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믿진 않았지만 운명이라 믿을만한 사람이 주위에 있었다. 로맨티스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가끔은 낭만적이고 싶은 때가 있었으니까.
虽然不相信命运,但身边确实有让人愿意相信是命运的人。虽然与浪漫主义者相距甚远,但偶尔也会有想要浪漫的时候。


'안녕. 네가 시온이구나.'  你好。你就是是温啊。


세상엔 이름만으로도 끌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시온은 이름을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종종 부르던 별명을 떠올랐다. 사실 운명이라고까지 여길만한 긴밀한 연관성은 아니었다. '너랑 이름 비슷하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듣게 되었다. 시온은 바다를 만나기도 전에 바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연이라고 한다. '내 이름은 바다야.'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시온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니 우연은 필연이 되었고, 인연이 되었다.
世界上总有些人仅凭名字就令人心动。听到"是温"这个名字时,我自然想起朋友们常叫的绰号。其实倒也算不上什么命中注定的紧密关联。"和你名字很像呢。"第一次听到这话时我还歪头疑惑。当第二、第三次听到时,是温在见到大海前就开始好奇那究竟是怎样的人。据说第一次相遇是偶然。"我叫大海。"初次见到大海时,是温这样想着。终于见面了啊。当第二、第三次见面后,偶然就成了必然,化作了缘分。


바다가 변했다. 변했다는 걸 먼저 느낀 건 시온의 동기들이었다. 변했다. 과연 뭐가 변했을까. 시온은 자기 일처럼 화가 나 흥분한 상태로 말하는 동기 앞에서 말없이 눈을 깜박였다. 그런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거리는 동기의 말을 듣다가 팔짱을 끼었다. 시온이 느끼기에는 바다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으므로 마치 남의 이야기 같았다. 지루하다. 애인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서는 아니었지만 시온은 문득 그런 감정이 들었다. 
大海变了。最先察觉变化的是是温的同事们。变了。到底哪里变了呢?是温在激动诉说此事的同事面前默默眨眼。这样啊。听着仍难平复情绪而气呼呼的同事说话,是温抱起了胳膊。在他感受里大海与平日并无二致,简直像在听别人的故事。真无聊。虽然不该无条件信任恋人,但此刻是温突然涌起这样的情绪。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바다를 발견했다. 다른 남자와 팔짱을 낀 채로 환하게 상체를 숙이기까지하며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뺨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제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走在路上偶然发现大海。她挽着别的男人胳膊,甚至笑得前仰后合。阳光下的脸颊闪闪发亮,微微上扬的嘴角真好看。是温一时恍惚——上次见她这样灿烂大笑是什么时候?怎么也想不起来。这才恍然大悟:原来已经不喜欢我了啊。


'...무슨 일 있어?'  ...有事吗?

'아니, 없어.'  没,没有。


신경이 쓰일 정도로 유우시는 시온의 주변을 얼쩡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시온이 유우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우시는 흠칫 놀라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안하지만 남의 감정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애써 웃으며 아니라 대답하는 입꼬리가 떨렸다. 유우시는 그 말을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먼저 잘게. 짤막한 말과 함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온은 자신의 애인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서 묵인할 정도로 착하지 않았다.
勇志在是温周围徘徊察言观色的样子惹人在意。当是温转头看他时,勇志惊得肩膀一颤才小声开口。抱歉,实在没余力照顾他人情绪。强颜欢笑的嘴角微微发抖。勇志咬着嘴唇听完,丢下"我先睡了"的简短话语。关门声响起时,是温知道自己还没善良到能默许恋人出轨的地步。


'오늘 시간 돼? 잠깐 만나자.'
今天有空吗?见个面吧。


시온은 알림이 뜬 핸드폰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결국 긍정의 대답을 했다. 옷을 갈아입으며 오늘 나눌 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경우의 수를 생각해도 결론은 똑같았다. 아직 있지도 않은 일 때문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가지 않아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 뻔했지만 궁금은 했다. 왜 갑자기 다른 사람이 좋아졌는지.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닫히는 문 사이로 어딜 가느냐는 유우시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是温低头看着弹出通知的手机。好吧。长久凝视后终究回复了肯定答案。换衣服时想着待会儿的对话。无论设想多少种可能,结论都相同。为尚未发生的事皱起眉头。明知不出门也会得到同样结果,但还是好奇——为什么突然喜欢上别人了?"我出去会儿。"关门的缝隙里传来勇志小声的"去哪"。


카페 문을 열기 전 창문으로 먼저 앉아있는 실루엣이 보인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시온이 기억하는 바다는 항상 밝은 사람이었다. 친하지 않더라도 먼저 다가가서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도 금방 활기를 이끌어내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사람. 오랜만에 마주 앉아 시온은 기억 속의 바다를 읽어내려 애를 썼지만 지쳐 보이는 표정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 정적이 깨지지 않을 것 같아 시온이 먼저 입을 뗐다.
推开咖啡店门之前,先透过窗户看到了坐在里面的剪影。椅子拖动的声音响起。吴是温记忆中的咲哉永远是个开朗的人。即使不熟悉也会主动靠近毫不生疏地打招呼,在安静的氛围中也能立刻带动活力,是那种人见人爱的类型。久违地相对而坐,吴是温努力从记忆中读取咲哉的模样,但眼前疲惫的神情简直判若两人。令人窒息的沉默持续着。谁都没有先开口。眼看这沉默似乎永远不会被打破,吴是温先张开了嘴。


"할 말 없어?"  "没话要说吗?"

"응."  "嗯。"


간결한 대답은 명쾌하기까지 했다. 시온은 그 순간 왜 여기에 나왔는지 마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실망감이었을까. 그래도 최소한의 자기변호를 할 줄 알았지만 그 어떤 말도 없었다. 시온은 자신만의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짧은 대답에서 관계의 종말이 느껴졌다. 시온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크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简洁的回答甚至称得上干脆。吴是温在那一刻开始怀疑自己为何要出现在这里。或许是一种失望吧。他本以为对方至少会为自己辩解几句,却连只言片语都没有。吴是温本就是个习惯画地为牢的人,从这简短的回应里,他已然嗅到了关系的终结。正当他沉浸思绪时,耳边传来一声沉重的叹息。


"야, 오시온. 솔직히 말한다?"  "喂,吴是温。老实说?"

"뭐를?"  "什么?"

"너 평생 그렇게 살까 봐 내가 얘기해주는 거야."
"我就是怕你一辈子都这样才跟你说的。"

"......"  “……”

"그래. 나 다른 사람 만났다. 근데 네 잘못도 있는 거 알아?"
"是,我是有别人了。但你知道自己也有错吧?"

"뭔 소리야."  "说什么胡话。"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는 바다의 손길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오히려 지친다는 표정을 짓는 바다는 마치 피해자 같았다. 시온의 표정은 점점 더 딱딱해졌다. 연락을 받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 바다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粗暴地拨弄头发的吴是温的手势中透出一股烦躁。反而露出疲惫表情的他,倒像个受害者似的。藤永咲哉的脸色越来越僵硬——能接到联络就出来见面,已经算是尽了最低限度的礼节。吴是温微微点头后,突然嗤笑出声。


"너 듣고 싶어 하는 말 절대 안 해주더라... 해줄 만도 한데 맨날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웃으면서 넘기는 거 솔직히 좀 지쳐."
"你明明知道我想听什么却从来不说...明明可以说的,整天装傻充愣笑着带过,说实话真的有点累了。"

"......"  “……”

"넌 너무 이기적이야. 어떻게 연애가 다 솔직하게 나를 다 보여주는 거겠어. 원래 연애는 서로 어느 정도 맞춰가는 거야. 너는 이해 못하는 것 같지만."
"你太自私了。恋爱怎么可能完全坦率地展现全部的自己。恋爱本来就是双方互相磨合的过程。你好像根本不懂这个道理。"

"......"

"처음엔 나도 이해하려고 했는데 유우시한테는 다 해주는 걸 보면서 그걸 질투하는 내가 비참하기까지 하더라.
"一开始我也试图理解,但看到你对勇志有求必应的样子,连嫉妒这样的自己都让我觉得可悲。"

"......"

"그래. 바람. 미안하다. 근데 사람 미치게 만들어놓고 네가 나한테 뭐라 할 말이 있어?"
"是啊。我出轨了。对不起。可你把我逼疯之后,还有什么资格来指责我?"

"...더 들어줘?"  “…还要继续听吗?”

"거 봐. 넌 나만 나쁜 사람 만들어."
"看吧,你只会把我一个人变成坏人。"


시온은 미안하지만 더 이상 바다의 말을 듣고 싶지가 않았다. 애초에 너무 다른 사람이었으나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만약 바다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더라도 바다와 만났을까. 시온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吴是温虽然感到抱歉,但已经不想再听大海的话了。他们本就是截然不同的人,只是意识到这一点时已经太迟。如果早知道大海是这样的人,当初还会和他相遇吗?吴是温沉默地摇了摇头。


"헤어질 거지? 내가 너 찬 거로 하자. 그리고 내가 너 욕하고 다닐 거야. 대신 선물 하나 줄게. 잘 들어."
"要分手是吧?那就当是我甩了你。而且我会到处说你坏话。不过呢,送你个礼物。听好了。"

"......"

"너 좋아하는 사람 있지?  "你有喜欢的人吧?"

"......"

"다른 사람 불쌍하게 만들지 말고 그 사람 만나."
"别去祸害别人了,去见他吧。"


바다는 쏘아붙이듯 말하고 짐을 챙겨 의자에서 일어섰다. 거칠게 밀리는 의자 소리가 귀를 찔렀다. 시온은 가만히 앉아 바다를 응시했다. 바다는 시온의 무감정한 표정에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大海猛地站起身,粗暴地推开椅子。椅子被猛地推开的刺耳声响扎进耳朵。吴是温静静坐着凝视大海。大海看着吴是温面无表情的脸,又重重叹了口气。


"네가 이래서 짜증 난다는 거라고."
"你这样子才让人火大啊。"


바다는 인상을 쓰며 카페를 나섰다. 바다가 떠난 카페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시온은 혼자 남아 가만히 앉아있다가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손으로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피곤하다. 시온의 연애가 끝이 났다.
大海皱着眉头走出了咖啡厅。大海离开后,店内安静得过分。吴是温独自坐着发愣,突然将冰块融化后变得温吞的饮料一饮而尽。他用手粗鲁地抹了把脸。真累啊。吴是温的恋爱结束了。



*



시온은 집에 가는 내내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직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헤어짐의 이유가 전부 나 때문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바다가 유우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吴是温在回家的路上一直想着那两个人。尚未整理好的情绪在脑海中漂浮。他无法理解"分手的原因全都在我"这句话。直到分手后才知道彼此是如此不合适。向大海提起勇志的事真是个错误的选择。


유우시를 만났을 때 이렇게 친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야? 자연스럽게 유우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유우시와 지냈던 시간이 긴 만큼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몰래 학원을 빼고 놀러 간 날, 이래도 되는지 불안해하면서도 길거리를 걸으며 서로를 보기만 해도 즐거워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당시에는 좋았다는 걸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걸 깨닫곤 한다. 하지만 시온은 유우시와 함께 있을 때면 그런 게 필요하지 않았다. 마냥 즐거워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온은 유우시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유우시는 누군가의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몇 년간 지낸 유우시와 얼마 만나지 않은 애인이 같겠어. 시온은 바다가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에 왜 유우시가 먼저 떠올랐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初次见到勇志时,没想到会变得如此亲密。"你最好的朋友是谁?"脱口而出的自然是勇志的名字。与勇志共度的漫长时光里,堆积了无数回忆。那些翘课溜出去玩的午后,明明忐忑着这样真的可以吗,却在街头相视而笑的瞬间就雀跃起来。人们总在事后才惊觉曾经的幸福,但吴是温与勇志在一起时根本不需要这种顿悟——光是快乐就让时间流逝得太快,快得让人渴望时间静止。吴是温想起初遇勇志的场景。勇志从来不是能被拿来比较的存在。怎么可能把相伴多年的勇志和刚交往的恋人相提并论?当海浪说着"去见你喜欢的人吧",吴是温也不明白为何脑海里最先浮现的会是勇志。


조용한 유우시. 남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유우시. 어색한 미소를 짓는 유우시. 시온은 유우시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유우시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불편해하는 게 좋았다. 요즘 새 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도. 유우시가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길 바랐던 것이 맞는데도 자꾸 유치한 독점욕이 생겼다. 그래도 제일 친한 사람은 나잖아. 시온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安静的勇志。不愿与他人亲近的勇志。露出尴尬笑容的勇志。吴是温对勇志感到抱歉,但老实说,他喜欢看到勇志和别人在一起时感到不自在的样子。他知道勇志最近交了个新朋友。而且不仅仅是认识的关系。明明希望勇志能和其他人变得亲近,却总是冒出幼稚的独占欲。不过最亲近的人还是我吧。吴是温突然冒出这样的想法,随即摇了摇头。


계속 아까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단 한 번도 유우시를 연애 상대로 본 적이 없었으나 한번 시작한 생각은 자꾸 꼬리를 물고 이어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친한데 그럴 리가 없어. 도어락을 누르는 시온의 손가락이 느렸다. 유우시의 방문을 소리 나지 않도록 조용히 열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시온은 유우시가 깨지 앉도록 침대맡에 무릎을 꿇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刚才的话还在耳边萦绕。虽然从未把勇志当作恋爱对象,但一旦开始的想法却像连锁反应般不断延伸,让人产生奇怪的念头。我们这么要好,怎么可能...吴是温按密码锁的手指变得迟缓。他悄无声息地推开勇志的房门,听见里面传来急促的喘息声。吴是温跪在床沿,用气音呢喃着俯身靠近,近到不会惊醒对方的距离。


"...유우시."  "...勇志。"

"......"

"유우시, 자?"  "勇志,好吗?"


진한 샴푸향이 난다. 머리 끝에 살짝 물기가 남아있었다. 머리를 완전히 말리지 않아서인지 더 짙은 향이 났다. 같은 제품을 쓰는데도 유우시에게 다른 향이 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시온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유우시의 코를 건드렸다. 여전히 유우시는 잠이 든 채로 순한 얼굴을 했다. 말간 얼굴이 깨끗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까지 들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시온은 제 심장 소리에 유우시가 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洗发水的浓郁香气弥漫开来。发梢还残留着些许湿气,或许是因为没有完全吹干的缘故,香气显得更加浓烈。明明用的是同款洗发水,却恍惚觉得勇志身上散发着不同的气息。吴是温用指尖轻轻碰了碰勇志的鼻尖,他依然熟睡着,面容恬静。那张白皙的脸庞干净得让人心悸,连自己怦怦的心跳声都清晰可闻。恍惚间竟觉得心脏快要跳出喉咙,吴是温甚至担心这剧烈的心跳会把勇志吵醒。


충동적으로 입을 맞췄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시온은 몸을 뒤로 빼며 주저앉아 눈을 천천히 떴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방금 전 닿았던 말캉한 촉감이 이상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원래 친구끼리 이러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건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헤어졌다는 걸 까맣게 잊힐 정도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온은 닫힌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살짝 잡다가 다시 몸을 틀었다. 지금 다시 유우시를 보지 않으면 얼굴을 까먹을 것만 같았다. 다시 유우시를 내려다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잠깐 눈을 찡그리면서 입이 작게 움직였다. 말랑한 젤리 같은 입술이 오물거렸다. 시온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유우시에게로 향했다. 작은 숨소리가 자극적이다. 시온은 다시 눈을 감고 유우시에게 입을 맞췄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시온은 가만히 눈을 깜박거렸다. ...우리 이런 것도 가능하네. 시온의 귀가 터질 것 처럼 새빨개졌다. 유우시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冲动之下吻了上去。感觉并不坏。奇怪。吴是温向后退开,跌坐在地,缓缓睁开眼睛。手指无意识地摩挲着嘴唇——刚才触碰到的柔软触感让心脏跳得发慌。朋友之间做这种事...原来会有这种心情吗?他双腿发软地踉跄起身,脑海一片空白到几乎忘记两人已分手的事实。站在紧闭的门前,指尖刚搭上门把又猛然转身。现在不见勇志的话,那张脸就要从记忆里消失了。他再度低头看向勇志,对方微微蹙眉的睡颜让吴是温怀疑这是梦境。果冻般柔软的嘴唇轻轻蠕动,他的脸不受控制地再度靠近。细微的呼吸声刺激着耳膜。当吴是温闭眼再次吻下去时,剧烈的心跳声几乎震碎胸腔。...原来我们还能这样。他眨着湿润的眼睛,耳尖红得快要滴血,再也没有勇气直视勇志的脸。


알람을 1시간 일찍 맞춰 놓았다. 도저히 예전같이 유우시를 볼 자신이 없었다. 어떤 가정을 해도 일반적인 애인 관계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린 친구인데. 둘이 다니던 등굣길을 혼자 다니는 것도 익숙해졌다. 잠시 다른 관계를 상상해보았지만 역시 유우시가 친구가 아닌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사귀는 것에는 끝이 항상 있는 법이었다. 충동적인 실수로 유우시를 잃기엔 너무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我把闹钟提前了一小时。实在没信心像以前那样面对勇志。无论怎么假设,都无法想象我们还能维持普通恋人关系。我们可是朋友啊。连曾经两人一起走的上学路,如今独自走着也习惯了。虽然短暂幻想过其他可能,但果然还是无法想象勇志不再是朋友的样子。恋爱关系终有尽头。那些共同经历的回忆太多,多到我不敢用冲动失误来失去勇志。


같은 집에 살지만 얼굴을 보지 못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었다. 집이든, 뭐든, 전부 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왠지 모를 초조함이 들었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오전에는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온은 항상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우산을 챙겨주었던 유우시가 떠올랐다. 유우시의 생각을 하는 사이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시온은 연락을 확인하고 다시 전원 버튼을 눌렀다.
虽然住在同一个屋檐下,却已经很久没能见到他的脸了。总不能一直这样下去——无论是这个家,还是其他的一切。但心里莫名涌起一股焦躁感,与理智背道而驰。今天预报有雨吗?粗重的雨柱倾泻而下。上午还晴朗的天空突然下起雨来。吴是温想起得能勇志总会在这种阴雨天为她备好伞。正想着勇志的事,手机突然响起提示音。她看完消息,又按下了电源键。



*



물방울이 몸을 찌르는 것만 같다. 사선으로 내리는 비에 사람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산을 내려 빠르게 움직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바지 끝이 젖어 들었다. 걸치고 있는 모든 옷이 전부 젖어 축축하다 못해 물을 머금어 무거웠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가만히 서 있는 유우시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린다. 유우시는 하늘로 고개를 들다가 눈을 감았다. 온 몸이 비에 씻겨 내리는 듯한 기분이다. 자꾸 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감정도 전부 씻겨 내려가면 좋을 텐데.
雨滴像针一样刺着身体。斜落的雨幕中,人们将伞压得低到看不见脸,匆匆赶路。天空仿佛破了个洞,暴雨倾盆而下。撑伞者的裤脚早已浸透,所有衣物都湿漉漉地沉甸甸挂着水珠。每个路人都用怪异的目光打量着呆立不动的勇志。雷声轰鸣。他仰头望天,突然闭上眼睛。全身仿佛正被雨水冲刷殆尽。喉头不断涌起酸涩——要是连这份情绪也能被冲走就好了。


택시를 타고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젖은 상태로 타면 시트를 더럽힐까 택시를 타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해 빗속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무작정 걷다 보니 문득 가방 속의 책들이 걱정이 되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 끝이 자꾸 시큰거렸다. 너무 욕심을 많이 낸 것 같다. 괜히 고백을 해서. 시온이 헤어진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게 아닌데 내 욕심 때문에.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참을 비를 맞았다. 비 비린내가 코 끝을 맴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곳이 없다. 유우시는 그제야 한국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我犹豫了一下要不要打车,但想到浑身湿透会弄脏座椅,还是放弃了叫车,继续在雨中行走。走啊走啊。漫无目的地走着走着,突然担心起包里的书来,不禁苦笑出声。鼻尖一直酸酸的。好像太贪心了。不该贸然告白的。吴是温说要分手也不会因此就属于我啊。因为我的贪念。我站在原地一动不动淋了好久的雨。雨水的腥气萦绕在鼻尖。现在韩国已经没有我想回去的地方了。勇志这才意识到自己在韩国待得太久了。


"신세 좀 지자."  "欠你个人情。"

"...너 미쳤어?"  "...你疯了吗?"


문을 열은 리쿠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유우시의 옷 소매에서 물이 떨어져 리쿠의 신발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 리쿠는 제 신발과 흠뻑 젖은 유우시를 번갈아 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推开门的前田陸脸上写满震惊。得能勇志的衣袖不断滴水,浸湿了陸的鞋尖。他盯着自己湿透的鞋面和浑身滴水的勇志来回看了几眼,最终紧闭双眼猛地推开了浴室门。


"일단 씻어..."  "先洗洗..."

"괜찮아."  "没事的。"

"내가 안 괜찮아..."  "我有点不舒服..."


신발 안에 찬 물 때문에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발자국 모양대로 물기가 남았다. 리쿠는 물기를 보며 말없이 수건을 가져와 유우시의 발자국을 전부 닦아냈다. 유우시가 화장실에 들어간 후 물을 트는 소리가 들리다가 다시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鞋里积水的黏腻声在玄关回响。走进屋内时,地板上残留着湿漉漉的脚印。陸盯着水痕沉默地取来毛巾,将勇志的脚印全部擦拭干净。勇志进入卫生间后传来放水声,紧接着浴室门又被猛地拉开。


"...따뜻한 물이 안 나와."  "...没有热水。"

"기다려. 방금 온수 틀었어..."
"等等...我刚打开热水..."


화장실에서 다시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재채기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리쿠는 계속되는 기침 소리에 냄비에 물을 한가득 받아 인덕션에 올려놓았다. 물이 채 끓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열렸다.
卫生间再次传来滴水声和接连的喷嚏声。前田陸听着持续不断的咳嗽声,往锅里接了满满的水放在电磁炉上。水还没烧开,厕所门就打开了。


"...내가 왜 그랬을까?"  "...我当时为什么要那么做?"

"...뭐가? 근데 머리 물기 좀 털어."
"...什么?先把头发上的水甩甩。"

"왜 고백했지...?"  "为什么要表白啊...?"

"오."  "哦。"

"오는 뭐가 오야..."  "哦什么哦..."

"그래서 오시온이 뭐라고 했는데?"
"所以吴是温说了什么?"

"대답...? 대답......?"  "回答...?回答......?"

"......"  “……”

"...몰라."  "...不知道啦。"

"...그래."  "...好吧。"


유우시는 여전히 잔 기침을 하며 코를 훌쩍거렸다. 리쿠는 끓인 물에 티백 포장지를 찢어 두세개 정도를 넣고 대충 휘저었다. 물색은 순식간에 갈색으로 바뀌었다. 리쿠는 컵에 반절 정도 차를 따라 유우시에게 내밀었다. 차 덕분에 컵은 순식간에 뜨거워져서 유우시는 컵을 잡았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했다. 조심스럽게 컵을 기울이며 차를 마시던 유우시는 입을 컵에서 떼며 작게 혀를 내밀었다.
勇志仍然在轻轻咳嗽,不时吸着鼻子。陸把水烧开后,随手撕开两三个茶包扔进去胡乱搅了搅。水的颜色瞬间变成了棕色。陸往杯子里倒了半杯茶递给勇志。茶杯因为热茶的关系立刻变得滚烫,勇志的手指反复在杯沿碰触又缩回。他小心翼翼倾斜杯沿啜饮时,突然缩回嘴唇吐出舌尖轻轻"嘶"了一声。


"야 너무 뜨거워!"  "啊,太烫了!"

"...나 이번 학기 끝나면 다시 돌아갈 건데 같이 갈래?"
"我这学期结束就要回去了...要一起走吗?"

"무슨 소리야? 어디로?"  "说什么呢?去哪儿?"

"일본으로."  "日本。"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리쿠를 보며 유우시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졌다. 돌아간다는 말과 일본이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제 돌아간다는 말은 일본보다는 시온이 있는 한국이 먼저 떠올랐다.
看着理所当然般说出这话的陸,勇志的表情变得混乱起来。"回去"这个词与日本完全对不上号。现在提到"回去",比起日本,他脑海中首先浮现的是有吴是温在的韩国。


"나 어떡해..."  "我该怎么办..."

"...너 알아서 해라."  "...你自己看着办吧。"

"내일 시온이 얼굴 어떻게 보지?"
"明天要怎么面对吴是温那张脸啊?"

"알아서 하라니까..."  "不是说了让你看着办吗..."


유우시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이상한 소리를 내며 침대에 발을 굴렀다. 리쿠는 망설이다가 못 들은 척을 하며 눈을 감았다. 유우시는 한참을 침대에 발을 구르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욕심을 부리기에는 시온과의 관계가 너무 소중했다.
得能勇志裹着被子发出怪声,双脚在床上胡乱蹬踹。前田陸犹豫片刻,假装没听见般闭上眼睛。勇志在床上踢蹬了好一会儿,最终把脸埋进枕头,下定决心不再贪心。对于和吴是温的关系,他实在不敢再奢求更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