 톡으로 보낼게."
"喂,我要去趟便利店,你先回家。密码发你微信。"

"...재현아, 죽겠다. 나 진심 바로 뻗을 것 같은데..."
"...载贤啊...要死了...我现在真的会直接昏睡过去..."

"먼저 자든가. 침대 쓸 거면 씻고 누워. 글고 우리 집에다 토하면 목 따일 줄 알어라."
"要么你先睡。要用床的话就洗完再躺。还有,敢在我家吐的话小心脖子不保。"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그 진리를 그땐 깜빡 잊은 탓이었다. 몇 분 뒤 그토록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줄 모르고.
当时竟一时疏忽忘了"疑心生暗鬼"这个真理。几分钟后才会捶胸顿足地后悔莫及。












이전 여자친구들은 흔히들 재현에게 그랬다. 너는 그 흔한 질투 하나가 없다고. 그러면 재현은 또 그랬다. 좋은 거 아니냐고. 연인 사이 사사로운 것들에 신경 곤두세워 열 올리는 행위, 질투 유발 따위로 애정을 확인하려 드는 행위, 피곤해서 딱 질색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단 한 번도 아쉬운 입장이 되어 본 적 없으니 더욱 그랬다. 질투를 뭣 하러 해, 내가 세상 제일 잘났는데.
前女友们常对在现说:"你连最基本的嫉妒心都没有"。在现总是回:"这不是挺好的吗"。为了恋爱琐事神经紧绷、用嫉妒来确认爱意的行为,他实在厌烦到避之不及。从未在人际关系中处于劣势的他更是如此——何必嫉妒?我可是天下第一优秀。

그러나 요즘 들어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본인은 생각보다 속 좁고 질투 넘치는 인간이었다는 거. 그저 질투를 느낄 만큼 상대를 열렬히 좋아해 본 경험이 없었을 뿐. 스무 살 영훈과 여주를 보면서 앓았던 그 거지 같은 감정은 명백히 날것의 질투가 맞았는데, 그걸 몇 년 지난 지금에서야 질투였구나 뒤늦게 인식한 것조차도 기가 막혔다.
但最近痛彻领悟到一个事实:自己远比想象中狭隘善妒。只是从未炽烈地喜欢过谁到产生嫉妒的程度罢了。二十岁的永勋和女主让他饱尝的那种卑劣情绪,分明是最原始的嫉妒,而时隔多年才后知后觉意识到这是嫉妒,简直荒谬至极。

뭐 한번 깨닫고 나니 인정은 쉬웠다. 거 남자가 질투 좀 할 수 있지. 속에서부터 조온나 끓어 올라오는 걸 어쩌라고. 널 아프게 하는 것들, 콕콕 찔러보는 애들 없게 주윌 빙빙 맴돌면서 씨바거 다 부숴 버리겠다고. 종국엔 편의점 알바 하면서 손 스치는 사내새끼들 눈깔 죄다 파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길래, 드디어 미쳤구나 갈 데까지 갔다 자책한 게 불과 며칠 전이었거늘,
一旦领悟后,承认起来倒也容易。男人嘛,偶尔吃点醋怎么了?那股从心底沸腾上来的情绪我能怎么办?那些让你受伤的事,那些总想戳你痛处的人,我会像陀螺一样围着他们转,把那些狗屁玩意儿全砸烂。最后甚至在便利店打工时,连碰到手的男店员都想把他们眼珠子全挖出来——直到前几天我才自责地想,看来真是疯到头了。



"...이거 뭔데."
"……这什么情况。"

"......"

"너네 씨발 뭐 하냐고."
"你们他妈的在干什么。"


정작 제일 큰 관문은 바로 여기 있었다.
没想到最大的关卡就在这里。

친구와 여자친구. 더 정확히는 과거 연인이 될 뻔했던 남녀 한 쌍. 그 둘이 한 침실에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제정신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살색이 난무하는 차림새 꼬라지를 보니까 더더욱.
朋友和女友。更准确地说,是差点成为前任的一对男女。从看见他俩共处一室那刻起,理智就彻底崩盘。尤其当看到两人衣衫不整、肢体交缠的模样时,更是彻底疯了。


"야, 난 진짜 넌 줄 알고 누웠어... 이불에 파묻혀 있어서 하나도 안 보였다니까?"
"喂,我还以为是你才躺下的...裹在被子里完全没看见啊?"

"김영훈이 만졌어, 안 만졌어."
"金英勋碰了,没碰。"

"일단 내가 김영훈을 만지긴 했는데..."
"首先我确实碰了金英勋..."

"......"

"아니, 넌 줄 알았다니까! 고의 아니었어, 알지?"
"喂,我以为你知道的!不是故意的,懂吗?"


왜 만졌는데에! 니... 니가 언제부터 김영훈을 매입했는데에! 서러움에 공항도둑처럼 빽빽 소리치고만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이의 체취가 묻은 손바닥을 개새끼처럼 죄다 핥아내도 모자랐다.
为什么碰了还要狡辩!你...你从什么时候开始收买金英勋的!委屈得想像个机场小偷一样大喊大叫。心里恨不得把沾着别人气味的手掌像舔狗一样全舔干净都不解气。

하지만 한 꺼풀의 이성을 붙잡고 가까스로 사회적 체면을 지켜 참았다. 그래, 우유 부은 것마냥 허옇기만 한 거 만져봤자 별 감흥이나 있었겠냐. 너 내 가슴에나 환장하지 그런 판판한 슬렌더 취향 아니잖아. 애써 그렇게 정신승리나 해대면서 위안 삼았다. 또 아무래도 만져진 것보다야 만진 게 낫지, 반대의 경우였더라면 피가 거꾸로 솟구쳤을 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기도 했고.
但勉强抓住一丝理性,好歹保住了社会体面忍住了。是啊,摸这种像泼了牛奶一样苍白的玩意儿能有什么感觉。你明明迷恋的是我的胸,又不是那种平板纤细的类型。就这样自我安慰着强行精神胜利。再说被摸总比主动摸强,要是反过来血都要倒涌了,想想也算万幸。

그러나 상황은 어째 가면 갈수록 가관이었다.
可事态发展越来越离谱了。


"어이. 영훈이랑 같이 잘 거?"
"喂,你要和永勋一起睡吗?"

"영훈이? 뭔데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永勋?干嘛叫得这么亲热?"

"...야."
"...啊。"

"아니, 웃기잖아. 왜 난 어이고 쟤는 영훈이냐고."
"不是,这也太搞笑了吧。为什么我是‘哎哟’而他就是‘英勋’啊。"


살다 살다 이딴 구질구질한 멘트까지 내뱉게 될 줄은 몰랐다. 가오 존나게 떨어지는 거 아는데도 꾸역꾸역 따지고 들었다. 뭔데 저런 촉촉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영훈이 이 지랄. 아주 끝내주는 옛사랑 납셨어요.
活到现在没想到会说出这么掉价的台词。明知很丢脸还是硬着头皮争辩。那家伙凭什么用湿漉漉甜腻腻的声音喊英勋发癫。真是绝妙的前任表演啊。


그러지 말고, 방도 넓은데 셋이서 자까?
别这样,房间这么宽敞,我们三个一起睡吧?

왜, 뭐 어때서? 영훈이랑도 오랜만에 회포 좀 풀게.
怎么了,有什么问题?和英勋也好久没见了,正好叙叙旧。

근데 영훈이 쟤 옛날보다 키 많이 컸지?
不过英勋那小子比以前长高了不少吧?


이쯤 되면 차라리 접싯물에 코 박아 뒤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썩어 문드러지는 속도 몰라주고 빌어먹을 그놈의 영훈이, 영훈이, 영훈이! 귀에 딱지 앉으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건지 뭔지. 연신 치미는 울분을 필사적으로 꾹꾹 눌러 참느라 눈두덩이가 다 아릿했다. 엄마, 엄마 아들 지금 여자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울어.
事到如今,我甚至迫切地想把脸埋进洗碗水里闷死算了。该死的英勋,英勋,英勋!耳朵都要听出茧子了,简直像在做法事似的。拼命压抑不断涌上的愤懑,连眼眶都疼得发麻。妈妈,妈妈...你儿子现在正为了个女人窝囊地哭呢。


 제정신 아닌 와중에 어떻게 여주 이끌고 집 밖으로 나왔는지는 기억도 안 났고, 어쩌다 보니 담벼락에서 서로 미친 듯이 입술 빨아뭉개고 있더라. 한데 뒤섞인 숨결을 빨아 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이 들끓었다. 육체적 흥분, 소유욕, 독점욕. 그 모든 적나라한 욕정들로 전신을 타고 열이 올랐다. 그동안의 트라우마고 뭐고, 이대로 현관문 따고 들어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왕창 씹어 삼켜버릴 생각뿐이었다.
神志不清之际如何将女主带出家门已全然不记得,回过神来两人已在墙边疯狂啃咬彼此的唇。可即便贪婪吞咽着交错的呼吸,干渴仍如沸水翻涌。肉体兴奋、占有欲、独占欲。所有这些赤裸的欲望烧灼全身。什么心理创伤都抛诸脑后,此刻只想破门而入将她从头到脚啃噬殆尽。


"영훈이 심심하겠다, 빨리 들어가. 내일 연락해."
"英勋该无聊了吧,快点进去。明天联系。"

"하, 너는... 이 상황에서도 김영훈 심심한 거나 걱정하냐?"
"哈,你...这种时候还担心金英勋无不无聊?"


그러다 마침내 참을성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就在忍耐力即将崩溃的临界点。

기어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다 빙글 돌아버리면 원래의 자기 모습을 잃는다는 거. 내가 여기서 더 하찮아지다 못해 세상 찌질하고 못나져서 바닥을 긴대도... 뭐 어떻게 해. 네가 지독하게 나만 봐줬으면 좋겠는데.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만 만지고, 나만 사랑하고. 너의 기나긴 밤을 온통 나로만 채웠으면 하는데.
终究不得不承认。人若痴迷到神魂颠倒,总会迷失本我。哪怕我在此堕落成世间最不堪的蝼蚁...又能怎样。只盼你眼里唯我一人。只想着我,只触碰我,只爱我。用我填满你所有的漫漫长夜。


"너 원래 우리 집에서 안 자잖아, 이재현아."
"李在贤,你本来就不在我们家睡觉啊。"

"......"

"잠은 각자 집에서 자자며? 왜 이래, 새삼스럽게."
"不是说好各回各家睡觉吗?怎么突然这样,莫名其妙。"


그랬지. 내 딴에는 자제였고 배려였어.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내 밑에 깔아둔 채 쉴틈없이 괴롭혀 대고 싶어 죽겠지만, 진짜 그랬다가 너 뼈도 못 추릴까 봐 참은 거라고.
是啊。我自以为那是克制与体贴。天知道多想整夜把你压在身下肆意折磨,可若真那么做——怕你连骨头都不剩了。


"...잘못했어."
"...我错了。"

"......"

"오늘, 나랑 같이 자면 안 돼?"
"今晚...能和我一起睡吗?"


다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필요 없을 것 같다. 잘못이야 너도 오늘 충분히 했고. 네가 이렇게 네멋대로 구는 것처럼 나도 한 번쯤은 내멋대로 저질러도 되는 거잖아. 뼈도 못 추리는 대상이 너이건 나이건 간에, 우리 이제는 이 밤을 가로질러 끝장을 보자.
但现在已经无需再忍了。错的是你,今天你也闹够了。既然你能这样任性妄为,那我偶尔放纵一次又何妨?无论被践踏得不成人形的是你还是我,今夜我们就穿过黑暗一决胜负吧。


"벌 받겠다고 약속하면."
"要保证会受罚哦。"



"벌?"
"罚?"

"......"

"받을래."
"要受罚了。"

"......"

"뭔진 몰라도 받을게."
"不管是什么都认罚。"


벌 주고 싶은 만큼 마음껏 줘도 돼. 네 잘난 욕망대로 나를 요리해. 오늘 밤만은 자존심 다 내려놓고 노예처럼 굴어 줄게.
想惩罚就尽管惩罚吧。按你高傲的欲望来料理我。今晚我会放下所有自尊,像奴隶般任你差遣。

뭐 그래봤자, 결국 밑에 깔려서 우는 건 네가 되겠지만.
不过说到底,最终被压在下面哭泣的终归会是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