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목적으로 얼렁뚱땅 시작된 헤테로 신정환과 모태 게이 김도훈의 연애는 의외로 무탈하게 흘러갔다.
虽然异性恋申正焕和天生同性恋金道勋开始恋爱的目的各不相同,但他们的恋情出人意料地平稳发展。

신정환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김도훈은 고백했던 그날의 약속처럼 연애에 있어 특별히 요구해오는 게 없었다. 애칭은 물론이거니와 같이 사진 찍기, 커플 아이템 맞추기 뭐 그런 것들. 연애 기간은 벌써 반년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앨범을 뒤져보면 둘이 찍은 사진은 다섯 장 정도 되려나 싶었다. 심지어 그 중 두 장은 신정환 말년 병장 시절 강원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申正焕的担心似乎是多余的,因为金道勋就像他告白那天承诺的那样,在恋爱中并没有特别的要求。无论是昵称,还是一起拍照、购买情侣物品之类的事情。虽然恋爱期已经接近半年,但翻遍相册,两人一起拍的照片大概只有五张左右。而且其中两张还是在申正焕服役末期去江原道旅行时拍的。

어쨌든 신정환은 우정으로 시작한 관계이니, 김도훈이 일반적인 연애 관계에서 하는 것들을 요구하면 신정환이 이 관계에 부담을 느낄까 봐 걱정돼 일부러 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슬쩍 떠보기도 했다. 하지만 김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 한 번 으쓱해 보이며 자신은 원래 그런 거 잘 안 한다며, 이건 자신이 남자를 만나서가 아니라 그냥 성향이 그렇다는 시시한 대답만 돌아왔다.
无论如何,申正焕是从友情开始的关系,金道勋担心如果他提出一般恋爱关系中会有的要求,申正焕可能会对这段关系感到负担,所以他故意忍耐着,试探性地问了一下。但金道勋只是若无其事地耸了耸肩,说自己本来就不太做那些事,这不是因为他在和男人交往,而只是他个人的性格如此,给出了这样平淡无奇的回答。


"애칭보단 형이 제 이름 불러주는 게 더 좋고, 사진 찍을 시간에 그냥 눈으로 형 보는 게 더 좋아요."
"比起昵称,我更喜欢哥哥叫我的名字,与其花时间拍照,我更喜欢用眼睛看着哥哥。"


신정환의 질문에 시시하게 대답해놓고선 낯부끄러운 말은 잘도 덧붙였다.
申正焕的问题回答得敷衍了事,却又能轻松地补充上令人脸红的话。





신정환이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 영화가 개봉했다. 가장 빠른 일정은 오늘 밤 11시, 장소는 김도훈네 대학교 근처 영화관. 밤샘 과제 도중 그 소식 접한 김도훈은 당장 자기 것도 예매하라더니 시간 맞춰 영화관에 왔다. 저녁도 거르고 달려왔다는 말에 매점에 데려갔다. 평소의 김도훈이라면 이것도 먹고, 저것도 좋다며 재잘대고 있어야 할 김도훈이 매점 키오스크 앞에 서 그 흔한 팝콘 하나도 누르지 못한 채 한참을 머뭇거린다.
申正焕喜欢的导演的新片上映了。最早的场次是今晚 11 点,地点在金道勋大学附近的电影院。正在熬夜做作业的金道勋得知这个消息后,立即让申正焕也订票,然后准时来到了电影院。听说申正焕连晚饭都没吃就赶来了,金道勋就带他去了小卖部。平时的金道勋应该会叽叽喳喳地说这个也要吃,那个也不错,但此刻他站在小卖部的自助点餐机前,连最常见的爆米花都没点,犹豫了好一会儿。


"...형은 여기까지 와놓고 진짜 저 안 보고 갈 생각이었어요?"
"...哥哥真的打算来到这里却不见我就走吗?"

"너 어제 밤 새고 오늘도 새벽까지 과제 한다며. 그런 애를 어떻게 불러?"
"你昨晚熬夜,今天还要熬到凌晨做作业。这样的人怎么能叫出来呢?"

"진짜... 그거랑 이거는 다르죠."  "真的... 那个和这个是不一样的。"


그 말 들은 신정환은 입술 댓발 나온 김도훈에게 형이 네 맘 몰라 미안하다며 어르고 달랬다. 전 아무리 피곤해도 형이 부르면 바로 나오거든요? 김도훈은 그렇게 말하며 눈 흘겨놓고선 영화 시작 30분도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근 새로 시작한 작업 때문에 며칠간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된 김도훈이 안쓰러웠다. 잠시라도 눈 붙이라고 아래로 푹 꺾인 김도훈의 고개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하자 흠칫 놀라선 신정환과 눈을 마주친다.
听到这话,申正焕对着撅着嘴的金道勋说哥哥不了解你的心意很抱歉,并安抚劝慰他。"我再累,只要哥哥叫我,我都会马上出来的。"金道勋这样说着,白了一眼,但电影开始不到 30 分钟就开始打瞌睡了。看到这一幕,申正焕不禁为最近因新开始的工作而导致睡眠规律紊乱的金道勋感到心疼。为了让他稍微休息一下,申正焕将金道勋低垂的头靠在自己肩上,金道勋惊讶地抬头与申正焕对视。


"...형, 저 안 자요."  "...哥,我不睡觉。"


조용히 귓속말을 건네곤 얌전히 머리를 기댔다. 김도훈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뺨에 닿자 느껴지는 간지러움이 지나치게 신경 쓰였다. 바짝 다가온 김도훈의 체온도, 귓속말이 닿았던 오른쪽 귀 부근도 지나치게 뜨거웠다. 그 모든 요소 하나하나 때문에 허벅지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김도훈의 손을 맞잡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래야만 할 것만 같은 순간이라 충동적으로 그랬다. 김도훈은 조금 전과 달리 흠칫거리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얌전히 제 손에 닿은 신정환의 손만 맞잡았다. 뼈 마디마디가 툭 불거진 신정환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얇고 쭉 뻗은 김도훈의 손가락이 맞물린다.
他轻声耳语后,乖巧地靠在了头上。金道勋乌黑的头发触碰到脸颊时,那种痒痒的感觉格外引人注意。紧贴过来的金道勋的体温,以及耳语时触碰到的右耳附近,都异常灼热。因为这所有的每一个因素,他握住了乖巧地放在大腿上的金道勋的手。那一刻,他觉得必须这么做,于是冲动地这样做了。金道勋与刚才不同,既没有畏缩,也没有与他对视,只是安静地握住了申正焕碰到自己手上的手。申正焕骨节分明的手指间,金道勋修长纤细的手指紧紧相扣。


다시 과제 하러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사회과학대 정문까지 같이 걸었다. 어느덧 새벽 2시를 넘은 캠퍼스는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했다. 김도훈은 졸음 가득한 눈을 하고선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계속해서 재잘거렸지만 신정환의 속은 싱숭생숭하기만 했다.
听到要回去继续做作业,两人一起走到了社会科学大楼的正门。不知不觉已经过了凌晨 2 点,校园里一个人也没有,静悄悄的。金道勋眼睛里满是困意,却还是不停地喋喋不休,不知道在高兴什么,而申正焕的心里却七上八下的。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谢谢你送我回来。"

"응, 오늘은 집에 언제 가?"
"嗯,今天你什么时候回家?"

"글쎄요... 집 갈 때 연락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요 형."
"嗯...我回家的时候会联系你的。哥,路上小心。"


그저 자신이 내민 손 맞잡는 게 전부인 김도훈. 포옹 한 번에도 여전히 어색해하며 쭈뼛거리는 김도훈. 제 동기들과는 잘도 찍는 네컷사진을 자신에겐 단 한 번도 같이 찍자 말하는 법이 없는 김도훈. 그리고 지금, 조심히 들어가라며 아쉬움 없이 등 돌리는 김도훈까지.
只是握住自己伸出的手就已经是金道勋的极限了。即使是拥抱一次,金道勋仍然会感到尴尬和局促不安。金道勋经常和同期成员拍四格照片,却从未邀请过自己一起拍。而现在,金道勋只是叮嘱小心回去,毫无留恋地转身离开。

신정환은 우정도, 연애도 아닌 것 같은 이 밍숭맹숭한 관계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아쉬워하는 자신의 감정을 돌이켜본다. 그저 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꼈던 적 있었는지, 피곤한 기색 역력한 누구에게 거리낌 없이 제 어깨를 내줬던 적 있는지와 같은 것들.
申正焕回想起自己过分在意这段既不是友情也不是恋爱的模糊关系,以及为此感到遗憾的情绪。他思考着是否曾经仅仅因为亲近就给对方的每个行为赋予意义,感受莫名的遗憾;是否曾经毫不犹豫地将自己的肩膀借给一个明显疲惫的人。

김도훈과 반년 가까이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을 속이고 숨기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살았다. 김도훈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 그 순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분명했으니까. 포기하고 살아야 할 것들이, 영원히 숨기고 살아야 할 것들은 여전히 버겁게 느껴졌으나 스스로를 속이는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마침내 깨닫는다.
虽然和金道勋恋爱将近半年,却一直隐藏和欺骗自己的内心,努力装作若无其事地平静生活。因为很清楚,一旦承认对金道勋的感情并说出口,就再也无法回到从前的生活了。那些必须放弃的事物,那些必须永远隐藏的事物,仍然让人感到沉重,但最终意识到了在欺骗自己的行为中显露出的矛盾。


"도훈아."  "道勋啊。"

"네?"  "什么?"


그러니까 내가 김도훈과 연애를 하는 이유는 김도훈이라는 친구를 잃는 게 싫어서도, 남들과 쉽게 공유하지 못하는 취향과 취미를 향유할 수 있어서도,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편해서가 아니라고.
所以我和金道勋恋爱的原因,不是因为不想失去金道勋这个朋友,也不是因为能够享受与他人难以分享的兴趣和爱好,更不是因为即使什么都不说,静静地待在一起也是世界上最舒服的事。


"좋아해."  "我喜欢你。"


연애기간 약 반년 만에 겨우 입 밖으로 나온 신정환의 마음을 들은 김도훈의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 그게, 그러니까... 아 어쩌지, 잠시만요. 따위의 말들을 횡설수설 내뱉고선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순식간에 정문 뒤로 사라졌다. 그렇게 신정환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 실습실이 있는 4층까지 계단으로 단숨에 뛰어 올라가 제대로 숨 고를 새도 없이 책상 위 널브러진 가방을 챙겨 들었다. 오늘 같이 야작하기로 한 동기에겐 집에 일이 생겨 가야 한다 말하곤 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여전히 정문 근처에 멍하니 서 있는 신정환의 손목을 붙잡고 겨우 숨을 고르며 물었다.
在约半年的恋爱期后,金道勋听到申正焕终于说出口的心里话时,脸上满是笑容瞬间消失了。"呃,那个,就是说...啊,怎么办,稍等一下。"他语无伦次地说着,连眼神都不敢对视,转眼间就消失在正门后面。就这样把申正焕孤零零地留在原地,他一口气跑上楼梯来到四楼的实习室,连喘口气的时间都没有就抓起桌上散乱的包。他告诉今天约好一起熬夜工作的同学家里有事必须回去,然后飞快地跑下一楼。他抓住仍然呆呆站在正门附近的申正焕的手腕,好不容易喘过气来问道。


"형, 진짜 저 좋아해요?"  "哥,你真的喜欢我吗?"

"좋아한다니까."  "我说了我喜欢你。"


김도훈은 신정환의 마음과 제 마음이 같아지는 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신정환이 저와 연애하는 이유야 뻔했으니 제게 바랄 친구로서의 모습만 묵묵히 수행했다. 언젠가 신정환이 저 스스로 마음을 인정하고 좋아한다 말 하는 날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감동을 줄 수 있을지 따위를 수십번도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정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래도 무언가를 멋있게 말하고 싶은데 계속 숨이 찼다.
金道勋等待着申正焕的心意与自己的心意变得一致的那天,什么也不做,只是等待。申正焕与他恋爱的理由很明显,所以他只是默默地扮演着申正焕所期望的朋友角色。他曾无数次想象过,当申正焕终于承认自己的心意并说出喜欢他的那天,自己该如何表现才能让对方感动。然而,当真正听到申正焕说喜欢他时,他的脑子却一片空白。尽管如此,他还是想说些帅气的话,但却一直喘不过气来。


"그러니까 형, 그니까 저는요..."  "所以哥,我是说..."

"응, 천천히 말 해."  "嗯,慢慢说。"

"그럼, 저 형이랑 하고 싶은 거 많아요."
"那么,我想和哥哥做很多事。"





***





반 년이 넘는 시간 묵묵히 제 감정과 욕심을 참아온 만큼 신정환이 제 마음을 인정하자마자 진도는 순식간에 빠졌다. 둘의 처음은 밤샘이고 과제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달려온 김도훈의 자취방에서 급하게.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그때마다 신정환은 제 아래에서 까무잡잡한 얼굴에 홍조 가득 띄운 그 얼굴이 그저 예뻤다.
在忍耐了半年多的感情和欲望之后,申正焕一承认自己的心意,两人的关系就迅速升温了。他们的第一次发生在金道勋抛下通宵和作业等一切匆匆赶来的出租屋里。就像大多数事情一样,第一次是困难的,但第二次、第三次就变得容易了。每一次,申正焕都觉得身下那张小麦色的脸庞上泛起红晕的模样美极了。

하고 싶은 게 많다는 말에 걸맞게 김도훈은 혼자 제일 바빴다. 우선은 김도훈의 자취방 냉장고에 동기들과 찍은 수십장의 네컷사진 사이사이 신정환과 찍은 것들이 속속들이 끼워졌다. 일부러 예매율 제일 낮은 영화를 선택해 끄트머리 자리에서 손 잡는 건 예삿일이 됐다. 남자랑 하는 연애도 뭐 어려울 거 없네, 신정환은 생각했다.
与"想做的事很多"这句话相称,金道勋一个人最忙碌。首先,在金道勋的单身公寓冰箱上,与同学们拍的几十张四格照片之间,夹杂着与申正焕拍的照片。特意选择预售率最低的电影,坐在角落里牵手已经成了家常便饭。和男生谈恋爱也没什么难的嘛,申正焕心想。

그쯤 되니 김도훈의 마음속에 새로운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딱 하나 있는 게이 친구에게 신정환을 소개하고 싶었고 그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는 곳에서 마음 편히 데이트도 하고 싶었다.
到了这个时候,金道勋心中悄悄升起了一个新的欲望。他想把申正焕介绍给自己唯一的同性恋朋友,也想在一个没有人会对他们指指点点的地方轻松地约会。


"형, 그 저랑 같은... 친구 한 명 있다고 말했었나요?"
"哥,你之前说过有一个和我一样的...朋友吗?"

"말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건 왜?"
"好像说过。那是为什么?"

"그 친구도 연애하거든요. 그래서... 형만 괜찮으면 걔네 커플이랑 만나서 저녁 같이 먹으면 안... 되나 해서요. 거절해도 진짜 괜찮아요."
"那个朋友也在恋爱呢。所以...如果哥哥觉得没问题的话,我们能不能和他们俩一起吃个晚饭呢?如果你拒绝的话也真的没关系。"


신정환은 어느 순간부터 남자친구로서 이것저것 요구해오는 김도훈의 모습에 약간의 즐거움을 느꼈다. 때문에 이번 부탁에도 금방 그러자 대답하려다 말고 문득 머릿속에 남자와 연애하는 남자 넷이 모인 술자리 모습을 떠올렸다. 이미 제가 김도훈과 반년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넷 모인 모습에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김도훈과 자신이 연애하는 것은 괜찮아도 그런 모임은 자신이 속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申正焕不知从何时起,开始对金道勋作为男朋友提出各种要求的样子感到一丝愉悦。因此,这次的请求他本想立即答应,但突然脑海中浮现出四个谈恋爱的男生聚在一起喝酒的场景。尽管自己已经和金道勋恋爱半年多了,但四个男生聚在一起的画面还是让他感到莫名的距离感。也就是说,虽然他和金道勋谈恋爱没问题,但这样的聚会却让他觉得自己不属于那里。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신정환의 모습을 본 김도훈은 괜히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한참을 그러더니 김도훈답지 않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그 친구 이름이 정민재라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 자기가 연애사를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니 당연히 형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것, 민재도 형을 정말 궁금해한다는 것, 그 친구 성격도 진짜 좋고 착해서 형이 불편함 느낄 일 같은 거 전혀 없을 거다 뭐 그런 것들. 어찌 보면 단순한 부탁임에도 온갖 이유가 계속해서 붙었다.
看到申正焕难以回答并犹豫不决的样子,金道勋不由自主地摆弄着自己的指甲,小心翼翼地观察着情况。过了好一会儿,金道勋以一种不像他平常的细小声音吞吞吐吐地开口了。从那个朋友名叫郑民宰开始说起,接着说他是唯一一个可以倾诉恋爱事的朋友,所以当然想介绍哥哥认识;民宰也真的很好奇哥哥;那个朋友性格真的很好很善良,哥哥绝对不会感到不舒服之类的。看似简单的请求,却附加了各种理由。

혀엉, 진짜 안 될까요? 신정환의 팔을 붙잡곤 답지 않게 애교까지 부려가며 부탁하는 김도훈의 모습을 보니 거절의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焕哥,真的不行吗?看着金道勋抓住申正焕的手臂,反常地撒着娇恳求的样子,拒绝的话语难以说出口。


"그래, 그러자."  "好,就这么办吧。"

"어, 진짜요? 그럼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哦,真的吗?那么这个周末你有时间吗?"


그 뒤로도 김도훈은 진짜 진짜 고맙다는 말을 백 번도 더했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그 착하다는 친구와 전화하면서 언제, 어디서 만날 건지부터 시작해 그날의 계획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한껏 들떠 벌써 주말에 뭐 입을지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김도훈의 모습을 보며 그 나이대에 걸맞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之后金道勋又说了一百多遍真的真的非常感谢。他兴高采烈地和那位善良的朋友通电话,从什么时候、在哪里见面开始,一直聊到那天的计划,说个没完。看着金道勋已经兴奋地站在衣柜前,为周末要穿什么而烦恼的样子,我觉得他展现出了符合那个年龄段的可爱模样。






하지만 신정환이 김도훈의 게이 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함께했느냐 하면,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
但是如果问申正焕是否积极支持并参与了金道勋的同性恋生活,答案是否定的。

우선 신정환은 그쪽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친분을 쌓아야 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냥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운데 왜 자꾸 김도훈은 그쪽 지인들을 만들자고 하는지, 커플 모임 따위에 나가자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首先,申正焕完全不觉得有必要持续地与那边的人见面并建立友谊。他觉得只有我们两个人就已经足够快乐和满足了,不明白为什么金道勋总是要求结识那边的朋友,或者参加什么情侣聚会。

때문에 신정환은 모임까지 나가서도 그저 김도훈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술만 마셨다. 흥미 없는 대화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다 누군가 질문 건네면 적당히 대충 대답해줬다. 반면 김도훈은 특유의 애굣살 가득한 눈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신정환을 제외한 모두가 즐거워했다.
因此,即使在聚会上,申正焕也只是静静地坐在金道勋旁边喝酒。他对那些无聊的对话充耳不闻。如果有人问他问题,他就随便应付几句。相比之下,金道勋带着他特有的充满爱意的眼神微笑,看起来是世界上最开心的人。不,严格来说,除了申正焕之外,所有人都很开心。

신정환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 쥔 채 앉아있다 보면 저 혼자만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그러니까 그들과 나는 여전히 다른 부류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잠시 전화 좀 하고 오겠다는 핑계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김도훈이 남자라서 좋은 게 아니야. 그냥 김도훈이라서 좋은 거야. 그렇게 되뇌는 동안 발치에 쌓이는 담배꽁초만 늘었다.
申正焕坐在那里,手握酒杯,在这样的氛围中,他感觉自己仿佛成了唯一的局外人,无法摆脱自己与他们仍然属于不同类别的想法。他以打个电话为借口走了出去,点上了一支烟。我喜欢金道勋不是因为他是男人,而是因为他就是金道勋。在他反复思考这句话的同时,脚边的烟蒂越堆越多。


- 또 걔네들 만나러 가자고?
- 又要去见他们吗?


언젠가부터 김도훈이 그 무리를 만나자 할 때 마다 '또'라는 말이 입 밖으로 자꾸만 나오려 했다. 다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김도훈이 서운해할 거라는 건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었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하는 신정환의 삶의 모토 중 하나는 피할 수 있는 갈등 상황은 피하는 게 최고라는 거다. 때문에 김도훈이 그 모임에 가자 제안할 때 마다 대부분은 자신의 진심을 숨긴 채 김도훈의 뒤를 따랐다. 
不知从何时起,每当金道勋提议要去见那群人时,"又来了"这句话总是不由自主地想要脱口而出。只是很明显,一旦说出这句话,金道勋肯定会感到失落。申正焕的人生信条之一就是尽量避免不必要的冲突,他不想无缘无故地制造麻烦。因此,每当金道勋提议去参加那个聚会时,大多数情况下他都会隐藏自己的真实想法,默默跟在金道勋身后。


"형, 오늘 제 친구들 만나줘서 진짜 고마워요."
"哥,真的很感谢你今天愿意见我的朋友们。"


신정환에겐 지루하기만 했던 모임을 끝내고 김도훈의 자취방으로 나란히 향하던 늦은 새벽. 약간의 술기운 오른 김도훈이 슬쩍 먼저 손 잡아 오며 고맙다 말하며 해사하게 웃어 보일 때 마다 신정환의 마음속에선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래, 이것만 빼면 우리 관계는 완벽하니까. 아무리 문제 없어 보이는 연인 사이더라도 각자의 속마음 들여다보면 상대방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 하나씩은 감추고 사는 거니까.
申正焕结束了一场对他来说无聊的聚会后,和金道勋一起在深夜前往金道勋的单身公寓。每当微醺的金道勋悄悄牵起他的手,感谢他并露出灿烂的笑容时,申正焕的内心就会涌起复杂的情感。是啊,除了这一点,我们的关系是完美的。即使看起来再完美的恋人之间,如果深入了解彼此的内心,也总会有一点不满意对方的地方,只是藏起来罢了。

신정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보고 웃는 김도훈을 마주 보고 웃었다.
申正焕这样想着,看着对自己微笑的金道勋,也回以微笑。





***






세 번째 봄을 맞이하게 된 둘은 그 흔한 권태기 따위 없이 늘 서로에게 다정했다.
迎来第三个春天的两人没有常见的倦怠期,始终对彼此温柔体贴。

직장인이 된 신정환의 낙은 월급 아껴 김도훈에게 온갖 선물을 안겨주는 게 됐다. 옛 말년 병장 시절 자신의 휴가를 챙겨줘서 고마웠다, 그냥 지나가다 봤는데 너랑 어울릴 것 같았다 등의 온갖 핑계로 김도훈이 스치듯이 갖고 싶다 말했던 것들을 기억해뒀다 짠 하고 선물해줬다.
成为上班族的申正焕的乐趣变成了省下工资给金道勋送各种礼物。他记住了金道勋曾经随口说想要的东西,以各种借口送给他,比如说感谢他在自己当老兵时照顾自己的假期,或者说只是路过看到觉得很适合他。然后就会突然送上礼物。


"내 선물 말고 형 갖고 싶은 거 사라니까..."
"我不是说了让你买你自己想要的东西,而不是给我的礼物吗..."


그럼 김도훈은 신정환이 안겨준 쇼핑백 품에 안고선 말끝 흐리며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결국엔 고마워 형, 하면서 애굣살 가득한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쇼핑백 안에 자기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게 들어있으면 가지런한 치아를 손으로 가리고 웃었는데, 그건 김도훈이 진짜 기쁠 때 짓는 웃음이었다. 신정환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 웃음을 볼 때 마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부터 간지러운 무언가가 넘실넘실 차올랐다.
于是金道勋抱着申正焕递给他的购物袋,嘴里嘟囔着含糊不清的话。但最后还是说了声"谢谢哥",露出了他特有的充满撒娇意味的眯眯眼笑容。如果购物袋里装的是他真心想要的东西,他就会用手遮住整齐的牙齿笑起来,那是金道勋真正开心时才会露出的笑容。无论时间如何流逝,每当申正焕看到那个笑容时,内心深处总会涌起一股痒痒的感觉。

그러니 굳이 따지고 보면 신정환은 김도훈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행위보단, 그 선물을 받아들고선 언제나처럼 예쁘게 웃는 김도훈의 얼굴이 좋았다. 때문에 김도훈의 취향과 관심사를 착실하게 기억하는 성실함과 다정함, 눈웃음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를 구매하기 위한 비용 같은 건 김도훈 한정으로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所以仔细想来,申正焕与其说是喜欢给金道勋送礼物的行为,不如说是更喜欢金道勋收到礼物后一如既往地露出漂亮笑容的样子。因此,申正焕对金道勋的喜好和兴趣牢记在心,这份细心和温柔,以及为了能看到金道勋眯眼笑的样子而购买礼物的花费,这些都是他专门为金道勋毫不吝啬地付出的。


하지만 그런 다정함을 지닌 신정환의 속을 썩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但是,让拥有这种温柔的申正焕感到烦恼的是另有其事。

신정환의 회사 팀원들은 입만 열면 궁금하지도 않은 사생활을 나불댔는데, 대부분의 이야기 주제는 신정환이 가장 기피하는 연애, 동거, 결혼이었다. 고작 팀 막내 신분이었던 신정환은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거 꾹꾹 잘 참아가며 동태 눈깔 되려는 거 억지로 생태 눈깔로 갈아 끼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척이라도 해야 됐다.
申正焕的公司同事一开口就喋喋不休地谈论着他根本不感兴趣的私生活,而大多数话题都是申正焕最避讳的恋爱、同居和婚姻。作为团队里最年轻的成员,申正焕对这些既无兴趣也不关心,但他不得不强忍着,把自己那双想要变成死鱼眼的眼睛硬生生地睁大,假装在听他们说话。


"근데 정환씨는 얼굴이 아깝다. 나라면 여자들 잔뜩 후리고 다닐 텐데."
"但是正焕的脸蛋太可惜了。如果是我的话,肯定会到处勾搭女孩子。"


그러한 신정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이나 들어야 했다. 입만 열면 연애니 뭐니 하는 팀원들 덕분에 출근만 하면 거짓말 뒤에 김도훈을 숨기고, 이미 3년 차에 접어든 둘의 연애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척 해야만 됐다.
尽管申正焕做出了这样的努力,却还是不得不听到这样的话。多亏了一开口就谈论恋爱之类的队友们,每次上班都要把金道勋藏在谎言背后,而且还得假装他们已经进入第三年的恋爱关系根本就不存在。


"딱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我并没有特别想要做这件事的想法。"

"그럼 결혼도 안 할 거야? 결혼 생각 아예 없어?"
"那你是不打算结婚了吗?完全没有结婚的想法?"

"정환씨, 그 나이에 연애 많이 해야지!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正焕啊,你这个年纪就该多谈恋爱啊!以后想谈都没机会了?"


딱히 생각 없다는 말 한마디면 끝났던 대학생 때와 달리 팀원들은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며 젊을 때 연애 많이 하고,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며 신정환을 들들 볶았다. 연애는 아직... 결혼 생각도 아직... 차오르는 스트레스 꾹 눌러 참으면서 애써 웃었다. 여기서 유발된 스트레스가 정점을 찍은 어느 날, 신정환은 성별 전환 버전으로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준다는 AI 어플을 깔아 김도훈의 사진을 넣었다.
与大学时代只需说一句"没什么特别想法"就能结束的情况不同,团队成员们纷纷追问这是什么意思,并不断催促申正焕说年轻时要多谈恋爱,还要为未来做准备。恋爱还不急...结婚的想法也还不急...申正焕强忍着不断上升的压力,勉强露出笑容。在某一天,这种压力达到顶点时,申正焕下载了一个可以将照片转换成异性版本的 AI 应用,并将金道勋的照片放了进去。

잠시만,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等一下,我现在在做什么?

생성하기 버튼을 누르고 돌아가는 로딩 아이콘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탄식했다. AI 어플은 여전히 로딩중에 멈춰있었다. 10초만 기다리면 완성된다는 문구가 떴지만 신정환은 결과물도 확인하지 않고선 미련 없이 어플을 삭제했다.
按下生成按钮后,呆呆地盯着旋转的加载图标,突然想到什么而叹息。AI 应用仍然停留在加载中。虽然弹出提示说再等 10 秒就能完成,但申正焕没有查看结果就毫不犹豫地删除了应用。








"형, 우리 주말에 이케아 가자. 나 책상 바꿔야 돼."
"哥,我们周末去宜家吧。我得换张书桌。"


김도훈은 책상 그거 인터넷에서 적당한 가격대에 리뷰 괜찮은 거 대충 사자는 신정환에게 잔소리를 왕창 하고선, 마음에 들면 오늘 바로 사서 올 거라며 차까지 렌트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이케아 홈페이지부터 블로그 후기까지 쫙 훑은 김도훈은 도착하자마자 미케인지 디케인지 하는 걸 직접 봐야겠다며 책상 코너로 직행했다.
金道勋对申正焕唠叨了一通,说要在网上买个价格适中、评价不错的书桌,还说如果看中了就今天立刻买回来,甚至还租了辆车。金道勋几天前就已经把宜家官网和博客评论都仔细看过了,一到店就直奔书桌区,说要亲自看看是米凯还是迪凯。

검은색이냐, 흰색이냐의 기로에 서서 골몰하는 김도훈을 기다리던 신정환의 눈에 신제품 딱지 크게 붙은 2인용 게이밍 책상에 눈에 들어왔다. 오, 이거 버튼 누르면 높낮이도 바로 조절되네. 최근 꽤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고 있는 신정환은 책상도 한 번 쓸어보고, 기능 이것저것을 비교해가며 신기해했다.
正在等待纠结于选择黑色还是白色的金道勋时,申正焕的目光落在了一张贴有"新品"大标签的双人游戏桌上。哦,这个按下按钮就能立即调节高度啊。最近花了相当多时间在游戏上的申正焕抚摸了一下桌面,一边比较各种功能一边感到新奇。


"도훈아 이거 봐. 진짜 신기하지? 버튼 눌러서 높낮이 조절도 가능하대."
"道勋啊,看这个。真神奇,对吧?听说按下按钮还能调节高度呢。"

"형, 내가 나중에 이런 거 사줄게."
"哥,以后我会给你买这样的东西的。"

"됐어, 이거 너무 커서 우리 집에 둘 공간도 없는데."
"算了吧,这个太大了,我们家里根本没地方放。"

"당연히 지금 집은 너무 작지? 우리가 같이 살려면."
"当然现在的房子太小了吧?如果我们要一起住的话。"


우리가 같이 살 집? 같이 살려면? 그 말에 신정환이 눈에 띄게 멈칫한다. 언젠가부터 평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는 동거니 결혼이니 하는 얘기를 김도훈도 자신을 만나면 하기 시작했다.
我们一起住的房子?如果要一起住的话?听到这话,申正焕明显地愣住了。不知从什么时候开始,平日里在公司里被同居啊结婚啊之类的话题折磨,现在连金道勋见到自己也开始说这些了。

연애는 로망이고, 동거와 결혼은 현실적인 문제다.
恋爱是浪漫的,同居和婚姻则是现实问题。

남들은 몰라도 김도훈은 꽤 까탈스러운 면들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 정리도 꼭 해야 했고, 원체 자기 꾸미는 거 좋아하는 탓에 옷 관리와 빨래에 대한 자기만의 철칙도 있었다. 바디워시 하나를 사도 신정환은 적당히 가격대 괜찮고 배송 빠른 거 구매했다면, 김도훈은 후보 몇 개 뽑아 별점 낮은 순대로 리뷰 비교해가며 배송이 느려 터져도 꼭 자기가 마음에 드는 거로 구매했다.
别人可能不知道,但金道勋其实有很多挑剔的地方。早上起床后一定要整理床铺,因为本来就喜欢打扮自己,所以对衣物管理和洗衣也有自己的规矩。就连买沐浴露这种小事,申正焕可能会选择价格适中、配送快的产品,而金道勋则会先挑选几个候选,然后按照评分从低到高比较评论,即使配送再慢,也一定要买自己中意的那款。

신정환은 그러한 김도훈의 까탈스러운 면들을 평생 안고 가는 것도,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김도훈과 평생 나누는 것도 준비 되지 않았다. 고작 공과금이나 생활비, 화장실 청소, 설거지 같은 별거 아닌 걸로 김도훈과 다투기도 싫었다.
申正焕既没有准备好一辈子忍受金道勋挑剔的一面,也没有准备好永远与金道勋分享自己的时间和空间。他不想因为水电费、生活费、打扫厕所、洗碗这些琐事而与金道勋争吵。

애초에 김도훈과 같이 산다는 건 단순히 동거를 넘어 결혼과 다름 없다 생각했다. 신정환은 아직 그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을 감당 할 준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단순히 김도훈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도 가볍게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약속을 하기도 싫었다.
从一开始,金道勋就认为和伞一起生活不仅仅是同居,而是与婚姻无异。申正焕还没有准备好承担这种重担和责任。同时,他也不想仅仅因为喜欢金道勋就轻率地对未来做出各种承诺。

그러니까 신정환은 깊게 생각할 거 없이 그냥 지금이 좋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때문에 잠깐 머리 굴리다 애초에 이곳에 왔던 이유를 기억해 내 대화 주제를 돌려버렸다.
所以申正焕没有深思熟虑,只是觉得现在很好,非常满意。因此,他稍微思考了一下,想起了最初来到这里的原因,便转移了话题。


"게임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냥 본 거야. 너 본다던 책상은? 골랐어?"
"你玩游戏玩多久了啊...我只是看了一眼。你说要看的书桌呢?选好了吗?"

"아니 형 그게 있지, 내가 진짜 고민되는 게 있거든? 형이 한 번 봐봐."
"哎呀哥,是这样的,我真的有个让我很烦恼的事情,你能帮我看看吗?"


김도훈은 흰색과 검은색 중 고민하다 신정환의 의견을 따라 흰색을 선택했고, 이케아 가면 먹고 싶다던 미트볼과 볶음밥을 우물대며 형이 만든 볶음밥이 더 맛있다고 말했다. 형은 진짜 요리에 재능 있는 거 알아? 있지, 우리 같이 살면 형이 요리 담당하고 내가 설거지 담당하면 되겠다.
金道勋在白色和黑色之间犹豫不决,最后听从申正焕的意见选择了白色。他一边嚼着在宜家想吃的肉丸和炒饭,一边说哥哥做的炒饭更好吃。"哥,你知道吗?你真的很有烹饪天赋。对了,如果我们住在一起的话,你负责做饭,我负责洗碗,这样就行了。"

양 볼 가득 음식 넣고 우물대며 말하는 김도훈에게 입에 발린 거짓말 한마디 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때문에 대답 대신 김도훈의 빈 물컵에 물 따라 건네주며 목 막히니 천천히 먹어, 해주고 말았다.
金道勋两颊塞满食物,含糊不清地说着话,对他说一句违心的谎言竟是如此困难。因此,我没有回答,而是给金道勋空了的水杯倒上水递给他,说道:"慢点吃,小心噎着。"





***





어느 해의 11월 30일. 날이 추우니 어디 나가지 말자 약속하고 집에서 맛있는 거 시켜 먹고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며 딱 붙어 쉬던 어느 날. 신정환은 사놓고서도 한참이나 읽지 못했던 책을 폈고, 김도훈은 언제나 그렇듯 휴대폰 들고선 온갖 콘텐츠 정독했다. 정말 특별할 거 하나 없는 날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질 못하는 김도훈의 행동이 유난히 거슬렸다.
某年 11 月 30 日。因为天气寒冷,约定不要出门,在家叫些美食,各自做想做的事,紧紧依偎在一起休息的一天。申正焕打开了买来很久却一直没能读的书,金道勋像往常一样拿着手机专注地浏览各种内容。本应是再平凡不过的一天,但不知为何,今天金道勋一直不放下手机的行为特别让人在意。


"김도훈, 휴대폰 좀 적당히 해. 대체 뭐 보는데?"
"金道勋,适可而止地玩手机吧。你到底在看什么?"


그 거슬림의 정도는 평소 김도훈에게 싫은 소리 잘 하지 못하는, 김도훈 한정 참을성 끝판왕 신정환이 고작 휴대폰 하나 가지고 목소리 잔뜩 깔게 만들 정도였다. 보통 신정환에게 한마디 들으면 누가 봐도 기 잔뜩 죽은 채 눈치 보던 김도훈이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신정환의 시비에 가까운 잔소리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선 여전히 휴대폰에 시선 고정한 채 운을 띄운다.
这种烦躁程度足以让平时对金道勋不轻易说难听话、对金道勋有着无限耐心的申正焕仅仅因为一部手机就压低了声音。通常情况下,被申正焕说一句就会明显气势低落、小心翼翼的金道勋今天不知怎么了,对申正焕近乎挑衅的唠叨毫不在意,依然盯着手机屏幕开口说道。


"형, 우리 저번에 갔던 그 모임 말이야."
"哥,我说的是我们上次去的那个聚会。"


언젠가부터 신정환은 이제 그 모임 같은 거 안 가고 싶다며, 그 모임 갈 시간에 도훈이 너랑 단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표현하기 시작해 그 모임은 언급 금지와 다를 바 없는 대화 주제가 됐다. 때문에 김도훈의 입에서 오랜만에 내뱉어진 모임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신정환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从某个时候开始,申正焕就表示不想再去那种聚会了,说在去聚会的时间里更想和道勋你单独相处,以至于那个聚会成了几乎禁止提及的话题。因此,当金道勋的口中难得说出"聚会"这个词时,申正焕的眉头立刻皱了起来。


"다음 달에 크리스마스라 그 사람들 만난다던데 우리도 갈까? 재밌을 거 같은데..."
"听说下个月圣诞节要见那些人,我们也去吗?感觉会很有意思..."

"...크리스마스에 굳이?"  "...非要在圣诞节吗?"


모임,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그냥 그 모든 조합이 싫었기에 평소보다 더 단호하게 가기 싫음을 표현했다. 김도훈은 평소의 신정환이라면 괜히 미안해하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을 걸 안다. 때문에 지금의 신정환의 말투와 억양에서 진짜 그 모임에 나가기 싫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너무나도 쉽게 알아챘다. 때문에 괜히 상처 가득 안고선 요즘 따라 왜 자기 지인들이랑은 안 만나주냐, 예전엔 잘만 만나지 않았냐, 형도 재밌었다 하지 않았냐 투덜대고 징징댔다.
聚会,还是在圣诞节。就是因为讨厌这所有的组合,所以比平时更加坚决地表达了不想去的意愿。金道勋知道,如果是平常的申正焕,可能会觉得不好意思,找各种借口来拒绝。因此,他很容易就从现在申正焕的语气和语调中察觉到,他是真的非常不想参加那个聚会。所以他故意带着满腹委屈抱怨道,最近为什么不愿意和自己的朋友们见面,以前不是经常见面吗,哥哥不是也说很有趣吗,一边嘟囔一边撒娇。

그런 김도훈의 반응에 신정환은 밀려오는 짜증을 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도 종일 듣는 말이 연애와 결혼인데, 주말에 보는 김도훈도 그러한 얘기를 했다. 어느 순간 그 모임에서 같이 담배 피던 누군가에게 넌 도훈이랑 3년이나 됐는데 동거 생각은 아예 없는 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땐 숨이 막혔다. 애초에 서른살도 안 된 이 나이에, 제 친구 중 이 나이에 결혼한 사람 단 한 명도 없는데 내가 뭐라고 벌써 그런 것 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었다.
面对金道勋的这种反应,申正焕努力压抑着涌上心头的烦躁。在公司里整天听到的都是关于恋爱和结婚的话题,周末见到的金道勋也在谈论这些事。当在聚会上和某个一起抽烟的人被问到"你和道勋在一起都三年了,难道完全没考虑过同居吗?"的时候,他感到窒息。本来在这还不到三十岁的年纪,他的朋友中还没有一个人在这个年龄结婚,他不明白为什么自己就要考虑这些事情。

오랫동안 쌓이고 묵은 스트레스가 이상한 순간 터졌다. 깊은 한숨 푹 내쉰 신정환은 손에 쥐고서도 한참이나 읽지 못하던 책을 내려두고선 입을 열었다.
长期积累的压力在一个奇怪的瞬间爆发了。申正焕深深地叹了口气,放下了手中拿着却许久未读的书,开口说道。


"정 누구 만나서 놀고 싶으면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 만나. 직장 얘기하고, 취미 얘기하고 그런 사람들."
"如果真的想见人玩的话,就去见普通人吧。聊聊工作,聊聊兴趣爱好,就那种人。"

"...일반적인 사람?"  "...普通人?"


김도훈이 신정환과 만나온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깨달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서서히 멀어지고 말지, 굳이 남 상처 주는 말 하거나 불필요한 언쟁 따위 안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때문에 신정환의 입에서 나온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듣자마자 그동안 내가 알던 신정환이 맞나 싶었다. 황당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헷갈렸다.
金道勋在与申正焕交往的三年时间里领悟到,即使遇到不喜欢的人,他也会慢慢疏远,而不是说些伤害他人的话或进行不必要的争论。因此,当听到申正焕口中说出"一般人"这样的表达时,金道勋不禁怀疑这是否还是自己认识的那个申正焕。他感到如此荒谬,甚至不知道该说些什么。


"내 친구들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고?"
"你是说我的朋友们不普通吗?"

"아니 도훈아,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不是的道勋啊,我的意思不是那样..."

"형, 그럼 걔들이랑 똑같은 난 뭔데?"
"哥,那和他们一样的我又算什么呢?"

"아, 진짜... 내가 실수했어 도훈아. 진짜 미안해."
"啊,真的... 我犯了个错误,道勋。真的很抱歉。"


김도훈은 어느 순간부터 제 친구들을 만나자 말하면 눈에 띄게 부담스러워하며 이런저런 핑계 대는 신정환을 보며 오랫동안 '모임'이라는 단어를 참고 살았다. 신정환은 오랫동안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 말했으나, 그 말실수는 여태껏 신정환의 눈치 보며 참고 살아온 김도훈의 노력을 비웃는 짓과 다름없었다.
金道勋从某个时候开始,每当提出要见朋友时,就会看到申正焕明显感到为难,并找各种借口推脱。他长期忍受着"聚会"这个词带来的压力。申正焕说自己因长期积累的压力而口误,但这个口误无异于嘲笑金道勋一直以来察言观色、忍耐的努力。

몰려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머쓱하게 뒷머리 긁적대며 김도훈에게 몸을 가까이 붙여왔다. 괜히 김도훈의 어깨 감싸 안고 등도 쓰다듬으며 제 품에 안았으나 김도훈은 몸을 슬쩍 틀어 피하면서 한껏 굳은 표정을 한 채 눈을 마주했다.
金道勋感到一阵愧疚和尴尬涌上心头,他不好意思地挠了挠后脑勺,身体靠近了金道勋。他无缘无故地搂住金道勋的肩膀,轻抚他的背,将他拥入怀中。然而,金道勋却微微扭身避开,表情僵硬地与他对视。


"형의 미래엔 내가 당연하게 있는 거야?"
"哥哥的未来里理所当然会有我吗?"

"...제발 좀.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게."
"...拜托。你突然说的那是什么话啊。"


신정환의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가 지금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며 경고음을 울렸다. 반대로 김도훈의 머릿속에선 참다못한 분노 세포가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뛰어다녔다.
申正焕脑中的每一个细胞都在发出警报,提醒着当前情况正变得复杂。相反,金道勋脑中的愤怒细胞再也无法忍耐,在身体的每个角落奔跑跳跃。

신정환이 싫어하는 그 모임. 그곳에서 알게 된 지인들은 하나둘 동거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겠다며 이민을 준비했고, 누군가는 친한 지인들만 초대해 파티 같은 스몰 웨딩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걸 보면 김도훈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애초에 결혼을 위한 이민이니 스몰 웨딩이니 하는 건 원하지도 않았으나, 그냥 이젠 신정환과 함께 안정적으로 같이 살고 싶었다. 누군가를 더 알아볼 필요도, 더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신정환이면 된다고 확신했으니까.
申正焕讨厌的那个聚会。在那里认识的朋友们一个接一个开始同居。有人说要结婚并准备移民,有人说正在准备只邀请亲密朋友的派对式小型婚礼。看到这些,金道勋心里变得急切起来。虽然他本来就不想要为了结婚而移民或举办小型婚礼,但现在他只是想和申正焕稳定地生活在一起。他确信不需要再认识其他人,也不需要再权衡考虑什么,只要有申正焕就足够了。

하지만 눈치 빠른 김도훈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정환은 자신과 미래 얘기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장난스레 같이 살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던져도 그에 대한 특별한 대답 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 주제를 돌리곤 했으니까. 처음엔 내 말을 못 들었나보다, 다른데 정신 팔렸었나보다 생각하고 넘겼으나 의식하고 들여다보니 그건 그냥 의도적인 무시임이었음을 알았을 때 어떠한 벽, 어쩌면 관계의 끝이라는 것도 보이는 것 같았다.
但是敏锐的金道勋早就察觉到申正焕不愿与自己讨论未来的事。即使他开玩笑地抛出"如果我们一起生活"之类的话题,申正焕也只是尴尬地笑笑,然后转移话题,没有给出特别的回应。起初,金道勋以为申正焕可能没听清或者走神了,就没在意。但当他有意识地观察时,才发现这其实是有意的忽视。那时,他似乎看到了一堵墙,或许还预示着关系的终结。


"형 있잖아 나는, 내 미래에 형이 없을까 봐 무서워. 그래서 뭐라도 어떻게든 남겨놓고 싶은 거야. 형이 평생 내 옆에 있을 거라는 증거 같은 거."
"哥,你知道吗,我害怕我的未来里没有你。所以我想以某种方式留下些什么。就像是你会永远在我身边的证明。"

"아니... 도훈아 잠시만."  "不是... 道勋啊,等一下。"

"근데 형도 알잖아. 우리는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집에다가 우리 사이 얘기도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거. 그래서 그랬던 거라고. 내 주변 사람들한테 형도 소개해주고, 또..."
"但是哥也知道的。我们是不能结婚,也不能跟家里人说我们之间的事的人。所以才那样做的。想把哥介绍给我身边的人,还有..."


사실 김도훈이 그쪽 지인 모임에 나가기 싫다 표현하는 신정환을 굳이 끌고 나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 사이를 드러낼 수 있는 지인들에게 우리 관계를 공표하기 위해서. 그러고 있으면 신정환과 나는 미래에 함께 할 관계라는 게 보증되는 것만 같았다. 일반 이성애자 커플들이 안정적으로 돈 벌면서 연애 기간 몇 년 차 접어들면 주변 지인들이 당연하게 너네 곧 결혼하겠다 하는 것 처럼, 김도훈도 누군가로부터 그러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事实上,金道勋之所以坚持带着不愿参加那边朋友聚会的申正焕出门,也是出于这个原因。为了向那些可能会发现我们关系的朋友们公开我们的关系。这样做的时候,就感觉好像申正焕和我未来一起的关系得到了保证。就像普通异性恋情侣稳定赚钱,恋爱几年后,周围的朋友们自然而然地说"你们俩应该快结婚了吧"那样,金道勋也想从某个人那里得到这样的认可。


"도훈아, 나 너랑 이런 얘기 하기 싫어."
"道勋啊,我不想和你说这种话。"

"그러니까 왜 하기 싫은 건데? 왜? 형은 우리 미래에 대해서 생각도 안 해?"
"所以你为什么不想做呢?为什么?哥哥你难道不考虑我们的未来吗?"


그놈의 결혼. 그놈의 미래. 신정환은 그냥 뭐든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두고 싶었다. 신정환의 머릿속 저 멀리서 애써 외면해오던 부담감이 해일처럼 밀려오는데 이젠 피할 곳도 없었다. 언젠가는 김도훈에게 말하려 했던 주제였으나 둘 중 하나는 상처 받을게 뻔해 흐린 눈으로 애써 눈에 안 보이는 척 하며 살았다. 그래, 이왕 김도훈이 먼저 말 꺼낸 김에 나도 말을 해야지. 어쩌면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일지도 모른다.
那该死的婚姻。那该死的未来。申正焕只想让一切顺其自然地发展。申正焕脑海深处一直刻意回避的压力如同海啸般袭来,现在已无处可逃。这本是他一直想要告诉金道勋的话题,但显然其中一人必定会受伤,所以他一直强忍着,假装视而不见。是啊,既然金道勋先开口了,我也该说点什么了。也许现在正是最合适的时机。


"난 결혼이고 뭐고 복잡한 거 싫어. 증거? 굳이 우리 사이에 증거라는 게 있어야 해? 그냥 이렇게 지내다 보면 우린 평생 함께 있는 거야 도훈아. 우리 지금도 사이 좋고, 앞으로도 문제 없을 거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我不喜欢结婚啊什么的复杂的事。证据?我们之间真的需要什么证据吗?就这样一直在一起,我们就能永远在一起了,道勋。我们现在关系很好,以后也不会有问题的。你不也是这么想的吗?"


우리 사이를 공표하지 않아도, 하지도 못할 결혼 같은 거 약속하지 않아도 우리는 견고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약속들에 묶여야만 더욱 돈독해지는 관계라면 다 떨어져 가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 붙이는 것과 다름 없다 생각했다.
即使我们不公开我们的关系,即使我们不承诺无法实现的婚姻,我们依然坚固,将来也会如此。我认为,如果一段关系需要被这些承诺束缚才能变得更加亲密,那与勉强维系一段正在瓦解的关系没什么两样。

신정환의 말을 들은 김도훈은 한참동안 아랫입술을 꾹 물고있다 이내 신정환의 말이 맞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신정환의 말이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听了申正焕的话,金道勋咬着下唇沉思了好一会儿,然后慢慢地点了点头,似乎认同了申正焕的说法。他刚想开口说些什么,但申正焕的话比他更快一步。


"그럼 된 거야. 그냥 이렇게... 우리 둘만 있자 도훈아, 응?"
"那就这样吧。就这样...只有我们两个人在一起,好吗,道勋?"


그렇게 말하며 저를 바라보는 신정환의 눈빛이 너무나도 절망적이어서, 동시에 너무나도 간절해서 김도훈은 어렵게 내뱉으려던 어떠한 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삼켜진 말은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버려졌다.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신정환이 종종 그러한 눈빛을 보일 때 마다 김도훈은 약해졌다. 때문에 또다시 신정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팔을 뻗어 신정환을 끌어안고야 만다.
申正焕用那样绝望又恳切的眼神看着我,金道勋不得不将到嘴边的话咽了回去。那些未说出口的话被埋藏在内心深处。平时不善表露内心的申正焕每当露出这种眼神时,金道勋就会变得软弱。因此,他再次缓缓点头回应申正焕的话,伸出双臂将申正焕紧紧抱住。

신정환을 제 곁에 두기까지 너무나도 힘들었다. 언젠가는 신정환이 제 마음 알아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던 때가 있었음을 떠올린다. 함께한 3년 남짓한 시간에 자연스레 무뎌지기 시작한 신정환에 대한 소중함을 잃지 말자, 처음 신정환에게 좋아한다 말했을 때 다짐했던 것들을 잊지 말자, 그렇게 스스로를 마구 다독여야만 했다. 그냥 그래야만 견뎌질 것 같아서.
要把申正焕留在我身边是如此艰难。我回想起曾经有一段时间,仅仅是申正焕理解我的心意这一点,就让我感觉拥有了整个世界。在一起度过的三年多时间里,我不得不不断提醒自己:不要失去对申正焕逐渐变得平淡的珍贵感,不要忘记当初向申正焕表白时的那些承诺。我必须这样不断地安慰自己。因为只有这样,我才觉得能够坚持下去。





그 날 이후 김도훈은 결혼, 동거, 미래에 대한 약속 따위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那天之后,金道勋对于结婚、同居、未来的承诺之类的事情闭口不谈。

그냥 신정환이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쳐도 대체 그게 뭐냐며 오버해가면서 웃어주고, 회사에서 보고 들은 온갖 썰과 인터넷에서 본 영양가 없는 것들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었다. 또 자주 신정환의 손을 잡고, 끌어안고, 품에 파고들어 가만히 안겼다. 김도훈은 그런 제 꼴이 마치 누구 하나 달아나지 않게 처절하게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느꼈다.
即使申正焕讲了一些并不好笑的笑话,他也会夸张地笑着说"这到底是什么啊",还会喋喋不休地谈论公司里听到的各种八卦和在网上看到的无营养的东西。他还经常牵着申正焕的手,拥抱他,钻进他的怀里静静地依偎着。金道勋觉得自己这副模样就像是在拼命地抓住某个人,生怕他逃走。

반대로 신정환은 그저 그날의 해프닝 이후 우리가 더욱 돈독해졌다 생각했다. 저 뿐만 아니라 김도훈도 미래에 대한 온갖 억압들에게서 벗어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근 이상하리만치 자주 김도훈이 제 몸을 가깝게 붙여오는 것이, 그 흔해 빠진 다툼 하나 없이 너무나도 평온한 하루하루가 그 증거라 생각하며 제 품에 가만히 안겨있는 김도훈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드러난 이마에 입맞췄다.
相反,申正焕只是认为那天的意外之后我们变得更加亲密了。他坚信不疑,不仅是我,金道勋也摆脱了对未来的各种压力。最近金道勋异常频繁地靠近他的身体,没有那些司空见惯的争吵,每一天都如此平静,这些都是证明。他轻轻抚摸着依偎在自己怀中的金道勋的头发,在他裸露的额头上轻吻。





***






"형,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哥,我们以后别再见面了。"


화려하게 장식된 조형물과 나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조용히 내리기 시작한 흰 눈은 함박눈이 되지 못하고 진눈깨비가 돼 밤거리를 축축하게 적셨다. 둘은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주말 데이트를 했다. 추위 잘 타는 김도훈을 위해 따뜻한 음식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이 당기지 않아 카페에 들렀다.
在圣诞节前夕的某一天,华丽的装饰品和树木开始引人注目,悄然落下的白雪未能变成鹅毛大雪,反而成了雨夹雪,湿润了夜晚的街道。两人像往常一样度过了周末约会。为了怕冷的金道勋,他们吃了暖和的食物,看了电影,因为不想喝酒就去了咖啡馆。

다툼 하나 없었던 주말 데이트 잘 끝내고 김도훈을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나란히 걸었다. 신정환은 올해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확률이 높다더라 말했고, 그런 신정환에게 김도훈은 이별을 고했다.
度过了一个没有争吵的周末约会后,他们并肩走着,准备送金道勋回家。申正焕说今年圣诞节很可能会是个白色圣诞节,而金道勋则向这样的申正焕提出了分手。

늦은 시간과 궂은 날씨에 밤거리에 사람도 없어 오랜만에 김도훈의 손을 꼭 잡고 걷던 신정환은 걸음을 멈추곤 이별을 말하는 김도훈을 돌아본다. 이별을 말하는 사람 치곤 김도훈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尽管时间已晚,天气恶劣,街上空无一人,申正焕难得地紧握着金道勋的手一起散步。突然,他停下脚步,转身看向提出分手的金道勋。对于一个提出分手的人来说,金道勋的表情显得异常平静。


"도훈아, 너 갑자기 그게 무슨... 장난이지?"
"道勋啊,你突然这是什么... 开玩笑吧?"


때문에 신정환은 지금 김도훈이 이별 상황극을 빙자한 농담이라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은 장난으로라도 하는 거 아냐. 애정 담긴 핀잔을 건넸지만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선 멈춰 서 있는 김도훈의 반응에 신정환의 얼굴에 담겨있던 웃음기가 차게 식었다.
因此申正焕现在认为金道勋是在借分手情景剧开玩笑,于是勉强笑了笑。不管怎样,这种话即使是开玩笑也不该说。他带着爱意责备道,但看到金道勋仍然面无表情地站在那里,申正焕脸上的笑意瞬间冷却了。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함박눈은 아니어도 눈 내리는 늦은 겨울밤의 거리. 김도훈은 헤어지기에 이보다 더 최적의 장소가 있으려나 생각했다.
在这个行人稀少的深夜街头,虽然不是鹅毛大雪,但也飘着细雪的冬末夜晚。金道勋心想,还有比这更适合分手的地方吗?


"너 설마... 혹시 모임 때문에 그래? 아니면 동거?"
"你该不会是... 因为聚会的事吧?还是因为同居?"

"...미안해 형. 우리 그냥 각자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살자."
"...对不起哥哥。我们还是各自回到原来的地方,按自己想要的方式生活吧。"

"아니, 너 그날 이후로 아무 말도 안 했었잖아. 너도 동의한 거 아냐?"
"不是,那天之后你什么都没说啊。你不也同意了吗?"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지."
"不是不做,而是做不到。"


형이 싫어했으니까. 김도훈은 그 말을 덧붙이고선 쓰게 웃었다.
因为哥哥讨厌。金道勋补充道,然后苦笑了一下。

신정환과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순전히 제 욕심 같았다. 신정환이 싫어하는 그 모임부터 시작해 동거니 뭐니 하는 것들도. 신정환의 입장 빌려 표현하자면 제가 굳이,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걸 요구한 순간부터 이 관계는 이미 종지부를 찍은 것과 다름없다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는 상대를 질질 끌어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해온 건 아직 신정환을 사랑한다는 감정 하나밖에 없었으니 끝나는 건 그저 시간문제다. 그러니 더 깊어지기 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다.
我觉得维持与申正焕的这段关系纯粹是出于我的私心。从他不喜欢的那个聚会开始,到同居之类的事情。用申正焕的立场来说,从我提出那些当下并不必要的要求的那一刻起,这段关系就已经画上了句号。我认为,一直拖着一个不能给予未来确定性的人维持关系到现在,仅仅是因为还爱着申正焕这一个理由,所以结束只是时间问题。因此,我得出结论,在关系变得更深之前尽快结束才是正确的。

그와 반대로 신정환은 이윽고 찾아온 평화로운 둘의 관계에서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는 김도훈이 이해 되지 않았다. 분명 이별을 고하려면 그 전 여러 가지 신호들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최근 김도훈은 자주 웃었고, 며칠 전까지 크리스마스엔 사람이 많으니 맛있는 거 사서 집에서 데이트를 하고, 내년 초엔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자 약속하며 같이 근교 여행지를 알아봤다. 그러니까 신정환의 눈에 김도훈은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는 거다.
与之相反,申正焕无法理解金道勋在他们关系变得平和之后突然提出分手。通常分手之前应该会有各种预兆。但最近金道勋经常笑,几天前还说圣诞节人多,不如买些好吃的在家约会,还约定明年初要一起短途旅行,甚至一起查找了附近的旅游景点。所以在申正焕看来,金道勋完全不像是在准备分手的人。

동시에 김도훈에 대한 감정이 더욱 깊어지는 이즈음에 왜 헤어져야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데이트 잘 하고선, 분명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제 품에서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하고선 헤어짐을 통보하는 건 이해의 범위를 넘어 일종의 배신에 가깝다고.
与此同时,对金道勋的感情越来越深,却不明白为什么要分手。今天还若无其事地约会,明明前几天还在自己怀里说着爱你喜欢你,却突然宣布分手,这已经超出了理解的范畴,近乎于一种背叛。


"그냥 우리 가치관이 안 맞는 것 같아."
"我觉得我们的价值观似乎不太合得来。"


그 말을 내뱉는 김도훈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고 말투는 덤덤했다. 신정환은 거기서 김도훈이 말하는 이별이라는 건 충동적으로 내뱉은 게 아니라 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며 마음을 정리해왔음을 알아챘다. 신정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고, 꽉 붙잡고 있던 김도훈의 손을 놨다.
金道勋说出这句话时,表情依然平静,语气也很平淡。申正焕从中意识到,金道勋所说的分手并非一时冲动,而是经过长时间的思考和纠结,最终整理好了自己的心情。申正焕的表情冷冷地僵住了,松开了紧握着金道勋的手。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김도훈 네 아집 때문에 헤어지는 거야."
"这不是因为价值观的问题,而是因为你的固执,金道勋。"

"...뭐라고?"  "...什么?"

"너는 네 미래만 생각하고 내 생각은 전혀 안 하지?"
"你只考虑你自己的未来,完全不考虑我吗?"


관계의 끝까지 치달아서도 신정환이 내뱉은 모든 말이 전부 상처로 남았다. 조금만 돈 더 모으면 집 알아보자. 도훈이 너랑 같이 살면 재밌겠다. 연애하는 사이에 너무나도 흔해 빠진 말조차 해주지 않는 신정환에게선 김도훈이 바라던 안정적인 미래라는 걸 꿈 꿀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건 김도훈 네 아집이라는, 너는 네 생각만 한다는, 그러니까 결국 그 모든 건 네 욕심이라는 말에 뭐라 할 말도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기보단 의욕을 잃은 것에 가까웠다. 
即使在关系的尽头,申正焕说的每一句话都成了伤痕。再攒点钱就去找房子吧。和道勋一起住肯定很有意思。申正焕连恋爱中最平常的话都不愿说,金道勋无法从他那里梦想一个稳定的未来。尽管如此,面对"这是你的固执"、"你只考虑自己"、"所以这一切都是你的欲望"这样的话,金道勋也无言以对。与其说是无话可说,不如说是失去了动力。

진눈깨비는 쌓이지 못하고 먼지와 모래에 녹아 진창이 된다. 김도훈은 어느새 진창이 된 제 발아래를 바라보며 내 마음과 다를 바 없다 생각했다.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정환은 우리 차라리 생각 할 시간을 가져보자며 애원하지도,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냐며 화를 내지도 않았다. 한참을 말 없이 있다 그저 미련 없이 등 돌려 마침 대기 중이던 택시를 잡아타고선 떠났다.
雨夹雪无法积聚,融化在尘土和沙砾中变成了泥浆。金道勋望着不知何时已变成泥浆的脚下,心想这和我的心情没什么两样。一直默默注视着他的申正焕既没有恳求说不如我们花点时间好好想想,也没有发火说到底要谈这种话题到什么时候。沉默良久后,他只是毫无留恋地转身离开,拦下了正在等候的出租车就走了。

김도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신정환 앞에서 꾹 눌러 참던 눈물을 쏟아냈다. 혹시나 해서 늦은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다음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신정환에게서 오는 연락은 없었다. 
金道勋一进家门就扑倒在床上,在申正焕面前一直强忍的眼泪终于倾泻而出。他抱着一丝希望等到深夜,但第二天,甚至第三天,都没有收到申正焕的任何联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