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보다 못하구나 역시." "果然连狗都不如。"
의자를 뒤로 젖혀 쉬고 있던 刘知珉이 겨우 눈을 뜨고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12시 32분. 아직 점심시간이었다. 불청객을 마주치지 않으려면 진작 문을 걸어뒀어야 했는데. 대꾸할 힘도 없어 반대쪽으로 의자를 돌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목이 아프다 싶더니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결국 열까지 올라왔다. 급한대로 책상을 뒤져서 겨우 찾은 해열제를 먹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몸은 축축 늘어졌다. 잠을 좀 자면 나아질까 싶어서 점심을 거르고 사무실에 남아 있던 건데 어떻게 알고 불쑥 나타났는지.
刘知珉靠在后仰的椅子上休息,勉强睁开眼睛看了看手表。12 点 32 分。还是午餐时间。早该锁门以免遇到不速之客的。她连回应的力气都没有,转动椅子背向对方,重新闭上眼睛。从早上起床就觉得喉咙痛,工作时体温又开始升高。翻遍抽屉好不容易找到退烧药吃了,但不知为何身体还是软绵绵的。本以为睡一会儿会好些,所以放弃午餐留在办公室,没想到她是怎么知道的就突然出现了。
"구내 내려갔는데 너희 수사관님이랑 계장님만 보이잖아. 그래서 유 프로 오늘 출근 안 했냐고 물어봤는데, 아까부터 콜록거리기다가 뻗었다나 뭐라나. 혼자서 궁상 떨 게 뻔해 와봤더니 역시나네요. 감기 옮기지 말고 그냥 싸게싸게 조퇴하세요. 이 갸륵한 선배의 마음을…듣고 있니?"
"我去食堂的时候只看到你们调查官和科长。问了问刘组长今天是不是没来上班,她们说从早上开始就一直咳嗽,现在趴那儿了。就知道你肯定一个人在这儿受罪,果然没错。别传染感冒给别人了,干脆请假回家吧。我这个善解人意的前辈的一片心意…你有在听吗?"
듣고 있을 것도 없었다. 정말 쉬고 싶었다. 지금은 그래야만 한다. 당장 한시간 뒤에는 참고인 조사가 있었고, 조사를 마친 뒤에는 자료를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오늘 중으로 부장에게 검토 받아야 했다. 한가롭게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이 없었다. 刘知珉은 뜨거운 숨을 뱉어내며 눈가에 팔을 올렸다.
根本无心听下去。真的很想休息。现在必须得这样。一个小时后还有证人调查,调查结束后还要根据资料制作报告,今天之内还得交给部长审阅。根本没时间悠闲地说笑。刘知珉深深地叹了口气,用手臂遮住了眼睛。
"살다보면 삐끗하는 날도 있고 그런 거지. 재판 진 게 대수냐. 어차피 항소했다며, 그거 준비 잘하면 되는 거야. 비슷한 판례 몇 개 찾아뒀는데 메신저로 보내줄게."
人生总会有失足的时候。输了官司又算得了什么。反正不是已经上诉了吗,好好准备就行了。我找到了几个类似的判例,一会儿用 messenger 发给你。
"…선배." "……前辈。"
"왜요." "为什么。"
"…나 하루만 재워주라." …让我睡一天就好。
"…뭐세요?" "……什么事?"
의자가 빙글거리며 돌아갔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참을 새도 없이 앓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갔다. 刘知珉이 허벅지에 떨어진 팔을 겨우 들어올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椅子转了一圈。即使是这样小的动作也让她头痛欲裂。忍不住发出呻吟声。刘知珉勉强抬起搭在大腿上的手,用手掌擦了擦脸。
"너 진짜 무슨 일 있니? 설마 애인이랑 헤어졌어?"
"你到底怎么了?该不会是和恋人分手了吧?"
"선배 말대로 옮길까봐 그래요…" "像前辈说的那样可能会传染……"
"뭐를? 재수?" "什么?重考?"
"감기요 이 사람아." "是感冒啊,这个人。"
"그거랑 외박이랑 무슨 상관…동거해 너?!"
"那个跟外宿有什么关系...你们在同居吗?!"
제발 목소리 좀. 말을 끝마치지 못한 刘知珉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해열제를 먹었는데 아직까지도 온 몸이 뜨끈뜨끈했다. 刘知珉이 머릿속을 헤집어 단어를 고르다 가까스로 그럴듯한 변명을 꺼내뒀다.
声音小点好吗。刘知珉还没说完话就皱着眉头揉了揉额头。虽然吃了退烧药,但全身还是热乎乎的。刘知珉绞尽脑汁地挑选着词语,好不容易才想出了一个像样的借口。
"뭐래…집에 유지현 와 있어서 그래요."
"什么啊...因为柳智贤在家。"
"유지현이 누구…친언니?" 维智贤是谁...亲姐姐?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她随意地点点头,顺手将滑落的头发拨到耳后。
"아픈 거 알면 입원해야 된다면서 유난 부린단 말이야…"
明明知道生病就该住院,还说我小题大做...
"그러면 나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는 것 같다만."
"那么我觉得应该把我送回家。"
"빈 손으로 안 가요." "不会空手而归。"
"한우?" "韩牛?"
"카드 줄 테니까 알아서 하시고."
"我给你卡,你自己看着办吧。"
"야 知珉아." "喂,知珉啊。"
"뭐요 또." "又怎么了。"
"전화 와." 打电话来。
"스팸이에요." 是垃圾电话。
"유진인데?" 是有真啊?
"그것도 스팸이에요." "那也是垃圾信息。"
"너는 스팸을 굳이 저장까지 해놓으세요?"
"你还特意把垃圾信息保存起来吗?"
"그래야 안 받지." "这样才能不接收啊。"
刘知珉은 홀드버튼을 누른 핸드폰을 구석으로 던져두고 옆에 있던 약통을 집어들었다. 비타민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냐. 여자가 못마땅하다는듯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잠을 잘 자는 것도 아니고,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최근에는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몸을 굴렸다. 때마침 金旼炡도 스케줄로 인해 집을 자주 비웠다. 틈이 나는 대로 주고 받던 연락도 부쩍 줄어들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따금씩은 답장을 보내놓고도 한동안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두지 못했다.
刘知珉把按了锁屏键的手机扔到角落,拿起旁边的药瓶。维生素又不是万能药。她不满地咂嘴摇头。这一点倒是无可否认。但她既不能好好睡觉,也不能按时吃饭,更不运动。最近几乎是一副破罐子破摔的样子。恰巧金旼炡也因为日程安排经常不在家。原本一有空就互相联系的习惯也明显减少了。以至于有时发完回复后,也会好一阵子放不下手机。
딱히 기다리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속으로 몇 번씩 문자를 곱씹어 봤다. 그러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딴청 부리지 않은 척 서류에 의미 없는 밑줄만 벅벅 그었다. 밀어내지 말라고 했으니 집으로 찾아오는 金旼炡에게 사소한 참견을 얹을 수는 없었다. 꽤나 번잡스러운 동선이 신경 쓰여도 딱 거기까지였다. 이렇게라도 얼굴을 봐야 되겠다는 金旼炡을 앞에 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자리를 내어주고, 팔베개를 해주고,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는 것 뿐이었으니.
虽然并不是特意在等什么,但还是没来由地在心里反复咀嚼着短信内容。一旦感觉到有人来,就装作没有走神的样子,在文件上毫无意义地划着重点。既然说了不要推开,就不能对来家里找自己的金旼炡说些琐碎的抱怨。虽然她那繁忙的行程让人担心,但也仅止于此。面对着说着必须要这样才能见到面的金旼炡,自己能做的就只有让出身边的位置,让她枕着自己的手臂,轻拍她的背直到听见她平稳的呼吸声。
본의 아니게 들켜버린 것들이 많았다. 한유진의 존재, 한유진과 차석현의 관계, 한유진에 대한 미련까지. 그러니 지금은 아픈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적어도 金旼炡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도 뻔하기만 했고, 그것이 아주 틀리다 할 수도 없었다. 刘知珉은 맥없이 숨을 고르다 이마 위에 팔을 올렸다.
无意中暴露了许多事情。韩宥真的存在,韩宥真与车锡铉的关系,以及对韩宥真的留恋。所以现在不能表现出脆弱的一面。至少在金旼炡面前不想这样。感觉不应该这样。她会怎么想实在太明显了,而且这种想法也不能说完全是错的。刘知珉无力地调整着呼吸,将手臂搭在额头上。
"진짜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거야?"
"你真的要在我家过夜吗?"
"기왕이면 운전도 해주실래요." "既然如此不如也帮我开车吧。"
"아무렴요, 너한테 맡겼다가는 퇴근길이 황천길이 되겠지."
"当然了,把这个交给你的话,下班路上就得去见阎王了。"
"의외로 좋은 선배네요." "意外是个很好的前辈呢。"
"반하지마라. 임자 있는 사람이니까." "别爱上我。我已经有主了。"
"정말로 결혼할 거에요?" 你真的要结婚吗?
여자는 정수기 옆 서랍을 뒤적여 메밀차과 간식을 각각 꺼내들었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아 가지고 와서는 포장지에서 꺼낸 티백을 그 안에 넣어뒀다. 저거 金旼炡이 준 건데. 입 밖으로 꺼내둘 수 없는 말은 한숨과 함께 삼켜두고 건네는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리기만 했다.
女人在饮水机旁的抽屉里翻找,拿出荞麦茶和零食。她接了热水倒进纸杯里,把从包装纸里取出的茶包放进去。那是金旼炡给的东西。她把那些无法说出口的话随着叹息一起咽下,递出纸杯。头还是一直在痛。
"나이가 나이잖아." 年龄该是年龄嘛。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쿠키를 밀어주는 척한다.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예의상 저러는 거였다. 아픈 와중에도 뻗대고 싶은 심보가 불쑥 튀어 올라 刘知珉이 여자의 손에 들린 과자를 가져가 단번에 먹어치웠다. 거친 모래를 씹어 삼긴 것처럼 입 안이 까끌거렸다.
漫不经心地应答着假装推过去曲奇。明明知道她不喜欢甜食,这不过是出于礼貌罢了。即使在生病时,那股想要逞强的心思也突然冒了出来,刘知珉拿过女人手中的点心一口气吃完。就像嚼着粗糙的沙子一样,口中感到一阵粗糙。
"선배." 前辈
"뭐요." "什么事。"
"청첩장은 언제 돌릴 거에요." 「请柬什么时候发?」
"우린 아직 상견례도 안 했는데요."
「我们还没见过双方父母呢。」
"그거 나왔으면 끝났다고 봐야겠네요." "那个出来的话就算结束了吧。"
"…너 혹시 예전에 바람 어쩌구한 거 설마"
"...你该不会是之前说的什么出轨的事吧"
"첫사랑한테는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돼요?"
"给初恋的份子钱要给多少合适?"
"예? 누구요?" "啊?你是谁?"
"헛소리에요. 그냥 흘려들어요." 胡说八道。别理会。
대충 손을 휘적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핑 돌았다.가까스로 책상을 짚고 버티어 섰다. 여자는 그런 刘知珉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물 떠다 줘? 딱히 갈증이 나지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서글펐던 것도 같다. 이런 얘기를 터놓을 사람이 고작해야 직장 선배가 전부라니. 그게 아니면 저 영감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刘知珉은 인상을 찌푸린채 왼손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종이컵을 내려두는 여자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她随意地摆了摆手,从椅子上站起来。一瞬间周围天旋地转。她勉强扶着桌子站稳。女人抬头看着这样的刘知珉,小心翼翼地问道:"要我给你倒水吗?"虽然并不觉得口渴,但她还是点了点头。似乎有些凄凉。能敞开心扉倾诉的人,居然只有职场前辈而已。要不然就该庆幸还有那位老爷子在吗?刘知珉皱着眉头,用左手用力按压着额头。放下纸杯的女人脸上满是担忧。
"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 "不去医院看看没问题吗?"
"약 먹고 쉬면 금방 나아요."
吃点药休息一下很快就会好的。
"첫사랑 얘기는 또 뭔데." "初恋的故事又是怎么回事。"
"말한 그대로에요." 就像我说的那样。
그리고는 컵에 든 것을 곧장 비워냈다. 나름 신경써서 미지근한 물을 떠다준 걸 텐데 몸이 뜨거워서 그런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한 손으로 종이컵을 구겨 책상 아래 휴지통에 던져두고 흐트러진 서류를 모아 구석으로 치워뒀다. 여자는 그런 刘知珉을 지켜보다 책상 정리를 거들었다. 첫사랑 결혼한대냐. 넌지시 묻는 폼은 그다지 조심스럽지 않았다.
随后一饮而尽杯中的水。虽然她特意倒来了温水,但或许是因为身体发烧的缘故,水流过食道的感觉并不怎么好受。她用一只手捏扁纸杯扔进桌下的垃圾桶,然后收拾起散乱的文件堆放到角落。女人看着刘知珉的动作,帮忙整理起桌面。初恋要结婚了?她试探性地问道,语气并不那么小心翼翼。
모니터 아래에 있던 피규어는 자취를 감추었다. 키보드 밑의 손목보호대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이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데스크 캘린더 안에 넣어뒀던 사진도 파쇄기에 갈아버렸으니. 적어도 사무실 안에서는 한유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진즉 바꿨어야 할 취향이었다. 애저녁에 버렸어야 할 미련이었다. 텅 빈 책상을 살펴보던 刘知珉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점심시간도 10분 밖에 남지 않았다.
显示器下面的手办已经消失不见了。键盘下的护腕垫也是如此。周末结束后一上班就把放在桌面日历里的照片丢进了碎纸机。至少在办公室里,再也找不到韩宥真的痕迹了。这些喜好早该改变了。这份念想早该舍弃了。刘知珉看着空荡荡的桌子,将头发往后捋了捋,看了眼墙上的时钟。不知不觉间,午休时间只剩下 10 分钟了。
"6시에 바로 퇴근할 거니까 느작거리지마."
"我六点钟就下班了,别磨磨蹭蹭的。"
"여부가 있겠나요." "哪有拒绝的余地。"
"야 그런데 나는 뭐 감기 옮아도 되냐?"
"喂,那我要是感冒传染给你也没关系吗?"
"갈 때 소독제도 살거에요." "走的时候会买消毒剂的。"
"이거 상태가 심상치 않다 싶으면 바로 119 부를 거니까 그렇게 알아."
"如果感觉情况不对劲的话我会立刻叫 119 急救,你给我记住。"
"유난이라니까 이 쪽도…" "你太夸张了..."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잊지 않고 서랍에서 과자를 챙겨든다. 刘知珉은 딱하다는 듯 여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젓고 핸드폰 화면을 건드렸다.
走向门口时也不忘从抽屉里拿上零食。刘知珉略带同情地看着女人,摇了摇头,碰了碰手机屏幕。
"선배." 前辈
"쿠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쪼잔하게."
"那点饼干值几个钱,真是小气。"
궁시렁거리던 여자가 주머니에 넣어뒀던 과자를 꺼내 다시 서랍 안에 넣어뒀다.
嘟囔着的女人把口袋里的零食拿出来,重新放进抽屉里。
"도 검사님이랑 싸운 걸로 합시다."
"就当是和检察官大人吵架了吧。"
"야 니가 애인이랑 사이 안 좋은 걸 왜 우리까지,"
"嘿,你和恋人关系不好干嘛要连累我们,"
"나는 취한 선배 집에 데려다 주다가 시간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자고 가는 걸로."
"我只是送醉酒的前辈回家,因为太晚了不得不留宿过夜而已。"
"누가 법조인 아니랄까봐 알리바이부터 확보해두는 거 봐라."
"不愧是法律人,先给自己找个不在场证明。"
이번에는 티백을 한손 가득 움켜쥐고 서랍을 닫는 것이었다. 刘知珉은 야트막한 헛웃음을 터트리며 안경을 바로 썼다. 흐릿했던 시야가 불필요할 만큼 선명해졌는데도 어지럼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히는 문을 쳐다보던 刘知珉이 탁한 숨을 뱉어냈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감기는 아닌 모양인지 타이레놀을 먹어도 좀처럼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은 외박을 하는 게 맞다. 분명 金旼炡은 열 일 제쳐두고 병간호를 하려 들 터였다. 본인부터 챙겼으면 좋으련만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대책 없고 무모하게 굴었다.
这次她一手抓满了茶包,关上抽屉。刘知珉轻笑一声,扶正眼镜。虽然模糊的视野变得不必要地清晰,但头晕的感觉却迟迟不退。望着伴随咔嗒声紧紧关闭的门,刘知珉发出一声浊气。看来这不是短暂的感冒,即使吃了泰诺,发烧的症状也不见好转。所以今天还是住外面比较好。金旼炡肯定会放下一切来照顾自己。要是她能先照顾好自己就好了,有时候她的行为真的让人觉得太不顾后果,太鲁莽了。
요즘은 그런 金旼炡이 고맙다기 보다는 걱정이 됐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매 순간마다 진심을 쏟아 부어버리는데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되돌려 받지 못할 마음이라는 건 본인도 모를 리 없었다. 언젠가는 분명히 정리해야만 하는 관계임을, 金旼炡 또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저와는 달리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었다. 재미로 시작한 만남은 딱 그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버려지는 건 刘知珉이다. 그건 당연하면서도 익숙한 결과였다. 이미 겪어 봤는데 두 번이야 어려울까 싶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우선순위가 지극히 확실했으니, 불청객은 때가 되면 사라져야 마땅하다. 바람이란 그런 거다. 오래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게 순리였다. 그래야 누구든 다치지 않는다.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다. 흔들리는 건 잠깐이다. 刘知珉은 창밖을 내다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게, 맞는 거다.
最近与其说金旼炡让人感激,倒不如说让人担心。每时每刻都不经思考就倾注真心,真不知道最后还能剩下什么。她自己也一定明白这份感情是得不到回报的。这段终将需要了断的关系,金旼炡也一定记得。必须如此。她和自己不同,是有归处的人。玩笑般开始的邂逅就该到此为止。被抛弃的人是刘知珉。这是理所当然且熟悉的结局。既然已经经历过一次,第二次应该不会太难。更何况这次的优先顺序再明确不过,不速之客就该在适当的时候消失。风就是这样的东西。不会久留,轻轻掠过才是常理。这样谁都不会受伤。不会痛,不会留下伤痕。动摇也只是一时的事。刘知珉望着窗外,无力地喃喃自语。这样,才是对的。
주인이 부재중인 집에 혼자 머무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침실 문고리를 잡아 돌린 金旼炡은 깜깜한 안을 살펴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거실이고 부엌이고 괜히 기웃거렸지만 인기척이라고는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들어 소파로 돌아왔다. 습관처럼 리모컨을 집어들고 티비부터 켰다. 적막한 공간에 금방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찼다. 볼륨을 최대한으로 줄인 다음에는 자세를 고치며 쿠션을 끌어안았다.
独自待在主人不在的房子里也不是第一次了。金旼炡握住卧室门把手转动,打量着一片漆黑的室内后又转身离开。客厅也好厨房也罢,虽然她东张西望,但连一丝人气都找不到。从冰箱里拿出一瓶矿泉水后回到沙发。像习惯一样拿起遥控器先打开电视。寂静的空间里很快充满了人声。把音量调到最低后,她调整了姿势抱住靠垫。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은 어느덧 제법 굵어졌다. 택시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부슬비였는데, 밤새 한바탕 크게 쏟아질 모양인지 내리붓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늦게까지 야근한 뒤에 운전해서 올 것을 생각하면 지검 근처에 있다던 선배의 집에서 자고 오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간만에 촬영이 딜레이 없이 제시간에 끝나 자정 전에 들어왔지만 아무튼, 배우들끼리 술 한잔 하자는 제안도 거절하고 온 거지만 어쨌든.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자는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눈에 담고 싶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도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拍打窗户的雨滴不知何时变得沉重起来。坐出租车回来时还只是毛毛细雨,但看这来势汹汹的样子,怕是要下上一整晚。或许该说这反而是件好事。想到加班到这么晚还要开车回家,倒不如在那位据说住在检察厅附近的前辈家借宿一晚。虽然难得拍摄没有延误按时结束,得以在午夜前回到家,虽然也婉拒了演员们一起喝一杯的邀约。在去地方之前,本想再多看一眼她熟睡的脸庞,但最近连这样的愿望都很难实现。
방송국의 편성 문제로 인해 첫방이 앞당겨진 만큼 현장 스케줄은 배로 빡빡해졌다. 감독은 여름이라 해가 길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동 트자마자 일단 카메라부터 돌렸다. 덕분에 스탭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퇴근 또한 점차 희미해져갔다. 일단 출근했다하면 각자 분량을 한꺼번에 몰아서 찍느라 차 안에서 쪽잠 자며 대기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연을 맡은 金旼炡 역시 그에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바빴다. 실은 바쁘다라는 단어에 채 담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눈 깜짝할 새에 오늘이 끝났고, 또 잠깐 숨을 돌리면 내일이 찾아왔다. 끼니를 거르는 건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잠을 푹 못 자는 것도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由于电视台编排问题导致首播提前,现场拍摄日程变得更加紧张。导演为了最大限度地利用夏季日照时间长的优势,天一亮就开始开机拍摄。因此,不仅工作人员,演员们的下班时间也变得越来越模糊。一旦到了片场,为了一次性拍完各自的戏份,在车里小憩等待的时间也在不断增加。饰演主角的金旼炡也不例外。很忙,事实上"忙碌"这个词都无法完全形容每天疯狂流逝的时光。转眼间今天就结束了,刚喘口气明天又来了。错过饭点倒也不是什么大事。睡眠不足也还能凑合着撑过去。
"…보고 싶은데." "…好想见你。"
그러나 이것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金旼炡은 너덜너덜해진 대본집을 허벅지에 내려두고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이제는 아주 어색하지 않은 그 이름과 주고 받았던 문자를 속으로 찬찬히 읽어봤다.
但这一点她怎么也适应不了。金旼炡将破旧不堪的剧本放在大腿上,解开了手机锁屏。她默默地仔细阅读着那个现在已经不那么陌生的名字,以及她们之间的短信往来。
검사님 오늘도 야근해요? 조금 할 것 같아요. 저는 9시면 집에 들어갈 것 같아요. 아 그래요 푹 쉬어요. 언제쯤 와요 검사님은? 저번에 식당에서 저랑 같이 왔던 사람 혹시 기억해요? 옆방 선배님이요? 남자친구랑 다퉈서 속상하다고 술을 좀 많이 마실 것 같아요. 검사님도요? 술동무는 해주려고요. 제가 이래저래 신세 진 게 많아서요. 많이 늦어요? 자고 갈 수도 있어요 그 선배 집에서. 왜요? 지검이랑 가깝기도 하고, 저도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오늘 못한 거 마무리하려고요. 그렇구나. 미안해요 기다리지마요. 아니에요 저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런데 술은 적당히 마셔요.
检察官今天也要加班吗?可能会加一会儿。我大概 9 点就回家了。啊是吗,好好休息。检察官什么时候回来?还记得之前跟我一起去餐厅的那个人吗?隔壁办公室的前辈吗?她因为和男朋友吵架心情不好,可能会喝很多酒。检察官也去吗?我是想去陪她喝酒。因为我在很多方面受过她的照顾。会很晚吗?可能会在前辈家留宿。为什么?因为离检察厅也近,而且我明早也想早点来上班把今天没做完的工作处理完。这样啊。抱歉,请不要等我。没关系,不用担心我,不过喝酒的时候要适度啊。
읽음 표시 옆에 붙어 있는 숫자를 확인했다. 18: 28 그 아래로 덧붙여진 말풍선은 없었다. 엄지로 화면을 쓸어보다가 고개를 뒤로 젖혀 새하얀 천장을 올려다봤다.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金旼炡이 마른세수하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핸드폰을 쥔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다 잠금화면 상단에 박힌 숫자를 중얼거렸다. 아홉시 십칠분.
她确认了已读标记旁边的数字。18:28。下面没有回复的气泡。用拇指滑动屏幕,然后仰头望向雪白的天花板。说不累是假的,但现在这不是最重要的。金旼炡深吸一口气,用手掌擦了擦脸,像是在洗把脸一样,抬起拿着手机的手。然后喃喃着锁屏界面上方显示的数字。九点十七分。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자 금방 자판이 떠올랐다. 金旼炡은 더듬거리며 자음과 모음을 순차적으로 누르다갸 핸드폰 하단부분을 위로 밀었다. 즐겨찾기에 저장된 이름을 빤히 바라보더니 엄지를 옮겼다. 知珉언니. 다시금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에서부터 단조로운 통화 연결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다. 그런데 당장은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다. 목소리는 들어야 마음 편히 잠을 잘 것 같았다. 刘知珉만 없는 刘知珉의 집이 유독 넓어서, 고요해서, 쓸쓸해서. 金旼炡이 티비 볼륨을 하나 더 높인 뒤에 리모컨을 쿠션 옆으로 치워뒀다.
手指动了几下立刻就浮现出键盘。金旼炡磕磕绊绊地依次按下辅音和元音,然后往上推了推手机的底部。盯着保存在收藏夹里的名字看了一会儿,拇指随即移动。知珉姐姐。从屏幕快速切换的那一刻起,单调的拨号音便开始响起。好想见她。但此刻却无法相见。所以才这样。不听到她的声音就感觉无法安心入睡。没有刘知珉的刘知珉家显得特别宽敞,特别安静,特别寂寞。金旼炡把电视音量又调高了一格,然后把遥控器放在了靠垫旁边。
- 어디에요 - 在哪里
더불어 그와 엇비슷한 타이밍에 연결음이 끊겼다. 기분 탓이겠지만 거실이 아까보다는 조금 더 환해진 것도 같았다. 金旼炡은 핸드폰을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맞춰봐요. 그래놓고는 잠시도 참지 못하고 본인이 먼저 선수를 쳤다. 검사님 침실 화장실 불 안 끄고 갔더라. 제 딴에는 나름 농담을 던진 건데 건너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네는 것이었다. 뻘쭘해진 金旼炡이 보일 리도 없는데 손을 휘적이며 아니라고 대꾸했다.
与此同时,通话声也在相近的时机断开了。可能是错觉,客厅似乎比刚才更亮了一些。金旼炡重新握好手机回答道:"您猜猜看。"话音未落,她就迫不及待地抢先说道:"检察官您走的时候没关卧室洗手间的灯。"她本意是开个玩笑,可对方毫不犹豫地道歉说着"抱歉"。金旼炡尽管知道对方看不见,还是尴尬地挥了挥手说不是这样的。
- 공판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집이 좀 엉망이에요
因为开庭太忙...家里有点乱
"엉망이라는 단어의 뜻이 제가 모르는 사이에 바뀐 건 아닐텐데…"
"混乱这个词的含义应该不会在我不知道的时候改变了吧..."
원체 인테리어는 깔끔한 편이었으며, 얼마 없는 물건 또한 늘 그러했듯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金旼炡은 집안을 쭉 둘러보고서는 리모컨을 집어 티비를 껐다. 까맣게 점멸된 화면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제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金旼炡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소파를 벗어났다.
房间整体的装修本就偏向简洁,为数不多的物件也一如既往地摆放在原位。金旼炡环视了一圈屋内,拿起遥控器关掉了电视。漆黑的屏幕中映出的自己的身影显得有些陌生。她一直认为自己并不是会感到孤独的性格。金旼炡缓缓起身离开了沙发。
"아무튼 그건 그거고, 그래서 검사님은 지금 어디에요? 술집 치고는 조용하네요."
"总之那是那回事,那检察官现在在哪里?酒吧也太安静了。"
복도를 걸어 침실에 다다르면 막 집에 왔었을 때는 느끼지 못한 디퓨저 향이 코끝을 스쳤다. 고작 전화 한 통으로 달라지는 게, 참 많았다.
走过走廊来到卧室时,一开始回家时没有注意到的香薰味扑鼻而来。仅仅一通电话,就让许多事情发生了变化。
- 밖에서 마시면 흐름 끊긴다고 아예 술 사들고 집에 왔어요
说是在外面喝酒会中断情绪,干脆带着酒回家了
"소주? 위스키?" "烧酒?威士忌?"
- 둘 다요 两个都是
"선배님도 주량이 좋으시구나."
"前辈的酒量也不错啊。"
- 그럭저럭…나쁘지는 않아요 还可以……不算太差
金旼炡은 매트리스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 앉아 다리를 위아래로 휘적였다. 밥은 먹었어요? 刘知珉의 질문에 얕게 웃으며 그렇다 대답했다. 검사님은요? 바로 되묻자 刘知珉은 지검 근처에서 해결하고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는 것에 남몰래 안심하며 스탠트 스위치를 가뿐히 반대로 넘겼다. 만약 누가 봤다면 다 큰 성인이 밥 챙겨 먹는 게 대수냐고 비웃을 수도 있었다. 물론 金旼炡에게는 한 귀로 흘려 듣고 말 타격 없는 야유겠지만. 버튼을 몇 번 만지작 거리며 밝기를 조정했다. 활짝 열린 방문 너머에서 들어온 불빛에 또다른 조명이 더해지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쨍하지도, 적적할 만큼 어두컴컴하지도 않은 적당한 조도였다.
金旼炡坐在床垫边缘,双腿轻轻晃荡。"吃过饭了吗?"刘知珉问道,她浅浅一笑回答说吃过了。"检察官您呢?"她立即反问,刘知珉告诉她在检察厅附近解决了晚饭才回来的。得知对方没有漏掉一顿饭,她暗自松了口气,随手把立式台灯的开关轻轻转到另一边。如果被人看到,或许会嘲笑一个成年人吃不吃饭有什么大不了的。当然,这种揶揄对金旼炡来说不痛不痒,左耳进右耳出罢了。她摆弄了几下按钮调节亮度。大开的房门外透进的光线加上新添的灯光,房间的氛围顿时变得不太一样。光线恰到好处,既不会亮得刺眼,也不会暗得令人感到寂寞。
"지금도 술 마시고 있어요?"
"现在还在喝酒吗?"
- 전화해도 돼요, 집주인도 본인 애인이랑 통화하러 갔어요
我可以打电话吗,房东也出去和男朋友打电话了
문장과 물음표 사이에 슬그머니 감춰뒀던 염려를 손쉽게 발견한다. 오늘도 刘知珉은 金旼炡 머리 위에 있다. 중증은 중증이다. 이제는 그마저도 다 좋다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며 기분 나빠했던 게 고작 한두 달 전이었다. 밤낮없이 붙어 있으려 해서 그랬을까. 몸도, 마음도 너무 쉽게 내어줬다. 몰랐는데 꽤나 손을 타는 편이었던 것 같다.
轻易便能发现藏在语句和问号之间的担忧。今天刘知珉依然在金旼炡之上。重症就是重症。现在连这样都觉得好。明明就在一两个月前还因为"怎么会有这样的人"而生气。大概是因为想日夜相伴吧。身体和心都太轻易地交付了。没想到自己竟如此容易被驯服。
- 드라마 촬영할 때는 주중 없이 바쁘나봐요
拍电视剧的时候好像连周中都很忙呢
"방송국 사정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일정이 점점 타이트해지더라고요. 일찍 끝나면 제작비도 그만큼 세이브 되고, 후작업할 시간도 늘어나니까요."
"虽然具体情况会根据电视台而定,但是总的来说档期安排越来越紧凑了。如果能够提前完成的话,不仅能节省制作费用,后期制作的时间也会相应增加。"
- 생각했던 것보다 워라밸이 무척 별로구나
- 工作与生活的平衡比想象中差得多啊
"검사님이 할 말은 아니지."
"检察官大人您没资格这么说。"
- 부정은 못 하겠네요
否认不了呢
"하여튼…검사님은 안 아파도 아프다고 꾀병 좀 부릴 필요가 있어요. 요령도 피우고, 가끔은 땡땡이도 치고."
"总之嘛...检察官您就算不难受也该装装病才对。该偷懒的时候就偷懒,该翘班的时候也得翘班。"
잔소리를 해도 그때 뿐일 것이다. 제가 아는 刘知珉은 아파도 안 아픈 척 할 사람이었다. 알아서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의외로 어떤 부분에서는 허술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때때로는 그 아킬레스건에 적힌 이름을 목격했다.
说教也只是一时的事。我所认识的刘知珉是那种即使生病也会假装不痛的人。虽然看起来很懂得照顾自己,但在某些方面却意外地显露出松散的一面。所以有时候我会看到写在她阿喀琉斯之踵上的名字。
"검사님." 检察官。
- 네 是的
"내일은 집에 올 거죠?"
"明天会回家吗?"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金旼炡의 입이 마른다는 것은 어쩌면 알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본인 집에 오는 걸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인가. 쓴웃음을 삼킨 金旼炡은 푹신한 이불보를 매만지다 바닥을 딛고 일어났다. 침대를 빙 돌아 반대편으로 와서는 협탁만한 사이즈의 미니 냉장고로 손을 뻗었다.
扬声器里没有传来任何声音。金旼炡等待回答时嘴唇发干,这一点或许并不为人所知。来自己家这种事情有必要考虑这么久吗。金旼炡咽下苦笑,抚摸着柔软的被罩后踩着地板站了起来。她绕过床铺走到另一边,向着柜子大小的迷你冰箱伸出了手。
- 갈 거에요
要走了
"……"
- 야근 안 하고 일찍
- 不加班早点
"……"
- 6시 되자마자 짐 싸서 퇴근할 테니까
- 一到六点就收拾东西下班
투명한 유리창 반대편에는 가지런히 줄 지어 늘어선 페트병이 보였다. 잘못 읽었나 싶어 핸드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눈도 몇 번이나 부볐다. 그럼에도 똑같았다. 생수병을 휘감은 라벨의 국적이 바뀌어 있었다. 유럽에서 남태평양으로.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연 金旼炡이 페트병 하나를 손에 쥐었다.
透明玻璃窗的另一边,整齐排列着一排排塑料瓶。以为自己看错了,她用没拿手机的那只手揉了好几次眼睛。但景象依然如故。包裹着矿泉水瓶的标签产地变了。从欧洲变成了南太平洋。金旼炡小心翼翼地打开玻璃门,拿起了一瓶水。
- 너무 보고싶어 하지는 마요
别太想念
술은 내가 마셨던가. 별안간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귓가를 타고 선배로 추정되는 이의 목소리가 아득히 넘어왔다. 먼저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잘 자고 스케줄 조심히 다녀와요. 그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기척도 없이 등장한 고요함이 금세 침실을 물들였다. 金旼炡은 손에 쥔 것을 빤히 바라보다 제 뺨에 병을 가져다댔다. 차갑다 못해 시린 기운이 뺨을 타고 정수리까지 닿는 것 같았다. 뒷목이 저릿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我是不是喝酒了。突然感觉身体飘飘然。前辈模样的人的声音飘渺地传入耳边。我得先挂了。晚安,注意安排好日程。那句道别成了最后的告别。悄无声息出现的寂静瞬间染遍了卧室。金旼炡直直地盯着手中的物品,随后将瓶子贴在了自己的脸颊上。那份寒意冷得几乎从脸颊一直渗透到头顶。后颈发麻。即便如此,她还是难以清醒过来。
그럼에도 불구하고 金旼炡은 刘知珉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문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다소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아주 불필요하며, 대단히 더없이 달갑지 않은 경험이었다.
尽管如此,金旼炡还是没能见到刘知珉。取而代之,她深刻地体会到了"人生就是时机"这句话存在于世的原因。那是一次非常非常不必要,而且格外令人不快的经历。
처음에는 그날 투정을 부려서라도 刘知珉을 집으로 불러들었어야 했나 하고 내내 후회했다. 그 다음에는 바다 건너 이억만리 타국도 아니고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는데도 만나러 갈 수 없는 현실을 원망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씁쓸하지만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하루에 한 번 전화하는 게 어디냐며 체념했다. 그래, 시차는 없으니까. 다같이 점심 먹을 때면 刘知珉도 쉬고 있으니까, 내가 촬영 대기하며 올려다 보는 달이 刘知珉도 비추고 있을 테니까.
起初,我一直在后悔那天应该任性一点也要把刘知珉叫到家里来。之后,我怨恨着明明不是远在海外,而是在同一片首尔天空下却无法见面的现实。最后,虽然心里苦涩,但还是接受了眼前的状况,自我安慰着每天通一次电话也不错。是啊,反正没有时差。她们一起吃午饭的时候刘知珉也在休息,我在等待拍摄时仰望的月亮,一定也在照耀着刘知珉。
대학 측에서 협조 기간을 축소라도 했는지, 감독은 강의실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은 최대한으로 몰아서 찍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현의 소속사 대표는 간식을 사서 촬영장을 찾은 김에 감독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다. 혹시 저희 여기서 촬영 다 끝내고 지방 내려가는 건가요?
不知是否是学校方面缩短了合作期限,导演把以教室为背景的场景都尽可能集中起来拍摄。听到消息的李玹所属社长带着零食来到片场,顺便委婉地问导演:'请问我们在这里拍完后是要去地方拍摄吗?'
탁 감독은 그늘막 아래 앉아 휘핑크림을 휘저으며 연신 앓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국장에서부터 본부장까지 하루라도 빨리 작업 시마이 치고 제발(제작 발표회) 잡으라고 난리에요, 윗선에서 쪼는데 저희가 별 수 있나요, 오죽하면 메모리 미리 받아서 실시간으로 편집하겠냐고요. 시청률 하락, 광고 수익 감소 등의 이유로 드라마국이 개편되면서 기존에 정해뒀던 편성마저 갑작스레 꼬여버렸다는 건 대표도 익히 아는 터라 별다른 반박은 않았다. 그저 우리 애 좀 잘 신경 써 달라며 탁 감독과 맞잡은 손만 거듭 흔들었다.
导演坐在遮阳棚下,搅拌着奶油,不停地发出哀叹声。从频道部长到总部长都在催促尽快完成工作,赶紧定下制作发布会的日期,上面都在施压,我们也没办法,不得已才提前拿到素材实时进行编辑。由于收视率下滑、广告收入减少等原因,电视剧部门进行改编,原本确定好的编排突然变得混乱,这些社长也都清楚,所以没有特别反驳。只是拉着导演的手,一再叮嘱要好好照顾我们的孩子。
소속사 대표가 왔다 간 마당에 조기 크랭크 업을 핑계로 배우들을 밤낮없이 붙잡아 두는 것도 면이 안 사니 탁 감독은 스탭들을 불러모아 주간 스케줄을 재조정했다. 金旼炡의 매니저는 그 모습을 구경하다 오 대표는 리딩 때부터 지금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면서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재계약을 밀어붙이냐며 볼멘소리를 했고, 金旼炡은 오피스텔 자체가 세대수도 적은데다가 대부분 실거주 목적으로 매매를 해서 나온 매물이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문자에 근처 아파트도 알아봐라는 답장을 보냈다.
既然公司代表已经来访过,以提前开机为借口日夜不停地留住演员们也说不过去,因此塔克导演召集工作人员重新调整了每周的日程安排。金旼炡的经纪人在一旁看着这一幕,抱怨道欧代表从排练到现在连个人影都没见到,到底是哪来的自信要推动续约。而金旼炡则回复房产中介的短信说,既然公寓单元数量本就不多,而且大多数都是用来自住,导致没有在售房源的话,那就帮忙看看附近的住宅区吧。
완벽한 동상이몽이었다. 그러니 탁 감독이 선심쓰듯 돌려준 주말을 앞두고 매니저는 데이트는 나중에 하고 집에서 푹 쉬라는 설교를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거고, 金旼炡은 알겠다 대꾸하며 디저트 카페에 주문을 넣고, 서초동 근처의 평이 괜찮은 식당을 찾아보는 거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这是个完美的南辕北辙。经纪人像念经一样反复叮嘱,对于导演塔好心给的周末,先回家好好休息,约会以后再说;而金旼炡一边应着好,一边给甜品店下单,还在搜索瑞草洞附近评价不错的餐厅。她的心早已飞到别处去了。
택시 타고 오피스텔로 향하는 동안에는 줄리엣을 만나러 가는 로미오의 심정을 떠올려 봤다. 한때는 다시 없을 세기의 사랑이라 생각 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래도 거긴 집안만 반대를 하더라. 반면에 요즈음은 밖에 나가서 이름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는 여자친구를 차마 붙잡을 수 없었던 金旼炡은, 이니셜 박힌 찌라시 들고 와서 이거 너랑 그 친구 아니냐며 노발대발하는 대표를 바라보다 끝내 정태준의 여자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金旼炡은, 여자 좋아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공개연애를 선택한 金旼炡은, 사랑을 두고 포기해야 할 것이 참 많기도 했다. 한참 방송 중인 작품에 누를 끼칠 수도 없었고, 이제 겨우 인정받기 시작한 연기를 놓고 싶지도 않았다.
乘出租车前往公寓的路上,我想起了罗密欧去见朱丽叶时的心情。曾经以为那是世纪不再的爱情,但仔细想来,她们也只是遭到家族反对而已。相比之下,金旼炡不敢挽留那个连在外说出自己名字都要小心的女朋友,金旼炡看着手持印有情侣首字母的小报、怒不可遏地质问"这不是你和那个人吗"的社长后,最终决定成为郑泰俊的女朋友,为了隐藏喜欢女人的事实而选择了不该有的公开恋爱的金旼炡,在爱情面前需要放弃的东西实在太多。既不能影响正在播出的作品,也不想放弃好不容易才获得认可的演技。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강산이 바뀌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金旼炡은 지난날 소란을 그새 잊어버린 듯 굴었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걸 뻔히 알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있다. 한 번 크게 데여봤으니 다음에는 몸 사릴만도 한데, 어째 날이 갈수록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구차한 변명만 자꾸 덧댔다.
就这样三年过去了。虽然要改变江山还早得很,但金旼炡似乎已经忘记了过去的动荡。她明知周围人在担心,却总是轻描淡写地应付过去。原本被狠狠烫伤过一次,下次应该会更加谨慎才对,可不知为何,随着时间推移,她总是找借口说现在这些都不重要了。
누군가는 비웃을 무식하고 무모한 애정이었지만 뭐 어떠나 싶었다. 刘知珉이 우는 거 본 적 있어요? 없죠, 그러면 말을 마요. 刘知珉이 웃는 건 본 적 있어요? 그러면 말이 좀 통할 수도 있겠네. 세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며 그 기준에는 무조건적으로 刘知珉을 뒀다. 그동안 쌓아 올린 커리어나, 레드카펫 깔린 앞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이다. 대신 속 편히 저울질이나 했다. 철천지 원수 집안의 자식에게 마음 뺏긴 애보다는 그래도 제 쪽이 더 괜찮지 않나, 하는. 과연 딱 스물 여섯답게 철 없었다.
也许有人会嘲笑这份愚昧无知又鲁莽的感情,但她觉得无所谓。你见过刘知珉哭吗?没见过吧,那就别说话。你见过刘知珉笑吗?那或许我们还能聊得来。她用二分法看待世界,而标准永远以刘知珉为准。仿佛就此抛开了至今积累的事业和铺着红毯的前程。取而代之的是轻松地权衡:至少比爱上世仇家族子嗣的人要好得多吧。果然,正如二十六岁的年纪一样不够成熟。
구닥다리 비극 속 주인공과 불행배틀 하다보면 서초동 오피스텔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에는, 로비를 지나치는 발걸음에는 일말의 어색함이 없었다. 누가 봐도 손님의 모습은 아니었다. 15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반질반질한 대리석 복도를 걸으면서는 주말까지 휴가를 받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2분 뒤에 돌아왔다. 외식할까요 아니면 포장해서 들어갈까요. 집에서는 식기를 셋팅하고 치워야 하니 밖에서 먹는 게 서로 편했지만,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눌 걸 생각하면 차라리 잠깐 번거로운 게 나았다.
在跟陈旧俗套的悲剧主角比惨的路上,很快就到了瑞草洞的公寓。输入密码的手指,穿过大堂的脚步,都没有丝毫的不自然。任谁看都不像是个访客的样子。在上到 15 层的电梯里思考着晚餐菜单,走在光亮的大理石走廊上时发了休假到周末的短信。回复在两分钟后到来。是出去吃还是打包回家呢。在家里要摆放餐具又要收拾,在外面吃对双方都方便,但想到可能无法好好交谈,不如暂时忍受一下麻烦。
안으로 들어온 金旼炡이 운동화를 벗으며 자판을 눌렀다. 검사님만 괜찮으면 시켜 먹을. 그러나 문장을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제가 뒷정리 할 거니까 그냥 집에서 먹어요. 조금, 아니 실은 많이 얼떨떨했다. 연달아 핸드폰이 진동한다. 길이는 짧았지만 틈 없이 계속 이어지니 마치 전화가 오는 것도 같았다. 旼炡씨가 먹고 싶은 거 시켜요. 금방 갈게요. 쉬고 있어요. 아이스크림은 아마 냉장고에 그대로 있을 거에요. 도착하면 40분쯤 되려나. 이따가 봐요.
金旼炡走进来脱鞋时正在按着手机键盘。本想写"如果检察官觉得可以的话就点外卖",但没能把这句话打完。我会收拾的所以就在家吃吧。她有点,不,其实是相当懵。手机接连不断地震动。虽然每条信息都很短,但因为持续不断地来,感觉像是在打电话一样。旼炡想吃什么就点什么。我马上就到。好好休息。冰淇淋应该还在冰箱里。到那大概要 40 分钟吧。一会见。
이럴 때는 괜히 스크롤을 끝까지 올려본다. 그러니까, 刘知珉이 刘知珉처럼 실감 나지 않을 때. 남들은 무슨 얼토당도 않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동안 주고 받았던 문자를 같이 읽다보면 한 명쯤은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다.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刘知珉에 대한 金旼炡의 마음만큼이나, 刘知珉이 金旼炡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분명 달라졌다. 때문에 金旼炡은 없지 않아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 刘知珉을 어떻게 안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그만 좋아해. 그것이야말로 억지였다.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사람인데, 그래놓고도 미안하다는 입에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인데.
在这种时候,我总会不由自主地把聊天记录一直往上翻。就是在刘知珉不像刘知珉的时候。虽然别人可能会说这是无稽之谈,但如果一起看看我们之间的所有对话,或许至少会有一个人能够理解。一切都在慢慢改变。就像金旼炡对刘知珉的心意一样,刘知珉对金旼炡展现的一面也确实变得不同了。正因如此,金旼炡心里难免有些委屈。这样的刘知珉要怎么能不喜欢,怎么能少喜欢,怎么能不再喜欢。那才是强人所难。明明是个收到多少就会回报多少的人,却还总是挂着"对不起"这句话过日子。
허기가 지는 줄도 모르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대충 아무거나 시킬까 하다가도, 대충 아무거나 먹이고 싶지는 않아서 배달 어플 속 메뉴를 고르고 또 골랐다. 6시가 조금 넘어가자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다. 旼炡아 저녁은 먹었어? 이제 시키려고. 그래, 끼니 거르지 말고. 언니도 맛있는 거 사 먹어요. 월요일에는 오후에 나가도 될 것 같더라. 웬일로 감독님이 스케줄을 널널하게 빼줬지. 아마 이거 마지막 휴식일 거야. 응? 지방 내려가야 하잖아 우리. 벌써 그렇게 됐어요? 이번 주에 선발대로 먼저 출발한 스탭들도 있다는데 뭐. 金旼炡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무튼 집에서 푹 쉬고, 겸사겸사 짐도 싸놔. 어영부영 알겠다 대답하며 매니저와 통화를 끝낸 뒤에 캘린더를 살폈다.
坐在沙发上连饥饿感都没注意到。本想随便叫点什么,又不想随便对付,便在外卖软件里一遍又一遍地挑选菜单。刚过六点,经纪人打来电话。"旼炡啊,吃晚饭了吗?""正准备点。""嗯,别忘记吃饭。""姐姐也要吃点好的。""周一下午才用去片场。不知道导演怎么这次给了这么宽裕的时间。这大概是最后的休息时间了。""嗯?""我们不是要去外地吗。""已经到这个时候了吗?""听说这周有些工作人员已经先去了呢。"金旼炡一时语塞。"总之在家好好休息,顺便也收拾一下行李。"含糊地应了声后结束通话,她查看了日历。
못해도 삼주는 떨어져 지내야 한다. 오늘도 나흘만에 겨우 만나는 건데, 앞으로는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다는 것이다. 한숨만 연거푸 터져나왔다. 몰래 택시를 잡아탈 수도 없었다. 서울까지 올라오는데만 한나절이 걸릴 는 것은 고사하고, 애초에 매니저에게 발각되지 않고 숙소 근처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나갔다. 진짜 하루종일 붙어 있어야겠네. 물론 다른 날이라고 그러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至少要分开三周。今天好不容易过了四天才能见面,而往后连这都不被允许了。接连不断地叹着气。连偷偷打车都不行。先不说去首尔就要花上半天,从一开始就不可能瞒过经纪人溜出宿舍附近。嘴角不禁泄露出一丝苦笑。看来真得整天都要腻在一起了。当然,其她日子也没少这样就是了。
핸드폰을 챙긴 金旼炡이 거실을 벗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刘知珉을 봐야 헛헛한 마음이 채워질 것 같았다. 내일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조바심이 들었다. 金旼炡은 로비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발만 동동 굴렀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차가 드나드는 입구 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급하게 뒤를 돌아 비상구만 쳐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검으로 간다고 할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를 곱씹으며 엘리베이터 주위를 빙글빙글 배회했다.
拿上手机的金旼炡走出客厅来到玄关。没有时间耽搁了。她觉得只有尽快见到刘知珉,那份空虚的心情才能得到填补。虽然并不是明天就要离开,却莫名地感到焦急。金旼炡在等待从大堂上来的电梯时只能焦躁地来回踱步。到了地下停车场也是一样。她伸长脖子朝着车辆进出的入口张望,环顾四周,一旦感觉到有人气就急忙转身盯着安全出口。懊恼地反复思考着早知如此就该直说去检察厅的想法,在电梯周围来回徘徊。
어디까지 왔냐고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도 운전 중일 게 뻔하니 핸드폰으로는 시간만 확인하고 말았다. 1분이 1년 같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다. 자기 전에 목소리를 듣는 거나, 얼굴을 보는 거나 거기서 거기니까. 음성통화가 영상통화가 되는 것 뿐이니까. 金旼炡은 무언가를 다짐한듯 주먹을 말아쥐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正想打电话问问到哪儿了,但想到她肯定在开车,就只看了看手机上的时间。一分钟感觉像一年那么长。所以也没办法。睡前听听声音,看看脸,都差不多。只不过是从语音通话变成视频通话罢了。金旼炡像是下定了某种决心,握紧拳头望向天花板。
"…金旼炡." "…金旼炡。"
잠깐은 망설였다. 모자도 쓰지 않았고, 얼굴을 가릴 만한 무언가가 없어서.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뒷모습만 보고 金旼炡이라는 것을 알아챌 사람이 이 오피스텔 거주자 중 몇이나 될까. 제 기억 속에는 한 사람 뿐이었다.
她犹豫了一下。她没戴帽子,也没有任何可以遮住脸的东西。突然间她意识到了。在这栋公寓楼里,能从背影认出她是金旼炡的人能有几个呢。在她的记忆里,只有一个人。
"旼炡아." "旼炡。"
뒤돌아 서면 어느덧 발치까지 다가와 있는 刘知珉 말고는, 없었다.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꼭 들어맞는 품에 안긴 金旼炡이 얄따란 셔츠를 움켜쥐었다.
除了一转身就不知不觉靠近脚边的刘知珉,什么都没有。金旼炡被拥入那个仿佛天生契合的怀抱,紧紧抓住单薄的衬衫。
"미안해요…보고 싶었어요." "对不起...我想你了。"
"…검사님." "……检察官。"
"……안 되는데…" "……不行啊……"
모르겠다. 미안해서 보고싶었다는 건지, 보고싶어서 미안하다는 건지, 그래서 뭐가 안 된다는 건지, 왜 보고싶어만 해도 사과해야 하는 건지. 아무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어렵기만 했다. 여전히 쉬운 게 없었다. 刘知珉이 좋은 건데, 刘知珉과 함께 있고 싶은 건데, 刘知珉이 웃기를 바라는 건데, 그게 전부인데. 金旼炡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내가 이 옆에 머물러도 되는 걸까.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我不知道。是因为抱歉所以想见你,还是因为想见你所以抱歉,所以什么不行,为什么光是想见你就要道歉。什么都不明白。到现在还是很难。依然没有什么容易的事。明明就是喜欢刘知珉,明明就是想和刘知珉在一起,明明就是希望刘知珉能笑,仅此而已。金旼炡第一次有了这样的想法。我真的可以留在这个人身边吗。但是没能说出口。做不到。
金旼炡은 한동안은 지하 주자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刘知珉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미안하다는 말은 끝까지 못 들은 척 했다. 목구멍을 간질이는 속상함은 애써 삼켜버렸다. 지금은 어설픈 추측이나 짐작으로 시간 낭비할 겨를이 없었다. 刘知珉도 마찬가지로 金旼炡을 보고싶어 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그 이하로 의미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복잡한 머릿속은 이틀 뒤에 비워내면 그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촬영장에서 대기하며 나중에 정리하면 됐다.
金旼炡一直没有对地下停车场发生的事表露任何情绪。对于刘知珉小声嘟囔的道歉,她一直装作没有听见。她强忍着喉咙里泛起的难过。现在没有时间浪费在模棱两可的猜测和臆想上。刘知珉同样想见金旼炡,仅此而已。她既没有赋予它更多的意义,也没有减少它的分量。复杂的思绪两天后清空就好。在回家的出租车上,在店里化妆的时候,在拍摄现场等待的时候,之后再整理就可以了。
소파에 나란히 앉아 저녁으로 먹을 장어덮밥이니, 돈까스니, 냉우동이니 시키는 것까지는 좋았다. 금요일이지만 배달도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일하다 온 건 마찬가지면서 刘知珉은 식탁 셋팅에서부터 뒷정리까지 전부 혼자 도맡았다. 손을 다친 것도 아닌데 金旼炡이 거들려고 하면 刘知珉은 정색하듯 얼굴을 굳히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쥐여줬다. 그러는 본인은 분명히 그 전보다 살이 내렸으면서 오랜만에 만나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라며 말을 돌렸다. 金旼炡도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속아 넘어갔다. 사흘만에 얼굴을 봤으니까, 주말이 끝나고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니까, 당장 다음주부터는 지방으로 내려갈 수도 있으니까.
坐在沙发上点外卖,鳗鱼盖饭、炸猪排、冷乌冬面都还好。虽然是星期五,但外卖也没来太晚。明明都是下班回来,刘知珉却从摆餐桌到收拾全都一个人包办了。明明手也没受伤,每当金旼炡想帮忙,刘知珉就板着脸从冰箱里拿出冰淇淋塞给她。而她本人虽然明显比之前瘦了,却说只是因为好久不见才这么觉得。金旼炡一开始也信以为真。毕竟三天没见面了,周末结束后分开也不知道什么时候才能再见,而且下周就可能要去地方出差。
刘知珉과 보내는 순간이 귀했고 찰나가 아까웠다. 침실과 거실에 딸린 화장실에거 각각 샤워를 하고 나온 뒤에는 본드칠을 해놓은 듯 내내 붙어 있었다. 폭풍을 부르는 정글도,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디지털 병풍으로 이용만 당했다. 틀어 두기는 해도 볼륨은 거의 음소거에 가까울 정도로 작게 낮추었다. 金旼炡이 먹던 아이스크림은 반도 비워내지 못한 채 그대로 녹아버렸고, 刘知珉이 마시던 맥주는 탄산이 다 빠져 미적지근해졌다.
与刘知珉在一起的每一刻都弥足珍贵,连一瞬间都舍不得浪费。各自在卧室和客厅的浴室冲完澡后,就像涂了胶水一样一直黏在一起。《暴风雨中的丛林》、《机智的医生生活》、《美国狙击手》都只沦为了数字屏风。虽然开着电视,但音量却调得几近于无。金旼炡吃到一半的冰淇淋就这样融化了,刘知珉喝了一半的啤酒也失去了气泡变得温热。
대화를 많이 나누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연락은 계속 주고 받았으니, 어제는 동기가 담당하는 사건의 판례를 찾아주느라 늦게 퇴근한 것도, 그저께는 이현이 NG를 많이 내서 자정까지 현장에 남아 있던 것도 전부 알고 있으니 다른 방법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침실에 들어간 이후로는 시간도 확인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식탁과 거실 테이블에 두고 왔다는 것도 다음날 정오에야 알았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소파에 누워 가만히 안겨 있었고, 달이 고도를 낮출 때는 침대에서 뒤척이며 새벽을 지세웠다. 그렇게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要说是否谈了很多话,其实也不然。虽然一直保持着联系,所以知道她昨天因为要帮同期找案件判例而加班到很晚,前天因为李炫出现很多 NG 而不得不留在现场到半夜,就用这些别的方式来抚慰相思之情。进入卧室后就没再看时间。直到第二天中午才发现手机被落在了餐桌和客厅茶几上。太阳高悬时,静静依偎在沙发上;月亮低垂时,在床上辗转反侧直到破晓。就这样度过了一段遵从本能而非理性的时光。
나른했던 분위기가 삐끗거리기 시작했던 건 金旼炡이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다 위에 놓인 약봉투를 발견한 이후였다. 심지어 하루이틀 먹다 말았는지 봉투 안에는 약이 꽤나 많이 남아 있었다.
慵懒的氛围开始变得不安起来,是在金旼炡在饮水机前接水时发现上面放着的药包之后。而且看样子好像只吃了一两天就停了,药包里还剩下相当多的药。
刘知珉 / 5일분 / 아침 점심 저녁 / 식후 30분/ 서초세브란스의원 / 02-1117-4111 / 서울 서초구 서초로 11-17
刘知珉 / 五天剂量 / 早中晚 / 饭后 30 分钟 / 瑞草世博仁斯医院 / 02-1117-4111 / 首尔瑞草区瑞草路 11-17
金旼炡은 봉투를 뒤집어 약품명과 복약 안내를 찬찬히 읽어봤다. 써스펜이알서방정, 명문록소프로펜정, 엘도스캡슐, 리노에바스티서방캡, 에이클란듀오정 500. 소염 및 진통 해열, 기침, 두통. 핸드폰으로 검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상세한 설명이었다. 감기 걸렸었구나. 약봉투를 제자리로 돌려두려던 金旼炡이 멈칫하고 앞부분을 재차 확인했다. 주소 아래 적힌 날짜는 4일 전이었다. 간만에 촬영이 일찍 끝났던 그날, 刘知珉이 외박했던 그날, 선배 집에서 술을 마셨다는 그날.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거짓말을 할 줄은…정말 몰랐는데. 실소가 절로 새어나왔다.
金旼炡翻过药包,仔细阅读药品名称和服用说明。舒笛宁缓释片、明文洛索芬片、艾多斯胶囊、利诺依伐斯汀缓释胶囊、艾克兰双效片 500。消炎止痛退烧、止咳、头痛。说明详细到不用再用手机查询。原来是感冒了啊。正当金旼炡准备把药包放回原位时,她顿了顿,重新确认了前面的内容。地址下面记录的日期是 4 天前。那天拍摄难得早早结束,刘知珉在外过夜的那天,说是在前辈家喝酒的那天。顿时感到心灰意冷。没想到她竟然会说这种谎话……真是始料未及。不禁苦笑出声。
다 나았으면, 이제 아프지 않은 거면, 그러면 된 거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金旼炡은 바스락거리는 약봉지를 만지작거리다 유리잔에 든 냉수를 단번에 비워냈다. 머리가 띵한 게 단순히 혈관의 수축과 팽창 때문은 아닐 것이다. 차가운 물을 마셨지만 속은 달래지지 않았다. 도리어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如果已经痊愈了,如果已经不痛了,那就足够了。没必要把疮疤抓破。金旼炡摆弄着沙沙作响的药袋,一口气喝光了玻璃杯里的冷水。头昏昏沉沉的感觉不仅仅是因为血管的收缩和扩张。虽然喝了冷水,但内心却无法平静。反而像是有块石头沉在心里,胸口闷得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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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기 왔다 ... 사랑해서 미안해 보고싶어해서 미안해 .... 그리고 여기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이 상황이 ... 날 미치게 해
必杀技来了...对不起我爱你 对不起我想你....而且这种无法轻易回答的情况...让我发疯