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강풀(본명 강도영):1974년생.2002년 홈페이지(www.kangfull.com 현재 사이트 개편 중)에 코믹한 주변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 게재 시작. 2003년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에 〈순정만화〉 시즌 1을 시작으로 〈아파트〉 〈바보〉 〈26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등 연재.
ⓒ时事 IN 安熙泰强风(本名姜道英):1974 年生。2002 年在个人主页(www.kangfull.com 目前网站正在改版中)开始发布以周边趣事为题材的作品。2003 年在媒体 Daum 漫画世界以《纯情漫画》第一季开始连载《公寓》《傻瓜》《26 年》《我爱你》《邻居》等作品。
강풀(35·본명 강도영)은 최근 몹시 아팠다. 〈이웃사람〉 연재를 끝낸 뒤 건강이 나빠져 사흘이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오랜 만화 작업 탓이었다. 연재 막바지에는 30분 일하고, 1시간 앓아눕기를 반복하는 고난의 행군을 했다. 몸도 제법 불었다. 그는 조금 우울한 목소리로 “몸이 갔다”라고 말했다. 자연스레 강풀과의 만남도 몹시 어려웠다. 연락을 주기로 해놓고 감감무소식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이 지연된 건 꼭 건강 탓만은 아니었다.
强风(35 岁,本名姜道英)最近病得很重。在结束《邻居》连载后,健康状况恶化,不得不住院三天。这是长期漫画工作的结果。在连载的最后阶段,他经历了 30 分钟工作、1 小时躺下休息的艰难过程。身体也明显肿胀。他用略带忧郁的声音说:“身体垮了。”自然而然地,与强风的见面也变得非常困难。虽然约定保持联系,但很多时候都杳无音信。然而,与他的见面延迟并不仅仅是因为健康问题。

처음 그와 통화가 됐을 때 그는 “제게 뭘 물어볼지 압니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영화 〈29년〉 이야기였다. 1980년 5·18 광주항쟁을 그린 강풀의 원작 〈26년〉을 소재로 한 영화 〈29년〉-강풀이 연재할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09년 개봉할 예정이었으므로 영화 제목은 26년이 아니라 ‘29년’이다-의 촬영이 왜 미뤄지는지 물어보리라는 강풀의 짐작이었다. ‘항간에 떠돈 것처럼’ 뒷말이 무성했던 모양이다. 
第一次与他通话时,他坚定地说:“我知道你想问我什么。但我无法回答。”原来他指的是电影《29 年》。以强风描绘 1980 年 5·18 光州抗争的原作《26 年》为题材的电影《29 年》——由于强风连载时已经过去三年,计划于 2009 年上映,因此电影标题不是“26 年”而是“29 年”——的拍摄为何推迟,强风猜测会有人问这个问题。似乎“坊间流传”的传闻很多。

“워낙에 제가 인터뷰를 잘 안 합니다. 최근 〈순정만화〉 개봉 전 영화사에서 주선한 인터뷰에만 응했지, 다른 인터뷰는 안 했어요. ‘시사지’인 만큼 〈29년〉이 왜 표류하고 있는지 물어볼 게 뻔한데, 제가 인터뷰에 응한답시고 나가선 ‘노코멘트’라고 하면 서로 그렇잖아요. 차라리 인터뷰를 안 하고 말지.”
“我本来就不太接受采访。最近只在《纯情漫画》上映前由电影公司安排的采访中回应,其他采访都没有接受。作为‘时事杂志’,肯定会问《29 年》为何搁浅,如果我接受采访却只说‘无可奉告’,那对双方都不好。还不如不接受采访。”

〈29년〉에 대해 ‘노코멘트’ 하는 이유
对《29 年》保持“无可奉告”的原因

배려가 깊다고 해야 할까, 다소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닌 게 아니라 그는 〈29년〉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사코 영화 제작사인 청어람 측에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청어람 측에 문의했다.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항간에 떠돈 것과 달리’ 지난 정권 관계자의 외압 때문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한국 영화 침체기 속에 투자 여건이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어람 측 관계자는 다만 “영화가 표류한다는 듯한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29년〉 제작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是说他考虑周到,还是说他有些不够灵活?他确实对《29 年》闭口不谈。他坚持让电影制作公司青鱼蓝方面回答。于是我们向青鱼蓝方面询问。答复出乎意料地简单。他们明确表示,与“坊间流传”的不同,并非因为前政权相关人士的外部压力。而是因为韩国电影低迷期投资环境萎缩。青鱼蓝方面的人士表示:“我们尽量避免谈论《29 年》的制作问题,以免给人留下电影搁浅的印象。”

조금 김이 샜다. 그 정도 이유라면 굳이 입을 닫을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도리어 ‘영화판 자본’이 〈29년〉처럼 사회적 의미가 있는 영화를 외면하는 문제를 작가로서 성토할 법도 하다. 이래저래 구슬려보았지만, 그는 끝내 ‘의리’를 지킨다. “만화 〈26년〉에 대한 건 제가 얼마든지 오픈할 수 있지만, 영화 〈29년〉에 대해선 영화사 쪽의 말을 듣는 게 맞아요. 제가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말을 하는 건 이기적인 것 아닐까요. 영화사가 나름으로 방법을 모색하는 중인데, 원작자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稍微有些失望。如果是这样的原因,似乎没有必要闭口不谈。反而作为作家,应该谴责“电影资本”忽视像《29 年》这样具有社会意义的电影。无论如何试图说服他,他最终还是坚持“义气”。“关于漫画《26 年》,我可以公开谈论,但关于电影《29 年》,还是应该听电影公司方面的说法。我在这件事上发表意见,是不是有些自私?电影公司正在寻找解决办法,作为原作者,发表各种言论对一起工作的人是不礼貌的。”

강풀이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어쩌면 이런 고집스러움 탓인지도 모른다. 〈26년〉 연재와 그에게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연재 막바지 너무 바쁜 나머지 동료 작가의 손을 빌려 작품을 완성했다. 문제는 강풀이 ‘환호성을 지를 만큼’ 동료 작가의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는 데 있었다. 그냥 넘어갔을 법한 일이지만, 강풀은 고민 끝에 연재를 뒤로 미뤘다. ‘자기 만화’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완성한 작품을 모두 버리고 자기 손으로 작업을 다시 했다. ‘마감의 고통’을 아는 이라면 쉽사리 내릴 수 없는 결단이었다.     
强风之所以能成为韩国顶级漫画家,或许正是因为他这种固执。关于《26 年》连载,他有一个小故事。在连载的最后阶段,他太忙了,以至于不得不借助同事的手完成作品。问题在于,强风“欢呼雀跃”地发现同事的实力非常出色。这本可以轻易忽略,但强风经过深思熟虑后决定推迟连载。因为作品“不像自己的漫画”。他最终放弃了所有已完成的作品,重新亲手创作。对于了解“截稿痛苦”的人来说,这是一个不容易做出的决定。

강풀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 최고의 온라인 인기 만화가다. 인터넷을 할 줄 아는 한국인치고 그의 만화를 접하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강풀의 만화가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첫 화면에 그의 만화가 뜬다. 그의 만화를 모르던 이들도 한 바퀴, 두 바퀴 마우스의 ‘휠버튼’을 굴려가며 ‘스크롤의 압박’을 즐긴다. 오프라인 독자가 책장을 넘기듯, 한참이나 남은 스크롤에 가슴 설레며, 혹은 얼마 남지 않은 스크롤에 아쉬워하며 그렇게 한국의 누리꾼은 강풀 만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6000만 페이지뷰’(〈순정만화〉)라는 대기록은 그의 만화에 열광하는 이에게는 보잘것없는 수치인지도 모른다.
强风现在名副其实地成为了我国最受欢迎的在线漫画家。懂得使用互联网的韩国人中,几乎没有谁没有接触过他的漫画。每当强风的漫画在门户网站上连载时,首页上总是会出现他的作品。即使是不了解他漫画的人,也会滚动鼠标的“滚轮按钮”,享受“滚动的压力”。就像线下读者翻书页一样,韩国网民在剩余的滚动中感到兴奋,或者为即将结束的滚动感到遗憾,就这样陷入了强风漫画的魅力之中。“6000 万页面浏览量”(《纯情漫画》)这一纪录,对于那些狂热喜爱他漫画的人来说,可能只是一个微不足道的数字。

그가 ‘최고’라는 수식을 받는 건 그의 작품이 책·영화·연극·드라마 등 전방위 장르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가 이미 영화화한 데 이어 〈타이밍〉 〈이웃사람〉도 영화화가 예정돼 있다. 〈순정만화〉 〈바보〉 등은 연극 무대에도 올랐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드라마화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이야기꾼’으로서 강풀만큼 커다란 호응을 얻는 이도 없다. 대중문화계 ‘미다스의 손’이라는 호칭도 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꼭 그만큼 부담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 부담은 〈29년〉 제작팀에게 그랬듯, ‘이웃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他被称为“最高”是因为他的作品被改编成书籍、电影、戏剧、电视剧等多种形式。《公寓》《傻瓜》《纯情漫画》已经拍成电影,《时机》《邻居》也即将拍成电影。《纯情漫画》《傻瓜》等作品也登上了戏剧舞台,《我爱你》也即将被改编成电视剧。在国内,作为“故事讲述者”,没有人能像强风那样获得如此巨大的反响。被称为大众文化界的“点金手”也不为过。而且,他也承受着相应的压力。然而,这种压力就像《29 年》制作团队那样,源于对“邻居”的关怀。

“영화가 꼭 ‘강풀 원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거든요. 하지만 잘 못 만든 영화 때문에 제 이미지가 훼손될까 하는 부담은 아니에요. 영화가 제작되는 걸 보니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목숨 걸고 그 일을 하는지 알겠더군요. 그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잘됐으면 좋겠고,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부담이죠.”
“电影一定会打出‘强风原作’的口号。但我并不担心因为电影制作不好而损害我的形象。看到电影的制作过程,我明白了电影制作人是多么拼命地工作。我希望那些努力的人能够成功,也希望自己能为他们提供一些帮助,这就是我的压力。”


좌빨? 운동권? 난 그저 만화를 그릴 뿐
左派?运动派?我只是在画漫画而已

강풀은 코믹과 순정에 능하다. 작가 생활 초기,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 상당수가 생활 속에 일어나는 코믹한 소재를 다룬 만화였다. 반면 〈순정만화〉는 한없는 순정과 박애로 ‘무장’한 작품이다. 그런 강풀을 다시 보게끔 만든 작품이 〈26년〉이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5·18 광주항쟁의 피해자들이 지금 ‘살아 있는’ 학살의 원흉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이미 충격적이었다. 〈26년〉에는 코믹이나 순정 요소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스토리는 긴박하고, 등장인물의 눈에는 핏발이 선다. 작품을 보노라면 이 작가가 1980년 5월의 ‘분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작품에 임했다는 짐작마저 절로 든다. 코믹과 순정의 달인이었던 그의 가슴속에 대체 무엇이 담겼기에 이런 작품을 그린 것일까. 2년 전 일이지만, 그는 방금 막 연재를 끝낸 것처럼 입을 연다.
强风擅长喜剧和纯情。在他职业生涯的早期,他的成名作品大多是描绘生活中发生的喜剧题材的漫画。而《纯情漫画》则是一部充满无尽纯情和博爱的作品。让强风再次受到关注的作品是《26 年》。这部作品讲述了生活在现在的 5·18 光州抗争的受害者们向如今“活着”的屠杀元凶复仇的故事,这一设定本身就足够震撼。《26 年》中几乎没有出现喜剧或纯情的元素。故事紧张,角色的眼中充满了血丝。看着这部作品,人们不禁会猜测这位作者是否仍然怀抱着 1980 年 5 月的“愤怒”进行创作。这位喜剧和纯情大师的内心究竟隐藏着什么,才能创作出这样的作品?尽管这是两年前的事情,但他却像刚刚结束连载一样开口说话。

오프라인 만화책으로도 출판된 강풀의 작품들. 영화화된 작품도 세 편이나 된다.
强风的作品也以线下漫画书的形式出版。其中有三部作品已经被改编成电影。
“악인에 대한 분노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마음이 더 컸어요. 우리가 지금 광주를 이야기할 때 용서와 화해를 말하잖아요. 하지만 잘못을 비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를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건가요. 잘못된 건 반드시 청산해야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거 아닌가요. 광주 문제가 모두 완결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안 된다고 봤어요. 제가 크리스천인데,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달란트(재능)를 주신 건 이 만화를 그리라고 주신 게 아닐까’ 하는 소명의식도 있었습니다.”
“与其说是对恶人的愤怒,不如说是对受害者的心情更加强烈。我们现在谈论光州时,总是提到宽恕与和解。但如果没有人认错,我们该宽恕谁,与谁和解呢?错误必须被清算,历史才不会重演。我认为不能把光州问题当作已经完全解决的事情来谈论。我是基督徒,我觉得‘上帝赐予我这样的才能,或许就是为了让我画出这部漫画’,这种使命感也存在。”

강풀은 ‘성선설’을 믿는다.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유일하게 ‘나쁜 사람’이 〈26년〉에 등장하는 전직 대통령일 정도다. 작품 속에서 그는 전 대통령의 ‘주구’인 경호실장에게조차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그를 일컬어 ‘좌빨’ 작가라고 부르며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强风相信“性善论”。在他的所有作品中,唯一出现的“坏人”是《26 年》中的前总统。在作品中,他甚至对前总统的“走狗”警卫室长也投以同情的目光。尽管如此,一些人还是称他为“左派”作家,甚至毫不客气地发出“要砍掉手指”的威胁。

“절더러 좌빨이니, 운동권 만화가니 해도 중요한 건 지금 제 머릿속에 뭐가 있느냐잖아요. 과거엔 진보였다가 지금 보수로 바뀐 사람도 얼마나 많아요. 전 제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보다 오른쪽에 서 계신 분들이 보기엔 제가 왼쪽인 것으로 보이겠죠. 그렇다고 굳이 ‘난 진보가 아니야’라고 나서서 부인하고 싶지도 않아요, 난 그냥 만화만 그리면 되니까요. 지지 정당도 없어요. 다만 한나라당 싫어하고 노회찬씨, 심상정씨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꼭 지지 정당이 있는 것 같지만(웃음) 정말 없어요. 작가로서 정치적 중립 때문은 아닙니다. 옛날엔 대놓고 노사모 만화가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그때 ‘노빠’라고 욕 엄청 먹었습니다.” 
“就算有人说我是左派,或者运动派漫画家,重要的是我现在脑子里想的是什么。过去是进步派,现在变成保守派的人也不少。我不认为自己是进步派。在比我更右的人看来,我可能显得偏左。但我也并不想特意站出来否认‘我不是进步派’,因为我只需要画漫画就行了。我也没有支持的政党。只是我不喜欢大国家党,喜欢卢会灿和沈相奵。这样说起来好像有支持的政党(笑),但其实真的没有。这并不是因为作为作家要保持政治中立。以前我还公开说过自己是卢武铉支持者漫画家呢。那时候被骂得很惨,被称为‘卢粉’。”

지금이야 최고의 반열에 올랐지만, 만화 작가로서 강풀의 삶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총학생회 활동을 하던 대학 시절, ‘어떻게 하면 학생들로 하여금 대자보를 열심히 읽게 만들까’ 고민하다 만화 대자보를 만든 것에서 비롯한 그의 ‘만화 인생’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었다. 전교조와 참여연대 기관지 등에 ‘돈 안 되는’ 만평을 연재하긴 했지만, 대학 졸업 후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반백수로 지내야 했다. 
虽然现在他已经站在了最高峰,但作为漫画家的强风的生活却是一连串的艰苦奋斗。大学时期担任学生会活动时,他为了让学生们更积极地阅读大字报,开始创作漫画大字报,从此开启了他的“漫画人生”,这简直是一连串的“硬着头皮上”的经历。虽然他在全教组和参与连带等机构的刊物上连载了“不赚钱”的漫画,但大学毕业后直到三十岁,他一直处于半失业状态。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불러주는 데가 없었죠. 인맥도 없고, 경력도 없고, 무엇보다 그림 실력이 없었어요. 그러니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요. 교보문고 잡지 코너에 가서 편집장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베껴와서 직접 다 돌아다녔어요. 그림 좀 그리게 해달라고. 이력서 뿌린 것만 수백 장이에요. 〈시사IN〉 전신인 〈시사저널〉에도 찾아간 적이 있다니까요.”
“我想画漫画,但没有地方愿意接受我。没有人脉,没有经验,最重要的是画技也不好。所以只能硬着头皮上。我去教保文库的杂志区,抄下编辑的名字和电话号码,然后亲自去拜访,请求他们让我画画。我投了数百份简历。我还去过《时事 IN》的前身《时事周刊》。”

잡지사와 출판사로부터 퇴짜 맞기를 수백여 차례, 보통 사람 같으면 때려치웠을 법도 한데 강풀은 쉬이 꺾이지 않았다. 기성 매체가 자리를 내주지 않자 2002년 6월, 강풀은 아예 자기 홈페이지(www.kangfull.com)에 스스로 작품을 올리기 시작한다. 홈페이지를 연 날이 만화가로 데뷔한 날인 셈이다. 결국 그의 ‘그림’이 아니라 만화 그 자체를 사랑해준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그는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풀은 “만화가 좋았고, 만화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아마 온라인에서 잘 안 됐어도 어떻게든 만화를 계속 그렸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被杂志社和出版社拒绝了数百次,普通人可能早就放弃了,但强风并没有轻易被打倒。当传统媒体不给他机会时,2002 年 6 月,强风干脆在自己的网站(www.kangfull.com)上开始发布自己的作品。网站开通的那天就是他作为漫画家出道的那天。最终,那些不仅喜欢他的“画”,而是真正喜欢漫画本身的人逐渐增多,他终于摆脱了无名的痛苦。强风说:“我喜欢漫画,除了漫画我什么都不会,所以即使在网上不成功,我也会继续画漫画。”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必须让读者满意,而不是编辑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강풀은 이제 한국 만화계에서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8년 전, 습작 원고를 들고 잡지사를 전전하던 강풀은 이제 없다. 더욱이 그는 기성 시스템을 벗어나 오직 온라인에서 성장한 1세대 작가다. 그런 만큼 온라인 만화가의 열악한 처우 문제와 관련해 만화계 사람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그는 업체뿐 아니라, 작가의 분발도 함께 촉구한다. 
无论他自己承认与否,强风现在已经是韩国漫画界的顶尖人物。八年前,拿着习作稿四处拜访杂志社的强风已经不复存在。而且,他是脱离传统系统,完全在线上成长起来的第一代作家。因此,关于网络漫画家的恶劣待遇问题,漫画界对他的期望也很大。但他不仅呼吁企业,也呼吁作家们要努力。

“만화의 위기를 작가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로 작가 개개인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실력을 키워서 어느 정도 재미있고 수준 있는 만화를 그린 뒤에 뭔가 요구해야지, 자칫 생떼로 보일 수도 있거든요. 결국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를 만족시키는 만화를 그린 뒤에야 뭔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把漫画的危机归咎于作家的责任固然有问题,但实际上每个作家也有自己的责任。只有提升实力,画出有趣且有一定水平的漫画后,才能提出要求,否则可能会显得无理取闹。最终,只有画出让读者满意而不是编辑满意的漫画,才能有发言权。”

그래서일까. 그는 철저하게 ‘대중성’을 중시한다. 제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자세다.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손’을 얻지 못하는 대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담아둔 ‘가슴’을 얻은 그는, 태생적으로 소수의 마니아보다는 여러 독자를 매료시킬 재능을 타고난 작가다. “언젠가 내 만화가 독자로부터 외면받는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요. 내가 재미없게 그려서 독자로부터 멀어지는. 그런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때려치울 거예요. 밥벌이 같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을 겁니다.”
所以呢,他极其重视“大众性”。再好的作品,如果读者不读,也是无用的。他虽然没有得到能画出好画的“手”,却得到了充满有趣故事的“心”,他天生就是一位能吸引众多读者而非少数狂热爱好者的作家。“也许有一天我的漫画会被读者冷落。如果我画得无趣,读者就会远离我。如果那一刻到来,我会毫不犹豫地放弃。我不会为生计之类的事情纠结。”

만화가 강풀, 그는 매순간 그렇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배수진을 치고 있다.
漫画家姜草,他每时每刻都在与自己的战斗中背水一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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